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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련재 (20)
2018년 06월 01일 07시 03분  조회:2168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카나다 기행.(1)
 
                                          1.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다
 
   아침 7시에 워싱톤에서 떠난 뻐스는 5시간만에 미국 - 카나다 국경에 도착하였다. 미국과 카나다 국경은 강과 호수, 폭포를 사이두고 국경선으로 된 곳이 여러 곳에 있었다. 미국과 카나다 국경에는 나이아가라는 폭포가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아래 협곡을 가로 지나는 큰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 중심을 미국과 카나다의 국경선으로 확정하고 있었다.
    다리를 사이두고 두 나라의 해관이 있었다. 해관검사는 까다롭지 않았다. 우리는 차를 타고 미국 해관을 통과하여 카나다 해관에 이르렀다. 카나다 해관에서도 입국 절차가 간단하였다. 해관을 나오니 멀지않은곳에 안개가 자욱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였다. 우리는 선참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폭포 매표구에서 관람권을 산후 순서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선착장에는 호화로운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폭포와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갈수있었다. 유람선에 오를때 비옷을 발급하였다.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폭포와 가장 가까운데로 가는데 10분 걸린다고 한다. 나는 천천히 달리는 배에서 협곡의 량안을 보니 일풍경이였다. 유람객들은 협곡 량안의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여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나도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도정신하여 사진을 찍었다. 협곡 량변을 보니 카나다 쪽이 더 볼거리가 많았다.
   나는 나이아가라 협곡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자연은 어찌하여 딱 미국과 카나다 국경에다 인류가 창조할수없는 거대한 협곡을 만들었을가? 생각할수록 자연의 유능에 탐복하였다.
    나이아가라 협곡이 있으므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형성되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두개의 대형폭포와 하나의 소형폭포로 나뉘는데 염소섬을 기준으로 카나다령에 속한폭포는 카나다 폭포라( 말 발굽형 폭포) 하고 미국령에 속하는 폭포는 미국폭포라 한다. 카나다측의 나이아가라 말 발굽형 폭포의 높이는 53메터이고 너비는 79메터라 한다. 폭포 절벽에서 떨어지는 강물량은 합쳐 분당168.000립방메터라 한다.
    내가 협곡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을을 때 배는 어느사이 폭포를 똑똑히 볼수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높이가 53메터되는 절벽우에서 거대한 강물이 쏫아저 내리는 모습이 대단하였다. 폭포수는 아래에 있는 바위에 부디쳐 벼락치듯, 우뢰소리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와 동반하여 물방울이 사방으로 튕기면서 폭우가 쏟아져 내린듯 하였다. 작은 물방울은 짙은 안개가 되여 폭포 주위를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아! 참으로 장관이구나! 하는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관람객들은 휘날리는 물보라 속에서도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도 기회를 노칠세라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나이아가라 목포를 보았으니 나이아가라 폭포에 대하여 아는 것만큼 이야기 해야겠다. 미국과 카나다의 국경에는 이리호라는 큰 호수가 있다. 이리호에서 흘러나온 나이아가라 강은 온타리오 호로 들어간다. 흘러가는 도중에 미국과 카나다 접경지대에있는 거대한 협곡으로 폭포수로 되여 나이아가라강에 뛰여들어 도도히 흐르다가 온타리호로 들어간다.
     협곡 첫 머리에 높이 53메터가되는 절벽이 있다. 그 절벽으로 나이아가라강 강물이 떨어지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형성하였다. 나는 나이아가라 협곡과 폭포를 보면서 어떻게되여 이렇게 거대한 협곡이 생기였고 폭포가 생기였을가? 알고싶었다. 후에 가이드의 해석을 듣고 의문점을 풀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나이아가라 협곡이 이떻게 형성되였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고고학자들은 깊은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의 추정에 의하면 2억만년 전 빙하시기, 카나다 전체와 미국 북부지방을 약 3km 두께의 얼음으로 덮혀있었다 한다. 그후 지금으로 부터 1만년전에 지구가 온난해 지면서 이 지역의 빙하가 녹기시작 하였다 한다. 오랜기간 빙하가 녹으면서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 한다. 마지막 빙하가 녹으면서 수많은 호수와 하천이 형성되였다. 미국 북부와 카나다에는 그때로 부터 많은 호수가 생기였다 한다. 빙하물이 침전되면서 어떤곳은 지질변화가 생기여 땅이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나이아가라 지역의 그러했다. 땅이 몹시 꺼지면서 길고 깊은 골짜기가 생기였다. 이리호에 몰렸던 물이 그 골짜기로 흐르기 시작하였다. 세월과 함께 물길에 골짜기는 깎기우고 패우면서 점차적으로 지형이 낮아저 큰 협곡으로 형성되였다 한다. 협곡이 생기자 자연  락차가 생기였고 폭포도 생기였다고 한다.
