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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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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1)
2016년 05월 18일 09시 26분  조회:1935  추천:1  작성자: 김장혁
    





                                          2. 두만강을 넘나들며
       삼복염천에 태평강도 부글부글 끓어 번질 지경이었다. 쨍쨍 내리 쪼이는 햇볕에 옥수수 잎도 시들어 맥없이 축 드리워지었다.
       약담배 짐을 메주고 삯전을 번 상순은 속으로 자기도 혼자 약담배 장사를 해보려고 선준과 두준을 따라 나섰다. 전번과는 달리 그들은 대담하게 천수해역에 가서 기차를 타고 고향을 바라고 떠났다.
      그들은 아주 순조롭게 명천에 가서  약담배 짐을 해 전번처럼 치약에 넣어 지고 산길을 타고 북으로 떠났다. 상순은 이번에는 선준과 두준의 약 담배 짐만 진 것이 아니라 선준에게서 돈을 꿔 약담배를 아홉 냥이나 사 지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이 인적을 피해 산마루를 타고 소나무가 우거져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명천의 박달령(지금의 칠보산 박달령임)을 넘어 수림 속을 꿰질러나갔다.
그들이 다리쉼을 하자고 둔덕에 앉아 땀을 들이고 있을 때었다. 웬 사내 대여섯이 늑대처럼 슬금슬금 다가왔다.
상순은 대뜸 호미를 쥐고 벌떡 일어섰다. 선준한테 약 담배를 판 약 담배장사꾼도 끼어 있었다.
(강도들이구나. 분명 약담배를 팔아먹고 우리 뒤를 밟았구나.)
“삼촌, 자리를 뜨기요.”
두 삼촌도 눈치 채고 벌떡 일어났다.
“짐을 두고 가라!”
강도들이 품속에서 비수를 뽑아 들고 일시에 덮쳐왔다.
상순은 호미를 들고 그자들을 막아 싸우면서 고함쳤다.
“삼촌,  빨리 달아나오!”
한 놈이 비수를 휘두르며 덮쳐들었다. 상순이 호미를 휘둘러 치는 척 하면서 발길을 날려 손목을 걷어찼다. 그 놈의 손에서 비수가 날아 났다. 상순은 재차 원앙새 발길을 날려 아랫배를 걷어찼다. 그 놈은 배를 끌어안고 나동그라졌다.
“이 놈, 썩어져라!”
강도들은 동시에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앞뒤로 덮쳐들었다. 순간 상순이가 슬쩍 몸을 낮추면서 그들 두 새로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갔다. 몽둥이가 그의 잔등을 탁 내리 치었다. 다른 두 놈은 그만 칼로 서로 팔을 찍었다.
“앗!”
한 놈은 칼을 뚝 떨어뜨리더니 팔을 붙잡고 땅바닥에 물앉았다.
상순은 나머지 세 놈을 이기지 못하는 척 하면서 삼촌네와 다른 쪽 수림으로 달아났다. 세 놈은 헐금씨금 뒤쫓아 왔다. 상순은 아름드리나무를 안고 홱 돌아 서면서 호미 등으로 제일 먼저 뒤쫓아 온 놈의 대가리를 탁 쳤다.
“억!”
그 놈이 보기 좋게 대가리를 싸쥐고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뒤쫓아 온 놈이 비수를 상순에게 휘둘렀다.
상순이가 호미를 휘둘러 막았다.
호미날에서 “쟁강!” 소리가 나며 불티가 튕기었다.
뒤쫓아 온 다른 놈도 합세해 상순에게 달려들었다. 상순은 또 도망쳤다. 두 놈은 죽기내기로 뒤쫓아 왔다.
그런데 상순은 그만 돌멩이를 빗디뎌 쿵 넘어졌다.
“이 놈, 죽어 봐라!”
두 놈이 비수를 휘두르며 쓰러진 상순에게 덮쳐들었다. 넘어진 상순은 땅바닥에서 돌멩이를 주어 몸을 반쯤 돌리며 휙 날렸다.
딱!
한 놈이 이마를 맞고 “앗!” 소리와 함께 이마를 싸쥐고 물앉았다.
쉭! 딱!
나머지 놈도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놈들은 대가리에 피를 흘리면서 더는 쫓아 올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상순이가 호미를 들고 수림 속을 절뚝거리면서 걷다가 수림 속에서 인기척을 육감적으로 느끼었다. 상순은 눌러 쓴 초 모자 밑으로 수림 속을 둘러보았다.
웬 놈이 나무숲에 숨어 있는지 나무 이파리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었다.
“겁쟁이, 어서 나오지 못해?!”
“아, 천하장사, 제발 살려 주오.”
그 놈은 수림 속에서 기어 나와 꿇어 엎뎌 바들바들 떨었다. 그자는 선준에게 약 담배를 팔던 코큰이 장사꾼이었다.
상순은 멱살을 틀어잡고 호통 쳤다.
“장사군도 의리가 있는 법이야. 왜 팔아놓고 되빼앗아?”
그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했다.
 “내 말을 듣소. 사실 나도 저 놈들에게 당했소. 저 놈들이 칼을 들이 대고 열흘 안에 돈 500원을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을러멨소. 또 큰 약 담배 장사꾼이 오면 기별하라고 을러멨소. 그러지 않으면 죽을 줄 알라고 했소.”
상순은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며 욕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 살겠다고 강도들에게 우릴 팔아먹어?”
그 자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라! 다시 그 따위 짓 해 봐라! 이 어른이 용서하지 않을 테야!”
그 자는 절을 꾸벅꾸벅 하더니 슬슬 기어 일어나 다리야 날 살리라고 꼬리 빳빳해 달아났다.
상순은 초 모자를 눌러 쓰고 호미를 든 채 쩔룩거리며 숲을 헤매면서 삼촌들을 찾았다. 그는 온 하루 산속을 헤매서야 겨우 나무숲이 우거진 한 절벽 밑에서 삼촌들을 찾아냈다.
“상순아, 다리는 어째?”
선준은 조카를 보자 반가와 어쩔 줄 몰라했다.
“빗디뎠소. 오줌 약을 썼으니 괜찮을 게요. 일없소?”
