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문예문
제 1 절 시
1. 시의 함의
시의 함의는 어느 민족에게서나 대동소이하다. 하다면 시란 무엇 인가? 詩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자기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이나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간은 왜 시를 지으려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미적인 것을 추구한다.
미(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 미란 ‘우리 마음에 즐거움과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것’ 즉 마음에 좋은 느낌을 자아낼 만큼 고운 현상이라 정의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사물. 색. 그리고 현상들로 에서 느끼는 감각을 통한 아름다운 정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통적이고 상식적 정의를 내릴 수밖에 없다. “시는 인간 의 사상과 정서를 운율적인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언어예술이다” 다 "시란 인간의 사상과 정서를 유기적 구조를 지닌 운율적 언어로 형상 화한 운문문학의 한 갈래이다." 공자는 “詩三百 一言而蔽之曰思无邪 (시 3백수는 한마디로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고 시는 뜻을 말로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시란 마음에 바라는 바를 말로 표현한 것이며 노래란 말을 가락에 맞춘것》이다. 정이 마음 속에서 움직일 때 시인은 그것을 말로써 표현한다.《시는 마음으로부터 떠오르고 혀끝에 놀며 누구나 말하고 싶어하는 말이다. 따라서 소수인의 특수한 재주의 소산은 아니다.》
시는 감동이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꽃을 보고 느낌을 씹어보기 전 에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감탄성이 터진다면 그것은 가슴 벅차 오르 는 마음, 세차게 흔들린 마음의 파동으로서 곧 감동이지만 시적 감동 은 아니다. 거기에 어떤 인생의 의미를 보태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시적 감동은 감성적 놀라움과 사색을 앞세운 놀라움이다. 놀라움의 눈, 호기심의 눈길은 마침내 감동을 낳지만 그것에 앞서 새로운 발견의 환희가 시적인 감동을 낳는다. “옹달샘”이라는 동시를 보자.
사르르
아기바람이 잠이 들었다
그 넓은 하늘이
옹달샘에 담뿍 잠겼다
옹달샘속에
잠긴 하늘은
작은 들판
흘러가는 흰구름은
새하얀 양떼
나는 양떼를 몰고가는
어린 목동이 된다.
시적 화자의 시각은 동심적이지만 놀라운 눈과 호기심에 찬 눈길에 비친《옹달 샘의 세계》다. 옹달샘은 아무나 만날 수 있고 어떤 감각 을 느낄수 있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감각적인 층에 머물지 않고 동경 을 앞세운 시적 세계를 펼쳐보인다.
“작은 들판.” “새햐얀 양떼” 같은 감각은 웬만히 민감하고 감각적 인 사람이면 경험할 수 있는 감각세계이다. 그러나 “어린 목동”이 된 감각은 “나”가 여느 때의 “나”가 아니라 시적 경지에 성큼 올라선 시적 주인공이다. 시적 감동이 낳은 시세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시적 발견은 대자연 앞에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활, 우리들의 심령의 세계에 보다 오묘하고 철리적인 발견 대상이 잠자고 있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전제는 사랑이다. 우리가 늘 보고 지나 는 자연 경물과 인간 심리 상태, 심령의 오묘한 변화와 감응에 관심이 없다면 습관처럼 무심해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저 한다면 먼저 열가지 심리 상태를 몸에 슴배게 해야 한다.
이미 보아서 알고 있는 동물 ㅡ길짐승, 날짐승 등의 모양과 이름을 머리속에가 아니라 가슴에 넣고 다니며 무심히 스쳐가는 여러 가지 바람에도 마음을 얹어보고 맑고 흐리고 밝고 어두워지는 하늘을 마음에 담고 다니고, 변덕많은 날씨에 민감성을 앞세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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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모를 사람도 구면인듯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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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뒤집어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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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물에 생명을 부여해 놓고 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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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문제의식을 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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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안보이는 것까지 만지는 듯한 감각을 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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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고독을 불러다 사색을 붙여 주기…등 심리자세를 가지고
산다면 시적 발상의 계기는 무시로 내 주위에서 뛰어 나와 반겨줄 것이다.
사랑과 감동은 시의 피와 살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던가? 사랑이 없는 가슴에는 진,선, 미가 깃들 자리가 없다. 시적 감동을 꾸며낸다면 억지춘향이 된다.
시인은 대자연의 모든 것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의인화가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다. 시인은 생명을 주는 봄바람 차원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똑같은 인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뜨거 운 사랑에 힘입은 새로운 시적 경지를 열어준다.