    지금 미국과 카나다 정부에서는 폭포위에 있는 나이아가라 강에다 대형 수력 발전소를 건설하였다. 물량이 많아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미국과 카나다에서는 나이아가라 폭포와 나이아가라 협곡량변에 유람구를 만들었다. 자연환경이 독특하고 력사유적과 문물이 많이있어 관광업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한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 카나다 측에서 더 관광업에 중시를 돌리고 있는것 같았다. 유람시설과 서비스가 매우 구전하였다.
     우리는 기분좋게 나이아기라 폭포를 본후 원점으로 돌아왔다. 먼저 해관주위에 있는 작은 도시를 돌아보았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두고 량쪽에 미국과 카나다의 작은 도시가 있었다. 이 작은 도시들은 과거에는 국경을 지키는 전초지였다면 오늘은 관광산업을 키우는 광광 도시였다. 카나다측에 있는 이 도시는 범위는 작지만  력사유적과 문물이 많이있어 볼거리가 많은 도시였다. 도심에는 옛 건물과 새로운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옛 건물들은 일찍 프랑스 사람들이 건축한 건물들이였다. 다수의 건물들은 18세기 때 건축물로서 외래의 적을 막기위해 축성한 성벽과 망루였다. 건물들은 오랜세월을 겪으면서 많이 낡고 색이 바랬건만 여전히 예술성이 있고 견고함을 보여주었다. 새로 건설한 건물들은 다양한 양식과 색채로 장식하여 산듯한 감을 주었다.
 
 
                                           2. 토로토로 가다
 
 
    우리는 나아이아가라 폭포와 폭포옆에 있는 작은 도시를 돌아본후 카나다에서 제일큰 도시인 토로토시로 향하였다. 토로토시로 가는 동안 산이 보이지 않고 대신 흰눈이 덮힌 넓은 벌이 보이였다. 넓은 벌에는 밭이 별반  보이지않고 보이는것은 울창한 수림이였다.        이번 려행을 떠나기전에 카나다는 국토가 넓고 삼림자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눈으로 집적보니 그런감이 들었다. 삼림을 지나면 드문드문 나무숲속에 뾰족한 지붕에 흰벽체로 된 집과 마을이 보이였다. 카나다의 시골마을 집들은 거개가 창문이 작고 벽이 두터우며 지붕에 굴뚝이 있었다. 아마 몹시추운 곳이라 집  외부보다 내부에 더 신경을 쓴감이 들었다.
    나는 눈덮힌 드넓은 벌을 보면서 카나다는 아직 개발할 여지가 많은 땅이라고 생각되였다. 나는 곳곳에 보이는 눈을 보면서  세상은 정말로 넓고도 넓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같은 4월인데도 남방부에는 사시장철 나무잎이 푸르고 꽃이피는데 이곳 카나다에는 아직도 겨울을 못 벗어난 눈세계였다. 먼곳을 대비하지말고 가까운 미국을 대비하여도 기후는 완전히 달랐다. 위싱톤을 떠날때에는 비가 내리였는데 카나다 국경을 넘어서자 눈이 내리였다.
    카나다의 국토는 로씨야 버금으로 큰 나라이다. 하지만 인구는3400만명밖에 안된다고 한다. 카나다는 겨울은 길고 어두우며 무척춥다. 하여 사람들을 카나다를 일면 “동토의 땅”이라 부르기도 한다. 카나다는 넓은 국토와 무진한 자연자원을 갖고 있지만 몹시 춥고 한랭한 곳이여서 대부분 사람들은 따뚯한 남부 지방에 살고 있었다. 남부지방이라고 하여도 미국의 북쪽에 속한다. 카나다는 추운계절이 길지만 여름에는 기온이 온안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주기가 긴 농작물을 심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보리와 밀을 재배하기에는 적합하다고 한다. 카나다는 보리와 밀, 육류의 수출량이 세계에서도 손꼽는다 한다.
    카나다는 오랜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한다. 카나다란 말은 인디안인들의 “칸다”라는 추장의 이름을 본따서 부른것이라 한다. 카나다의 원주민은 콰키우틀족과 하이다족 인디안들이였다. 그들은 카나다의 서해안에서 살기시작한 최초의 주민들이였다. 그들은 서해안으로 부터 점차 비교적 살기좋은 동부로 이전하였다 한다. 그들이 남겨놓은 유물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문물은 “토템폴”이라는 유물이다. “토템폴”은 일종의 나무조각품이다. 콰키우틀족들은 “토템폴”이라는 조각 기둥에 가족과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새겨 놓았다.
