선조 25(1592)년 4월 14일, 조선민족의 력사에는 미증유(未曾有)의 일대 재난이 일어났다. 일본국토안의 여러 령주들을 모조리 정복하고 일본국의 관백이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丰臣秀吉)는 동방을 제패하려는 야욕을 품고 이웃나라인 조선에 죄악적인 침략의 마수를 뻗치였다.
이것은 조정에서 정권다툼에 눈이 어두워 나라의 정치와 국방건설에는 눈길 한번 돌리지 않고 하찮은 일에 옥신각신하던 조정의 많은 신하들과 전쟁이란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화롭게 백여년동안을 살아오던 백의민족동포들에게 청천벽력이 아닐수 없었다.
4월초의 어느날, 동래해변을 순라하던 병졸 한사람이 대마도쪽으로부터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며 날아오는 까마귀떼를 발견하고 왜적들이 수백척의 군함을 갈라타고 조선으로 쳐들어오고있다는것을 판단하였다. 왜적들이 일본본토를 떠나 현해탄으로 들어오고있다는 급보가 동래부(东莱府)에 올라오고 다시 그 소문이 다시 밖으로 퍼져나가자 연해지방의 수령들과 백성들은 그만 얼을 잃고말았다. 날마다 국방건설을 다그친다면서 백성들의 피땀을 쥐여짜기에만 여념이 없던 지방의 탐관오리들은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자 성을 지킬 생각은 아예 구중천에 날려버리고 실오리같은 제집식구들의 목숨만 건져보겠다고 금은재부를 수레에 싣고 가족들을 이끌고서 저마다 심심산곡으로 뿔뿔이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휘자를 잃고 의지가지없게 된 불쌍한 백성들은 가장집물을 보자기에 싸서 이고지고 피난길에 올라 북으로 북으로 올라들 갔다. 여러해동안 백성들이 고혈로 쌓은 높은 성벽과 수많은 성지(城池)는 왜적들을 막는데 한번 써보지도 못한채 텅텅 비여 무인성을 이루고있었다.
조정에서는 임진란이 일어나자 황황해진 령남백성들의 민심을 수습하지 않고서는 나라안의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킬수 없다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왜적들이 아직 동래항구도 올라오지 못했는데 남방의 수십개 고을이 텅텅 비고 말았으니 만약 적들이 등륙해서 올라온다면 그 정경은 어떠할가?
4월 11일 아침, 선조왕은 비상경연을 베풀고 문무백관들과 같이 당면한 엄중한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다.
<<목하 남방의 형세가 극히 엄중하니 경들의 생각에는 어이하면 좋을고?>>
<<전라도해역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리순신(李舜臣 1545--1598) 이 거북선을 제조하여 물샐틈없이 지키고있으니 과히 우려할 필요가 없나이다. 그런데 경상우도에는 마땅한 병사가 없기에 반드시 능력이 출중한 사람으로 바꿔야 되겠나이다. >>
경연에 참석했던 서애 류성룡이 먼저 이렇게 대답하자 선조왕이 다시 물었다.
<<그럼 누구를 파견해야 이 난국을 수습할수 있을고?>>
선조왕은 안타까운 눈길로 좌석에 앉아있는 신하들을 일별했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이른 시각에 문무백관들은 하나 둘 머리를 스그리기 시작했다. 그 누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모래알같이 흩어진 백성들을 끌어모으고 무슨 힘이 있어서 파죽지세로 쳐들어올 왜적들을 막아낸단 말인가? 경연장에 모인 신하들은 선조왕의 눈길을 피하면서 몰래 남들의 눈치만 살피였다.
<<신의 소견에는 경상도의 사민들의 마음을 단합시켜 왜적을 치게 하자면 경상우도병사로는 학봉 김성일이 적임자인가 하옵니다.>>
류성룡이 김성일을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추천하자 제발등에 불이 떨어질가봐 부들부들 떨던 문신들은 저마다 <<호------>>하고 안도의 숨을 몰아쉬였고 중책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부끄러움에 낯을 붉히고있던 무관들은 경의에 찬 눈길로 김성일을 돌아봤다.
( 김성일이 그런 중책을 감당할수 있겠는가?)
