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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인 욕망과 충동의 대가
2009년 04월 09일 08시 42분  조회:4319  추천:0  작성자: 人和

1973년 6월에 산서성 농촌에서 태여난 조화동은 북경외국어대학 연구생공부를 마친후 북경중관촌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2002년 5월, 조화동은 북경처녀 류아와 결혼하여 이듬해 딸 조첨첨을 보았다. 류아의 아버지 류극례는 북경십리하건축재료성에 6개의 상점을 경영하고있었는데 자산이 수천만원에 달했다.


2004년 12월 5일 저녁, 류아는 한국에서 온 동창생을 맞이하러 수도공항으로 가다가 얼음길에 자가용차가 미끌면서 교통사고로 사망되였다. 안해를 잃은 조화동이 어린 딸을 안고 대성통곡하자 딸을 잃은 류극례는 “류아는 이미 갔지만 자네와 첨첨이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인이요. 이후 내가 자네를 아들처럼 대해주겠소”라고 사위를 위안했다. 딸이 사망된후 류극례는 딸에 대한 사랑을 모두 외손녀에게 몰부었다.

 

2006년 4월, 조화동이 어린 딸을 데리고 살아가기 힘들어하는것을 보고 친구들이 손매라는 내몽골처녀를 소개해주었다.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 두 사람은 얼마후 동거했다.


2006년 6월의 어느날, 손녀를 보러 조화동의 집으로 갔던 류극례부부는 손매라는 녀인이 집에 있는것을 보고 딸이 생각나서 몹시 가슴이 아팠다. 더구나 시체옷을 입고 멋만 따는 손매를 보자 “저런 녀자가 어떻게 우리 손녀의 계모노릇을 잘할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몹시 걱정되였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류극례는 조화동한테 전화를 걸어 “난 자네가 재혼하는것을 반대하진 않네. 하지만 녀자의 인품이 중요해. 자네들이 결혼한후 첨첨이를 잘 대해주지 않는다면 우린 가만있지 않을거네. 지금 나와 자네 장모는 점점 늙어가고있네. 앞으로 이 집 재산은 모두 자네와 첨첨의것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장인의 말뜻을 알아차린 조화동은 손매가 첨첨이를 친딸처럼 대해주지 않으면 그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인의 귀띔이 아니더라도 조화동은 그런 뜻을 가지고있었다. 그가 손매를 보고 첨첨이를 친딸처럼 대해줄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손매는 “내가 처녀로서 어떻게 계모노릇을 하겠어요. 우리가 결혼하려면 첨첨이를 외가집에 줘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조화동은 화가 나서 그 즉시로 그녀와 헤여졌다. 그 소식을 들은 류극례는 몹시 감동되였다.
그후 조화동은 몇몇 녀자를 만나보았지만 모두 첨첨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문에 조화동은 번뇌에 쌓여있었는데 마침 그때 류극례에게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3년전부터 딴살림을 차리고 같이 동거하던 주산이란 처녀가 그를 보고 리혼하라고 핍박했던것이다. 원래부터 안해를 버릴 생각이 없었던 류극례는 주산을 보고 계속 “첩”으로 살든지 얼마간의 돈을 줄테니 다른 남자를 찾아 시집을 가든지 량단간에 결정을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산은 그의 정식부인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고집했다. 류극례는 주산과 관계를 끊고싶었지만 북경사범대학을 졸업한 재녀인데다가 젊고 아름답고 성감적인 그녀의 몸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류극례는 생각하다못해 그녀를 전 사위 조화동에게 소개해주려고 생각했다. 그는 주산에게 조화동의 정황을 사실대로 말해주고나서 조화동한테 시집을 가라고 했다. 처음에는 펄쩍 뛰면서 거절하던 주산은 류극례가 “나와 나의 안해가 죽은후에는 나의 모든 재산이 조화동과 첨첨이가 차지하게 되는데 주산이가 첨첨의 계모가 되면 그 재산은 곧 주산의것이 될게 아니겠소”라고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조화동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2007년 양력설에 류극례는 조화동에게 주산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소개해주었다. 조화동은 예쁘고 성감적인 주산에게 반했고 그녀가 첨첨이를 잘 대해주는것을 보고 그녀를 안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2007년 5월 1일, 조화동과 주산은 북경신세기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하지만 류극례는 정부를 전 사위한테 시집을 보낸후에도 가끔씩 주산을 불러다가 정욕의 밤을 불태웠다. 그러다가 결국 조화동에게 꼬리를 잡히게 되였다. 조화동은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그때로부터 그는 날마다 안해한테 몇시간씩 “화냥년”이라고 줄욕을 퍼부었다.

 

2008년 6월 27일, 주산은 더는 견딜수가 없어 조화동의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난 이렇게 더는 못살겠어요. 우리 리혼합시다!”라고 애원했다. 조화동은 주산을 발길로 차던지면서 “난 리혼하지 않을테야. 난 널 죽지도 모하고 살지도 못하게 할테야!”라고 소리쳤다.