    유럽 사람들은 17세기에 카나다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였다. 카나다는 처음에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후에 영국과 프랑스가 령토 분쟁으로 전쟁을 겪었다. 전쟁에서 영국군이 승리하자 카나다는 영국이 령토로 되였다 영국정부는 카나다를 영련방국가로서 인정하면서 총독을 파견하여 카나다를 관활하게 하였다.
     토로토시는 카나다 동부에 위치해 있다. 온티리호 호반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현유의 토로토의 도시인구는 450만명이 된다고 한다. 카나다를 “이민 국가”라한다. 카나다를 이민의 국가라하면 토로토는 “이민의 도시”라고 하는것이 적절할만큼 외래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현재 카나다에는 원주민은 얼마없고 다수는 이민으로 온 사람들이다. 토로토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확연히 알린다. 백인, 황인, 흑인 등 여러가지 피부색을띤 인종들을 볼수있다. 어떻게 되여 카나다에는 이민들이 많을가? 카나다는 몹시추운 곳이여서 사람들이 살기에는 매우 불편하였다. 카나다 정부에서는 국토가 크고 인구가 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이민들을 받아 주었다.
    카나다 정부에서는 너그러은 이민정책을 실행하였다. 이민을 위한 정책이 까다롭지않고  수수하여 많은 이민들이 카나다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으로 왔다가 영주권을 가지지 못하자 카나다를 건너와 영주권을 가진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 조선족들도 미국에서 이민권을 못 가지자 카나다로 와서 이민권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토로토시를 돌아보니 토로토시는 구 구역과 신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구 구역은 토로토시가 건설될 초창기에 건설한 도시로서 거리가 좁고 높은 집이 별반없었다. 구 구역건물들은 대부분 프랑스식 건축양식이였다. 구 구역에는 화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과 조선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코리아타운이 있었다. 차이나 타운에 들어서면 마치 중국의 거리를 보는감이 들었다. 건축양식은 중국식으로 되여있고 간판도 영문과 중문으로 쓰여저 있었다.  코리아타운도 마찬가지였다. 마트와 가계의 간판들은 영문와 조선문으로 쓰여저 있었다.
     토로토시의 신구역은 새로 건설한도시여서 거리가 넓고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토로토시는 과거 프랑스 령지였다가 후에 영국의 관활구로 되였다 토로토시가 빠르게 확장된것은 미국독립운동과 관계된다고 한다. 미국 독립운동이 시작되자 많은 영국군이 미국독립군에게 패하여 이곳 토로토로 몰려왔다고 한다. 영국군은 토로토를 미군과 대응할수있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한다 그들은 점차 이곳에 정착하면서 세력범위를 확장하여 영구한 영국의 점령지로 만들었다한다. 영국정부는 토로토에다 총독부 건물을 지었고 총독을 두었다 한다. 총독부가 건설되면서 대규모의 건설을 하였다 한다.
     토로토에서는 영어, 프랑스어와 문자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카나다에서 살고 있는 프랑스인 대부분은 퀘벡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프랑스인 집거구에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있다고 한다. 퀘벡지구 이외의 지구들에서는 영어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고 일부 외래인들이 집중하여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자기들의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토로토의 거리를 돌아본후 토로토 대학으로 갔다. 토로토 대학은 세계 대학중에서 종합 평가에서 17위를 차지한 유명대학이였다. 대학 정문에 들어서니 수수한 오랜건물들이 보이였다. 토로토 대학건물은 수수해도 학교의 건교력사가 길고 교직원들이 수평이 높아 명성이 높은 대학이였다. 토로토 대학에서는 여러명의 로벨상을 받은 학자들을 배출했다고 한다. 토로토 대학에서는 외국류학생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토로토 대학에는 특별히 중국류학생이 많다고 한다. 중국 류학생들이 토로토 대학으로 많이 류학을 오는 원인은 토로토 대학의 입학등록금과 수수료가 다른대학에 비하여 저렴하고 교학 질이 높은데다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하기가 쉽기때문이 다.
     우리는 토로토 대학을 돌아본후 인츰 토로토의 cn타워를 볼려갔다. 이탑은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탑이라 한다. 그러나 가장높은 건물은 아니다. 탑이 높이는 553메터인데 300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딛고 탐을쌓은것보다 더 높다고 한다.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로 올라갈수있다. 전망대에는 회전식당이 있었다. 그런데 회전식당 바닦은 유리로 되여 아래를 보기만해도 아찔해났다.
우리는 타워를 보고나서 인츰 옛 총독부를 보려고 갔다. 총독부 건물안으로 들어갈수없고 외형만 보았다. 총독부는 3층으로 된 건물이였다. 건축한지 오랜건물이여서 별로 새로운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총독부는 한때 거대한 나라 카나다를 자우지 했던 위엄있던 건물이였다.
    나는 토로토를 돌아 보고나서 이런 감이들었다. 토로토는 유구한 력사와 풍상많은 고초를 겪은 아름다운도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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