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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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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20)
2015년 10월 14일 17시 13분  조회:2069  추천:2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9장 핍박에 의해 간도로

                    2. 기습

   

     봄바람에 무섭게 술렁대는 갈대숲에 누렁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 누렁이는 한길수가 성칠의 검둥이를 대처하려고 일본 헌병들에게서 산 사냥개였다. 누렁이는 코를 풀밭에 대고 씩씩 냄새를 맡아보더니 기준이 벗어놓은 피 묻은 바지를 물고 달아나버렸다.
    이튿날 아침 상길은 집 구새 목에 와서 오줌을 누면서 갈대밭을 내다보았다. 그는 흘끔흘끔  어제 저녁에 삼촌과 만났던 자리를 여겨보았다.
    (아니, 저게 하얀 게 뭐야? 삼촌 옷이잖니?)
    상길은 오줌을 누다 말고 새밭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새밭 속에 널려있는 허연 옷을 주어들고 보았다. 피 묻은 것을 보면 삼촌이 벗어놓은 것 같은 홑저고리였다.
    (삼촌댁을 줘야지.)
상길은 삼촌의 저고리를 들고 불이 나게 아래 집으로 뛰어갔다.
    “삼촌댁! 삼촌댁!”
    상길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련은 깜짝 놀랐다.
     “건 뭐냐?”
    “삼촌이 어제 밤에 벗어두고 간 저고리입구마.”
   상우와 지새금도 부랴부랴 고방에서 나왔다. 그들은 아버지 저고리를 받아들고 피 자국을 보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형님!’'
   상순은 달려와 하고 상길의 손을 잡았다. 상순도 이젠 여섯 살이나 되여 제법 아홉 살인 상길과 어깨동무 할만 했다.
    모두들 어제 밤에 웃새 집 둘째아주머니와 상길에게서 들어 사연을 알았다. 하지만 정작 피 묻은 옷을 보고서는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모두 대책을 대느라고 의논이 분분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벽에도 귀가 있다는 것을. 
    이때 한길수는 자위대 놈들을 끌고 운주동 남산에 올라 망원경으로 운주동 동쪽어구에 있는 최구장네 집으로부터 서쪽 끝에 있는 웃새 집 창준과 성남집 기준이네 집을 살피고 있지 않았겠는가.
    사실 그들은 어제 밤에 누렁이가 피 묻은 바지를 물어온 후 어제 밤부터 운주동에 매복 권을 치고 웃새 집과 성남 집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나절이나 지켜도 기준은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다만 상길이가 허연 저고리를 들고 아래쪽의 성남 집에 들어가고 기준이네 식구들이 들락날락하고 웃새 집의 창준이 부부가 아래 집으로 내려가 들어가는 것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길수는 병완을 제거하기 전에 먼저 기준을 없애버리려고 독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기준을 없애버려 병완의 한팔을 잘라버려야지. 그럼 병완인들 이 어른을 어쩌겠어? ㅋㅋ"
    그런데 온종일 숱한 군사를 운주동 남산과 북산에 매복시켰는데 헛물만 켠 것 같았다. 멀쩡히 수림 속에서 마른 풀을 깔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망원경을 들고 지루하게 살펴도 억대우 같은 기준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것이었다.
    영팔은 심드렁해져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대장님, 밤에나 오겠는지 낮에 올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맥빠진 소릴 작작 해라. 기준은 배 고파 대낮에 내려올 수도 있어.”
   응삼은 실눈을 해가지고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건 그 놈이 왜 바지만 바꿔입고 저고리는…”
   “흥!”
  한길수가 코웃음쳤다.
   “내 망원경으로 보니 기준의 둘째조카가 아침에 집 뒤 새밭에서 허연 옷 같은 걸 들고 아래 성남 집으로 들어갔어. 분명 옷을 갈아 입었어.”
   응삼과 영팔은 한길수의 고견에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 한 대장님은 타고난 경찰이라니깐.”
   “그렇고말고.”
   한길수는 별로 고명한 것처럼 턱을 쳐들고 산 아래를 망원경으로 살피다가 망원경을 내리우면서 말했다.
   “해 지는군. 그 놈이 밥 얻어먹으러 내려올 걸세. 운주동 서쪽과 북쪽의 새밭이구 갈밭이구 버드나무숲이구 몽땅 그물을 쳐놓고 큰 고기가 뛰어들기를 기다리자.”
    운주동을 둘러싼 새밭과 갈대밭에 어둠의 장막이 무시무시하게 드리웠다. 공포가 갈대 잎 새에 숨어 싸늘한 바람에 죽음의 노래를 부른다.
   한길수는 졸개들을 끌고 영월동 토성안 집에 가서 저녁을 대충 먹고 남쪽에 있는 운주동에로 덮쳐가 갈밭과 새밭에 매복해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기준은 초저녁에 서산에서 내려와 운주하 강변의 버드나무숲을 헤가르면서 스적스적 마을 제일 서쪽 끝에 있는 웃새집 뒤 갈대숲속으로 접근해갔다.
   그는 혹시나 하여 몇 발자국 걷다가는 멈춰 서서 주위의 동정을 살피였다. 마른 갈대숲이 밤 바람에 설레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몇 발자국 걷다가도 자기 발 밑에서 마른 새가 밟히는 소리에도 신경을 도사리였다.
    병완은 전날 밤에 상길을 만났던 자리에서 갈대숲에 허리를 구부정하고 상길을 기다렸다.
   이때 고방 문이 열리면서 상길이 뭔가 들고 나와 두리번거리더니 새밭을 헤집고 갈대밭으로 다가왔다.
   기준이 마중 나갔다.
    “상길이 왔니?”
   그 때다.
   “이 놈! 어디로 도망쳐! 저 울뚝이를 붙잡아라!”
   청청백일에 마른 우레 소리처럼 난데없는 한길수가 웃새집 마당에 뛰쳐나오며 고함쳤다.
   “허허허, 명년 오늘은 울뚝이 제삿날이야.”
   땅!
  한길수는 전번에 기준을 놓친 교훈도 있는지라 아예 권총을 쏴댔다.
  총알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기준의 귀전을 스쳤다.
   기준은 황급히 상길의 손에서 밥보자기를 빼앗아들고 어정쩡해 서있는 상길의 손목을 덥석 잡고 갈대밭 속으로 냅다 뛰었다.
   그런데 갈대숲을 벗어나 버드나무숲속으로 뛰어 들어 갈 때다.
  “섯!”
  영팔이 장총을 꼬나들고 앞을 막아섰다.
  “에끼, 이놈!”
  기준은 발길을 날려 영팔의 아래 배를 걷어찼다.
   영팔이 급히 피해 서느라고 하였다. 허나 기준의 날렵한 발길에 채워 쓰러졌다. 그 틈을 타서 기준은 버드나무숲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숨기면서 도망쳤다.