 

그날밤, 조화동은 바깥에서 집으로 들어오다가 딸이 객실에서 혼자 노는것을 보고 “아지미는 어디로 갔느냐?”라고 물었다. 첨첨이는 “아빠, 이후엔 아지미와 싸우지 말아요. 아지미는 오늘 온 오후 울었어요. 지금 침실에서 주무셔요”라고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조화동이 침실문을 열고 보니 주산이 침대에 조용히 누워있는데 낯색이 창백하고 곁에는 빈 수면제병이 놓여있는것이 보였다. 조화동은 급히 그녀를 자가용차에 실어 부근의 공군병원으로 호송했다. 구급을 거쳐 그녀는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의사는 조화동을 보고 “당신의 안해는 적어도 70여그람의 수면제를 삼켰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왔더라면 목숨을 잃을번했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주산은 깨여난후 눈물을 흘리면서 조화동을 보고 “미안해요. 모두 내가 잘못했기때문에 당신에게 이렇게 큰 치욕을 가져다주었어요. 당신이 날 어떻게 대하든지 나는 절대 당신을 나무람하지 않을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꼭 믿어주세요. 그와 난 지금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나의 마음은 이 집에 있고 당신과 첨첨이만 위해서 살것이예요”라고 말했다. 안해의 고백에 조화동은 가책감을 느끼면서 “주산이, 나는 당신을 이렇게 못살게 굴지 말아야 했소. 잘못은 그놈한테 있소!”라고 말했다. 다음 순간 그들 부부는 서로 껴안고 울었다.

 

얼마후 주산의 일은 소문이 나서 그들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였다. 조화동은 안해와 상의한후 북경을 떠나 상해로 가서 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새로운 고장에 가서 산다는것이 말은 쉽지만 실천에 옮기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주택 한채를 구매하자고 해도 몇백만원이 있어야 했다. 조화동은 류극례가 자신의 가정에 이처럼 해를 끼쳤으니 응당 돈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9년 9월 5일, 조화동은 류극례의 회사로 찾아가서 단도직입적으로 300만원의 손해배상을 내라고 요구했다. 류극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화가 나서 “너 사내대장부로서 안해의 사생활을 내걸고 협잡을 하려고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라고 욕했다. 이렇게 되여 두 사람은 싸우게 되였는데 류극례는 보안일군을 불러 조화동을 쫓아내게 했다. 류극례는 문밖으로 쫓겨나가는 조화동을 보고 “지금부터 너와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다시 날 찾아와 시끄럽게 굴지 말아”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조화동은 몸을 돌리면서 “좋습니다. 그럼 난 이 일을 장모님께 알려주겠습니다. 당신이 보상해주지 않으면 난 장모님을 찾아가서 달라고 할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류극례는 겁이 나서 “그렇게 서두르지 말아. 내가 생각해볼테니”라고 말했다.

 

이튿날 오후, 류극례는 조화동의 집으로 찾아갔다. 조화동은 사전에 안해와 딸을 밖으로 내보내고 두 남자끼리 배상문제를 상의했다. 류극례가 “나의 재산이 천만원이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아. 지금 장사가 잘 되지 않아 현금을 빼낼수 없어. 내가 상점 하나를 주면 안되겠느냐”라고 물었지만 조화동은 기어코 현금 300만원을 내라고 고집했다. 류극례는 조화동을 보고 “안해의 사생활을 팔아서 밥을 먹는 못난이”라고 욕했고 조화동은 화가 나서 류극례의 귀쌈을 힘껏 후려쳤다. 두 사람은 싸우기 시작했는데 힘이 약한 류극례는 밀리고 밀려서 객실밖의 베란다쪽으로 밀려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조화동은 리지를 잃고 류극례를 번쩍 들어서 6층아래로 던져버렸다. 류극례는 처참하게 부르짖으며 마당의 승용차우에 떨어졌다…

 

소구역의 보안일군은 일이 생긴것을 보고 급히 120구급중심에 전화를 한후 공안국에 제보전화를 걸었다. 몇분후 류극례는 구급차에 실려 공군병원에 갔고 조화동은 현장에 달려온 경찰들에게 붙잡혀갔다. 류극례는 구급을 거쳐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지만 척추가 골절되여 한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면서 살아가야 했다. 조화동은 타인을 고의상해했기때문에 해정구검찰원에 의해 체포되였으며 차디찬 철창속에서 긴 세월을 보내야 했다. 사건이 발생한후 조화동은 일시적인 충동때문에 자신을 망치고 가정을 망쳐놓았다고 후회막급이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류극례의 안해는 이 사건을 알게 된후 이 기막힌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딸이 사망된데다가 남편까지 장애자가 되였으니 그녀는 미칠것만 같았다. 그녀는 류극례를 증오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이 의지해야 할 유일한 친인이 아닌가. 가장 가슴이 아픈 일은 어린 첨첨이가 날마다 울면서 아버지를 찾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였다. 
                                                                     
《중국법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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