반신반의하는 눈길로 김성일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태연스레 앉아있는 그의 도고한 자태에서 믿음을 가졌다.
<<김성일이 적임자가 올시다. 경상도 사민들의 인심을 안정시키는데는 그분보다 나은분은 없다고 보나이다.>>
경연에 참석했던 신하들이 하나 둘 련이어 김성일을 추천하자 선조왕은 김성일에게 경상우도병마절도사(庆尚右道兵马节度使 : 경상우도의 병권을 장악한 관리로서 간칭은 兵使)를 맡긴다는 조서를 내렸다.
워낙 품성이 강직하고 지혜와 학문이 출중한 김성일은 조야에서 성망이 높았는데 그중에도 령남의 사민들속에서 신망이 더욱 높았다. 왜적들이 조수같이 밀려들어올 령남으로 내려가서 황황해진 령남민심을 수습하는데는 확실히 김성일을 제외하고는 적임자가 없었던것이였다.
김성일은 경연에 모인 사람들의 두터운 신임에 깊이깊이 감동되였다.
<<황공하오이다. 전하 소신은 비록 무재(无才)하오나 혈심으로 적과 싸워서 천은에 보답하겠나이다.>>
경상우도병사의 임명장을 받고난 김성일은 선조왕과 신하들에게 깊은 사의를 표시하였다. 난생 병장기라곤 손에 한번 쥐여보지도 못했고 갑옷투구도 몸에 걸쳐보지 못했던 순수한 문관이요 손에 붓밖에 쥐여보지 못했던 학자요 시인인 그에게 있어서 난시를 만나 병마절도사를 맡는다는것은 실로 두 어깨가 뻐근한 일이였다.
조서를 받고 경연청을 나온 김성일은 누구보다 마음이 바빴다. 다급히 침소로 돌아와 행장을 수습하고난 그는 이튿날 아침에 수행인원들과 같이 한양성을 떠나갔다. 동래항구에서 올라와 부산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령남땅을 휩쓸며 쳐들어올 왜적들의 기세를 생각하니 한시도 서울에 머무를수 없었던것이였다.
닫는 말에 박차를 가하여 한양성을 나온 그들의 앞에는 한강이 가로막혀있었다. 그들이 올것을 미리 알았던지 사공은 나루터에 대기하고있었다. 배에 말과 짐을 싣고 강을 건넌 김성일은 다시 말안장우에 올라앉았다. 마상에서 용용한 한강물을 내려다보는 그의 심정은 이때따라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날마다 고개만 들면 한눈에 안겨오던 푸르른 삼각산은 정어린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며 승리하고 돌아오라고 손짓하는것 같았고 사품치며 흐르는 한강은 이 나라 백성들의 절절한 심정을 담아 석별의 정을 토설하는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를 들고 정어린 삼각산을 묵묵히 바라보다가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푸르른 강물을 보고 또 보았다. 이제 한번 이곳을 떠나면 다시 보기 어려운 산과 강이였기에 그는 오래오래 보고싶었다. 마상에서 지필을 꺼내여 잠간 생각을 굴리던 그는 절구 한수를 지었다.
국방의 중책 맡고
남방으로 떠나노니
외로운 이 신하
한번 죽을 각오하였네.
눈앞에 상시 보던
저 남산과 한강물은
되돌아보니 맘속깊이
잊혀지지 않는구나.
(仗城登南路 孤臣一死轻
终南与涓水 回首有余情)
김성일은 시의 제목을 <<한강을 떠나면서(汉江留别)라고 써놓고나서 소리높이 시를 읊었다.
격앙된 목소리에 한강은 열정적으로 화답하고 삼각산도 귀를 기울이는 것만 같았다. 수행인원들은 학봉선생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러보며 호방한 그의 시구절을 되뇌이였다.
지방수령들과 진장(镇将)들도 고을을 지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깊은 산속으로 뿔뿔이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고 백성들도 당황망조하고있을 때 학봉선생은 도리여 적들이 살판치는 령남으로 달려갔다.