사랑은 자유분방한 상상이라는 불새를 낳는다. 시는 보는 그대로 사진을 찍는 일도 아니고 느낌 그대로 털어놓는 일도 아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생각을 보태넣어야 시가 된다. 시의 모체는 상상이다. 늘 새로움을 낳는 풍만한 모체이다.
상상은 형상과 전형을 창조하는 문학기교의 가장 본질적인 수법의 하나이며 형상창조의 필수조건이다. 시는 상상의 산아이다. 시는 환상 과 감정의 백열화이고 상상은 시가 불새로 되여 나래치게 하는 금빛 날개이다. 시에는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하는바 이 시점에서 감각, 지혜 로서의 시는 곧 인생의 비평, 인생 철리의 해석이 된다. 그 경우 시의 사상은 정감 속에 스며들어 선율을 통하여 체현되고 메아리쳐야 한다.
사백의 시《단풍》을 예로 들어보자.
바람이 단풍잎을
발뒤꿈치에 던져왔다.
오,
가을이구나.
녹색의 생명에도
더운 피가 있었음을
서리 맞은후에야
나는 알았다.
이 시에서 시인에게 가슴치는 충격을 준 것은 여느 단풍잎이 아니라 찬가을 바람에 던져진 단풍잎이다. 그러나 시인이 촉동받은 것은 가을의 한 측면ㅡ조락의 서글픔만이 아니다. 그것을 초월하여 시인이 문뜩 깨우친 것은 푸르던 그때 (일상적 생활 상태)는 미처 몰랐던 하나의 섭리ㅡ준엄한 시련을 겪은 후에야 생명의 열렬함과 그속에 내재된 충성의 마음이《나》혹은 사람들에게 자각되었다는 진리이다.
시인은 말하지 않고서도 말하는 방법을 능란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은 시 속에서 벌써 다 말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는다. 좋은 시 속에는 감춰진 그림이 많다 그래서 읽는 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살찌워 준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지나 치던 사물을 찬찬히 살피게 해준다
시를 쓰려면 “미치지” 않으면 안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이런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든 자신이 몰두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있다.
시인의 예술직각은 흔히 일반 이성 감각을 초월한 고도로 개성화된 심미판단이다. 시는 포만된 정서의 유출 혹은 폭발이지 이성사유로 고안해 내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무병신음이 아니다.
2. 한국시의 특징
시에는 노래가 있다고 하는데 시의 음악성을 두고 한 말이다. 시의 특징은 음악성이다. 시의 음악성은 세련된 시적 언어의 선택과 언어의 운문화에서 이루어진다. 시의 언어는 다른 문학장르의 언어보다 더욱 세련되고 더욱 간결해지고 더욱 표현력이 높다. 자고 로《시에서의 절주는 그의 외형이며 생명》이라고 한다.
어느 민족의 시이든 간에 운율의 시의 존재 이유가 된다. 특히 한국어로 된 시의 경우, 운율 조성의 특성을 알아야 한국어 시를 잘 쓸 수 있다. 한국 시어의 어음의 높낮이, 강약, 장단, 및 음절수의 수량과 그것의 균형적이고 조화로운 결합에 의해 시에 음악적인 율조 가 생겨나고 그로써 시가 시로 거듭난다. 읊으면 귀맛 좋게 들리는 음향으로 하여 시는 시로서의 모양을 가지고 존재 이유를 가진다.
한국어의 시가에서 정형율은 동일량의 음절군을 규칙적으 로 반복함으로써 리듬을 산생시키는데 그것을 조(调)라고 한다. 음조율 혹은 조에는 4.4조 ,3.3조와 7.5조, 6.5조, 8.5조 등이 있다.
보기글: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달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다가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아보세
4,4조로 된 이 민요에서 좀 늘어지긴 해도 경쾌하고 유창한 흐름 을 조성하고 있다. 3.3조로 된 이 시는 힘차고 기박한 절주감을 조성 하고 있다. 보다시피 한국어의 정형시에서의 운율 조성은 음절군의 반복과 띄어쓰기, 생략법, 압축법, 가음법 등 수단을 이용한다. 이리 하여 시는 글속에 출렁이는 물결 같은 것이 있는 춤추는 글이 된다. 시가의 음악성은 여러 가지 인소의 융합으로 이루어지지만 가장 주요 한 것은 절주와 운율이다. 한국시 운율에는 정형율과 자유율이 있다.
보기글: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면
구름속에 햇님도 방긋 웃고요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며
아름다운 꽃들도 피여납니다.
이 가사는 전형적인 7.5조로 되어있다. 애창가요 “고향의 봄”도 7.5조로 되였다.
