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이 래일모레인 안씨할머니는 배추줄거리처럼 하야말쑥하고 갸냘프지만 정신만은 명석하고 정정하다. 그는 비록 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부부의 생활ㅡ 운우지락은 모두꼽아 열번도 되지 않는다. 로인은 지금 아들집에서 반년, 딸집에서 반년씩 아주 평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한생을 회고하면 떠오르는 슬픔과 유감을 잊을수 없다. 그것은 안씨할머니의 평생한으로 남아있다. 안씨할머니는 자기는 한평생을 녀자답게도 살지못했고 녀성답게도 살지못했다고 인정하면서 자기의 사주팔자는 더럽게도 되였다고 탄식하군 한다. 자기는 녀인도 아니라고 한다.
안씨할머니는 조선 무산군 어느 두메산골에서 소작농의 딸로 태여나 자랐다. 그는 서당이니 학교같은건 이름도 모르고 자랐으나 부모로부터 녀아의 행실은 참답게 배우며 성장했다. 인물곱고 일잘하고 얌전한 안씨는 17살 되던해 두만강 건너 벌방마을로 시집을 갔다. 시집은 마을에서 제일 잘사는 집으로 장씨문중의 종가였는데, 안씨는 맏며느리로 되였다. 신랑은 안씨보다 4살위였다. 신랑은 배들배들 약골인데다 고자였다. 이점에 대하여 그의 부모들은 대개 짐작은 있었으나 보약을 꾸준히 쓰면 되리라 기대를 하면서 장가를 들이고 사돈집을 이웃마을로 이사시키는 등 배려를 하였다. 안씨 본가에서는 딸의 신세로 번신을 했다고 흐믓해 하였다. 시집에서는 고아가 된 사촌시동생을 자래우고 있었는데 그는 안씨보다 세살이 어렸다.
잔치를 해서 6년철이 되였지만 며느리가 전혀 태기가 없자 시부모들은 완전히 절망을 했다. 그들은 아들대에 와서 장씨문중의 대를 끊어 놓았다고 여간만 안타까워 하지 않았다. 문중사람들도 차츰 아니꼬와하는 눈치로 쓴외보듯 하기 시작했다. 결혼 6년이 지나고 7년철이 되는 이듬해 가을 안씨에게는 태기가 생겼다! 어찌된 기적인가?! 문중에서는 누구라 없이 기쁨에 벙실거리며 그것은 철모르는 아이들 까지도 아들며느리에게 꾸준히 보약을 쓰고 산천당과 절간에 치성과 불공을 잘한 덕이라고 하였다. 장씨네들은 “그러면 그렇겠지! 하늘이 우리문중을 굽어 살피신다네!” 하며 목대가 꿋꿋해 하였다. 그러나 종가집 네식솔은 항상 파리를 삼킨 기분이였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는 더없이 환한 얼굴들이 였다.
긴말을 짧게 한다면 그 내역은 이렇다.
엉큼한 시부모들이 치사스럽고 비루한 간계를 은근히 써왔든 것이다. 그들은 아들의 무능을 언녕 알면서도 열심히 보약을 쓴다 치성을 드린다 하면서 성심성의를 보이는 한편 자래우는 조카에게 눈독을 박았다. 조카가 성장하며 속옷에서 몽설이 나타나자 그들은 의식적으로 조카와 며느리에게 은밀한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동생의 아들로 종가대를 잇는것은 조상전례 예로부터 있는 정정당당한 법이라느니 미덕이라느니 하면서 아들며느리와 조카에게 은근슬쩍 귀띰을 주기도 하였다. 드디여 절호의 기회가 왔다. 먼곳에 있는 문중친척집에서 회갑찬치가 있게 되였는데 시부모들은 아들을 데리고 떠나면서 며느리와 조카는 집을 보라고 하였다. 4,5일 잘 걸릴것이니 소여물 돼지죽… 명심하며 집을 잘 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그들은 나들이를 갔다. 그들이 간후 두청춘은 누가 먼저고 누가 주동이였다고 할것도 없이 파겁을 하고 한자리에 들었다. 안씨도 시동생도 인생에서 처음 겪는 황홀경이 였다… 하지만, 욕정과 유혹, 미련은 감질이 날 지경으로 강렬했으나 그들은 량심의 가책으로 심리부담도 금할수 없었다. 안씨는 3종4덕, 7거지악이라는 거울앞에서 자책을 금할수 없었고 동생은 천륜과 배은망덕이라는 거울앞에서 자책을 금할수 없었다. 그들은 더는 그런일을 하지말자고 약속하고 다짐하였다. 그런데 그 몇번에서 수태가 될줄이야… 천지조화였는가! 지리 인화 시간이 그렇게 신통히도 딱! 맞아 떨어질줄이야. 이듬해 안씨는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다. 며느리가 잉태를 하자 시부모들은 부랴부랴 조카를 장가들이고 먼곳에 이사를 시켰다.