   사실 기준이가 서산에서 내려 버드나무숲과 갈대밭을 헤집고 집에 다가갈 때는 조심조심 걸었기에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길을 끌고 허둥지둥 도망칠 때는 50미터 안에서는 그들의 닫는 발자국소리와 숨소리마저 마구 들릴 지경이었다. 하여 영팔에게 발각됐던 것이다.
   기준이네가 버드나무 숲을 따라 서쪽으로 헐레벌떡 도망쳤다. 뒤에서는 왝왝 고함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었다. 한참 후에는 그 소리마저 점점 멀어져가고 버드나무숲을 스치는 봄바람의 처량한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3. 눈물 젖은 고향

   기준은 상길을 데리고 칠흑 같은 어둠을 타  마른 갈대숲을 헤치고 버드나무숲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둠과 버드나무숲을 헤집고 천방지축 도망쳤다. 어둠과 공포에 잠긴 운주동에서 멀리, 멀리 멀어져갔다.
   기운봉 기슭에 오른 기준은 헐떡거리며 멈춰 서서 상길을 내려다보았다.
   “상길아, 좀 쉬어가자.”
   상길도 헐레벌떡거리며 주저앉았다.
   기준은 밥보자기를 내려놓으면서 상길에게 권했다.
   “놈들이 쫓아올 거 같잖다. 밥을 먹고 보자.”
   기준은 밥을 먹으면서 기운봉 기슭의 고향 마을과 고향 마을을 감돌아 흐르는 운주하를 내려다 보면서 한참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이젠 진정 내 고향에서 살지 못하게 됐단 말인가? 우리 집 안이 대대로 살아온 이 고향 땅에 내 발을 붙이고 살 곳이 없단 말인가?)
   기준은 정작 핍박에 의해 탯줄을 묻은 고향을 떠나게 되니 씁쓸하기만 했다. 사랑하는 부모형제, 처자들을 두고 원한을 품고 고향을 떠나는 그의 심정인들 오죽하랴? 진짜 칼로 오장륙부를 한점, 한점 베는 아픔에 쓰리기만 했다.
    병완은 이를 악물었다.
   (한길수 대가리만 도끼로 팍 찍어 죽이면 계속 고향에서 살수 있지 않을까?)
   그의 눈 앞에는 박바가지 같은 번대머리에 음흉한 우멍눈이 피뜩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인차 도리머리질 했다.
    (한길수를 죽이긴 쉽지비. 허나 그 놈이 한애비처럼 등에 업은 일본 놈들이 가만 놔두겠는가? 한길수를 죽이면 또 한길수가 아닌 영팔과 응삼, 수길이 나서서 우리를 못 살게 굴 거야. 그렇다면 정말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가야 하는가? 아, 아니야, 그래도 어떻게 하나 내 고향에서 살아야 한다. 만주에도 일본 놈들이 벌레처럼 욱실거린다고 하지 않는가? 만주가 땅이 넓다고 해도 그 곳도 조만간에는 우리 고향처럼 일본 놈들의 세상으로 될 거야. 우리 가난한 조선 사람이 살 곳은 없을 거야.)
    기준은 산기슭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허연 운주하 강물을 굽어보면서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대대로 살아온 고향에서도 살지 못하게 하는가? 김려생 할아버지가 명천에 입북해서부터 내대까지 15대 채 거의 400년이나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이 아닌가? 이런 내 정다운 고향을 떠나야만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쓸쓸한 나머지 상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속으로 흐느껴 울었다.
    뒤이어 그는 밥을 다 먹자 밥보자기를 싸서 상길의 앞에 내밀었다.
    “상길아, 집에 데려다 줄게. 넌 애니까 그놈들이 어쩌지 않을 거야.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삼촌과 함께 쫓겨 다니겠냐? 고향 아버지하구 엄마 있는데 남아서 살아라.”
    그런데 상길은 도리머리 질 했다.
    “삼촌, 난 삼촌을 따라 가겠습구마. 그 놈들이 날 놔두지 않을 거요.”
    상길은 삼촌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기준은 상길을 꼭 껴안아주었다.
    “그래, 그렇구나. 야수 놈들이 애들이라고 놔두겠느냐?"
    기준은 상길을 품에 안고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괜히 너도 고생시키는구나.”
    “아닙구마. 난 죽어도 삼촌을 따라다니겠습구마.”
    기준은 상길이 가긍해 품에 꽉 껴안아주었다.
    “그래,  같이 가자. 내가 널 꼭 지킬 거야.”
    기준은  어디로 갔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며 주춤 멈춰 섰다.
   (불붙이에 있는 큰 사위 경인한테 가볼까? 그러지 않으면 신설동에 있는 큰 집 병권 큰아버지네 집에 갈까?)
    그러나 놈들이 형님네 웃새집을 감시했을 때처럼 미리 쳐놓은 그물에 걸려 들까봐 근심됐다.
    “그래도 큰사위네 집으로 가자. 큰사위는 검술이 뛰어난데다가 용감하지 않는가?”
    기준은 퍽 서글펐다.
    (왜 수종 증조부나 승중 조부는 맏이 밖에 몰랐을까? 이씨 왕조 궁중 어의였던 수종 증조부는 승중조부와 득중 작은 조부 가운데서 큰아드님 되는 우리 승중조부께 집안의 의서를 물려주셨고. 우리 승중 조부는 병권 큰아버지와 우리 아버지 가운데서 큰아드님 되는 병권큰아버지께 의서를 물려주시지 않았던가. 그 바람에 큰집 관준 형님도 의사요, 큰집 맏손자 형내도 의학공부를 시키고 있지 않는가? 참 공평하지 못한 일이 많고도 많아. 그래두 우리 아버지는 공정한분이야. 자기 목수재간을 형님과 내게 고루고루 배워주었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서당 글이나 읽은 선비들이 모인 큰아버지네 집으로 가기보다 무인다운 큰사위네 집으로 가는 게 낫을 것 같았다.
(그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땐 내 사위한테 가는 게 옳지. 괜히 큰집가문까지 연루시킬 필요 없다.)
   생각이 잡히자 기준은 상길의 손목을 잡고 “가자, 불붙이에 있는 큰 누나네 집으로 가자.” 하고 말했다.
    “알았습니다.”
   상길은 삼촌이 가자는 데는 무조건 어디라도 갈 잡도리였다.
  기준은 어린 상길의 손목을 잡고 어둠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뒷산을 넘어 영월동 서북쪽 산을 지나 불붙이로 향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어둠과 허연 눈을 밟으면서 정처없이 떠나가는 기준과 상길의 발 밑에서 빠드득빠드득 망국노의 설음이 목멘 비명소리로 울렸다.
    밤중에야 불붙이 뒷산에 이른 그들은 숨을 죽이고 산기슭에 자리 잡은 사위 최경인의 오두막 같은 집을 내려다보았다.