보기글: 나의 살든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그속에서 놀든 때가 그립습니다.”
보기글: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가
하니 그리워
그냥 갈가
그래도
다시 더 한번 ( 중략 )
이 시에서는 7.5조를 이리저리 허물어 아름답게 분행한 것으로서 그의 많은 시에서 이채를 띠고 있다.
※ 음위율의 례.
돌각담에 속삭이는 해발같이
풀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이 시구에는 두운, 요운, 꼬리운이 재치있게 운용되였다.
음성율: 모든 시에 존재하는 운율로서 음의 고저, 청탁, 강약, 장단, 등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생기는 운율이다. 김소월의 시들이 전형 성을 띠고 있다. 시에서 행이나 연을 구분하는 것이나 정형시, 자유시, 산문시로 갈래를 나누는 근본 원인은 바로 이런 운률, 즉 시의 음악성 에서 기인된다.
김소월의 시에서 그 형식이 가장 완성되고 가장 아름다운 시어 들을 쓰고 있다.
《삭주구성》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 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구성은 산을 넘어 륙십리요 (이하 략)
특히 한국말의 음향적 특성에 의해서 아름다운 운율이 형성된다는 것은 주목할 바이다. 예하여 양성모음《ㅏㅡㅗ》는 명랑성, 개방성을 가진 어음으로서 그것이 들어간 단어를 잘 이용하면 밝고 여린 느낌을 줄 수 있다.
예: 아름다운 강산에 아침노을 붉은데
사랑하는 내 나라 영예로 빛나라
또 유향자음 《ㄹ》을 잘 이용하면 완급성, 처지는 듯한 감을 줄 수 있다. 이 특징은 두음법칙을 쓰는 한국어에서는 예외이다.
예: 륙승정 련못가에 늘어진 버들은
실실이 날실로 늘여나 볼ㅡ가
김소월의 절대 대부분의 민요풍의 시들을 읽으면 아름다운 운율감을 감수할 수 있다. 한국말 정형시에서 운율은 물리적으로 유사한 자질 들을 배치하여 얻어지는 질서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 에 따라 정형시가 자유시로 번지고 동시에 작시법의 초점은 운율에서 리듬쪽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낭송하는 시보다 읽 는 시가 더 유행되고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는다 사물을 데려와 사물이 대신 말하게 한다. 즉 시인은 이미 지(형상)를 통해서 말한다 한편의 시를 읽는 것은 바로 이미지 속에 담긴 의미를 찾는 일과 같다.
1)
시와 서정
서정성이란 대상을 의미나 개념으로 파악하지 않고 감정이나 느낌 으로 이해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것은 음악의 세계와 매우 유사하다. 음악에서는 직접적이거나 분명한 의미, 혹은 개념의 전달이 없다. 다만, 소리의 변화가 주는 감각적인 분위기와 느낌이 어떤 감정 을 유발시키고, 청자는 자기 주관을 통해 그 의미를 상상할 따름이다.
시는 소리가 포함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적인 요소이다. 산문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만 시는 주관적 혹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언어이다. 나아가 시에서는 대상과 주관이 아예 하나로 융합되거나 결합된다. 때로 인간에게는 감정적인 의미가 이지적인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경우 도 많다. 이에 따라, 언어를 이지적인 의미를 지향하는 것과 감정적인 의미를 지향하는 것의 두 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시의 언어가 중시하 는 것은 감정적인 의미, 즉 내포적 (內包的) 의미이다.
보기글:
붉은 해는 서산(西山)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山)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서름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 “초혼”에서
이 시에서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는 무슨 뜻일까? 시의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일상에서 사용하는 돌의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붙박이로 자리를 지키는 존재”라는 내포적 의미로 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님에 대한 시적 화자의 변치않는 사랑이 형상화 된 것이다. 시인이 관심을 가진 것은 일제놈들에게 빼앗긴 조국에서 연유된 자신의 슬프고 허무한 감정 그 자체의 형상화이다.
시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한 찰나에 발발하는 즉흥 정서이다. 그래서 시는 정취로 시작되어 지혜로 끝난다고 한다. 시의 독특성은 무엇보다 서정성에 있으며 존재의 가치도 서정에 있다. 시에서 상상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감과 격동이 없으면 시인도, 시도 없다.
프랑스의 시인 볼라는《서정시는 환호, 감탄, 흐느낌…의 선률의 발전이다.》라고 했다. 정감이 절멸되지 않는 한 시도 절멸되지 않는 다. 열여덟살 청년은 저마다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망울짓는 봄꽃을 보면 희열과 반가움 속에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그것을 읊조려 보고픈 표현욕과 더불어 마음이 설레인다.