충주(단월)에 이른 학봉선생일행은 적들이 이미 동래성을 함락하고 북진을 다그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시바삐 적을 만나 격전을 벌이려는 그에게 시간은 금싸라기보다 귀중하였다. 그들은 낮이면 쉬임없이 행군을 다그쳤고 밤이면 말안장도 내리지 않은채 고을에 들려 약간씩 눈을 붙였고 아침요기를 하고나면 또 길을 나섰다. 조령(새재)을 넘어서고 문경을 내려와 함창, 상주를 거친 그들은 곧추 남으로 내려갔다.
단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질병에 걸린 학봉선생은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처지였지만 이를 악물고 행군을 견지했다. 그는 경상우도병영이 자리잡은 창원으로 한시바삐 찾아가기 위해 큰길을 버리고 심산속의 오솔길을 헤치며 나아갔다. 의녕을 지나 얼마 멀지 않은곳에는 함안으로 들어가는 남강의 정암나루터가 눈에 보였다. 강건너편의 함안평야를 바라보니 피난민들이 헌 보따리를 이고지고 허둥지둥 나루터로 달려오는 정경이 눈에 안겨들었다. 수행인원들은 왜적이 이미 함안근방까지 쳐들어왔다는것을 짐작하고 일행의 안전을 위해 진주로 우회할 계책을 꾸며댔다.
<<병사나으리, 이곳의 남강물은 물살이 센데다 너무 깊어서 말을 타고 강을 건너지 못할것 같습니다. 진주로 돌아가는것이 상책인가 보옵니다.>>
<<진주로 돌아가는 길은 대통로이기에 우회한다해도 시간이 별로 더 걸리지 않을것입니다.>>
수행인원들의 속생각을 꿰똟어 본 김성일은 그들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이제 남강을 건너 함안에만 이르면 창원이 지척인데 진주로 우회하느라 백리길을 더 걸을수 있겠소? 딴말 말고 나를 따라 오시오.>>
자그마한 나룻배에 인마를 싣고 강을 건너려면 시간이 오래 지체될것을 념려한 김성일은 물살이 잔잔한 곳을 찾아 강물에 들어섰다. 절도사의 용감한 행동에 깊이 감동된 수행인원들도 뒤따라 물에 들어섰다. 말허리까지 잠기는 강물을 건너고 나니 하반신은 물참봉이 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물에 흠뻑 젖은 바지를 벗어서 무비틀어 물을 대강 짠 뒤 젖은 바지를 말리울 념도 않고 급히 말안장에 올라 함안평야를 내달렸다.
행망원( 창원 마산포) 에 이른 학봉일행은 수레에다 가장집물을 실으면서 한창 피난갈 준비를 서두르는 원 경상우도병사(庆尚右道兵使) 조대곤(曹大坤)을 만났다. 학봉선생이 대방을 언뜻 보니 환갑이 지난데다가 몸에 병까지 수두룩한 조대곤은 병사라는 빈 이름만 걸고있었지 기실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는것을 직감했다. 조대곤은 자기의 책임구역인 김해가 왜적들에게 함락당할 위험이 있다는 급보를 받고서도 달려나가 적들의 포위를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병영을 떠나 마산포에 와서 피신하고있었다. 그는 학봉선생을 만나자 지은 죄가 두려워서 사시나무같이 떨고있었다.
(조정에서 저런 페물짝을 병사로 시키다니!)
김성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조정의 처사가 너무도 어처구니 없었다. 다른 한편 나라의 운명이 칠성판에 오른 이 시각에 서푼어치도 못되는 목숨을 보전하겠다고 피신하려 서두는 조대곤의 비굴한 꼬락서니를 보니 역겨울 지경이였다. 그러나 그는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가까스로 억제하고 엄숙한 태도로 말했다.
<<조공, 그동안 수고가 많았겠소. 조정에서 무재한 나에게 병사직을 맡겼으니 사무인계를 합시다.>>
신임병사와 사무인계를 마친 조대곤은 풀이 죽어서 숙소로 돌아갔다.
<<적들이 이제 곧 병영으로 쳐들어오고있소이다.>>
<<무엇이라구, 적들이 쳐들어온다구?>>
죽음을 두려워하는 부하 하나가 거짓보고를 올리자 조대곤은 경황실색하여 사실의 진위도 알아보지 않고 행장을 수습하여가지고 심산골짜기로 도망쳐버렸다.