   상길은 나무숲 속에서 봄바람에 와스스 소리 나도 두려워 삼촌의 손을 더욱 꼭 그러쥐면서 두리번두리번 나무숲 속을 살피였다.
   기준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음을 확인하자 상길의 귀에 대고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그리하여 상길은 기준을 따라 내려가다가 나무숲속 바위돌 틈에 숨어 숨을 죽이고 납작 엎드려 있었다.
   기준은 허리띠를 질끈 조여 매고 슬금슬금 집 쪽으로 내려가다가도 주춤 멈춰서 한참씩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곤 했다. 그렇게 몇 번 해서야 겨우 집 뒤울안에 다가갔다. 그는 바자굽을 살금살금 에돌아 집 동쪽으로 돌아가 돼지우리에 다가가 벽에 기대서서 집 안 동정과 앞마당을 살피였다.
   앞마당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이따금씩 집안에서 기침소리가 들릴 뿐이였다. 초저녁이여서 아직 집식구들이 잠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돼지우리 벽에 붙어서 살피다가 집 동쪽 벽에 슬쩍 건너갔다. 그는 벽에 붙어 서서 집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동정을 살폈다. 파리 한 마리 날아오는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머리가 벽에 걸어놓은 무엇에 닿는 감이 들었다. 머리를 들어보니 벽에 낫이 몇 자루 걸려있었다.
   (옳지. 낫이라도 있으면 좀 좋아.)
   낫을 벗겨들자 마음이 좀 든든해졌다. 맨 주먹으로라도 영팔 같은 놈은 둬 놈 쳐 눕힐 만했지만 낫까지 들면 총칼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기준은 앞마당으로는 가지 못하고 동쪽 벽에 붙어 뒤울안으로 들어가 뒷문가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는 입에 손을 나팔처럼 해달고 목구멍으로 기어드는 소리로 불렀다.
   “사위.”
   “사위~”
   안에서 뭐라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쉿-”
   “어서 들어 옵소.”
   경인은 놀라 주춤 하다가 안으로 가시아버지를 모셨다.
   어금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지 바스락 바스락 소리 들렸다.
   “여보, 등잔불을 밝히오. 가시아버님께서 오셨소.”
   “예? 아버집둥?”
   어금이 놀라면서 일어나 조왕간 쪽으로 다가갔다.
   “불 켜지 말라. 난 지금 상길과 함께 한길수 놈에게 쫓기고 있다. 내일 먹을거나 싸 달라.”
   “예.”
   어금은 인차 아버지가 준 밥그릇에 묵은 밥을 퍼 담았다. 그새 기준은 경인에게 요 며칠 새 있은 일을 대충 나직이 얘기해주었다.
   이때 어금이가 어둠속에서 흑흑 흐느끼며 밥보자기를 아버지 앞에 내밀었다.
   “아버지, 새 밥을 해 드려야겠는데 묵은 밥입구마. 아이고, 불쌍한 내 아버지, 무슨 죄가 있다고 그 놈들이 이렇게 쫓소? 아이고,  아버지.”
   “딱 그쳐. 누가 듣겠다.”
   기준은 밥보자기를 들고 나가려고 했다.
   그때 경인이가 말했다.
    “가시아버님, 어떻게 바깥에서 쉬겠습둥?”
    “일없네.”
    “좀 기다립소.”
   경인은 위방에 올라갔다. 농궤를 뒤지는 것 같더니 내려와 기준의 손에 동전잎을 한줌 쥐어주었다.
   “가지고 갑소.”
   “고맙소.”
   “내일부턴 우리가 밥을 나르겠습니다. 위험한데 오지 않아도 됩구마.”
   기준은 사양했다.
  “사위네를 연루시키면 어쩌오?”
  “괜찮습구마. 발각되면 그놈들과 결판낼 판이지비.”
  경인은 고방에 들어가 검을 벗겨들고 먼저 뒷문으로 나가 바깥동정을 살폈다. 그때 어금은 자기가 덮었던 이불을 꿍꿍 묶어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기준은 받지 않으려다가 안고 나왔다.
   경인은 한손에 검을 들고 한손으로 이불을 둘러메고 가시아버지를 모시고 상길이가 있는 데까지 왔다.
   상길은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다가 기준이랑 다가가자 겨우 일어났다.
   “됐네. 돌아가게나. 오래 지체하지 말게.”
   “아버님, 이 검을 가지고 가시겠습둥?”
  기준은 낫을 쳐들어 흔들어 보이었다.
  “이게면 됐네. 낮에 산속에서 들고 다니기도 편하네.”
   “천만 조심 합소.”
  경인은 내일 산속에서 만날 장소와 암호를 귀속 말로 말씀드렸다.
   기준은 딸과 외손자들을 눈물 젖은고향에 두고 정처없이 떠나가야 할 생각을 하니 눈 앞이 칠칠흑야처럼 까마아득해났다. 순간 그는 콧마루가 시큼해나 인차 딸을 외면하면서 휙 돌아섰다... 
   봄바람이 수림을 사납게 스치면서 쓸쓸한 귀신들을 안아다 팽개친다. 유령이 골짜기를 메우며 무섭게 비명을 질러대 무시무시하기만 했다.


     4. 풍찬노숙


   이튿날 초저녁에 경인은 밥보자기를 싸들고 검을 거머쥐고 가만히 뒷산으로 올랐다.
  그는 한참 오르다가도 걸음을 주춤 멈추고 사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뒤에 꼬리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약속지점인 불붙이 뒷산 수림 속 절벽 부근에 다가갔다.
   뻐꾹뻐꾹
   경인은 두 손을 입에 모아대고 뻐구기 울음소리를 내었다. 암호였다.
   어둠 속에서 기준이 나타났다.
  경인은 밥보자기를 내놓은 후 “어제 밤에 추워서 어떻게 쉬셨습둥?” 하고 문안을 올렸다.
   “괜찮네.”
  기준은 너럭바위 우에 덜렁 들어앉으면서 물었다.
  “마을 형편은 어떻소?”
  “낮에 영팔이 자위대 놈들을 끌고 와서 가시아버님을 보지 못했는가고 따집더구마.”
  “그래?”
   순간 기준은 사위를 둘러보았다.
   “따라온 꼬리는 보이지 않습더구마. 그런데 마을에다 아버님과 저 작은 처남을 고발하라는 우시장자위대 포고를 숱해 붙여놓고 갔습구마.”
   기준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렇게 쫓겨 다니면서 사는 게 장구지책은 아닌데.”
  한참 후 기준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고향을 떠나야 할 거 같네. 한길수는 나를 딱 잡아 죽이자고 잡도리 했네.”
  “가시아버님, 쉬파리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겠습둥? 고향에서 어떻게 하나 뻗치면서 우리 함께 살깁소.”
