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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련재(21)
2018년 06월 11일 07시 14분  조회:1938  추천:0  작성자: 최상운
                                                  카나다기행 (2)
                                                 3. 아름다운 온타리오 호수
 
    우리는 토로토에서 하루밥을 자고 이튼날에는 온타리오(千島湖)호 유람을 떠났다. 토로토에서 온타리오호로 오는데 2시간이 걸리였다.
    길이가 몇십킬로메터가 되고 천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 졌다는 온타리오호는 미국과 카나다의 국경선에 있었다. 호수의 일부는 미국령토에 속하고 다른 일부는 카나다 령토에 속하였다. 대체적으로 보면  호수의  대부분은 카나다에 속하였다. 온타리오호에 참 재있는 구역이 하나 있었다. 온타리오호에 작은 섬이 두개 있었는데 그 두섬으로 통할수 있는 작은 다리 하나가 있었다. 그 다리가 미국과 카나다의 국경선이라 한다. 다리 절반이 미국령토이고 다른 쪽 절반이 카나다 령토라고 한다. 그 다리를 보면 사람들이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것 같은 감이든다.
    온타리오호 호수 주변은 무성한 나무숲이 있었다. 나무가 없는 공지에는 흰눈이 보이였다. 온타리오호는 토로토시와 가깝고 미국과도 가까워서 많은 유람객들이 몰려들었다.
     온타라오호 근처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온타리오호 주변에 호화로운 별장을 지어 놓았으며 호수의 유람시설과 유람선을 경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인 업주가 경영하는 려객선을 탓다. 려객선의 고용일군은 모두 카나다 사람들이였다. 단번에 200명을 태운 이 려객선은 호화로웠다. 배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사용하였다. 아마 승선한 유람객 다수가 중국인인걸 감안하고 그렇게 방송하는것 같았다. 스피카에서는 이 려객선 선장의 인생이 로정을 이야기했다. 선장은 한국에서 카나다로 이민을 와서 처음에는 사업을 잘하여 돈을 벌었다 했다. 후에 사업을 더 크게 벌리려하다가 실패를 하였다고 했다. 그는 로숙자 생활을 하다가 온타리오에 온다음 사업의 잘되여 지금은 온타리오 호에서 사업이 제일 잘나가는 기업가라고 하였다. 온타리오호에는 야생동물과 어류가 많다고 한다. 호수주변의 삼림에는 꽃사슴, 곰, 너구리, 여우, 물오리, 꿩과같은 야생동물이 많다고 했다. 물속에는 잉어, 메기와 같은 수십가지의 어류들이 있다고 한다. 한번은 140킬로그람에 달하는 물고기를 잡은적이 있다고 했다. 경치가 좋고 물고기가 많으니 세계각국의 낚시 애호가들이 몰려온다고 한다.
   호수주변에는 멋진 호텔과 별장들이 있었다. 나는 그런 건물을 보면서 누가 이런 벽지로 찾아올까? 의혹이 들었다. 알고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곳이 경치가 아름답고 물과 공기가 좋다는 소문이 알려지자 세계의 이름있는 부자들은 조용하고 아늑한 이곳에서 휴일을 보내기 위하여 가족과 동료들이 함께 자주 찾아 온다고 한다. 그 손님중에서 미국과 카나다 손님이 제일 많다고 한다. 온타리오 호는 특이하게 물이 잘 얼지않는다고 한다.
 
                                           4. 수도 오타와
 
    우리는 온타리오호를 돌아보고나서 고추 오타와시로 향하였다. 오타와는 카나다의 수도이다.
    카나다 수도로 왔으니 카나다의 력사를 언급하여야 할것 같다. 카나다가 아직 완전한 독립국가로 되기전에는 영련방국가였다.      1783년 빠리조약으로 미국독립전쟁이 끝나자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완정한 독립국가로 되였으며 미국에 있던 영국 왕당파는 퀘벡주로, 노바스코샤주로 피난을 오게 되였다. 1784년에 영국왕당파에 의하여 퀘벡주와 노바스코샤주가  여러 지역으로 분할되였다. 1837년 – 1838년 사이에 여러차례 분란이 일어났지만 1840년에부터 각 당파간이 협치가 되면서 카나다 자치정부가 출범하게 되였다. 자치정부의 출범은 영국령 북아메리카 조례에 따라 영국령 카나다 자치련방이 생겨나는 기초가 되였다.
   1926년에 대영제국국회에서 여러 자치제의 대표들이 모이여 워스트민스터 조례를 협상하였다. 1931년에 그 조례가 발표됨에 따라 카나다는 그 지위가 대영제국에서 영련방소속으로 바뀌었고 모든 지자체를 영국령이 아닌 동등한 지위체임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동등한 지위체로서 인정를 받았지만 카나다의 사실상 헌법인 영국령 북아메리카 조례의 개정은 영국 의회가 관활했으므로 카나다 련방정부는 이에 대하여 불만을 토하였다. 1982년 영국과 카나다 련방정부가 협상하여 헌법개정 권한이 카나다로 정식 이관됐다. 이는 영국이 카나다에 대한 사법적 권한도 넘기면서 사실상 사법주권이 카나다 자체로 넘어왔다.
