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과 지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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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우승이 걸어온 사랑의 고개길
2009년 04월 10일 16시 25분  조회:4074  추천:0  작성자: 人和

1996년은 왕군하에게 있어서 가장 자랑할만한 한해였다. 미국 아틀란타올림픽경기대회에서 그녀는14분 59초 88의 성적으로 녀자장거리달리기 5000메터 우승을 하여 금메달을 따낸 뒤를 이어 31분 02초 58의 성적으로 녀자장거리달리기 1만메터 준우승을 하여 은메달을 더 따냈다. 그녀가 오성붉은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 때 전세계의 시선이 그녀를 주목했다. 그녀는 삽시간에 중국뿐만아니라 미국인들도 숭배하는 영웅으로 되였고 “동방신록( 方神鹿)”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리게 되였다.


1973년 1월 19일에 길림성 교하시에서 출생한 왕군하는 1988년에 대련체육학교에 입학했고 1991년에 료녕성륙상팀에 들어갔으며 1995년에 국가륙상팀 선수로 되였다. 1999년, 주용기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왕군하도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땅을 다시 밟았다. 미국인들은 왕군하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왕군하는 하나 또 하나의 도시를 넘나들면서 마침내 이번 미국행에서의 마지막 역인 꿈의 도시 덴버(丹佛)에 도착했다. 덴버에서는 왕군하를 위해 환영연회를 베풀었는데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화교들이였다. 같은 민족이였기때문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즐겁게 놀았는데 사회자의 요청에 의해 왕군하는 무대에 올랐다. 그녀가 밤례복을 입고 무대에 오를 때 치마가 살짝 들렸는데 “동방신록”의 다른 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숱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집중되였다. 그녀를 숭배의 눈길로 바라보고있는 사람들속에는 황천문이란 화교도 있었는데 그의 눈길이 제일 오래도록 왕군하의 몸에 가서 멎으면서 떠날줄을 몰랐다. 상해출신인 황천문은 1983년에 미국 덴버대학에 입학했다. 그후 음악석사학위를 따내고 미국에 남아서 몇년간 분투한 결과 이름난 “편직주머니대왕”으로 되였고 덴버화교들의 존경을 받는 령수급인물중의 하나로 되였다.


황천문은 왕군하의 날씬한 뒤모습을 보는 순간 3년전 올림픽경기장에서 달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현장에서 소리치면서 응원했는데 검고 건장한 몸매를 가진 그녀가 번개같이 달리는 모습에 자호감을 느꼈던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어깨가 드러난 밤례복을 입고 옅은 화장을 한 왕군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경기장에서 남자처럼 달리던 “동방신록”이 녀자라는것을 이때에야 느꼈다. 그것도 매우 아름다운 녀자라는것을 발견했다. 그는 약간 마른 몸매인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까지 품었다. 연회가 끝난후 황천문은 왕군하의 앞에 가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을 들었다.


왕군하는 황천문을 처음 보았을 때 이상한 감을 느꼈다. 미국사람들은 옷차림에 대해 매우 중시했다. 특히 정규적인 연회에는 정장을 입고 나오는데 황천문은 반소매적삼에 청바지차림이였던것이다. 곁사람이 황천문을 덴버화교의 령수인물이라고 소개하자 왕군하는 눈앞의 남자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였다. 사진을 다 찍은후 성격이 직방배기인 왕군하는 웃으면서 “전 처음로 당신같은 령수를 봅니다. 반소매적삼을 입고 산보하러 나왔습니까?”라고 물었다. 황천문은 구속을 원하지 않는 예술가의 특징이 몸에 배여서 편안한대로 입는 성격이였다. 왕군하가 그렇게 말해서야 그는 주위사람들이 모두 정장을 입고 나온것을 알고 계면쩍게 웃으면서 “아, 이거 실례했소”라고 말했다.
며칠후 황천문은 왕군하에게 사진을 부쳐주려고 하다가 그녀의 주소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오는 사람에게마다 자랑을 했다. 그는 대륙의 신문과 인터넷에서 왕군하의 소식을 알아보면서 그녀가 경기에 나가면 응원해줄 준비를 하고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왕군하가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창 운동선수로 활약할 황금시기인데 이렇게 포기하다니? 그는 몹시 아쉬워했다.


2001년, 황천문은 중국의 환경오염문제가 매우 엄중한것을 보고 자금과 기술을 가지고 상해로 찾아가서 락기산환경보호기술유한회사를 세운후 전문 환경보호사업에 몰두했다. 그때 안해와 리혼한 그는 자녀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아들과 딸을 잠시 미국에 남겨놓았다.
왕군하는 미국에서 돌아온후 얼마 안되여 전우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2006년에 왕군하는 성격차이로 남편 전우와 리혼했다.