선준은 “덕분에 무사하다.” 하고 말하며 상순의 두 손을 잡았다.
“여긴 야수들이 욱실거리는 수림속인 거 같소. 빨리 떠나기요.”
그들은 수림 속 여러 곳을 살필 수 있는 산등성이를 타고 북으로 길을 재촉했다.
상순이가 뒤를 지키며 걸으면서 보니 두준이 자꾸 뒤에 떨어지더니 여기 저기 살피면서 무슨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상순은 이상해 뒤떨어진 두준에게 다가갔다.
“어째 무슨 일이 있소? 자꾸 뒤에 떨어지오?”
“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발목을 좀 풀쳐서, 어, 에헴.”
두준은 발목을 붙잡고 물앉더니 상순의 눈치를 흘끔 보는 것이었다.
“얘, 목이 말라 죽겠어. 네 짐을 메 줄 테니 저 아래 산골짜기 마을에 가서 물이나 한바가지 퍼 오겠니?”
“양? 갔다 올 게.”
상순이 짐을 벗어 두준에게 맡기고 막 산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얘, 어디로 가? 강도 나타나면 어쩌니?”
선준이 근심돼 말렸다.
상순은 대수로워 하지 않으면서 “근심하지 마오. 인차 갔다 올 게요. 숨어서 기다리오.”라고 하고는 산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마을에 들어가자 그는 우물을 찾아 드레박으로 물을 잣아 올려 샘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이가 시릴 지경으로 찬 샘물은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우물 옆의 한 집에 들어가 커다란 바가지를 빌어다 시원한 샘물을 한바가지 푹 퍼들고 바삐 산우로 올라 왔다.
(이게 뭔가? 삼촌들은 어디로 갔어? 혹시 강도들한테 당하지 않았을까?)
상순은 물바가지를 내리어 놓고 나무숲이 무성한 곳마다 돌아다니면서 호미로 이리저리 헤쳐 보았지만 삼촌네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삼촌네 잘 못 되지 않았을까? 숱한 빚을 져 산 약 담배를 빼앗겼으면 어쩌니? 빚더미에 깔려 죽게 생겼는데.”
상순은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산이 날아가게 후- 내쉬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매돌 짝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로비마저 다 떨어진 그는 마른 삭정이를 주어 마을에 지고 가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걷고 걸어 겨우 함흥촌에 돌아 왔다.
그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그 걸음으로 두준을 찾아갔다.
이게 웬 일인가?
두준은 펀펀해 집에서 빗자루로 마당을 썩썩 쓸고 있었다.
“삼촌! 무사하구먼.”
상순을 보자 두준은 펄쩍 놀라 빗자루를 짚고 부들부들 떨다가 겨우 입을 여는 것이었다.
“엉? 어, 너도 살아 왔구나.”
상순은 한걸음 다가가면서 물었다.
“내 짐은 어쨌소?”
두준은 머리를 숙이면서 기어들어 가는 모기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미안하다. 우린 강도를 만나 죽을 번했다가 겨우 살아 집에 왔다. 짐을 몽땅 강도한테 빼앗겼어.”
“뭐라오? 그거 어떻게 산거라고? 당장 내 짐을 내 놓소. 강도를 만났다는데 어째 상처 하나 없소?”
두준은 꺽꺽거리면서 아무 말두 못했다.
“얘, 강도한테 빼앗긴 짐을 내 놓으라면 어쩌라니?”
상순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내 짐을 잃어버렸으면 갚아야 할 게 아니오?”
“이런 새끼를 봤니? 남이 죽다가 겨우 살아 왔는데 무슨 망발이냐? 원, 네놈을 믿다가 괜히 약 담배나 떼었지. 우릴 지키지도 못하면서 무슨 염치로 돈을 내라고 호통질이냐? 정 믿지 못하겠으면 선준을 찾아 가서 물어 봐라.”
두준이 쪽에서 오히려 목에 지렁이 같은 피 줄을 세우면서 야단치었다.
상순은 별 수 없이 선준을 찾아 갔다. 그런데 그의 대답도 두준의 대답과 똑같았다.
(더러운 새끼들이, 사촌형제끼리 짜고 들어 촌수가 먼 내 약 담배를 떼먹었구나. 어디 가만 놔두나 두고 보자.)
상순은 증거를 잡지 못했기에 빤한 일도 용빼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가만 있자니 밸이 울컥 치밀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두준의 집에 다시 찾아갔다. 그는 도끼로 나무를 패는 두준의 멱살을 틀어쥐고 호통쳤다.
“더러운 두상, 내 약 담배를 내 놓지 못하겠는가?!”
상순은 주먹으로 한대 치려고 쳐들었다가 주먹을 내리웠다. 순간 성칠 큰아버지가 가르친 무덕이 그의 주먹을 꺾었던 것이다.
(집안 어른을 칠 순 없지.)
“이 놈 새끼, 삼촌을 치겠니? 버르장머리 없는 놈, 어디 쳐봐라!”
두준은 상순이 주춤 하는 틈을 주먹질 했다. 두준의 아들 상설도 몽둥이를 들고 뒤에서 씽 달려 나오면서 상순의 뒤 골을 내리쳤다.
상순은 피하지도 않고 날아드는 몽둥이를 왼손으로 턱 받아 쥐었다.
“이까짓게 다 뭐야?!”
그는 몽둥이를 무릎에 대고 툭 끊어 땅 바닥에 탁 내동댕이쳤다.
“퉤! 내 집안이라고 놔두니까. 그리 알아라.”
상순은 벌벌 떠는 두준의 부자에게 침을 뱉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마을 사람들 속에서 감탄소리가 울리었다.
토성안집 지학사는 토성 안에서 졸개들을 데리고 나와 뾰족한 턱을 쳐들고 기웃거리다가 개화장을 휘두르며 집으로 되들어가버렸다.