  기준은 어둠 속에서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형님네를 연루시킨 것만 해도 죄송한데. 자네나 큰아버지 네까지 연루시킬 순 없네.”
  “연루는 무슨?”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아버님과 형님한테 알리게나.”
  “어디로 가신다고 그러십둥?”
  “될 수만 있으면 한동안 먼 곳에 피해 눈치를 보다가 고향에 돌아올 생각이오. 정 안되면  만주에 가보겠소. 땅이 많아서 먹고 살기 좋다는데. 한해 후에 살기 좋은데 있으면 인편에 기별을 보내겠소.”
   경인은 긴 한숨을 후- 내쉬었다.
  “밤도 깊었으니까 어서 집으로 돌아가오. 괜히 어금을 근심시켰소. 영팔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소.”
  경인은 돌아가기 전에 넙적 엎드려 절을 올렸다.
  “어떻게 하든 무사히 다녀가십시오.”
  기준은 절을 받고 가라고 손을 저었다.
  경인은 상길의 머리를 매만지고 나서 느릿느릿 기준과 상길의 곁을 떠났다.
   한마장거리를 갔을까 말까 할 때 경인은 검을 쥐고 되돌아 왔다. 차마 정처없이 떠나가는 가시아버지를 보내기는 마음에 걸렸다.
   “가시아버님, 어디로 가시든 모셔 드리겠습니다.”
   기준은 큰사위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고맙네. 돌아가게나. 난 생사가 기약 없네. 더는 사위나 일가친척 누구든지 연루시키고 싶지 않네. 어서 돌아가 처자를 잘 지키게나.”
말을 마치자 기준은 경인의 뒤 잔등을 떠밀었다. 경인은 또 꿇어 엎드리더니 큰절을 올리었다.
    그의 온몸이 슬픔에 부르르 떨었다. 사위도 반자식이 아닌가. 부모형제, 자식들을 두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그의 마음인들 오죽하랴.
   그래도 기준은 겉으로 그런 절망의 내색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시큼해나는 코마루를 벌름거릴뿐이었다.
   “꼭 몸조심 하십시오.”
    경인은 할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수림 속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물러갔다.
    소나무들도 쓸쓸한 이별의 밤 바람에 몸부림치며 휴~휴~ 구슬프게 아우성쳤다.
    기준은 큰딸이 준 이불 짐을 메고 낫을 든 채 앞에서 어둠과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걸었다. 그 뒤에 밥보자기를 든 상길이가 겁이 나서 오돌오돌 떨면서 뒤따랐다.
   고향을 잃고 어둠과 마른 풀잎을 밟으면서 정처 없이 떠나가는 나그네 발자국마다에는 낯선 고장으로 가는 아픔이 역력히 찍혀 있었다. 아니, 부모형제를 고향에 두고 떠나가는 이별의 피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들의 발자국마다에는 일제의 식민지통치하에 망국노로 된 섧음이 슬프게 울고 있었고 한길수 같은 매국노들에 대한 원한이 몸서리 치고 있었다.
   봄바람에 휴~휴~ 슬픈 노래를 부르는 수림 속에서 그들이 힘겹게 터벅터벅 걷는 고향의 산등성이도 발밑에서 굽이굽이 멀어져가면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운주하도 봄의 희망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소용돌이치며 흘러가며 흐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은 한시 급히 한길수 개다리가 살판 치는 이 한 많은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고향이 멀어갈수록 섧음과 공포가 짙어갔다.
 
   길주 길주 불 길주야
   명천 명천 불 명천아
   말해다오 말해다오
   무슨 죄가 있다고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오?
 
    기준이 숙질간은 차디찬 밤에 쓸쓸히 헤매면서 걸어 고향 명천을 한 20여리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간 것 같았다. 기준이 혼자면 온밤 산길을 걸어도 괜찮았겠지만 아홉 살 밖에 안 되는 상길이 더 걸을 수 없었다.
   기준은 아직도 여기저기 잔설이 깔려있는 산 중턱 남쪽에 바람이 잦은 너럭바위 우에 앉아 여기저기 살피였다.
  (오늘 밤은 어데서 자야 하는가?)
  발 밑에 우묵한 웅덩이가 있었다.
  “얘, 상길아, 오늘 밤은 여기서 자자꾸나.”
  “예. 알았습구마.”
  상길은 밥그릇을 내려놓고 너럭바위에 물앉아 집신감발한 발이 아픈지 주물렀다.
  그새 기준은 이불을 너럭바위 우에 벗어놓고 웅덩이에 들어가서 마른 나무 잎을 더듬어보았다. 웅덩이밑굽에 물도 고이지 않았다. 마른 나무 잎을 여기저기에서 긁어다가 펴니 좀 축축하긴 해도 대충 잘만할 것 같았다.
  “상길아, 오라. 여기서 하루 밤 자자.”
  “예.”
   기준은 너럭바위 위에서 이불을 들어다가 마른 나무잎 위에 펴고 밥보자기를 웅덩이 안에 들어다놓은 후 상길을 안고 이불 안에 드러누웠다. 기준은 오른손에 낫을 쥔 채 들어누웠다. 그는 찬 바람이 스치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눈을 스르르 감았다. 추위에 바르르 떠는 별을 바라보는 순간 고향을 떠나 풍찬노숙 하는 나그네의 처지가 서글프고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이윽고 상길은 곤한 나머지 코를 골며 잠들어버렸다. 기준은 어린 조카가 불쌍해 이불깃을 꽁꽁 여며주고나서 긴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는 불쌍한 조카와 고향의 쓸쓸한 쪼각달을 한품에 안고 새우잠을 잤다.
   이튿날 새벽 동녘이 희붐히 밝아왔다. 차디찬 하늘의 구름 속을 헤가르면서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피로 물든 것 같은 뻘건 아침 해는 산과 들을 쓸쓸히 매만져주었다.
   기준은 피곤 기에 벌겋게 충혈 된 눈을 왼손으로 비비더니 눈을 떴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였다. 옆에서 상길은 곤하게 자고 있고 밥그릇도 놓인 대로 있었다. 잔설이 여기저기 남은 나무숲속 저쪽에서 다람쥐 한마리가 먹이를 구하기에 급급해 뛰어다니고 있었다.
   기준은 상길을 깨울세라 살그머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게 뭐냐?)
  온밤 수림 속을 걸었는데 고향의 기운봉 기슭으로 되돌아온 게 아니겠는가?
  기준은 너무나도 실망해 너럭바위에 물앉아 무릎을 탁 쳤다.
  어둠 속에서 헤매다나니 북으로 간다는 것이 기운봉과 치마봉을 한 고패 빙 돌아 겨우 신설동 부근으로 갔던 것이다.
  (헤이, 이것도 하느님의 안내겠다. 병권 큰아버님께서 큰 집에 들리라는 거겠어.)
