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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절 칼럼
2012년 06월 17일 21시 47분  조회:900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3절 칼럼
 
1. 칼럼의 함의
칼럼이란 신문, 잡지의 특별 기고. 또는 그 기고란. 주로 시사, 사회, 풍속 등에 관하여 짧게 평론하는것으로서 신문과 잡지들의 정해진 지면에 연재되거나 기고된 기사해설 등을 통틀어 칼럼이라 부르며 그 필자를 칼럼니스트 또는 기고가라 하며 주로 논설위원이 쓰고 사회의 저명 인사가 쓰기도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칼럼니스트는 반드시 신문사의 논설위원이나 잡지사의 주간 (主干) 등이 되는 것은 아니며 외부사람이 될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다. 칼럼은 한 필자가 내막 폭로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계속적으로 발표하 는데 근래에는 정치평론, 사회시평을 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 가 많다.
    칼럼은 기사와는 달리 필자의 견해를 제시하는만큼 수필성도 고유 하고 있다. 위키 백과사전에서는(수필 또는 에세이는 생각을 자유롭 게 표현한 산문문학이다. 주제에 따라 일상 생활처럼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경수필과 사회적 문제 등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중수필로 나뉜다. 특히 중수필에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쓴것을 칼럼이라 한 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
  2. 칼럼의 종류
칼럼은 외부형태에 따라 기명(記名)칼럼과 무기명 칼럼으로 나뉘며 필자에 따라 내부 필자와 외부필자로 나뉜다. 우선 기명 칼럼은 필자 의 이름이 붙어있는 칼럼으로서 대개 신문사에서 대표 집필자로 내세 울 수 있는 사람이 쓰게 한다. 
  필자별 칼럼의 분류로 내부 필자는 주로 언론사 내부의 기자, 논설 위원, 논설 주간, 주필 등을 말한다. 칼럼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소신과 철학, 시국에 대한 견해 등에 의해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언론사 내부필자의 경우 소속사의 사시와 전통, 색깔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어 문제가 된다. 
    칼럼은 정해진 형식이 없고 소재가 제한되어 있지 않으므로 수필 같아 보이는 칼럼도 있고 연설문에 근사한 격앙된 문체들도 칼럼 이라는 통칭 속에 들어가 있다. 칼럼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지니 고 있으며 필자의 개성과 소신, 멋이 살아날 수 있어 최근에는 점차 수필을 닮아가고 있다. 칼럼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숨긴채 다른 사람의 견해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칼럼은 어떤 제약도 없어 보이지만 고도의 형식미가 있으며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해야 제격이다. 이 시점에서 수필과 칼럼이 혼동해 쓰이 기도 하나 꼭 같은것은 아니다.
    첫째로, 칼럼, 사회칼럼에는 수필글의 바탕인 진지하고 풍부한 정서가 개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서보다는 논리가 선행하게 되고 주관적 감수보다는 객관적인 논거에 치중하는 것이 칼럼의 고유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상징성과 구체성이다. 사회수필은 다루고자 하는 사회 문제에 먼저 상징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반면에 사회칼럼은 매우 구체적으로 또한 직설적으로 설파한다. 사회수필에서 상징은 구체적인 것을 오히려 추상화시킴으로써 주제의 전달에 큰 여운을 주게 되며 따라서 문예적인 효과도 제공하게 된다.
    셋째로, 수필과 칼럼의 공통점은 문체와 표현에서도 다르게 나타 난다. 사회칼럼의 문체는 강경하고 설명적이다. 독자를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표현도 직설적이 될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수필의 문체 는 유연하다. 강한 주관 의식도 부드러운 어경으로 감싸고 설득시 키려는 조급성보다는 은밀하게 공감성을 유도해 낸다.
칼럼에는 수식이 별로 필요없지만 수필에서는 비유와 수사가 가능 한껏 동원된다. 정감을 공감시키려는 수필에서는 정서 속에 녹아있는 철리성이 내비쳐야 감동적이다. 이것이 사회수필과 사회칼럼의 문장 이 같을수 없는 이유이다.
칼럼을 수필과 동일시할 수 없는 것은 칼럼이란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시사, 사회 풍속 등을 총평하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논설 또한 사물의 이치를 들어 자기 주장을 펴는 칼럼과 논설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뿐 그 성격은 어상반하다. 그르하르트 하스는 “칼럼이나 논술의 경우는 예술적인 현상, 그 의도가 전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데서 수필과 구별 될 뿐이다.”라고 전제하면서, “수필은 학문적인 존유물 들을 문예적으로 대중화 한다”고 말하고 있다.