손주는 자라면서 용모는 말할것도 없고 말씨며 행동거지가 천연히 저의 5촌숙을 닮아갔다. 문중에서도 마을에서도 쉬쉬 키득키득 안씨를 손가락질 하고 소문은 가근방에 널리 퍼졌다. 어떤 사람들은 “얘가 삼촌을 쏙 빼닮았네!”, “문중을 위하여 대공을 세웠네.”하며 말했는데 이건 놀리는건지 비웃는건지 아니면 몰라서 희한함에 경탄을 하는건지… 알수없는 웃는낯으로 빤히 쳐다보며 말할때면 안씨는 난처하기가 짝이 없었다. 후론은 인차 “시동생과 살아 아이를 낳았다.”는것으로 되여버리고 그것은 등뒤에 난 혹처럼 한평생 안씨에게 붙어다니며 얼굴이 화끈거리게 하였다…
해방이 된후 안씨네는 부농으로 청산을 맞고 거지가 되였다. 그후 몇년간에 시부모들은 울화증으로 세상을 뜨고 초급사, 고급사 합작화덕에 안씨네는 죽물이 나마 먹고 살수 있었다. 고자긴 해도 눈치는 멀쩡한 남편은 항상 오만상을 찌프리고 할금할금 하며 술에 곯아 떨어졌다. 그는 아무일도 하지 못했다. 초급사때는 그래도 회계일을 보았으나 고급사가 되면서 떨어지고 말았는데, 그는 페인이나 다름없었다. 안씨는 악을 쓰고 일을 했지만 극빈호의 멍에를 벗을수가 없었다. 고달픈 생할은 한입으로 다 말할수 없었지만 안씨에게서 제일 어려운 것은 땔나무를 하는 것이였다. 갸냘픈 녀자의 몸으로 아무리 적게 땐다고 하여도 백여단의 나무를 해야하는 일도 힘든 일이였지만 발구나 수레로 나무를 실어오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였다. 나무수레를 번지여 울면서 소만 끌고 돌아올때도 자주 있었다. 부농이다 보니 문중에서는 들여다 보는 사람도 없었다. 때로는 방조해 주겠다며 히죽거리는 사내들이 있기도 했으나 안씨는 질겁하며 거절했다. 슬금슬금 산으로 따라오는 사내들이 보이면 안씨는 가다가도 돌아섯다. 없친데 덮친격으로 뒷소리를 더는 만들수 없었다. 남자들 때문에 그는 시시각각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수 없었고 그것도 그에게는 상당히 크고 중대한 부담이였다.
방금 고급사가 된후 마을에는 한쪽다리가 없는 잔페군인이 돌아왔다. 그는 이마을에서 살던 고아였는데 광복이 된후 참군을 해서 해방전쟁, 항미원조까지 갔는데 다리를 상해서 포로가 되고 포로교환으로 돌아 온 것이다. 그가 오자 생산대에서는 땔나무를 담당해 주는 조건으로 그를 안씨네 집에 주숙하게 하였다. 그리고 우사에서 사양원일을 하게 하였다. 안씨는 싫었으나 부농이다 보니 생산대 지시에 따를수 밖에 없었다. 어느 겨울날 밤, 안씨는 잔페사내에게 강간을 당했다. 30대중반인 두사람의 간통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러나 안씨는 인차 정신을 펀뜩 차렸다. 이러다가 임신을 하는 날에는 죽는 길밖에 없지 않은가! 무슨낯으로 세상을 더 산단 말인가… 안씨는 정치대장을 찿아 죽어도 손님치기를 못하겠다고 완강히 떼질을 썼다. 리유는 사내가 자꾸 치근거린다는 것이였다. 정치대장과 치보주임이 조사할때 사내는 안씨와의 공수동맹대로 치근댔다고 승인을 하고, 포로병놈이 그따위 너절한 짓을 하느냐고 눈알이 빠지게 줄욕을 먹었다. 류망죄로 감옥에 가지 않은것이 너그러운 관대처리인줄 알라고, 사내는 우사에서 자며 자취를 하게 되였다. 그러나 안씨의 팔자에 무슨액이 씌였는가! 그는 덜컥 임신을 한것이다. 이듬해 안씨는 딸을 낳았다. 딸은 특등잔페군인(그때는 포로병놈)의 금붕어눈을 똑 떼여 닮아 안씨는 “원래부터 더러운 화냥년”이라는 치욕의 혹을 영원히 짊어지게 되였다.