  시퍼런 대낮에 들어갔다가 큰집을 연루시킬 까봐 기준은 상길을 데리고 수림 속에 까딱하지 않고 숨어 있기로 했다.
  한참 후 상길이가 기준의 속이 탄 한숨소리에 깨나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면서 이불을 비집고 기지개를 켜더니 발딱 일어났다.
  “삼촌, 밤새 편히 쉬셨습둥?”
   “응, 그래.”
  기준은 상길이가 맥이 빠져할까 봐 한 고패 빙 돌아 신설동에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침밥이나 먹자.”
  그래도 다행이었다. 맏딸이 보낸 밥이 있어 하루는 먹을 것 같았다.
  지루한 하루를 나무숲속에 숨어 있은 기준은 어둡기를 기다려 이불 짐은 너럭바위 우에 놔두고 낫만 쥐고 상길을 데리고 신설동에로 슬금슬금 내려갔다.
   초저녁이여서 울바자에 달린 삽작문 안으로 큰집 안에서 등불이 어둑시그레 내비치는 것이 보였다. 혹시나 하여 기준은 상길을 수림 속에 남겨둬 망을 보게 하고 혼자 큰집 주위를 한 고패 빙 돌면서 다른 놈들이 매복해있지나 않은가 깐깐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아무런 동정도 없자 그는 울바자에 달린 삽작문을 슬쩍 열고 큰집에 가만히 들어갔다.
  “아니, 이게 기준이 아니냐?”
  기준이 위방에 들어서자 병관은 하얀 수염을 날리며 놀라하면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기준의 두 손을 맞잡고 아래위를 보면서  반색했다.
   “그래, 무사하구나.”
  “큰아버지도 우리 일을 알았습둥?”
  병권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낮에 수길이 자위대를 끌고 와서 온 마을을 싸다니면서 너희들이 왔는가 살피다가 우시장 경찰국의 포고문을 붙여놓고 가버렸다. 너희들의 용모파기까지 그려놓은 포고문엔 도주범인 성칠과 너를 고발하라고 했더라. 여기뿐이 아니란다. 온 명천과 우시장에 포고를 붙여 놓은 거 같더라.”
    기준은 더 앉아있지 못 하고 벌떡 일어났다.
   “이 밤중에 어디로 가자고 이러니?”
   “여기도 오래 앉아있을 곳이 못됩니다. 난 상길을 데리고 밤도와 명천을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당분간 경성군이나 회령 쪽에 멀리 피해있든지 아예 만주로 가든지 하겠습니다. 정 안 되면 성칠 형님을 찾아가 독립군에 들어가든지.”
   병권은 하얀 염소수염을 매만지면서 “만주에 들어가더라도 성칠처럼 독립군에는 가지 말라. 일본 놈들이 조선 땅도 다 먹어치운 놈들인데. 어떻게 이긴다고 그러니? 괜히 집안 문을 닫게 하겠다. 쯧쯧.” 하고 말리였다.
   그때 바깥에 나갔던 관준과 상철이 집에 들어와 인사했다.
   상철의 아내가 밥상을 들고 들어와 반겼다.
  “시삼촌님, 저녁 듭소.”
  형내도 작은집 작은할아버지를 보러 들어와 인사했다. 열서너 살 되는 형내는 꽤나 일찌기 셈이 된 것 같았다.
  기준은 큰 집 식구들이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기어이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관준은 며느리에게 밥보자기를 싸주라고 당부했다.
이윽고 상철의 아내가 묵직한 밥보자기를 들여오자 기준은 밥보자기를 받아들고 큰아버지께 큰절을 올리고는 황급히 삽작문을 나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기준의 검은 그림자를 목송하면서 병권과 관준은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병권은 도리머리 질 하면서 중얼거렸다.
   “고향을 떠나 만주에 간다고 살 길이 있겠냐? 참, 앞길이 막막하구나.”
   한편 기준은 부랴부랴 숲속으로 들어가 상길을 데리고 바지에 바람이 일게 이불 짐을 둔 너럭바위 쪽으로 돌아갔다.
   “상길아, 가자.”
  “예.”
  상길은 뒤에서 따라가면서 물었다.
  “삼촌, 어째 큰 집에서 자면 안 됩둥?”
  기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 고향에서 편히 자겠니? 온 명천과 우시장 사처에 우리를 붙잡으라고 포고를 붙여 놓았단다. 낮에 큰 집에도 자위대 개다리들이 왔다갔단다.” 
  그는 상길을 뒤돌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이제부터 아무 말두 하지 말라.”
  “예.”
  진짜 범이 오나 해 상길은 간이 콩알만 해졌다.
  기준은 이번에는 어제 밤처럼 기운봉과 치마봉 부근을 한 바퀴 빙 돌지 않으려고 걷다가도 먼 앞과 주위를 둘러보면서 북으로, 북으로 걸었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수림 속 산등성이 길을 한 세 시간 걸었을까? 기준은 상길이가 기진맥진해 배틀거리는 것을 보고 소잔등같이 커다란 바위 돌을 보자 아래에 다가갔다.
  “오늘밤엔 여기서 자자.”
  “예.”
  상길은 자자는 말만 나오면 좋아했다. 기준은 자기를 따라 고생하는 어린 상길이 불쌍해 이불을 대충 덮고 꼭 끌어안아주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기준은 깨여나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초풍할만큼 놀랐다.
  (저게 뭐냐?)
  너럭바위 밑으로 겨우내 얼며 고생스레 살아온 뱀 한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에크!”
  기준은 상길을 놓고 낫을 쥐고 일어나 뱀을 낫날로 썩 뚝 내리쳤다. 얼었다가 갓 기어 나온 뱀은 쳐들었던 대가리를 잘리어나가 피를 흘리면서도 땅바닥에서 꾸불거리었다.
  상길도 깨여나 눈을 비비다가 기준이가 누런 뱀의 껍질을 벗기는 것을 보고 소스라쳤다.
  “뭡입둥?”
  기준은 껍질을 벗겨내 하얀 뱀을 들고 보면서 중얼거리었다.
  “배고픈데 뱀 고기나 구워 먹자구나.”
  상길은 삼촌의 손에 껍질이 채 벗겨지지 않은 뱀의 꼬리가 아직도 꼬불거리는 것을 보고 너무나 징그러워 눈살을 찌푸렸다.
  기준은 뱀 고기를 바위 돌 위에 올려놓은 후 여기저기 다니면서 삭정이를 주어다놓고 부시를 쳐서 불을 달았다. 뒤이어 나무꼬챙이에 뱀 고기를 댈댈 감아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이리저리 굴리면서 구웠다. 뱀의 고기는 까마 노르스럼하게 구워지면서 꼬불꼬불 감기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상길은 두 손을 내밀어 삭정이불에 몸을 녹이더니 밥보자기를 풀고 밥그릇을 바위 돌 위에 내놓았다. 기준은 뱀의 고기를 입에 대고 후후 탄 먼지를 불어버리고 손으로 몇 토막 뚝뚝 끊더니 한 토막을 상길에게 내밀었다.