“상순은 그저 놈 새끼 아니야? 저 놈을 내 편에 끌어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토성 밖의 버드나무가 시원한 가을바람에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지학사는 두준의 부자가 상순과 싸워 코 대를 꺾어 놓았으면 했는데 멋 적게 끝나자 도리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는 몇 해 전에 자기를 송사에 걸어 망신시킨 상순이가 점점 커 가는 것이 눈에 든 가시 같았다. 그는 함흥촌에서 촌장 질을 해 먹으려면 제일 먼저 상순이네 부자부터 꺾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학사 촌장 놈은 전번에 춘실과 은실을 위안소로 잡아갈 때 일본 놈들이 늙은 비술나무에서 도끼에 찍혀죽은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글쎄 총에 맞아 죽은 건 유격대 짓이라고 쳐도 돌멩이에 맞아죽거나 도끼에 찍혀 죽은 건 심상치 않았다. 마을에서 일본 황군과 맞서 싸울만한 호랑이 담을 가진 놈은 상순이나 기준이 밖에 없어. 황차 상순은 춘실을 좋아하고 배속에 애까지 싸넣었다고 하지 않는가!)
지학사는 쥐눈깔을 떼룩 굴리며 촌공소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생각을 굴렸다.
(황군 앞에 모범집단부락을 꾸리자면 불온분자들부터 처단해야 해.)
룡정통감부 간도파출소에서는 춘실과 은실을 잡아가는 그날 밤에 예비로 일본 경찰들을 한 개 분대나 풀어 이른바 "흉수"를 수색했지만 꼬리도 잡지 못했다. 그 놈들은 늙은 비술나무 부근에서 피 묻은 돌멩이와 도끼를 주은 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그 놈들은 원래 함흥촌 부근 패랑산촌과 조개덕 그리고 태평거우까지 몽땅 소탕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학사가 모범집단부락을 숙청하면 이후에 누가 함흥촌에 와서 살겠는가고 간언해 소탕을 그만두었던 것이다. 대신 모범집단부락이고 뭐고 불온분자들을 세심히 관찰해 속속들이 복구하라고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날 이때까지 상순의 꼬리를 잡지 못한게 문제였다.
(전번에 상순은 확실히 그날부터 잃어졌는데 썩 후에 약을 캐 담은 지게를 지고 나타나지 않았던가. 말로는 약을 캐러 산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유격대와 내통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고심하던 끝에 지학사는 암암리에 기준과 상순 부자 일가를 망하게 해 없애버리려고 꿍꿍이를 꾸몄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졸개를 시켜 가만히 상순이네 소여물에 독약을 풀어 넣게 해 소를 독살했던 것이다. 소임자인 손호표 지주가 상순이네 집에 찾아와 야단치자 지학사는 토성 위에 올라서서 구경하면서 잘코사니를 불렀다.
      그 일로 해 기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집마저 팔아 소 값을 갚지 않으면 안됐다. 소를 팔아서도 소 값을 채 갚지도 못해 그들 부자는 웃새집 사랑채에 임시 들었다.
상순은 눈앞이 막막했다. 빚 구렁텅이에 빠진데다 설상가상으로 유격대는 당장 쌀이 떨어져가고 있는데 약 담배 짐까지 삼촌들한테 사기 당한 판이었다.
그는 궁리하다 못해 뇌리에 큰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독불장군이라고 성칠 큰아버지 말씀 대로 군중을 동원해야 해.)
그는 집안 형님들로부터 시작해 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쌀 몇 근 씩이라도 얻어 주머니에 담아 김치 움에다 치워 놓았다.
한편 마을 청년 희수, 붕수, 흥수, 7촌조카 의호, 충국 등한테 중국 공산당의 혁명의 도리를 알려주고 이 땅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진정 인민이 땅의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싸우자고 선동했다. 그리하여 청년들은 집의 쌀을 얼마간씩 밤에 상순의 집에 가져왔다. 상순은 쌀을 가만히 김치움에 가져다 놓았다.
나중에 상순은 소서구 토성안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장 지주는 인삼 삼촌네 양아버진데 쌀을 얼마간이라도 주겠지.)
상순은 토성 안 서쪽 채에 들어가자마자 장학산을 보고 정색해 말했다.
“돈을 한 200원 꿔주오.  큰 장사를 해 돈을 벌면 은공을 톡톡히 갚겠소.”
장학산은 다가앉으면서 나직이 물었다.
“혹시 약 담배장사를 하자고 그러지 않니? 목이 날아나지 못해서.”
“무슨 말이요? 소금 장사 밑천으로 쓰자고 그러오.”
“유격대에 쌀을 가져가자고 그러지 않고?”
“듣자니 당신도 인삼 삼촌이랑 먹게 쌀을 많이 가져갔더구먼.”
장학산은 대뜸 손사래 질 했다.
“난 인삼이가 유격대인 줄 몰랐어. 그 자식 때문에 난 쫄딱 망했어. 토성 안 집이 재더미로 됐지. 그거마저 일본 놈들의 촌공소로 빼앗겼단 말이야. 어떻게 지은 집인데. 아까워 죽겠어.”
상순은 쐐기를 박았다.
“그게  일본 놈들 탓이지. 지금 인삼 삼촌네는 굶어서 거의 죽게 됐소. 굶고서야 언제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토성 안 집을 찾아내고 저 숱한 밭을 지키겠소?”
장학산은 이를 갈았다.
“일본 놈들 생각만 하면 악이 난다. 요새 지학사 형님을 꼬드겨서 뭐 대일본제국에 밭을 바치라지 않겠니?”
장학산은 격분해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황소숨을 몰아쉬었다.
이때라고 상순은 손을 내밀었다.
“200원만 뀌어주오. 장사를 해 인삼네 유격대를 살려야겠소. 쌀이 거의 떨어졌소. 유격대는 우리 중국 사람들의 군대란 말이요. 밥을 든든히 먹어야 일본놈들을 족치지."
장학산은 한참 궁리하더니 시원히 대답했다.
“내 300원 뀌어줄게.”
장학산은 일거양득이었다. 상순에게 인심을 내구 인삼도 돕게 됐으니 말이다.
상순은 빚 문서에 지장을 찍은 후 묵직한 돈주머니를 받아 품에 간직하고 토성 안 집을 나왔다.
(장사만 잘 되면 유격대에 쌀을 가져가고 용정에 가서 공부를 좀 해야지.)