때론 조용히 핀 꽃을 보며 까닭 없이 애틋해지고 흘러가는 시내물을 보며 문득 알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될 때 이런 심리적 동요ㅡ 설레 는 정서가 감각을 통해서 대상물ㅡ곧 시를 찾게 되는 것이다. 시는 감동과 감정의 글, 가장 아름답 고 짧은 말로 문자화된 사상 즉 사상과 형상의 융합이다. 시는 곧 시인의 심령의 외재 세계이기에 시를 일러 《감정의 왕국》이라 한다. 사상은 정감을 통해 체현된다.
시는 일종 경지이다. 객체에 대한 주체의 침투는 다음 몇 가지 정황 에서 표현된다. 심미 주체는 자기의 풍격, 기질, 사상 감정을 객체에 옮기여 인화 (人化)와 심미화의 복합체를 이룬다. 이것이 곧 정감이입 이다. 정감이입의 최고 경지는 경물과 자아, 양자를 죄다 망각하 는 상태 즉 교감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예:
님그린 상사몽이 실솔의 넋이 되여
추야장 깊은 밤에 님의 방 드렀다가
날잊고 깊이 든 잠 깨와볼가 하노라.
작자는 상사몽에 빠진 상태여서 귀뚜라미가 되는 것으로 객체를 주체화시킨다. 이렇게 객체가 주체화 되고 다시 주체가 객체화 되는 것을 심미적 감응이라 한다.
시형식을 가진 것이라도 시가 아닌 것이 많다. 그래서 진짜 시와 가짜 시가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사물을 노래한다. 그런데 그속에 시인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아무리 표현이 아름다와 도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겉꾸밈이 아니라 참된 마음이 깃든 시를 써야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다
2) 시의 언어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다. 시어의 선택은 수많은 광석에서 금싸라기 를 뽑아내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시적 언어는 미적 기능을 지향한다. 산문이 말을 최적의 순서로 엮은 것이라면 시는 최상의 말을 최상의 순서로 배렬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시에서는 심각한 사상만 있어도 안되고 미사여구만 있어도 안 된다.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어야 하고 듣는 이의 영혼을 뜻대로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오직 사상이 언어로 전화되고 언어가 사상으로 전화될 때 훌륭한 시로 될 수 있다.
만약 생활 소재를 바다라 한다면 문자, 사상은 그속에 용해되여 있는 물질이다. 일정한 조건하에서 결정체의 형식으로 현연될 때 시는 곧 그 결정체로 나타난 소금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종 승화이며 응결이다. 시는 시인의 심령의 외재 세계이다. 시인은 사물을 거울처 럼 비추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콘드라 아이컨의 말을 빈다면 시는 인류가 표현하는 사상의 최고 형식이다.
시는 함축을 강구한다. “이발”이란 제목의 동시를 예로 들어보자.
깜박 잊고
이를 안 닦았더니
누런 미운 이가 되었다
친구들이
혹시 내 이를
흉 볼는지 몰라
조심조심 웃고
말할 때도 조심한다.
이 동시의 경우, 첫연의 “미운”이란 단어는 없어도 좋은 단어이다. 둘째 연의 “혹시”도 그다지 필요없고 “흉볼는지 몰라” 는 함축성이 없다.《조심조심 말한다》는 시적인 표현이라기보다 서술문 같은 느낌 을 준다. 이 시를 다음 같이 고칠 수 있다.
깜빡 잊고
안 닦았더니
누런 이발
친구들이 내 이발 흉볼가봐
웃어도 조심조심
말할 때도 조심조심
시어 선택에서 운율이나 호흡, 긴박감에 유의하여 말을 아껴야 한다. 시의 내재 결구는 문자, 구절의 배치가 아니라 의념, 의상의 배치이다. 이런 배치는 곧 문자, 사상의 배치가 아니라 문자화된 사상이다. 흔히 말하듯 사상과 형상이 융화되어 형성된 시인의 독특한 감수이다.
시는 시인의 심령의 외재 세계이다. 시인은 사물을 거울처럼 비추 거나 묘사하지 않는다. 콘드라 아이컨의 말을 빈다면 시는 인류가 표현하는 사상의 최고 형식이다.
