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리몽량의 댁에 그의 친구 한분이 찾아왔다.항복이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사랑에 들어가서 손님에게 절을 올렸다.
“리참찬, 댁의 자제가 참 영특하게 생겼구려. 듣는 말에 이 애가 시도 잘짓는다던데 그게 참말이오? 어디 한번 시험해보기오.”
“자네가 한번 시험해보구려.” 아들의 글재주를 은근히 자랑하고싶었던 리몽량이 쾌히 대답했다.
“ 그럼 내가 시제를 내놓지.얘야,칼 검(剑)자와 거문고 금(琴)자를 가지고 시 두귀를 지어 읊어보아라.”
“네.그렇게 하지요.” 어린 자상이는 잠시 미간을 찡그리더니 인차 시 두귀를 지어 읊었다.
“검유 장부기요 금장 천고음이라.”
(剑有丈夫气 琴藏千古音.)
“검에는 대장부의 기상이 어리였고 거문고는 천고의 음률을 지니였도다. 그것 참 대단한 시로군.서당에 가서 스승한테 글도 배우지 않고서도 이렇게 멋진 시구절을 구사하다니 정말 천재고 신동이군. 나는 이제부터 십년 2십년을 더 공부해도 이런 묘한 시구를 지을 자신이 없네그려.”
손님으로 놀러온 리참찬의 친구분은 항복이가 지은 시를 몇번이나 읊조리다가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 손님은 집에 돌아간 뒤 친구들을 만나면 리참찬의 아들이 어이어이 신동이라고 칭찬을 많이하여 리항복이 신동이란 소문은 필운동근방은 더 말할것도 없고 조정안까지 널리 퍼졌다.
어느날 저녁, 이웃에 사는 우의정 권철대감이 리몽량의 댁에 마실을 왔다. 그는 리몽량의 아들이 신동이란 말을 듣고 호기심이 동해서 친히 애의 능력을 시험해보려고 특별히 짬을 내여 댁을 찾아왔던것이였다.
비록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간이지만 조정안이 아니고 사사로운 장소에서는 서로 만나보기 어려운 두사람이였다. 모처럼 로정승을 맞이한 리참찬댁에서는 닭을 잡고 돼지고기를 사와서 정성들여 주안상을 차리느라 바삐돌았다.
권정승은 사랑방에 점잖게 앉아서 리참찬과 학문을 담론하다가 슬그머니 화제를 바꾸었다.
“나는 리공의 귀공자가 시서에 아주 능하단 말을 많이 들었는데 무척 궁금하네. 오늘 내가 그애의 재주를 직접 시험쳐볼가해서 일부러 찾아왔다네.”
“아, 그러십니까? 대감께서 우리집의 못난 자식을 이렇게 관심해주시니 고맙기 한량없사오나 애의 글재주가 떠도는 소문같이 훌륭하지는 못해 심히 참괴하옵니다. 하관이 지금 애를 불러오겠습니다.”
리참찬이 하인에게 분부하자 이윽고 자상이가 어디 가서 놀다가 헐떡거리며 사랑에 들어왔다.자상이는 낯에 돋은 땀도 씻을념 않고오 대뜸 방에 올라와서 권대감의 앞에 넙적 엎드리더니 무릎을 꿇고 공손히 절을 올리였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소년의 얼굴이며 시원시원한 그애의 일거일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권정승은 내심으로 귀여운 생각이 들어서 소년의 고사리같은 손을 잡으면서 정답게 말씀하였다.
“여기 편히 앉거라.오늘 나는 너의 글재주를 한번 시험해보려고 왔단다.”
권정승은 집에서 가져온 보자기를 펼치더니 시전과 서전을 내놓고 자상이더러 한번 읽어보라고 하였다.
리항복이 그 책의 표지를 보니 집에서 이미 읽어본 책인지라 거침없이 줄줄
읽어내려갔다.
“음,어린 아이가 서전을 어른들보다 더 잘읽는구나. 얘야,방금 네가 읽은 글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만하냐?”
“문장의 깊은 뜻은 잘 알지 못하지만 대체적인 내용을 짐작하고 있사옵니다.”
“음, 그럴테지. 네 이 구절의 뜻이 무엇인지 말해봐라.” 권정승은 서전중의 한구절을 가리키며 물었다.
“ 소생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아마 이러이러한 뜻이 아닌가 하옵니다.”
“참으로 대단하군, 대단해. 백문이 불여일견(百闻不如一见)이란 말이 바로 이런것을 두고 이른것이로군.” 권정승은 들고온 다른 보자기를 풀더니 다시 그림말이를 펼치였다.