눈물의 헌신(1)
인순이는 마을에서 첯손가락에 꼽는 일등 처녀였다. 인물 곱고 마음씨 곱고 명랑하고 쾌활한 그는 일솜씨도 잽싸고 알뜰하였다. 그는 스무살에 생산대장 창걸이와 결혼을 하였다. 창걸이는 듬직하고 직심인데 훤칠하고 잘생긴 준수한 총각이였다. 사람들은 그들 둘을 놓고 천생배필이라고 곧잘 우스개를 하였는데 그것이 정말로 되였다. 잔치한 이듬해 인순이는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인순이와 창걸이는 행복에 겨워 매일 싱글벙글 걸차게 일했다. 그들은 앞날을 생각할때마다 무궁한 힘이 솟구쳤다. 돼지를 두마리나 키우며 개와 닭도 키웠는데 뜨락은 농가의 생기가 넘쳐났고 집안은 기름기가 반즈르르 포근하고 아담했다.
이의 돌생일때다. 아이생일술에 기분이 잔뜩 좋아진 시형 창일이는 아이를 안고 노래하며 춤을 추다가 그만 아이를 방바닥에 퉁! 떨구었다. 아이는 당장 기절을 하고 경풍을 일구었다. 인순이부부와 시형네는 아이를 안고 공사병원으로 써푸를 달리였다. 그때까지 아이는 죽지 않았지만 새파란 얼굴에 거품을 물고 깜작깜짝 놀라면서 바들바들 떨었는데 울지는 못했다. 의사가 구급처리를 한후 경풍이 멎으면서 아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그후, 아이는 간질병발작을 하며 성장했는데 빠짐이 없이 츨츨한 미청년으로 되였다. 사람들은 모두 창걸이네 아들을 두고 너무도 아까워 혀를 끌끌찿다. 그리고 술만 먹으면 흥분해서 날뛰는 창일이를 죽일놈 살릴놈 원망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간질병발작을 하는 아들과 함께 인순이네 부부는 암담한 나날을 보내며 어떻게 살았는지 모른다. 그들이 사는 유일한 목적과 희망은 오직 아들의 병을 치료하는것 뿐이였다. 그들은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찿아 다니고 좋다는 방문은 다 써 보았다. 지어는 선무당을 데려다 굿도하고 점쟁이 방토도 숱해 하였다. 그야말로 악전고투 였다. 십여년 이러다 보니 생산대와 신용사 빚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집까지 팔고 생산대탈곡장보초막에 들었다. 모든 밑천을 아이의 병치료에 깡그리 바쳤다. 그것은 창일이네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도 있는 힘을 다 하였다. 그들도 집을 팔고 남의 집 헛간을 수리하고 이사를 했다. 그들 형제는 생산대에서 제일 가난한 빈털털이로 되고 말았다. 그들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생산대보조를 받기까지에 이르렀다. 두집 다 말그대로 이젠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의 병은 아무런 차도도 없었다.