시에서 동정화(同定化)의 어법을 택한다. 정서적 전달을 위해서는 비유적 어법으로 말하거나 동화적 어법이나 투사(投射)의 어법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 풀어 말하자면 원래 지칭하려던 A를 B로 바꾸 어서 A=B라는 어법을 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소월의 시《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의 마지막 연인 《이제는 저 달이 설음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에서 시인은 달을 보면 설음이 난다고 하는 것을 달이 곧 설음 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시에서 이런 어법때문에 사물과 언어의 관계가 외연이라기보다 내포 적으로 쓰인다. 따라서 시적 어법은 표현과 의미가 1:1로 대응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디에 다의성을 띠며 무엇을 명백하게 해석한다기 보다 어렴풋이 암시하는 상태를 제시한다.
시에는 허경이 있어야 하거니와 더우기는 실경이 있어야 한다. 경물 에서 정이 생성되어 즉흥적으로 시를 짓되 풍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 모두가 실경이다.
김소월의 시 《버리운 몸》을 보자.
꿈에 울고 일어나
들에
나와라.
들에는 소슬비
머구리는 울어라.
풀그늘 어두운데,
땅보며 머뭇거릴 때
반딧불 꾀어드는 숲 속에서
누군가 “나는 간다 잘 살아라”
보다시피 고독한 “나”는 소슬비 내리는 들길을 혼자 걷는다. 이는 특정된 정감이고 형상이며 동시에 또 특수한 기분을 조성한다. 시에 비내리는 들판이 펼쳐있고 “뒤짐 지고 땅보는” “나”는 하나의 커다란 돌처럼 독자의 마음의 못에 뚤렁 떨어지고 시행의 추진에 따라 잔잔한 파문이 인다.
시어에서 조약성은 함축을 전제로 한다. 시의 조약성은 정감성과 상상에서 온다. 강렬한 정감은 시인의 생활체험, 생활감수의 승화이 고 농축으로서 그것이 격발시킨 상상력은 필연적으로 대폭도의 조약 을 수요하게 된다. 즉 고도의 세련된 표달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 강요성이 곧 시의 조약성을 결정한다.
3. 시작 기교
운율은 시에 형식상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부여하고 정감은 시에 피와 살로 되지만 시로 하여금 생명을 갖게 하는 가장 주요한 특징은 시적 형상이다.《우리는 물론 다만 앵두나 배는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과일을 먹을 수 없다. 한것은 추상적인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 엥겔스) 》
때론 시인이 머리를 짜며 깊은 사색에 잠겨 겨우 짜낸 시구가 어린 애의 입에서 무심중 튀여나올 수도 있다. 예하여 서산에 지는 저녁 해를 어떻게 감수라 할가 고민할 때 아이가 문득 “와아ㅡ해님이 까치 둥지에 떨어졌네”하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한다. 이 말은 “해는 나무 가지 사이에 끼이고”라는 말과 얼마나 상사한가?
시는 사진처럼 다 보여 주지 않는다. 시에서 하나하나 모두 설명 하거나 직접 말해버린다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시는 직접 말하는 대신 읽는 사람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사물에서 찾는 여러 가지 의미가 시적 의미이다. 하나의 사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좋은 시는 어떤 사물위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이다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가 다 드러난다. 시인이 사물과 만난다 마음 속에서 어떤 느낌이 일어난다 그는 그것을 시로 옮긴다. 이때 사물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마다 같지 않다. 그 사람의 품성이나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일한 진달래를 두고 무수히 많은 시들이 창작될 수 있는 것이다.
시는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느낌과 감동에서 온다. 이 모든 것은 사물 이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사물위에 마음을 얹어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는 되돌아와 우리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시인은 모든것, 늘 보아오던 것도 새롭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좋은 시는 남들이 생각한 대로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느끼는 대로 느끼지 않았기에 독창적이 시가 된다.
시인은 사물을 남다르게 관찰하며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남다르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다의적 의미를 가꾸는 고심한 작업이다. 시속에서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모호성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다. 분명하게 다 말해버리고 나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가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시라 해서 해답이 없는 수수께끼로 되게 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고이는 법이 없이 생각과 동시에 내뱉어지는 말, 이런 말속에 는 여운이 없다. 들으려고는 않고 쏟아내기만 하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시어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의미를 담는다. 훌륭한 시인은 작은 표현 하나가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시행 배렬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짜보아야 한다.
시는 인류의 사상 감정을 표달하는 예술이고 인류 심령의 최고 활동 이며 심령의 음악이고 진,선,민의 경정체이다. 구라파시인은 시의 함의를 이렇게 개괄하고 있다.《시는 북에서 남에 이르는ㅡ상상, 지식, 동에서 서쪽에 이르는 감각ㅡ 사랑의 십자로이다.》시는 인류 감정을 리드하는 아름다운 선율이고 절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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