며칠 후 상순은 그 돈으로 장마당에 가서 쌀을 사 수레에 꽉 박아 싣고 달빛을 밟으며 패용천산 쪽으로 떠났다. 희수와 붕수도 따라나섰다. 흥수는 혹시 지학사한테 들키울가봐 집에서 머리도 내밀지 않았다. 상순은 희수와 붕수를 시켜 마을 대문을 보초서던 졸개들을 집에 데리고 술을 마시라고 했다. 전날 상순이 시내에서 사온 술로 희수와 붕수가 자위대 보초병 둘을 따돌리자 상순은 쌀을 꽉 박아 실은 수레를 몰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들이 금방 태평강가 아름드리버드나무가 우거진 수림 속으로 들어갔을 때었다. 난데없이 뒤에서 뻐꾹새 울음소리가 뻐꾹 뻐꾹 들렸다.
(혹시 유격대가 왔는가?)
상순은 손을 들어 형님들을 보고 수레를 멈추게 하고 버드나무숲 속을 둘러보았다.
우수수 낙엽 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버드나무숲 속 여기저기에 희읍스름한 달빛이 비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버드나무 뒤에서 가냘픈 흐느낌 소리가 들리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상순은 비수를 뽑아 들고 살금살금 그 버드나무에 다가갔다. 그때 황둥개가 상순한테 달려 와 앞발을 쳐들고 매달리면서 꼬리를 저어댔다. 춘실이 버드나무에 기대어 훌쩍거리고 있지 않겠는가?
상순은 버드나무숲 속에 드문드문 비치는 달빛을 빌어 흐느끼며 우는 춘실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밤중에 웬 일이야?”
“말해야 아니?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춘실은 주먹으로 상순의 가슴을 마구 두드리었다.
상순은 이쪽을 돌아보는 상훈과 상길을 보고 “형님네 먼저 가오. 내 춘실과 할 말이 있소.” 하고 말하고는 춘실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갔다.
“춘실아, 미안해. 내가 널 버린 게 아니라 부명을 어길 수 없어 그렇게 됐어. 우리 집안은 대대로 효자들이었지. 집안혼사를 망친 불효자루 될 수 없었어.”
“뭐라니? 효성 한다고 나를 헌신짝 버리듯이 할 예산이야? 오늘 밤 내 죽고 너 죽고 해보자.”
춘실은 단말마적으로 달려들어 상순을 꼬집고 허비었다.
“내 말을 들어라.”
“안 들어. 콩으로 메주를 쓴대도 안 들어! 커가는 애를 어찌 하겠는가만 말해라. 에이고, 애비 없는 애를 보기만 하면 악이 난다. 분통이 터져 못 살겠다.”
상순은 춘실의 양어깨를 잡고 정색해 말했다.
“얘, 내 장사해 돈을 많이 벌면 국자가에 집 한 채를 사 놓을게. 우리 둘이 가만히 국자가에 가서 살자.”
춘실은 도리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또 속을 거 같니?"
그러나 상순은 춘실을 꼭 끌어안고 열변을 토했다.
“춘실아, 부명을 어기지 못해 명옥과 잔치했지만 난 지금도 너와 살고 싶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넌 내 아내야.”
춘실은 상순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섧게 대성통곡쳤다.
“이 나쁜 놈아, 사기꾼 놈아, 거짓말쟁이야! 내가 첩이야? 뭐야? 엉? 어 엉 엉. 흑흑.”
상순은 마음이 아팠다.
춘실은 상순의 품속에서 빠져 나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나쁜 자식! 애까지 내 쏴놓고 책임은 못 지고. 네놈은 한평생 내게 죄를 진 죄인이야. 언제든지 원수를 갚을테야!"
"얘, 내가 어찌 죄인이냐? 난 네한테 둘도 없는 은인이야."
"은인? 이 뻔뻔스런 놈새끼, 지금 누굴 기를 채워 죽일 작정이야?"
상순은 단말마적으로 달려드는 춘실을 꼭 끌어안고 정색해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봐! 내 널 임신시켰기에 넌 위안소에 붙잡히지 않았어. 숫처녀들을 봐라…"
"야, 숫처녀가 문제냐? 일본 놈들이 색마돼 그렇지. 나도 애를 낳았으니 언제 또다시 잡혀 갈지 몰라. 일본 놈들의 미친 개눈깔엔 반반하게 생긴 거도 죄야."
상순은 달빛 속으로 스적스적 걸어가면서 중얼거리었다.
“좋은 신랑을 찾아 잘 살아라. 그래야 일본놈들의 눈 밖에 나지."
춘실은 버드나무에 기대며 대성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이때 저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다.
“춘실아, 집으로 가자. 그 놈을 믿지도 말아라.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이 있겠지.”
춘실은 비칠거리다가 어머니 부축을 받으며 겨우 집으로 돌아갔다. 버드나무숲 속에서는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와 춘실의 흐느낌소리가 마음 아프게 들릴 뿐이었다.
왕 왕 왕!
황둥개는 자기 여주인을 두고 떠나가는 상순을 바라보며 요란하게 짖어댔다.
한편 상순이네가 쌀 수레를 몰고 패용천산 지나 칼산앞에 이를 때었다.
갑자기 산기슭 나무숲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나더니 웬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상순은 비수를 빼들며 “누구야?!” 하고 물었다.
충국도 비수를 뽑아 들고 수레 양옆에 붙어 섰다. 상우와 상길도 쌀 마대 사이에서 괭이와 삽을 뽑아 들고 싸울 잡도리를 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멈춰 섰다.
“혹시 상순이랑 아니야?”
맞은쪽에서 걸걸한 말소리가 울리었다.
목소리가 귀에 퍽 익었다. 가까이 다가온 것을 보니 확실히 인삼이가 억복과 철석 등 10여명 유격대원을 데리고 왔던 것이다.
“삼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구나.”
상순과 충국은 빼들었던 비수를 품속에 되 질러 넣었다.
“깜짝 놀랐소.”
인삼은 충국을 보고 “너도 왔구나.”하고 말하고 나서 “비수를 빼든 걸 보고 난 상순인줄 알았어.” 하고 하면서 상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원래 인삼이네는 유격대에 쌀이 떨어져 소서구 쪽으로 내려오다가 칼산 앞에서 삐꺼덕거리는 수레바퀴 소리를 듣고 산기슭 수림 속에 매복해 있었던 것이다.