   “옛다. 이리 맛 좋은 고기 어데 있겠니?”
  상길은 상을 징그리다가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구운 명태 같은 게 꽤나 맛있었다. 숙질간은 삭정이불을 마주하고 앉아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기준은 어제 밤길을 걸어 명천을 이미 벗어난 것을 보고 대담하게 낮에도 걷기로 하고 이불 짐을 둘러메고 상길을 데리고 길을 재촉했다.
   그들은 온종일 쉬다가도 걷고 하면서 어떤 마을 뒷산에 이르렀다. 이젠 밥보자기의 밥도 거들이 났다.
   기준은 차마 마을에 내려가 밥 동냥을 하자다가 체면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배고파 길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상길을 보고 낫을 쥐여들더니 나무를 하기 시작했다. 기준이가 싸리나무를 베 놓으면 상길이가 따라가면서 싸리를 쌓아놓았다.
   한참 나무를 하니 땔나무 몇 단은 됐다.
   “아이코!”
   “어째?”
  기준이 나무 단을 묶다가 돌아다보니 싸리를 모으던 상길이 발을 붙잡고 물앉아 있었다. 분명 싸리 긁을 디뎠던 것이다.
  “여기 조상이 물려준 좋은 약이 있다.”
   상길이 삼촌의 얼굴과 손을 번갈아 쳐다보았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준은 상길을 보고 “짚신을 벗어라.”라고 했다.
  상길이 짚신을 벗자 긁을 디딘 자리에서 빨간 피가 조르르 흘러내렸다.
   “거게 오줌을 눠라.”
  상길이 괴춤을 까고 발에 오줌을 쏘자 기적과도 같이 피가 멎었다.
  “됐다. 이제 몇 번 오줌을 더 누면 괜찮을 거야.”
  기준은 나무단을 두 단씩 한데 묶더니 상길에게 말했다.
  “네가 여기서 이불짐을 지켜라. 땔나무를 메다주고 밥을 얻어올게.”
  기준은 상길에게 소나무 위에 바라 올라가 숨어있으라고 하고는 나무 단을 양어깨에 둘러메고 산 아래 마을로 씨엉씨엉 내려갔다.
  상길은 숨을 죽이고 바위 옆의 커다란 소나무 위에 바라 올라가 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삼촌이 밥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눈 뿌리 빠지게 기다렸다.
   한참 후 기준이가 산 아래로부터 보자기를 들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기준이 밥을 가져오자 숙질간은 또 산에서 한때 끼니를 에웠다.
  그들은 풍찬노숙하면서 핏빛 해와 북두칠성을 이고 북으로 걷고 또 걸었다.
  며칠 후 경성군에 이르러 시내를 지날 때였다. 숱한 사람들이 모여 뭔가 보고 있었다.
  상길이 다가가 사람들을 비비고 들어가 들여다보았다. 글쎄 성칠 큰아버지와 기준 삼촌의 용모파기를 그린 경성경찰국의 포고문이 붙어있지 않겠는가!
  “안되겠다. 명천을 떠나면 일 없겠는가 했는데. 빨리 이 시내를 벗어나가자.”
   부랴부랴 시가지를 벗어난 그들은 또다시 산길을 타고 북으로, 북으로 허둥지둥 반 달음박질쳤다. 머리속에는 일본 놈들이 독사들처럼 욱실거리는 조선에서는 살 길이 없기에 만주로 가야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어머니 품 같던 조선 정체가 철조망을 두른 일본 놈들 하나의 커다란 감옥 같았다.
   (만주에 가서 성칠 형님을 찾아가 독립군이 되든지, 농사를 짓든지 뭘 하면 지금처럼 쫓겨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하기보단 나을 거야.)
  별을 이고 달빛을 빌어 힘들게 걸어가는 크고 작은 숙질의 어두운 그림자가 수림 속 산등성이 령 길에서 처량하게 비틀비틀 북으로, 북으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5.
친구와 원수


   북으로 들어가면서 날이 감에 따라 낮에는 제법 훈훈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봄아가씨의 훈훈한 입김이 지나가더니 산에도 이젠 진달래꽃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양지바른 언덕에는 새싹들이  뾰족뾰족 돋아나 땅 위로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나무들에도 파란 애잎사귀가 움트는데 나무숲 속에서는 뻐꾸기가 뻐꾹뻐꾹 짝을 찾아 외롭게 운다. 종달새도 하늘에서 지종지종 쓸쓸한 봄소식을 알리고 있다.
   기준은 솜옷만 입고 길을 떠나서 낮에는 좀 더운 감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솜옷의 솜을 빼고 입을까 하다가 밤에 아직도 추운 감이 들어 그대로 입고 길을 재촉했다.
   명천군을 벗어나 경성군에 들어선 후부터는 아무리 포고문이 나붙어도 그래도 고향에서보다는 달리 낮에도 령길을 타고 걸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들이 한참 이른 아침부터 수림 속 령 길을 바삐 걷는데 앞에서 나무를 뚝뚝 끊는 소리가 들리었다.
기준과 상길은 걸음을 멈추고 나무 뒤에 숨어 앞을 살폈다.
웬 사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끼도 아니고 어지간한 사발만큼 실한 나무도 어깨를 들이대고 떠밀어 뚝뚝 끊어내는 것이었다.
얼핏 보니 실팍한 허리라든가 넙죽한 어깨가 눈에 익어보였다. 찬찬히 여겨보니 원삼인 것 같았다.
기준은 앞으로 몇 발자국 더 걸어 나갔다. 그러나 상길은 잔뜩 겁나 나무숲속에 숨어 갸웃거렸다.
“아니, 이게 원삼이 아닌가?”
나무를 하던 사내도 허리를 펴고 올려다보더니 놀라했다.
“아니, 기준 형님이 아니오? 얘들아, 인사해라. 명천의 힘장사 기준큰아버지다.”
이불 짐을 멘 기준을 보고 심상찮아 보였던 것이다.
애들은 인사했다.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왔소?”
기준은 이불 짐을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한마디로 말하기 바쁘오. 여긴 어딘가?”
“여긴 내 고향인데 경성군 주을면 용천동이라는 곳이오.”
“두만강까지 아직도 먼가?”
“아직도 애를 데리고 가자면 한 보름이나 스무날도 더 걸어야 될 거 같소.”
원삼의 말을 듣고 기준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한길수 놈과 어떻게 한 하늘을 쓰고 살겠소? 경찰국을 짓고 길닦이를 해도 어디 삯전을 줍데?”
기준은 상길을 불러 인사시켰다. 그제야 상길은 나무숲속에서 나왔다.
원삼은 산 아래 편벽한 산골마을을 가리키면서 “저게 우리 고향이오. 내려가 아침 식사도 하고 그간 얘기도 나누기요.” 하고 말했다.