    오타와는 작은 도시이다. 처음 카나다의 총독부는 토로토에 있다가 후에 오타와로 옮기였다. 오타와로 옮긴 이후 카나다는 영련방국가 이면서도 자주권을 가진 국가로 되였다.
    우리는 오타와에 도착한 후 먼저 오타와에 있는 총독부를 찾아갔다. 영련방에 속하는 국가들은 형식상에서 최고의 통치자를 영국 녀왕이라 한다 하지만 실제 최고 실권자는 총리이다. 카나다는 총리내각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인 카나다에서는 관람객들이 관람표만 사면 총독부와 총리관저로  들어 갈수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 안으로는 들어가지못하였다.
     우리는 총독부와 총리관저의 외곽을 돌아본후 총리관저에서 멀지않능곳에 있는 기념식수기지로 갔다. 이곳은 여러나라의 정상들이 오시여 기념식수를 하는곳이였다. 우리팀원들은 모두 중국지도자들이 심었다는 나무가 있는곳에가 사진을 찍었다. 나무들은 그분들이 심은 순서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제일 먼저 리선념주석이 심은 나무가 있고 다음으로 강택민주석, 호금도주석 순위로 심은 나무가 있었다. 리선념주석의 심은 나무는 어른나무로 되였다.
    그 나무 숲속에 가장 작은 어린나무가 있어 사람들이 이목을 끌었다. 내가 식수비 비문을 보니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적혀있었다.
    카나다와 중국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중국 카나다 국교정상화 이후 두나라의 정상들은 서로 래왕하였으며 경제무역을 활성화 하였다. 두 나라에서는 상호존중 호혜원칙하에 정부와 민간교루가 활성화 되였으며 량국의 무역액은 계속증가하고 있다. 중국정부에서는 항상 카나다 정부에 감사를 드리고 있다. 중국에서 한시기 자연재해가 들어 식량난에 곤난을 받고 있을때 카나다 정부에서는 많은 밀가루를 중국에 제공하여 식량난을 해결하여였다 한다.
     카나다는 중국과 경제무역이 활발히 전개되는 나라이다. 카나다에서는 중국에 목재와 밀가루, 소고기및 우유를, 수출하고 중국에서는 카나다에 의류와 소상품들을 수출한다고 한다.
     오타와는 구 도시구역과 신 도시구역으로 나뉘어저 있었다. 신 도시구역은 넓어 도시전체가 새로운 감이 들었다. 도시 중심에는 높은 빌딩들이 높이솟아 있었다. 이런 높은 건축물들은 카나다의 정부청사와 공공기관 건물들이였다.
    우리는 카나다 력사박물관을 돌아보았다. 카나다의 력사는 길지않지만 카나다의 토착민들이 력사로부터 현대까지의 력사를 잘 배렬하고 문물들을 잘 정리하여 놓았다.
    오타와에는 조선전쟁 참군 기념비가 있었다. 기념비 앞에는 조선전쟁에서 카나다군의 활동하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놓은것이 있었다. 매사람의 입은군복, 동작과 자세 얼굴표정은 심통히도 산사람 같아보이였다. 이런 인형동상이 하나도 아닌 수백개로된 군체를 이루어 전투 장면을 보는것 같았다.
    나는 오타와를 보고나서 이런감이 들었다. 카나다 정부에서도 미국을 본받아 수도를 대도시에 정하지 않고 교통과 모둔 지리적 환경이 조건이 적합한 작은 도시에 안치하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5. “제2빠리” 몬트리올
 
    몬트리올은 카나다의 동북부에 위치해 있는데 카나다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퀘벡주의 수부도시이기도 하다.
   오타와에서 떠나 4시간만에 몬트리올에 도착하였다. 몬트리올시내로 들어서니 도시의 이색적인 모습이 눈에 확 다가왔다. 넓은강, 그 강에 놓인 거대한 다리, 구비구비에 도는 산길, 산길따라 교묘하게 지은 건축물들이 몬토리올은 아름다운  산간도시구나! 하는 감이 들었다.
     내 느낌과 같이 몬트리올은 산간 도시였다. 몬트리올이란? 도시 이름은 도심에 위치한 산인 몽트얄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몽트얄산을 중심으로 하여 도시가 형성되여 사람들은 도시 이름을 몬트리올이라 부르게 되였다 한다.
     몬트리올에는 세인트로렌스강과 오대호강이 합쳐지는 지점에 큰 몽트리올 섬이 있었다. 이 섬에 몽트얄산이 있고 산을 중심으로 몬트리올시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몽트얄산에서 내려다보면 몽트얄산을 중심으로 주위에 작은 도시가 합성되여 큰도시로 된것이 환히 보이였다.