인삼은 상순을 보고 정색해 말했다.
“쌀을 잘 먹겠다. 너 절대 약 담배 장사를 하지 말라. 우리 유격대는 절대 약 담배 장사를 해 산 쌀을 먹지 않겠다. 약 담배가 만연되면 나라를 일본 놈들의 손에서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상순은 건성으로 “양, 알았소.” 하고 대답했다.
상순이네는 인삼이가 이끈 유격대원들에게 쌀 마대를 넘겨주고 수레를 몰고 마을로 돌아 섰다.
유격대원들은 쌀 마대를 갈라지고 희읍스름한 달빛이 깔린 수림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3. 신음하는 고향

       소서구와 천지꽃산, 패용천산과 칼산, 모든 산과 태평벌은 가을바람에 누런 물결이 파도 쳤다. 세상에 이보다 더 재간 있는 화가는 없으리라. 들과 산기슭으로부터 시작해 올라가면서 점점 누런 물을 들이더니 이젠 산중턱에도 울긋불긋 단풍에 물들이고 있었다.
상순은 아무 장사라도 해서 유격대에 쌀을 보내려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충국을 찾아갔다.
장학사와 충국이 생각 밖으로 유격대를 돕는 것을 알게 된 상순은 그제야 이전에 인삼 중대장이 하던 말에 도리가 있음을 깊이 느끼게 됐다.
"중국의 한족형제들, 지어 중국의 양심적인 한족지주들과도 단합해 일본 놈들과 싸워야 이길 수 있다."
상순은 무작정 따라 나서는 충국을 데리고 령 길을 넘어 동불사 쪽으로 갔다. 진수해보다 동불사가 놈들의 감시가 허술했기 때문이다.
뒤따라가던 충국이 주춤 멈춰 섰다.
“아차, 한 가지 잊었어. 형님, 비수를 가지고 기차에 올라도 되겠소?”
상순도 주춤 멈춰 서더니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일본 놈들이 비수를 들춰내는 날엔 의심받을게 아니야?”
그는 주위에 아무 사람도 없는 것을 보고 충국을 데리고 한 초가집에 다가가 비수를 꺼내 이영 밑에 쑥 박아 넣었다.
충국은 “혹시 강도를 만나면 어쩌니?” 하고 물었다.
상순은 역 개찰구에 총칼을 비껴들고 왔다 갔다 하는 일본 놈들을 턱짓하었다.
“저놈들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날강도 놈들이지.”
충국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아까운대로 비수를 이영 밑에 쑤셔 넣었다.
그는 상순을 따라 역으로 나가면서 나직이 물었다.
“왜 산길로 가지 않고 기차를 타는 거야?”
“시간이 없다. 어떤 땐 등잔불 밑이 더 어둡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아주 순조롭게 조선 함경도 명천에까지 달려 나갔다.
명천 역에서 내리자 일본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고향은 일본 놈들의 쇠발굽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대뜸 긴장해난 상순은 충국을 조용한 구석에 데리고 가서 귀속 말을 했다.
“넌 조선말을 잘 모르기에 이제부터 벙어리 상을 해라.”
“건 왜? 우리 둘이 중국말을 하면 안 돼?"
“안 돼. 꼬리를 밟혀.”
“음, 알았소.”
충국은 세밀한 상순에게 머리를 숙이었다.
상순은 초 모자를 꾹 눌러쓰고 앞에서 걷고 충국은 한 일여덟 발자국 떨어져 뒤따라갔다.
상순은 유격대에 쌀을 가져가려면 다른 장사는 시간도 많이 들고 돈을 얼마 벌기 힘들어 고려 끝에 딱 이번만 약담배장사를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하여 그는 충국을 데리고 전번에 약을 사던 몇 집에 가서 약 담배를 사서 챙기어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순조로웠다.
“서라!”
상순이가 멈칫거리며 초 모자 채양 밑으로 옆으로 곁눈질해 보니 전번에 밀림 속에서 혼 빵 낸 적이 있는 날강도 놈들이었다. 전번에 혼빵 난 코큰이는 보이지 않았다. 상순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충국은 겁을 집어먹고 주춤 멈춰 섰다.
(비수를 두고 와서 어쩌지?)
“서란 말 못 들었어?!”
“우시장에서 감히 우리 어르신님들을 보고 인사도 하지 않는 놈 있어?”
“그러게 말이야.”
상순은 반쯤 몸을 돌리며 초 모자를 쓴 머리를 좀 들고 쏘아보았다.
“쳐라!”
우두머리가 고함치자 날강도 놈들은 일제히 몽둥이와 칼을 휘두르며 승냥이들처럼 사납게 덮쳐들었다. 상순은 날렵하게 옆으로 피하며 몸을 솟구쳐 바람개비처럼 원앙새발길을 날리었다.
두 놈이 거의 동시에 아랫배와 턱을 채웠다.
“앗!”
비명소리와 함께 몽둥이와 칼을 떨어뜨리며 꺼꾸러졌다.
행인들은 우시장에서 그렇게 날랜 솜씨를 본적이 없었다.
나머지 세 놈은 수적 우세를 믿고 덤벼들었다.
“얏!”
상순은 고함치며 몸을 솟구치더니 어느 결에 공중에서 뒤발로 우두머리 뒤통수를 걷어찼다.
“앗!”
우두머리는 뒤통수를 붙잡고 보기 좋게 꺼꾸러졌다.
나머지 두 졸개는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우두머리를 부축해 달아났다.
“전번에 산에서 만났던 초 모자 쓴 놈이야!”
졸개들은 달아나면서 아우성 쳤다.
약방문을 열고 내다보던 약방 주인 코큰이는 수림 속에서 당한 적이 있는지라 아예 문을 닫아걸었다.
충국은 상순의 날랜 솜씨를 처음 보고 눈이 휘 동그래졌다. 그제야 상순이 자신 있게 비수를 두고 온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상순은 손을 툭툭 털면서 강도떼들이 달아난 쪽을 쏘아보았다.
충국은 골목에서 뛰어나오면서 고함쳤다.