넷째로, 미적가치와 논거에서 구별된다. 수필이 일상에서의 미적 가치를 추구하고 전달하려 노력하는 데 반해 칼럼은 사회 생활 현상에 대해 이치를 따져 논평하는 주장이 있는 평론인만큼 사회성이 기조가 되고 수필에는 일상성이 바탕이 될 것은 자명하다.
칼럼이 대중적이고 사회적이며 논리적이라면 수필은 개성적인 자아표현으로서 서정성이 생명이 된다. 칼럼은 지식적이고 시사성을 띠며 문체는 강건체이고 기조는 이론적인 반면에 수필은 체험적이고 생활적이며 형상적인 표술로서 미적이다.
칼럼은 논리적이고 수필은 형상적이다. 칼럼은 사실적이고 보고 성적이나 수필은 예술 상상력이 수요된다. 칼럼에는 구체적인 지명 이나 인명, 그리고 참고서 이름, 년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한 인용 구가 자주 등장하지만 수필에는 그러한 구체적 용어들이 제한되어 있다. 칼럼에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언어가 많이 사용된다면 수필에는 감성 적이고 감각적인 언어가 다양하고 풍부하게 사용된다.
중수필에서도 칼럼처럼 논증이나 논거가 부분적으로 적용되는데 이 론증부분이 바로 칼럼과 맥을 같이 한다. 지식 전달이 칼럼의 임무 라면 감동의 부여가 수필의 취향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머리로 쓰는 것이 칼럼이라면 가슴으로 쓰는 글이 수필이다. 칼럼은 일차성적인 열독으로 생명력이 끝날 수 있지만 수필은 문학성과 예술성으로 하여 생명력이 영구하다. 대체상 칼럼과 수필의 관계를 이렇게 구분해 볼수 있다면 상관성에도 불구하고 이질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칼럼의 구성
칼럼의 구성은 사설의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서론, 본론, 결론 등의 순서로 쓰거나 기,승,전,결의 방식으로 쓴다. 다만 사설의 일반 적인 구성이 “사실-평가–대응 방안”이라면, 덧붙일수 있는 칼럼의 구성은 “일화나 인용-평가 -의견이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서론 부분에서는 사안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기사의 경우처럼 사례 를 들어 글을 풀어 가기도 한다. 또 과거의 예를 제시해 역사의 교훈 을 삼도록 하거나 고사를 인용하는 글도 있다. 외국의 사례를 제시 하는 경우도 있다. 본론에서는 사안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제시 하면서 비판을 가한다.  
  칼럼은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갖추기보다는 사안을 직접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그 예로 보통 필자의 주장을 먼저 내세우거나 아니면 필자와 반대되는 주장을 서두에 내세우고 이 주장의 잘못된 점을 조목 조목 지적해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설득시키기도 한다.
칼럼의 마지막 부분은 필자의 의견이나 주장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사설의 “대응 방안”이 사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대책이라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의견이나 주장이 라는 점이 다르다.
모두어 말하면 칼럼을 쓸 때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1) 지식이 연박해야 하고 시세에 밝아야 한다.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학, 철학, 사상, 역사 등 광범위한 독서를 통한 지식의 축적과 원숙 한 인생의 경륜이 있어야 한다.
2) 주견이 뚜렷해야 한다. 해박한 지식이 있더라도 어떤 사안에 대해 주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소신있는 칼럼을 쓸 수 없다.
3) 균형감 있는 시각과 올바른 력사관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한 가치 판단은 칼럼니스트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투철한 시각으로 문제를 보아내고 옳바 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확고한 역사 의식을 지녀야 한다.
 4) 칼럼을 잘 쓰기 위해서는 주제가 되는 사안에 대해 전후 맥락, 흐름, 현재 상태, 정책적 대안등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5)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와 필력이 있어야 한다 칼럼은 사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나 사설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문장의 기술로 이루어지는 반면, 칼럼은 필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비유적이고 정서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칼럼의 어느 부분이 일화이고 글쓴이의 생각인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기술하여야 한다.