형제가 마지막으로 쓴 방법은 너무도 끔찍한 토방문이 였다. 그것은 사람의 대골(뇌수)로 환약을 만드는 것이였다. 이미 여러번 사람의 뼈로 만든 환약을 써본바는 있었지만, 아무런 효험도 없었는데, 이것은 어떨가… 창걸이는 형 창일의 닥달을 끝내 당할수 없어서 이 끔찍한 토방문을 써 보기로 대답을 하였다. 그러지 않다가는 우뜰우뜰하는 형이 무슨일을 저지를지 알수 없고 두려웠다. 자기가 함께 하지않으면 형은 혼자서 무슨거동을 할지… 살인이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들은 어데서 상측이 나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마침, 기회가 왔다. 그것은 윗마을 덕보의 처가 사망한 것이다. 덕보의 처는 중풍으로 몇년을 앓다가 사망하였다. 창걸이 형제는 망자의 안신제를 지낸날 밤 도굴을 하고 대골을 뜯어냈다. 창일이는 관뚜껑을 열고 술까지 부은후 “좋은일을 하깁소. 신세를 집시다.”하고 너스레까지 하며 그 끔찍한 일을 불이 번쩍 해 재꼈다. 창걸이는 봉분을 할때에야 정신을 차리고 삽질을 하였다. 그는 죄송하다고 빌고 또 빌면서, 그리고 아들의 병이 났게 하여 달라고 끝없이 중얼거리며 봉분을 알뜰히 하였다. 그러나 아들의 병에는 아무런 효험도 없었다. 헛짓이 였다. 창걸이네는 철저히 실망하였다. 창걸이는 시도 때도 없이 강술만 마이고는 엉엉 울다가는 아무데고 고꾸라져서는 쿨쿨 잠들군 하였다. 인순이가 온갖 좋은말로 달래면 “그래야지. 그래야지…”하고는 또 인차 “나에게는 술밖에 없다우.”하며 곤죽이 되군 하였다. 창걸이는 엉성한 허우대만 남고 페인으로 되여버렸다. 인순이의 갸냘픈 어깨에는 곱으로 무거운 부담만 실리였다.
사람대골을 쓴후 창일이는 조카애의 치료비를 벌겠다며 로씨아장사를 떠나가고 마을에는 두집 아낙네가 호주로 남았다. 두 동서는 서로 의지하며 어려운 농사일과 힘든 생활을 버텨나갔다.
땔나무철이다. 동서가 속앓이로 눕다보니 인순이는 혼자서 나무를 갔다. 점심때가 되자 인순이는 밥보자기와 낫 숫돌을 들고 골짜기냇물로 내려갔다. 인순이가 열심히 낫을 갈고 있는데, 이거 누군가?! 윗마을 덕보가 망태를 들고 냇가로 왔다.
“인순이가 아니우? 나무하러 왔소?”
“예. 거기서도 나무를 합니까?”
“한 사날 하면 되겠소만. 기까이서 살지만 동네가 다르다보니… 소문을 들었소만 그것참 않됐소. 그렇게 좋던 창걸이가 그렇게 되다니… 아이는 좀 차도가 있소?”
“그저 그렇습니다. 못떼는 병이 돼서…”
“고생이 여북하겠소. 참 않됐구만.”
“팔자탓이지요.”
덕보는 윗마을에 사는데 인순이보다 다섯살 더 많다. 이젠 모두 중년이 되였지만 당년에 덕보는 인순이에게 세번이나 혼사말을 넣었다가 퇴짜를 맞았다. 사람이 온순하고 무던해서 신랑감으로는 허물이 없었으나 인순이는 꼴기없어 보인다며 싫다고 했다. 덕보는 인순의 낫을 썩썩 갈아주며 말을 하였다.
“농촌에서 남자손이 없으면 막막할때가 많겠는데 무슨 곤난이 있으면 허물말고 기별하우. 내가 틈나는대로 돕기우.”
“말만해두 감사합니다. 그런대로 살아갈만 합니다.”
그날후로 련 나흘간 덕보는 인순이네 나무를 직심으로 해 주었다. 사흘째 되는날 덕보와 인순이는 떡갈나무숲에서 한몸이 되고 말았다. 그후 그들은 오고가며 힘든일을 서로 방조하였다. 남보기에는 낮에만 래왕을 하였으나 마을에서는 뒷소리가 무성했다. 인순이가 역어서(약삭빨라서) 꿩먹고 알먹고 든든한 머슴을 두었다는둥, 해사한 낯짝을 팔아먹고 궁둥이로 살림밑천을 한다는둥…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았다. 그러나 덕보의 방조는 진심이였고 인순이의 마음은 일편단심이였다. 그는 자기가 죽을때까지 아들과 남편을 책임지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순의 한이기도 했다.