“형님, 참 멋진 솜씨야!”
“이 놈 벙어리야!”
그제야 충국은 실수한 것을 알고 입을 꽉 다물었다.
“중국 사람들이구나!”
“초 모자를 쓴 사람은 참 대단한 호한이야!”
행인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었다.
상순은 골목으로 피해 달아나 충국을 훈계했다.
“중국말을 하는 바람에 우린 꼬리를 밟히게 됐어.”
“어망간에 말이 훌 나갔소. 우리 중국말을 하면 조선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데도 무슨 놈의 꼬리 같은 소리요?”
“우리가 중국 사람인걸 알면 변경이거나 기차에서 시끄러워진단 말이야.”
그제야 충국은 혀를 잘못 놀린 것을 알고 뒷더수기를 긁적거리며 뒤따라갔다…
그들은 담대하게도 경성군 어느 자그마한 역에서 기차를 잡아타고 국경을 넘어 길림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기차 안에서 일본 헌병 놈 몇이 다가오더니 손님들의 몸과 짐을 일일이 검사하였다. 상순은 표독스러운 눈길로 자기를 쏘아보는 일본 놈들 앞에서 태연자약하게 등에 지었던 소금주머니를 꺼내 치약이랑 꺼내 보이었다. 일본 놈은 치약을 짜 보더니 허연 치약이 나오자 옆에 앉아 당황해 하는 충국을 쏘아 보았다.
“일어섯!’
일본 놈은 충국의 몸을 샅샅이 수색했다. 헛물을 켠 놈들은 다음 손님의 짐을 수색했다.
충국은 상순을 쳐다보면서 속으로 나다니는 머저리가 앉은 영웅보다 낫다는 말이 맞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길림에 도착하니 밤장막이 천천히 내리 드리었다. 송화강변은 싸늘한 늦가을 바람에 나무 이파리 다 떨어져 앙상하기 그지없고 초라했다.
상순이네는 쓸쓸하고 을씨년스런 거리에서 구은 감자를 사서 대충 주린 배를 달래고 나서 북산공원에 있는 절로 찾아 갔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뭘 하러 왔는가요?”
까까머리 중이 대문 옆에서 합장하며 막아섰다.
“아, 우린 외지에서 왔는데 잘데 없어 왔소.”
상순의 말에 중은 “어서 들어오오. 불쌍한 창생들이여.”라고 하며 마당을 가리켰다.
충국은 처음 왔는지라 겹겹이 늘어선 커다란 절들이 신기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었다…
그들은 절에서 새우잠을 자고 동녘 하늘이 푸릇해지자 바깥에 나가 밥값을 할 양으로 빗자루를 찾아들고 절 마당을 썩썩 쓸어놓은 후 시내로 슬금슬금 내려 왔다.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송화강변에 자리 잡은 약방과 면목 있는 약 담배장사군의 집으로 찾아다니면서 약 담배를 팔아 돈을 챙겨넣었다.
“서라!”
이때 일본 놈 몇이 호각을 불어대며 쫓아 왔다.
상순은 약 담배 짐을 충국에게 벗어주면서 “빨리 달아나라!” 하고 소리쳤다.
“형님은?”
“저놈들을 다른 데로 끌고 갈게. 북산공원 절에서 만나자.”
충국은 짐을 받아 쥐고 달아났다.
상순은 일본 놈들을 맞받아나가다가 옆 골목으로 쏜살같이 달아났다.
“초 모자를 쓴 저 놈을 잡아라!”
일본 놈들은 충국을 놔두고 상순을 뒤쫓아 갔다. 상순은 일본 놈들을 끌고 이 골목 저 골목 달아나다가 송화강변의 웬 잿빛벽돌학교 울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되돌아보니 일본 놈들이 보이지 않았다. 상순은 재 빛 기와를 얹은 학교건물을 두리번거리며 신기해했다.
“아참, 나도 이런 학교에서 공부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때 맞은편에서 한 교사가 다가왔다.
“저, 하나 물어봅시다. 이 학교 이름이 뭡니까?”
교원은 상순의 아래위를 훑어보더니 “길림시 육문중학교요.” 하고 대답하면서 지나가려고 했다.
상순은 “선생님, 이 학교를 다니자면 학비를 얼마나 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교원은 상순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학비는 많잖소. 이 학교는 유명한 항일장군도 길러낸 길림에서 유명한 학교요.”라고 말했다.
상순은 흥취가 더 가서 한걸음 다가들며 물었다.
“어느 장군 말입니까?”
그 교원은 주위를 살펴보더니 상순의 귀에 대고 “항일연군 김성주 사단장이 바로 이 학교출신이라오.”라고 대답했다.
“아, 장백산 줄기줄기 주름잡아 다니며 일본 놈들을 호되게 족친 그 김 장군님 말인가요?”
"그래요. 김 장군은 옛날 우리 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을 웅대한 포부를 지니시게 됐네. 그는 육문중학교 동창생들을 묶어세웠을뿐만 아니라 길림지구의 청년들을 조직해 항일구국 혁명도리를 널리 홍보하고 항일투쟁사업을 했죠."
상순은 육문중학교를 돌아보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교원은 육문중학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상순에게 학교 동북쪽을 가리켰다.
"저기 북산공원에 가보았소?"
"예."
"북산공원에서 김 장군은 어릴 때 동지들과 모임을 자주 갖고 항일투쟁을 포치하곤 했죠."
"예~ 그분은 지금 우리 동만일대 항일유격대를 지휘해 항일무장투쟁을 하고 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교원은 대문 안에 들어서는 일본 놈들을 눈짓하면서 “이 학교는 일본 놈들이 항상 주시하니까 다니기 퍽 어렵네.” 하고 자리를 떴다.
상순은 일본 놈들을 보자 주먹을 쥐고 학교 복도로 달아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높다란 학교 토성을 뛰어 넘어 다리야 날 살리라고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는 점심때 다 돼서야 북산공원에 올라가 아침에 나온 절로 들어갔다.
상순을 보자 충국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형님, 일본 놈들에게 붙잡힐까봐 얼마나 근심했는지 모르오?”
상순은 충국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가자, 나머지 약 담배를 팔자.”라고 하며 약 담배 짐을 메고 나섰다.