    어떻게 보면 몽트리올섬은 천연 요새로 되여보인다. 도시주변을 감돌아 흐르는 두 강은 고대 황궁주위를 에도는 해자마냥 몬트리올섬을 보위해 주고 있었다. 천연 요새를 증명이라도 할것처럼 강변에는 프랑스군이 영국군이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 보루와 포병기지가 있었다. 포병기지에는 커다란 구식 대포가 진렬되여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몬토리올을 “작은빠리”라고 말한다. 몬토리올 도시를 보면 그말이 일리가 있다고 보아진다. 몬토리올시의 거리와 건물을 보면 프랑스의 빠리를 방불케하는 거리와 건축물들이 보이였다. 몬트리올 도시설계가 프랑스식으로 되였다. 대부분 건축물들은 2-3층 단독 가옥들인데 돌로 지은 고디식 건축물들이였다.
.    몬트리올지역은 상당히 범위가 넓은데 몬트리올지역에는 74개의 섬이 있다고 한다. 몬트리올시는 몬트리올섬과 세인드레스를 포함하여 대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몬트리올 도시권은 카나다에서 토로토 버금으로 큰 광역시라고 한다. 74개의 섬들을 련결된 다리가 있으며 크고작은 부두가 있어 교통이 매우 발달하였다. 몬트리올은 국내외 여러지역으로 통할수 있는 중요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몬트리올은 전형적인 겨울의 도시이다. 겨울이 길고 어둡고 몹시춥다. 대략 11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폭설량의 많은 추운 겨울날씨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5월에 잡아들면서 기온은 점차 올라가며 여름에는 무덥지않은 온안한 날씨가 많다고 한다. 몬트리올 주위는 호수가 많아 겨울철 빙상운동을 하기좋은 곳이기도 하다. 카나다 사람들은 겨울철 스포츠를 즐긴다. 몬트리올 사람들은 특별히 아이스하키운동을 즐긴다.(아이스키는 스케트를 신고 스틱을 리용해 꼴대에 꼴을 넣는 단체경기)
     우리는 눈덮힌 산길을 따라 도시의 곳곳을 돌아보았다. 몬트리올에서 제일 인상이 깊은 곳은 33km 되는 지하 보행 거리이다. 몬트리올에서는 겨울철 추위를 피하기 위해 도시와 도시사이를 통할수 있는 지하 통로를 수축하였다. 몬트리올 사람들은 이 지하 보행거리가 있으므로 하여 겨울의 매짠추위를 몰으고 지난다고 한다. 몬트리올에는 어떤때에는 폭설이 두께가 3메터가 될때가 있었다 한다. 그렇게 폭설이 두텁게 내려도 몬트리올 시민들은 큰 영향이 없이 지하통로를 통하여 다닌다고 한다.
    몬트리올은 카나다에서 가장 큰 철도교통중심지이고 철도 본부건물과 국제민간 항공기구 등 중요한 기관의 본부가 있다. 이 보행거리는 지하철과 뻐스정류장이 련계되여있었다. 매우 편리하였다.
     우리는 지하보행거리를 돌아본후 몬트리올에서 제일번화한 몬트리올 상업거리로갔다. 몬트리올 상업거리는 몽트얄산 아래 산비탈에 있었다. 뒤에는 몽트얄산이 있고 앞에는 세인트로렌스강이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곳이였다. 나는 비좁은 상업거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들었다. 드넓은 대지를 가지고 있는 카나다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곳 몬트리올에서만 땅을 금싸락같이 여기며 비좁게 사는지? 이상스러웠다. 알고보니 몬트리올의 교통이 사통팔달하였기 때문이였다. 카나다에서 미국으로, 유럽으로 가는데 몬트리올이 중추역할을 하는 도시였기 때문이였다.
     몬트리올시 상업거리는 가파로운 언덕길로 되였다. 골목이 좁고 길이 가피로워 차들이 다닐수 없었다. 사람들은 도보로 걸어야만했다. 산언덕에서 산아래 상업거리로 오는 길은 유일하게 먼곳을 에돌아 오는 자동차 길이 있고 그외는 수백개의 계단으로 된 길이 있으니 평시에는 그 길을 사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였다.
    몬트리올 상업거리에는 세계의 여러나라의 상인들이 상점을 꾸려놓고 있었다.
   우리는 상업거리를 돌아본후 인츰 1976년에 개최되였던 올림픽주경기장으로 가보았다. 이 경기장은 텅 비여 있었다. 올림픽대회가 끝난후 후속절차가 따라 가지못하여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 경기장을 도맡을 적임자가 없다고 한다.
3일간 설국의 나라 카나다 려행을 하고나니 마음이 즐거웠다. 푸른 색갈도 보기좋지만 백색도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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