기준은 손사래를 저으면서 말했다.
“괜히 자네한테 연루시키겠소. 날 주먹밥이나 좀 가져다 주면 되네.”
원삼은 “야, 형님도, 어느 놈이 내 눈앞에서 형님을 어찐다오? 단매에 때려죽이겠소. 가기요. 집 문 앞까지 왔다가 들리지도 않겠소?” 하고 말했다.
그리하여 기준은 원삼을 도와 나무 단을 해 끌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마을 어귀에 웬 사람들이 모여 구구거리면서 뭘 구경하고 있었다.
기준과 원삼이가 다가가 보니 성칠과 기준의 용모파기를 그린 경성군 경찰국 포고문이었다. 그런데 한 마을 사람이 기준을 힐끔힐끔 곁눈질 해보는 것이었다.
기준은 원삼과 눈치를 맞추고 나서 나무 단을 내려놓고 상길을 데리고 산으로 되올라갔다.
원삼이가 따라와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걱정하지 마오. 여기 저 사람들은 형을 고발할 사람들이 아니오.”
기준은 팔소매를 뺏다.
“자넬 연루시킬 필요야 없지 않는가? 그저 주먹밥을 해서 저 산속에 가져다주게나.”
원삼이도 별수 없어 팔소매를 놓았다.
“형님, 시장한대로 산속에서 기다리오.”
원삼은 기준과 상길이가 산속 수림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눈으로 바래면서 도리머리 질을 했다.
기준은 수림 속에 숨어 낫을 쥐고 마을 쪽을 살피였다. 아무래도 아까 자기를 힐끔 곁눈질하던 사람이 근심됐던 것이다.
한식경이 퍽 지나 원삼은 주머니를 둘러메고 성큼성큼 서산으로 올라왔다. 그의 뒤에 훤칠한 막내 동생 무삼과 작달막한 형 인삼이가 뒤따라 올라왔다.
상길은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점점 삼촌의 옆구리에 달라붙어 바들바들 떨었다.
“겁내지 말라. 저분들은 금방 만났던 삼촌의 형제들이다.”
그제야 상길은 겁기 띤 얼굴에 긴장을 풀면서 한숨을 호 내쉬었다.
“아니, 형님, 여기까지 왔다가 집에도 들리지 않고. 이거 안 됐소.”
춘삼은 너부죽한 얼굴에 헤벌쭉 웃으며 다가와 옷 보따리를 넘겨주고 손을 내밀었다.
“입던 옷이라도 여름옷으로 바꿔 입소. 얘 옷이 맞겠는지 모르겠소.”
“감사하오. 사정이 그렇게 돼서 이번엔 집에 들지 못하겠소.”
그러자 인삼이도 다가와 손을 굳게 잡았다.
“형님, 마을 사람들은 일없소. 내려가기요.”
허나 기준은 “안 되오. 요즘 일본 놈들이 온 후부터 세상인심은 모를 일이오.”
원삼은 밥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이거면 며칠 먹을 수 있을 거요. 그런데 이젠 날씨가 따가워져서 밥이 쉴까봐 근심되오.”
그는 주머니에서 동전 여섯 개를 꺼내 기준의 손바닥에 쥐어주었다.
“이건 우리 사형제가 주는 거요. 로비로 쓰오.”
“야, 이거 고맙소. 모두 살기 힘들겠는데 미안하오. 바쁠 때 도와준 은정을 잊지 않겠소.”
그러자 기준과 첫 면목을 익힌 춘삼의 막내 동생 무삼이가 말했다.
“형님, 우리 형님들이 명천 우시장에 가서 경찰국을 지을 때 귀댁 부친님과 형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소. 너무 적어서 미안하오. 아직도 퍽 오래 걸어야 두만강에 가겠는데 보태 쓰오.”
기준이가 동전을 사양하자고 하자 원삼이 말리였다.
“우리 적은 성의이니 받소.”
그러고 나서 뒷말을 이었다.
“내 이전에 뭐라 했소? 그놈 한길수를 때려죽여 버리자는데. 지금 그놈 때문에 고향에서도 살지 못하고 만주라니, 에참, 고향을 떠나서 어떻게 살겠소. 우리도 아마 명년에는 고향을 떠나 만주로 가야 될 것 같소. 일본 놈 새끼들이 여기 편벽한 산골에까지 들어와 몇 짐 되지 않는 돌밭에 나무를 심어라오. 게다가 땔나무마저 해선 안 된다니 어디 살겠소? 마른 풀만 긁어서 불을 때라오.”
그때 인삼이가 말했다.
“솜옷이 다 해졌구먼. 아직도 솜옷을 어떻게 입겠소? 내 입던 옷이라도 바꿔 입고 가게나.”
기준은 “밤엔 아직도 춥소. 이제 두만강을 건너가 더우면 솜을 빼고 입으면 되오. 인차 길을 떠나야 하겠소.”
그러자 그들 삼형제도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원삼은 기준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럼 몸조심해 두만강을 건너오. 나도 이제 조만간에 만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소. 그때 만나기오.”
그러자 무삼이 근심했다.
“듣는 말에 의하면 두만강 저쪽의 중국 놈들이 두만강을 건너는 사람을 붙잡기만 하면 목을 쳐서 머리를 두만강에 처넣는다던데. 어떻게 건너겠소. 애까지 데리고.”
그 말에 상길은 겁을 집어먹고 머리를 싸쥐고 매만지었다.
인삼도 걱정했다.
“좀 일찍 강이 땅땅 얼었을 때 왔더라면 아무데라도 가만히 두만강을 건너갔겠는데. 그래도 인가가 보이는 웅진 쪽으로 해 가오. 무인지경 산골로 가면 수림 속 야수도 무섭지만 먹을 게 떨어지면 어찌겠소. 아차, 잊을번 했소. 웅진이란 절벽아래 길목에 주막집에 백승만이란 자가 있는데 주의하오."
“그 놈을 몰라서? 고맙네. 이젠 돌아들 가게나.”
“이렇게 갈라지면 언제 다시 만나겠소.”
그들 삼형제는 석별의 정에 겨워 계속 이말 저말 하면서 산길을 따라 마을이 보이지 않는 령 마루 길에까지 바래여주고서야 갈라지기 아쉬운 대로 멈춰 섰다.
기준은 이불 짐과 밥주머니까지 혼자 둘러메고 령 마루 길을 씨엉씨엉 걸어 나갔다. 그 뒤로 상길이가 낫을 쥐고 힘겹게 따라 가고 있었다.
며칠 후 상길은 발바닥에 물퉁이까지 쳐서 쩔뚝거리면서 점점 걷지 못했다. 기준은 이불 짐 위에 상길을 목마처럼 태워가지고 걷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원삼이네가 준 주먹밥과 누룽지마저 다 떨어졌다.