“에이, 이 장사도 숨이 한줌만 해서 어디 해먹겠소?”
충국은 중얼거리면서도 뒤따라 나섰다.
“그래,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니?”
상순의 말에 충국은 뒷덜미를 긁적거리었다.
상순은 일본 놈들이 밀짚모자를 쓴 자기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하여 의연히 밀짚모자를 꾹 눌러 쓰고 충국을 데리고 늦가을 비를 맞으면서 돌아다니며 나머지 약 담배를 다 처리하고 역 광장 쪽으로 갔다.
그때 일본 놈들이 역 광장에 늘어서는 것이었다. 총칼을 든 일본 놈들을 빼곡이 실은 자동차 한대가 덜커덕거리며 들어섰다.
운전실에서 한 일본 장교가 내려 자동차 적재함에 바라 올라갔다. 적재함의 숱한 일본 놈들이 차렷 자세로 군례를 올리며 양쪽에 벌려 서서 그 장교 놈을 호위하는 것이었다.
장교 놈은 흰 장갑을 낀 손을 홱 젓더니 유창한 한어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내 말을 좀 들으라. 우리 대일본제국은 당신들을 해치러 온 게 아니야. 우리는 대동아공영권을 행사하여 당신들을 잘 살게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자동차 아래 군중들이 여기저기서 나직이 수군거렸다.
“고양이 쥐 생각을 한다.”
그 놈은 계속 오만하게 잔뜩 늘여놓았다.
“봐라. 우리 대일본제국에서는 이 황야에 철도를 놓고 발전소를 세웠어. 당신들은 살기 얼마나 좋아졌는가? 기차를 타고 몇 천리 밖에도 순식간에 갈 수 있게 됐어. 등잔불을 버리고 대낮같이 환한 전등불 아래에서 살게 됐어. 우리 대일본제국이야 말로 당신들의 구명은인이야.”
그러자 행인들은 침을 퉤 뱉으면서 떠나가 버렸다.
일본 놈들은 가지 못하게 총칼로 억지로 막아 세웠다.
“헛참, 중국 놈들은 내 말을 잘 듣지 않아. 이걸 어쩐다?”
그 놈이 갑자기 조선말로 지껄여대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순은 머리를 천천히 들고 밀짚모자 채양 밑으로 그 놈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일본헌병대 장교 모자를 꼭 눌러쓰고 안경을 낀 우멍한 눈에 살기가 번뜩이었다. 우멍 눈과 메부리 코가 퍽 인상적이었다.
“중국 놈들은 3등 공민대우를 받으니까 우리 말을 잘 듣지 않는 게 당연합죠.”
옆에서 또 다른 놈이 조선말로 지껄여댔다.
장교는 연설할 흥이 나지 않는지 옆의 놈과 조선말로 지껄이었다.
“글쎄 말이야. 용정이나 국자가나 진수해에서 연설할 때는 달랐지. 숱한 조선 사람들이 멍해 들었던 건데.”
“한 련대장, 조선말로 연설해 보십시오. 아마 한 련대장 한어말이 순통하지 못해 그러는지. 여기도 조선 사람들이 적잖은 거 같습디다. 여기서는 함경도보다 경상도 사람들이 많으니까 남대 말을 쓰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장교 놈은 실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 건데 난 순 함경도 치어서 남대치 말을 몇마디 모르는디.”
"걸케 하면 돼요."
"그래?"
이윽고 그 놈은 마른 기침을 하더니 가래를 목주래로 꿀꺽 삼키고나서 조선말로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조선에서 들어 온 2등 공민 여러분, 우리 대일본제국에서는 고향을 떠나 이국 타향에 온 당신들을 보호하러 왔시우. 생각들 해보라니께. 우린 고향에서 손바닥만 한 밭도 없어 굶으면서 살지 않았나요? 그러나 우리 대일본제국의 덕분에 청나라 대문을 열고 역사의 비밀이 숨겨진 이 땅에 들어와 황무지를 개간하고 밭을 일궈 배불리 먹고 살게 되지 않았시우?”
상순은 밀짚모자를 꾹 눌러쓰고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한족입니까? 조선 사람입니까?”
장교 놈은 연설하다가 이쪽을 내려다보더니
“잘 물었어요. 난 종래로 내 이름을 속인 적 없는디오. 조선 명천에서 온 조선인 출신 장교 한철주 부련대장인데요. 보세요. 대일본제국을 위해 충성을 다하면 나 같은 조선 백성도 장교로 될 수 있죠. 예.”
(한철주? 그럼 할아버지하구 아버지가 늘 외우던 고향의 철천지원수 한길수의 맏아들이란 말인가?)
상순을 독기어린 눈길로 한철주를 쏘아보았다.
그 놈은 옆에 선 놈에게 귀속 말로 뭐라고 말하더니 계속 열변을 토했다.
“내 고향은 조선 함경도 명천인디오. 우리 집은 조선에서 대부자입니다. 그러나 왜서 일본 유학까지 한 내가 여기까지 왔겠어요? 건 대일본제국의 2등 공민인 우리 동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허허, 당신들은 중국 지주들의 성화에 소작 농사를 짓느라고 힘들지 않아요?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십시오. 꼭 도와주겠습니다.”
상순은 놀랐다.
(바로 그 놈이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악패지주 아들 놈새끼야! 섬나라 오랑캐 개다리 놈아! 네놈 대갈통을 까부실 테다!"
상순이 고함치고 충국의 손을 잡아채며 금방 몇 발자국 떼였을 때었다.
자동차 우에 섰던 놈이 꽥꽥 소리쳤다.
“저 밀짚모자를 쓴 놈을 잡아라!”
상순은 밀짚모자를 벗어 활 집어던졌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 몸을 숨기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달아났다.
숱한 일본 놈들은 상순과 충국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였다. 순간 역 광장은 수라장이 돼 버렸다.
송하강반에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웠다. 상순과 충국은 일본 놈들을 따돌린 후 배 촐촐해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맸다.
한 어둑시그레 한 골목에 토성안에 빨간 초롱불을 걸어 놓아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지나다가 들여다보니 계집들이 일본 놈들과 팔을 끼고 복도에서 오가는 것이 드문드문 보이었다.