학봉선생은 전임병사한테서 병부(兵符)를 받자마자 말안장에 올랐다. 그는 말에 박차를 가하여 행망원에서 30리 떨어진 창원본영에 찾아갔다. 병마절도사가 없는 창원병영은 이사간 집안같이 스산하기 짝이없었다. 군사훈련을 다그쳐야겠는데 병졸들은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았거나 삼삼오오 몰려다니면서 금후에 닥쳐올 일들을 걱정하며 어쩔줄을 몰라하고있었다.
김성일은 수하사람에게 명하여 병영안의 전체 군사를 집합시켰다. 그리고 장단에 올라가서 친히 군사들을 점검했다. 그런데 군인수는 군적에 있는 수와 너무나도 차이가 많았다.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겁을 먹고 달아난 자들도 많았고 아예 왜놈들에게 투항한 자도 적지 않았다. 들은 말에 의하면 방금도 몇놈이 적들에게 투항하러 갔다는것이였다.
<<그런 망국역적들을 어찌 그냥 놔둔단 말인가? 당장 달려가서 몇놈을 잡아오라!>>
신임병사의 령을 받은 군관 몇사람이 병영을 떠나갔다가 도망병 몇놈의 수급을 베여가지고 돌아왔다.
<<이 더러운 놈들의 수급을 군중에 시위하라! 조상들의 뼈가 묻혀있는 이땅을 왜적들에게 넘겨주려는 자들은 누구나 다 이런 끝장을 피면하지 못할것이다!>>
학봉선생의 엄숙한 호령을 듣고난 병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들의 잘못을 맘속으로 뉘우쳤다.
학봉선생은 장단에 올라 관병들의 투지를 벼르는 일장 연설을 하고나서 수하의 군관들을 모아놓고 군영의 규률을 선포하고 병영에서 기강을 바로잡게 하였으며 군사훈련을 다그치도록 분부하였다.
이튿날 아침, 김성일은 김개(金铠)등 몇몇 군관을 데리고 병영을 한바퀴 돌아보고나서 성밖으로 나와 지형을 살펴보았다. 오래잖아 대거침범할 적들을 쳐부실 유리한 지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기 오는것이 왜병이 아닙니까?>>
한 군관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김성일이 고개를 들고보니 몇백보도 안되는 곳에서 황금빛 갑옷을 입은 왜병 몇놈이 말을 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보아하니 창원의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보낸 놈들의 정탐꾼이 분명하였다. 놈들은 부산을 점령한 뒤부터 아직까지 조선군사들의 아무런 저항도 받아보지 않고 순리롭게 창원근방까지 왔는지라 조선군민에 대해 별로 경계하지 않았다. 그들은 맞은켠에 사람이 있는것도 주의해 살피지 않고 거들먹거리며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저놈들을 단살에 격살하시오.>>
병마절도사의 명령을 받은 군관들은 일제히 활시위를 당겨 놈들에게 복수의 화살을 날려보냈다.
아무런 방비도 없던 왜놈들은 꿈밖의 화살에 맞아 한놈도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다 말에서 떨어져 죽고말았다.
비록 왜놈을 몇놈 죽이지 못했지만 이것은 임진란이 일어난지 10여일만에 처음으로 왜적들의 예기를 꺾어놓은 통쾌한 전투였다.
놈들의 수급을 베여가지고 병영으로 돌아온 김성일은 왜놈들의 수급을 장대에 걸어 군중에 효시하고나서 장계를 써서 조정에 이번 첫승리의 소식을 알리였다.
병영안의 관병들은 적들의 수급을 보고나서 저마다 몹시 흥분되였다.
<<갑옷을 입고 조총을 메였다는 놈들도 별란놈들이 아니구만.>>
<<우리가 죽기내기로 싸운다면 그놈들도 쫓겨나지 않고 되겠어?>>
<<이젠 학봉선생께서 병사로 되셨는데 두려울게 무엇이람.>>
병영안의 관병들은 신심이 가득하여 이번에 그들이 거둔 승리를 두고 의론이 분분하였다.