해가 어슬어슬 지는데 눈앞에는 깎아지른 절벽아래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그 절벽아래 마을 어귀에 주막 같은 외딴 집이 눈에 유표하게 띄었다.
기준은 풀숲에 멈춰서더니 쪼그리고 앉으면서 상길과 이불 짐을 내려놓았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나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동전을 만지작거리면서 기진맥진한 상길을 내려다보더니 속궁리를 했다.
(뭘 사 먹이지 않고선 안 되겠다. 동전도 다 떨어지면 낯선 만주에 가서 어찌 하겠는가?)
그는 동전을 몇 푼이라도 남기려고 상길을 데리고 그 주막집 같은 집으로 다가갔다. 높다란 토성에 대문이 턱 들어박혔는데 꼭 닫힌 대문은 주인의 깍쟁이 성격을 보여주는 상 싶었다.
기준은 부자 집에 들어가 땔나무를 해주거나 패주든지 아니면 물을 길어주고서라도 한 끼 밥을 얻어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대문 안을 기웃거리다가 흠칠 놀랐다. 토성 울안에서 곱사등이가 뭐라고 하인들에게 잔소리질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백승만의 목소리처럼 귀에 익었다.
“안 되겠다. 돌아가자.”
“삼촌, 배고파 죽겠는데.”
“저 놈은 한길수 졸개다.”
상길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기준은 상길의 손을 잡아 어깨 위에 올려놓고 걸음아 날 살리라고 서쪽 산으로 달아났다.
그는 세상에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런 산골에 와서 백승만과 마주 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참 헐금씨금 산기슭 수림을 톺아 올라서야 기준은 숨이 차 헐떡거리면서 상길을 내려놓았다. 그는 절벽아래 광솔 불이 환한 백승만의 집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복수심이 치솟아 참을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토성 안집에 불을 콱 싸지르고 싶었다. 낫을 들고 내려가서 백승만 삼형제 일가친척들을 다 찍어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바로 걷지도 못하는 상길이 달린데다 여기에서마저 일본 놈들과 자위대 놈들에게 쫓기면 만주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상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숨을 돌렸다. 맥이 진한 그는 상길을 업고 비틀비틀 힘겹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산을 넘어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개굴, 개굴” 하고 개구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었다.
“살았어.”
기준은 이불 짐을 벗어 내려놓고 상길에게 지키라고 하고는 골짜기아래 개울로 내려갔다.
기준이가 개울가에 다가가자 갑자기 개구리 울음소리가 딱 그쳤다. 기준은 살금살금 개울가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살금살금 다가가며 귀를 도사리였다.
톨랑! 톨랑!
개구리가 개울물에 뛰어들었다.
기준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개울물에 들어가 물속 풀 섶에 숨어있는 손으로 더듬어 손잡이로 개구리를 한 마리 잡았다. 배 뚱뚱한 개구리는 오래잖아 알을 낳을 어미개구리 같아 보였다. 꽤나 먹음직했다. 순간 살아날 희망이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상길아, 여기 오너라.”
“예.”
기준은 개구리를 땅바닥에 메쳐 상길에게 주었다.
“잘 지켜라.”
“예.”
기준은 개울물에서 개울가를 따라 내려가면서 손 더듬질 해 연속 개구리를 잡아 손바닥에 놓고 탁탁 쳐 죽인 후 상길에게 넘겨주었다. 상길은 개구리를 받아 개구리무지에 가져다놓았다.
한참 후 기준은 개울에서 나와 상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달빛을 빌어 여기저기에서 마른 삭정이를 주어다가 부시를 쳐 모닥불을 피웠다.
싸늘하던 산골짜기 밤에 모닥불이 활활 피어올랐다. 기준과 상길은 나모꼬챙이에 개구리 일여덟 마리씩 꿰여 굽기 시작했다. 빠지직 빠지직 소리와 함께 개구리를 구운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이게 오늘 저녁이다. 먹어라.”
기준이가 잘 구워진 개구리를 뽑아 주자 상길은 까만 얼굴에 화기가 돌았다. 그는 배고파 가릴 새 없이 구은 개구리다리부터 맛나게 먹었다. 모닥불 빛에 그들 숙질간이 개구리를 넋을 잃고 먹는 모습이 비치였다.
혹시 산골짜기에 불이나 달리면 자위대나 삼림경찰들을 불러 올까봐 그들은 인차 모닥불을 껐다.
“오늘은 여기서 자자.”
기준은 모닥불이 꺼진 옆에 마른 나무 잎사귀를 한 아름 긁어다가 펴고 그 우에 이불을 풀어 훌훌 폈다.
“상길아, 자라.”
“예.”
기준은 산 너머에 철천지 원수 백승만이 있어 위험한줄 알면서도 내일 해가 뜨면 개구리를 더 잡아가지고 길을 떠나려고 이 개울가에서 자기로 했던 것이다.
기준은 상길을 재워놓고 검 칙칙한 구름 속으로 달리는 달과 별을 바라보면서 고향생각을 하염없이 했다.
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길게 내쉬었다.
(부모처자들은 다 무사한지? 내 땜에 고생할거야. 한길수 놈을 놔둬선 안 되는데 원수도 갚지 못하고 이렇게 쫓기는 신세가 돼 만주로 가다니. 에이 참.)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밸 같았으면 고향에 돌아가 한길수를 단매에 쳐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총을 가진 한길수, 그보다도 일본경찰 놈들을 등에 업고 행패하는 한길수, 무리승냥이 같은 자위대까지 끌고 다니는 한길수를 어떻게 처단하면 원수를 다 갚는단 말인가?
기준은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꽝 치다가 가슴을 쳐댔다. 그 바람에 상길이가 악몽을 꾸는지 잡소리를 마구 쳐댔다.
기준은 자기에게 연루돼 여기까지 쫓기며 따라온 상길이가 불쌍해 가래짝 같은 손으로 애 어린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상순이랑 무사한지? 그 놈은 상길처럼 얌전한 놈이 아니야. 어쩜 삼대로 모두 울뚝밸이 그렇게 셀까?)
그는 저도 몰래 피씩 웃음이 나갔다.
그때 개울가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개굴개굴 나기 시작했다. 기준은 이불을 사르르 들고 일어나 버드나무가지를 꺾어들고 개울가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는 개울에 들어가 개구리를 잡는 족족 목을 버들가지에 꿰맸다.
한참 역사질을 하니 개구리를 몇 뀀 잡았다. 그런데 개구리도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다들 도망쳐버렸는지 이젠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제야 기준은 개울에서 나와 수림 속에 들어가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어다 우등불을 피워놓고 상길의 옆에 누웠다. 그는 나라를 빼앗긴 수림에서 고향의 쪼각달을 품에 안고 쓸쓸하게 새우잠을 잤다.
저쪽 수림 속에서 놀란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아나면서 고요한 정적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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