“이 그림은 <양산대렵도(阳山大猎图) 열폭이다.좋은 제사(题词)가 없어서 아직까지 병풍에 붙이지 못하고있네. 네 글재주가 그만하니 이 그림에 제사를 써주게나.”
병풍의 그림을 보는 순간 항복의 머리속에는 묘한 시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로재상이 청한다고해서 서뿔리 덤벼들수는 없었다.
“대감나으리, 이런 귀중한 그림에 소생이 어이 감히 손을 대겠나이까? 달리 명필을 청해서 좋은 제사를 쓰십시오.”
“내가 너의 재주를 믿고 시킨것이니 혹시 글이 잘못되더라도 나는 너를 조금도 탓하지 않을테니 사양하지 말고 쓰거라.”
권정승이 이렇게 믿어주고 또 부친도 옆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용기를 북돋아주니 항복이는 신심이 생겼다.
“로정승께서 너의 재주를 믿고 분부하신것이니 네 재간껏 잘써드려라.”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항복이는 먹을 갈고나서 붓에 먹물을 듬뿍 찍더니 붓을 날려 전지 두폭에다 <<선우가 밤에 연회를 베풀다>>라고 큼직하게 제목을 쓰고나서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시구절을 썼다.
题单于夜宴图
阳山猎罢日苍苍, 铁骑千群夜踏霜.
帐里胡茄三两拍, 樽前起舞在贤王.
이 글의 뜻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선우가 밤에 연회를 베풀다
양산에서 사냥을 마치니 해가 저물어
철기 천무리가 밤서리를 밟는구나.
장막안에서 호가소리 박자에 맞춰
어진 임금 술잔앞에 춤을 추누나.
붓을 날려 제사를 다 쓰고난 항복은 제사를 쓴 전지를 두손으로 공손히 받들고 권정승에게 드리면서 절을 하고 말하였다.
“대감님께서 소생을 이렇게 믿어주시니 실로 더없는 영광이옵나이다.허나 소생이 쓴 글이 아직 너무 미숙해서 참괴하여 낯을 들지 못하겠습니다.”
항복이한테서 전지를 받아 읽어보던 권정승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게 어디 아홉살난 소년의 손에서 나온 글이라 하겠소? 이 아이는 이미 한나라때의 진송의 필력을 초과했구려. 고운(孤云),익청(益青),목은(牧隐) 등 선생들의 문집에 있는 글들과 비교한들 무슨 손색이 있겠소? 참으로 장하오,장해.”권정승은 리참찬의 손을 잡으면서 칭찬을 금하지 못했다.
이윽고 주안상이 차려졌다.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주기가 도도해진 권정승이 리참찬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제의를 했다.
“령랑(令郎)의 나이가 올해 아홉살이라 하니 혼약을 맺어도 무방하겠군.이 늙은이에게 손녀가 하나 있는데 역시 아홉살이요.이 늙은이가 제 손녀를 자랑하는게 아니라 용모며 재주며 행신범백이 어디 내놔도 빠질데가 없네. 우리 두 집안이 진진지호(秦晋之好)를 맺었으면 어떻겠소?”
“참으로 과분한 말씀이옵니다.”권정승의 제의에 리참찬은 황공하여 어쩔바를 몰랐다.
“내 래일 우리손녀를 보내 시부모께 인사드리게 하겠네. 이 사람이 술기운에 망언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리 알고 며느리감을 다른데서 고르지를 말게.아직은 애들이 너무 어리니 5년후에 례를 올립시다.우리 두집이 혼인을 하면 이 이상 더 큰 경사가 어디 있겠소?하하하.”
“대감께서 우리 철부지 애를 이렇게 귀해하시니 하관은 감지덕지로소이다.하하하.”
“리참찬댁에서 이 혼인을 반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제부터 사돈이 되였으니 서로 사돈이라 부르는게 좋을것 같은데 리참찬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더 이를데 있습니까?권대감께서 오래만에 어려운 걸음을 하셨고 이제 정혼까지 하였으니 사돈상을 마련해오겠습니다.여봐라, 주안상을 다시 차려오너라.하하하.”
하인이 주안상을 다시 차려오자 두사람은 권커니 작거니하며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집안에선 즐거운 웃음이 넘치였다.
이튿날 권정승은 전날의 약속을 잊지 않고 어린 손녀애를 데리고 왔다. 리참찬내외가 권정승의 손녀를 보니 호수에 피여나려는 련꽃망울이라 할가 이슬머금은 해당화봉오리라 할가 용모가 아릿답기 그지없었고 재상댁의 규수답게 례의범절도 깍듯이 지켜 볼수록 마음에 더 들었다.그리하여 이웃에 사는 두 집안의 혼약은 정식으로 결정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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