창원병영안의 전체 관병들이 대적의 투지를 벼루며 한창 훈련을 다그치고있을 때 조정에서 우편으로 보낸 조서가 내려왔다.
조정의 명령을 한시바삐 수행하려는 일념에 사로잡힌 김성일은 즉석에서 피봉을 뜯고 조서를 펼쳐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조서를 펼친 그는 눈이 퀭해졌다.
<<김성일이 창원병영으로 오거든 당장 나포하여 상경시켜라!>>
천만 뜻밖으로 봉변을 당한 김성일의 조서를 든 손은 떨리였고 낯빛도 백지장같이 하얗게 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륙상에서 첫공을 세우고 대적의 태세를 갖추게 한 김성일을 무슨 죄로 나포하려 하는것일가? 김성일의 곁에서 조서를 같이 읽어가던 군관들은 가슴이 쿵덕거려 차마 조서를 더 읽어내려가지 못하고 정기잃은 눈길로 김성일을 훔쳐보기도 하고 머리를 다른데로 돌리고 몰래 한숨을 짓기도 하였다. 왜적을 물리치고 창원을 지켜낼 희망의 불꽃이 순식간에 꺼져버렸으니 실로 가슴이 터질 지경이였다.
원래 김성일의 재능을 시기하던 자들중에서 어떤 놈이 임진란이 일어나자 조정에 김성일을 헐뜯는 상소문을 올렸던것이였다. 이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능히 란을 일으키게 된것은 김성일이 일본에 통신사로 갔다와서 일본국정을 거짓으로 회보했기때문이니 조정에서는 역신 김성일에게 마땅히 벌을 내려야 한다고 상소했던것이였다.
선조왕의 일부 근신들도 그 상소문에 동조하여 김성일을 헐뜯으면서 그를 경상우도병사로 보낸것은 큰 실책이라고 짓쪼았었다.
경황실색한 선조왕은 사실의 진상을 밝히고 신중하게 처사하지 못하고 그만 근신들의 말에 좇아 김성일을 나포하라는 조서를 내렸던것이였다. 그때까지 조정에서는 김성일이 올려보낸 장계를 받아보지 못하였기에 그가 창원에 가서 전공을 세운것을 알기는 고사하고 김성일이 그때까지 임지에 도착하지도 못한줄로 알고있었던것이였다
하늘같이 믿던 병마절도사를 잃게된 창원병영의 지휘부는 상가집같이 슬픔에 잠기였다. 장령들은 자기들이 무한히 존경하는 지휘관이 억울하게 잡혀가게 된다는것을 생각하자 억이 막혔다.
<<령남의 형세가 이렇게 위급한데 병사님을 나포하라는 주상의 명이 웬 말입니까? 이제 병사어르신을 보내시고나면 우리 령남 군민들은 누구를 믿고 왜적과 싸워가란 말입니까?>>
<<어명이 내렸다지만 금부도사(禁府都使)가 직접 오지 않았으니 병사님께서는 좀 기다려보아야 되겠나이다.>>
<<병사어르신께서 상경하시더라도 우리 창원으로 쳐들어오는 적들을 물리치고 전공을 세우신 다음에 떠나십시오.>>
장령들의 심중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을 듣는 김성일은 코등이 시큰해남을 느꼈다. 장령들의 관심만은 진정 고마왔으나 일은 그렇게 처리할 수 없는터였다.
<<제공들의 심정은 나도 알만하오. 그러나 조정의 명은 일호도 어길수 없소. 어서 결박을 하고 떠납시다.>>
<<병사어르신, 우리는 절대 우리 손으로 어르신님을 결박지을수없습니다.>>
<<제공들이 진정 나라를 생각하고 이 한몸을 아껴주신다면 당장 나를 묶으시오.>>
김성일의 엄숙한 령에 못이겨 수행인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에게 포승을 지웠다. 조정의 처분을 받으려는 김성일은 수행인원의 도움을 받아 말안장우에 올랐다.
<<병사어르신, 부디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병영의 장령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 일행을 바래주었다.