2008년 3월, 왕군하는 어느 은행의 년말야회에 참석했는데 뜻밖에도 한 남자가 다가와 웃으면서 인사하는것이였다.


“당신은 왕군하지? 날 기억할만하오?”


왕군하가 머리를 가로 젖자 그 남자는 돈지갑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여 그녀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이건 9년전에 당신이 미국 덴버에 왔을 때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이요.”


그 사진을 보고서야 왕군하는 생각났다.


“아, 당신은 덴버의 화교령수이죠. 성함은 황씨 맞죠? 그땐 반소매적삼을 입었는데 지금은 달라진 모습이군요.”


이튿날, 황천문은 왕군하를 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말했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가는군. 9년전에 미국에서 당신과 함께 식사한적이 있는데 지금은 상해에서 이렇게 함께 식사하게 되다니.”


왕군하가 리혼한후 상해에 왔다는 말을 들은 황천문은 자신도 혼자 상해에 와서 창업을 하게 된 경력을 이야기했다.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황천문은 왕군하에 대해 더 많은것을 료해하게 되였다. 그는 인생에서도 경기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원히 포기하지 않는 왕군하의 정신에 탄복되였으며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였다. 왕군하도 황천문을 지기라고 생각하면서 매우 친근한 감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운동선수로 뽑혀 훈련하느라고 정규적인 공부를 하지 못한 그녀는 학식이 있고 사업과 생활에서 가르침을 받을수 있는 선생을 모시고싶었다. 그런데 황천문과 같은 적임자가 눈앞에 나타났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왕군하는 시간만 있으면 황천문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황천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세심하게 돌봐주었다. 왕군하는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황천문은 이 기회를 리용하여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는 왕군하가 달리기를 하는 곳을 알아두었다가 일찌감치 그 곳에 나가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만난척했다. 이러한 “우연”이 여러번 반복되자 왕군하는 알아차리고 황천문이 먼곳에서부터 보이면 일부러 피해서 다른 길로 달렸다. 그런데 뒤에서 황천문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쫓아오는것이였다. 왕군하가 “왜서 나를 따라다니면서 달리기를 합니까?”라고 물어보자 황천문은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라고 대답했다. 황천문의 고백에 왕군하는 깜짝 놀랐다.


2008년 8월, 왕군하와 황천문은 상해의 어느 한 고전식의 차집에서 함께 차를 마셨다. 두 사람은 모두 핸드폰을 꺼버리고 둘만의 행복을 만끽했다. 황천문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왕군하의 손을 꼭 잡고 “나의 안해가 되여주오. 우리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것이 어떻소?”라고 청혼했다. 순간 왕군하는 가슴이 활랑거렸다. 한번 혼인에서 실패한 그녀는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황천문의 고백을 듣는 순간 그녀는 자신도 이 남자를 사랑하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왕군하는 결혼은 두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는것을 느꼈다. 황천문에게도 두 아이가 있고 자신에게도 아들이 있지 않는가. 쌍방의 아이들을 생각하자 그녀는 이런저런 근심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황천문은 총명한 사람인지라 왕군하의 심정을 알수 있었다. 그는 “군하는 계모노릇을 잘하지 못할가봐 두려운거지? 나의 두 아이는 미국에서 태여나서 관념이 서구화되였기때문에 어울리기도 쉬울거요”라고 왕군하를 위안했으며 아들을 중국에 데려오기도 했다. 황천문의 아들은 왕군하를 만나자마자 그녀를 좋아했다. 아이는 왕군하를 보고 “난 아지미를 알아요. 아지미는 올림픽우승을 한 녀영웅이죠. 우리 학교에는 아지미의 그림이 붙어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아빠가 왕군하와 결혼한다는것을 알고는 “아이, 좋아라! 올림픽우승이 나의 엄마가 된다니”라고 박수를 치더니 즉시 미국에 있는 누나한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왕군하가 리혼한후 아들은 줄곧 전 남편과 함께 있었다. 황천문은 왕군하가 두고온 아들때문에 가슴아파한다는것을 알고는 아들이 미국에서 가져온 놀이감을 왕군하의 아들에게 부쳐주었다. 그리고 왕군하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명년여름방학에 널 데리고 미국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환성을 듣자 왕군하는 자신이 이 길을 선택해도 된다는것을 느꼈다.
2008년 10월, 단풍이 곱게 물든 아름다운 계절에 왕군하는 또 한번 행복한 신부로 되였다. 아름다운 혼례복도 없고 성대한 혼례식도 없었지만 파란만장한 곡절을 겪어온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소원을 이루었다. 이는 왕군하가 바라는 생활이였다. 좌절을 겪어온 사람일수록 행복의 의의와 안정된 생활의 소중함을 아는것이다. 왕군하,  그녀의 앞날은 행복할것이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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