   
예문 (칼럼)   [황진선칼럼]    하늘을 보자     
 
얼마 전 불교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의 인터뷰 기사를 읽는데 스스로 대충 주의자, 회색분자라고 농담처럼 말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다툼을 화해시키고 사이좋게 문제를 풀어가는 화쟁(和諍)을 하려면 당연히 그래야지 싶으면서도 생명 평화탁발순례로 잘 알려진 스님의 원칙주의자 이미지와 겹쳐져 친근감이 들었다. 그런데 곰곰 짚어보니 우리 사회에 중간지대가 없기 때문에 눈길이 가고 친근감이 든 게 아닌가 싶다. 중도 부재의 시대에 대충주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날로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양극 화로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예산안 날치기 파동,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찬반, 무상급식 논란 등이 예다. 보수와 진보로만 갈라지는 것도 아니 다. 이해 관계에 따라 사사건건 두부모 가르듯 편을 갈라 싸운다. 반대를 위한 반대, 찬성을 위한 찬성의 논리를 편다. 말도 점점 험해 진다.
도법스님 기사를 읽은 뒤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는 “땅의 삶에만 매몰되지 말고 가끔은 하늘을 보라.”고 충고했다. 순간 “맞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루에 한번 하늘을 보면 아등바등 각박하게 살지는 않을 것 같다. 너무 바쁜 것은 악이다. 하늘을 바라보면 삶의 속도를 줄일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질 것 같다. 밤하늘의 별을 보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다툼을 줄일 수 있을 듯싶다. 사람들은 죽음 이 가까워지면 누구나 용서하며 살 걸, 베풀며 살 걸, 재미있게 살걸 하고 뉘우친 다고 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용서는 자신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과정이다. 미움과 분노의 뿌리는 대부분 이기심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미움을 버리지 않으면 자신이 불행해진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임종을 앞둔 수많은 사람들이 “난 돈의 노예였어.”하고 후회한다고 얘기한다. “돈이 더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했던 순간은 즐겁게 놀았던 때다. 그래서 아이들과 공원에 가고, 바닷가에 가고, 여행을 간 일을 떠올린다고 한다. 가장 후회하는 것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산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공감의 시대’는 공감(empathy)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얘기한다. 치열한 경쟁과 적자생존의 시대를 넘어 협력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경쟁 관념으로는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친 사회적 행동과 협동심이 새 시대의 적자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제시한다. 리프킨은 인간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숙 한 공감 본능을 키워 왔다고 말한다.
갈수록 정교하고 상호의존적이고 복잡한 사회구조를 지향하는 것은 본성적으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와 교섭을 넓히고 심화 시키려 하고, 더 큰 사회에 참여하며 자신을 초월하려는 정서를 가졌 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공감 본능이 복잡한 사회적 교류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원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정치적 집회와 시민단체에서 중요한 토론의 주제가 될 정도로 흔한 개념이 된 것은 버락오바마 대통령이 이 말을 즐겨 사용한 탓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감을 자신의 정치 철학의 핵심으로 삼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 을 강조했다.
공감은 모든 종교의 열쇠말인 연민, 긍휼(compassion), 자비와 상통한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서만 행복할 수 있다. 그 관계는 공감과 연민이 바탕이 어야 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덜 자기중심 적이라고 한다.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주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더 친절하고 더 사랑하고 배려한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철학의 중심에는 하늘을 지향하는 천지인 (天地人) 합일 사상이 있다. 인간이 하늘을 지향해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것을 강조한다.
 
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지적인 대중과 대화하는 깊이 있고 발견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지 않으면 칼럼이라 말하기 어려우며 현실 생활에 대한 주체적인 사유와 철리, 지도성이 결여하다면 칼럼으로서의 가치 를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세상과 자기를 연계시는 것이 칼럼의 사명이 아니라 언어표현 속에 담긴 내용에 대한 독자의 공감이 중요하다. 사회상의 온갖 부조리와 인간의 추태, 악습을 살펴보고 인간의 바람직한 양상, 삶의 의미를 추출해 내는 냉철함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이 사적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칼럼은 공리성을 앞세우고 길을 떠난다.
  자신만의 독특한 투시력을 안받침 해주는 필력이 있어야 한다. 칼럼은 사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은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거니와 필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비유적이고 정서적인 문장으로 엮을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칼럼의 어느 부분이 일화이고 어느 부분이 작자의 생각인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기술하여야 한다.
여러 가지 문체로 말할 때 두부모 베듯이 가를 수는 없으나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만필이나 현실 생활과 사회현상에 서 받은 각종 자질구레한 감수를 쓴 잡감을 다 칼럼에 넣어서는 안될 줄 안다. 수필이 되다가 만 글이 칼럼이 아니며 칼럼에 서정성을 가미한다 해서 곧 수필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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