<<시간이 긴박하니 빨리 가기오.>>
조정에 처분을 받으러 가는 김성일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수행인원들에게 자꾸 속도를 다그치게 했다. 병마절도사 직책을 맡고 령남으로 올 때 지나던 조령이 이미 적들에게 점령되였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창원에서 호남으로 통하는 지름길인 함안-- 정암--삼가-- 거창-- 안음을 거쳐 60령을 넘었다. 도망가는 적들을 추격하듯 말발굽에 바람이 씽씽 일게 달린 그들은 진안을 거치고 전주로 접어든 뒤 차령을 넘었다.
며칠이 지나 그들 일행이 직산에 이르렀을 떄였다. 김성일이 마상에서 앞을 내다보니 임금의 조서를 전하는 선전관일행이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선전관이 20여보앞에 이르렀을 떄 김성일은 말을 세운 뒤 말등에서 미끄러져내려 땅에 무릎을 꿇었다.
<<죄신 김성일이 대령했나이다.>>
<<아, 김공 어서 일어나십시오. 전하께서 공의 죄를 용서해주셨소이다.>>
선전관은 친히 김성일의 포승을 풀어준 뒤 임금이 내린 조서를 읽었다.
임금은 조서에서 김성일의 죄를 용서하는 동시에 그에게 령남초유사(岭南招喻使)란 직무를 제수한다는 교지를 내렸었다.
<<도대체 이건 어찌된 영문이요?>>
천만뜻밖의 일에 봉착한 김성일은 선전관의 손을 잡으면서 사유를 물었다.
<<사실의 전후는 이러하오...>>
선전관은 이 며칠간 김성일을 두고 조정에서 벌어진 일을 자상히 말하였다.
김성일을 나포하라는 교지가 내려간 뒤 김성일을 우러러보던 왕세자 광해군이 선조왕을 찾아와서 항의를 표하였다.
<<김성일같은 충신을 처벌하는것은 천리에 어긋나는 일이오니 부왕께서는 다시 한번 굽어 살피소서.>>
광해군이 도리를 따져가며 하는 말에 선조왕은 마음이 좀 동했으나 이미 내린 교지를 회수할수 없어서 망서리고있었다.
이때 선조왕은 창원에서 보낸 김성일의 장계를 받아보게 되였다. 선조왕이 장계문을 펼쳐보니 첫머리에 <<이 몸은 나라위해 죽는것이 소원입니다.>>라는 글이 뚜렷이 적혀있었다.
(아차, 내가 하마트면 충신을 해칠번 하였구나!)
선조왕은 자신이 몇몇 측근들의 말만 듣고 일을 그르친것을 은근히 후회하였다.
어느날, 선조왕은 경연을 베풀고 경연석상에서 신하들에게 김성일의 일을 어떻게 보는가고 물었다.
<<소신은 통신사로 갔다가 돌아와서 한 김성일의 보고의 견해에는 비록 틀린점이 있을지라도 그의 충성만은 죄를 사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보나이다. 소신의 생각에는 김성일에 대한 처분을 면제하는것이 옳다고 보나이다.>>
서애 류성룡이 남먼저 김성일을 신구하고나서자 백사 리항복과 한음 리덕형 등 여러 신하들도 동감을 표시하였다.
<<옳습니다. 류서애의 말씀이 지당하나이다.>>
선조왕은 여러 신하들의 의견에 좇아 김성일에 대한 처분을 취소하고 그를 령남초유사로 임명하였던것이다. 초유사란 임금의 위탁을 받고 지방으로 내려가서 관군과 의병들의 항적투쟁을 조직하고 그들의 활동을 지휘하는 중요한 직무였다.
선전관의 일장설화를 듣고 오리무중에서 헤여나온 김성일은 조정의 현신(贤臣)들의 도움에 깊이 감동되였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선전관에게 령남지방의 왜적의 정황을 상세히 회보하고나서 령남지방을 수호할 방비책을 쓴 장계문을 선전관에게 주면서 시급히 조정에 올려보내도록 당부하였다.
선전관일행이 눈길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래주고난 김성일은 다시 말안장에 올랐다. 말머리를 남으로 돌린 김성일일행은 그동안 아깝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으려고 닫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였다. 차령--공주--삼례--전주를 지난 그는 남원과 운봉을 거쳐 팔량치(八良峙)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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