눈물의 헌신(2)
창일이는 로씨아장사를 떠나간후 두번인가 간단한 편지가 오고는 종무소식이 되였다. 마른속을 까맣게 태우며 복자는 10여년 세월을 보냈다. 복자는 인순이와 함께 쓸쓸하고 힘겨운 생활을 악착같이 견뎌나가면서 아들을 키웠다. 창일이가 떠나간후 10여년 세월 복자는 음특한 사내들의 너절한 유혹을 경계하며 인순이와 더불어 참답게 살았다. 그는 인순이가 사람들의 구설수에 씹혀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않고 정답게 동정하고 속으로 리해하여 주었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아담하던 인순이네가 자기네 때문에 오늘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복자는 자기가 해야할 일은 오직 인순이를 보다듬어 주는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복자는 그의 본가마을에서 훌륭한 색시감이라고 소문났든 녀자다. 그는 5남매항 렬에서 셋째로 태여났는데 딸로는 맏이였다. 위로는 오빠들이고 아래로는 녀동생 남동생이 있었다. 복자는 내성적인 성미여서 아이때부터 얌전하기 그지없었다. 복자가 창일이에게 시집오게 된것은 그의 부모들과 오빠들이 창일이를 사내답게 생겼다며 마음들어 한것도 있지만 훤칠하고 잘생긴 용모에 그가 반했기 때문이다. 창일이는 집과 마을에 배겨있기 싫어하고 수리공정, 길딲기, 목재판, 탄광같은데로 민공명액으로 쫓아다니기 좋아했다. 하여, 사람들은 창일이를 노가대활량이라느니, 건달팔풍객이라느니, 그래두 우리마을에서는 제일난눔(잘난사람, 똑똑한사람))이라느니 했다. 창일이는 성미가 급하고 우락부락했는데 말도 잘하고 주먹질도 잘했다. 그가 복자와 약혼할때는 공사탄광에서 채탄공으로 반장을 할때다. 약혼할때 창일이는 마치도 가시집을 제가 다 먹여살릴듯 흰소리를 탕탕치며 호기를 기껏 뽑았다. 그는 가시집에 석탄도 실어가고 술과 고기근도 자주 들고 가면서 각근한 정을 보였고 복자를 살뜰히 사랑해 주었다.
아들이 현성에 있는 고중에 붙자 1년후 복자는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나갔다. 그는 한국 부산에서 부자집 치매할머니보모일을 하였는데 어떻게도 일을 알뜰히 잘했는지 주인집에서는 로임도 많이주고 잘 대해 주었다. 복자는 아들뒤바라지를 하면서 달마다 인순이에게 천원씩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아들은 셈이들어 공부에 열심했고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는 일본회사에서 일자리를 찿았는데 사업을 잘해서 집까지 타고 약혼까지 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여러번 전화를 해서 이젠 돌아오라고, 함께 살자고 간곡히 재촉했는데, 복자도 이젠 힘든감이 들고 때론 아프기도 해서 돌아 왔다. 그는 지금 아들과 함께 대련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덧 세월은 20여년이 흘렀다. 그간 남편한테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하지만 복자는 시집과 여일하게 사이좋게 지냈다. 그간 시부모들은 다 사망했으나 두 시동생, 두 시누이들과 자주 련계하며 특히 창걸이네를 힘껏 방조했다. 하여, 마을에서는 복자를 관세음보살같은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아들과 시남매들은 갖은 노력을 다하여 끝내 창일이를 찿았다. 그는 우주베끄쓰딴 어디에서 살고 있었는데 안해를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고 했다.(안해는 흑룡강 사람. 남편과 아이 하나가 있는여자.)
복자는 모든것이 일장춘몽같았다. 그리고 인생이 너무도 허무했다. 한달 거이 앓고난 복자는 남편에게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의 요지는 대략 다음과 같다.
“… 23년만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간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사실 애타게 기다렸어요. 괞찮아요. 무사히 잘 살면 됩니다. 여기는 모두 잘 보내고 있습니다. 인선이네는 우리가 성의껏 도와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리혼서류같은것이 수요되면 아무때고 기별하세요.)
편지를 보낸후 복자의 마음은 평온해 지었다. 그는 매일 손자를 안고 구내 놀이터로 간다. 복자에게는 아무런 한도 없는것 같다… 그 자신만 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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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회령선생
날자:2015-09-16 16:21:18
선생의 글을 겨우 마감까지 읽어봤습니다. 내용이 좋고 주제도 좋아 감명을 주는데 읽기가 과연 힘들어 땀을 뺏습니다. 좋은 문장을 왜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바줄같이 아득하게 만듭니까? 문장은 내용에 따라 단락구분이 명확게 글줄을 바꿔가면서 작성해야 독자는 읽기쉽습니다. 안그럴가요? 달리 생각마시고... 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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