“위안소야!”
상순이 멀리 피해 가려고 하는데 충국은 호기심이 부쩍 동해 멈칫거리었다.
“형님, 배고픈데 들어가 술이나 한 잔 마시고 가기요.”
“거기 어디 술 먹는 데냐? 가자.”
상순이가 충국을 마구 끌고 가려는데 맞은쪽에서 일본 헌병 놈 몇이 총칼을 빼들고 기웃거리며 오고 있었다. 상순과 충국은 그 놈들과 작은 골목에서 딱 마주 쳤기에 불시에 피할 데도 없었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에 상순은 충국을 데리고 위안소 안으로 들어가 버리었다.
“어, 이 놈들이. 어디라고 들어와?”
술을 잔뜩 처마신 한 일본 놈이 한어로 말하면서 눈깔을 부라리었다.
뜻밖에도 상순은 담대하게 “우리도 일본 제국을 위해 일하는 사내들이오.”라고 했다.
다른 일본 놈이 “에이, 여긴 종군 위안부 영업을 하네. 일본 군인 외에는 들어오지 못해.”라고 했다.
상순은 “우리 돈을 벌지 않겠소?”라고 하며 동전을 꺼내 그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자는 옆전을 손바닥에 쥐어 공중에 뿌리어 잘그락거리더니 “우리 군인만 받아서야 어디 돈을 벌겠는가? 황군을 위해 일하는 중국 놈들도 우리 위안소에 들어올 자격이 있어.”하고 말하면서 상순이네를 안방에 들여보냈다.
바깥에서 지나가던 헌병 놈들이 집안에 들어와서 주인들과 떠들어댔다.
“수상한 놈들이 오면 보고하게. 오늘 역 앞에서 수상한 반일불온분자를 놓쳤네.”
“예, 예, 예.”
놈들이 바깥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상순은 태연자약하게 호주머니에서 돈을 세여 주인한테 주면서 부탁했다.
“고운 년들로 골라 보내게나.”
“예, 예, 그러지.”
주인이 나가자 충국은 질겁해 부들부들 떨면서 상순의 팔소매를 툭툭 건드리더디 잡아 당겼다.
"너 어쩌자고 이래?"
"내 안속이 따로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계집이 들어왔다.
한복차림을 한 계집은 상순의 곁에 와 앉으며 팔을 끼더니 교태를 부리었다.
“우~메, 이 분은 조선 사람이네요. 명천을 떠난 후엔 조선 사람을 보지도 못했는데요.”
“명천?”
상순은 귀가 번쩍 뜨이었다.
“어째, 명천에서 혹시 왔어요?”
상순은 말이 빗나간 것을 알고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 아니, 난 함흥에서 왔네. 우린 한고향이군.”
그러나 계집은 “한 고향? 누가 당신캉 한고향이래? 난 있제이, 부산 출신 옥설이랑께.” 하고 종알거렸다.
상순은 어정쩡해 서 있는 다른 계집을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얘, 너 은실이 아니냐? 아니, 여기서 널 만나다니?"
은실은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이며 쿨적쿨적 울었다.
술상이 들어오자 옥설은 술을 부어 상순과 충국에게 잔을 내밀었다.
“자, 술을 드시지요. 은실을 면목 아나요?”
그녀는 멍해 앉아있는 다른 계집을 보고 “은실아, 닌도 옆 손님 권하랑께.”라고 했다.
충국의 옆에 앉은 은실은 술잔을 드리며 “자, 마셔요. 아무 말두 하지 마세요.”라고 하였다.
“그 놈은 벙어리야.”
상순은 충국에게 한어로 “벙어리 놈!” 하고 말하며 눈을 찔끔해 보이었다.
상순은 술맛이 없어 한잔 드네하고 은실을 보고 말했다.
"내 죄인이야. 그날 널 구하지 못해 안됐다."
"오빠, 부모한테 제 말을 하지 마오. 전 이젠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오."
"아니야, 네가 원해 그런거 아니잖니? 다 일본 놈들이 미쳐서 이렇게 된거야. 내 어떻게 하든 널 구해내야 하겠어."
"안 되오. 괜히 오빠까지 다치겠소."
"네 부모와 춘실이 널 얼마나 찾는지 아니?"
"그래 언니는 잘 있어요? 이쯤 해선 애를 낳았겠는데."
"그래. 아들을 낳았어."
상순은 체면을 잃고 그간 춘실의 일을 간단히 말하고 일어서려고 했다.
“일본 놈들한테 쫓기는 판이라 오래 있지 못하겠다. 내 어떻게든 여기서 널 빼내가겠어.”
그때 상순의 옆에 있던 아가씨가 상순의 손을 꼭 잡고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오빠, 저도 구해주시유, 잉?"
"그럼, 여기 위안부 몇이 있소?"
"모두 십여명 되는데요. 우린 일본군을 따라 내일이면 신경으로 해서 봉천으로 간다고 해요. 이제 어디로 갈지 몰라요. 말로는 관내로 간다고 해요. 일본 놈들이 이젠 장강이란 긴 강을 건너 중국 남방으로 나갔대요. 그래서 수천수만의 위안부들이 기차에 실려 끌려 남방으로 나간대요."
"그래? 오늘 저녁 밖에 시간이 없구나."
옥설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
"절 구해주세요. 전 경기도 인천 출신인데요. 바다가 개벌에 조개 주으러 갔다가 일본 놈들한테 잡혀 명천에 끌려갔다가 여기까지 끌려 왔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상순은 술상에 되물앉더니 술을 들어 쭉 마시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어떻게 은실과 옥설 같은 불쌍한 여동생들을 구하겠는가 궁리를 했다.
옥설은 초면이였지만 오래 갈라졌던 오빠라도 만난 듯이 계속 하소연을 했다.
“날마다 열일여덟씩 달려드는 일본 놈들한테 사지가 찢기고 물러 날 지경인데요.”
이때 만금이도 건너칸에서 건너와 끼어들었다.
“난 글쎄 열댓 살에 고향에서 아버지 말대로 산에 가서 소를 풀어 오다가 그만 일본 놈들에게 잡혔지요. 그 끼무라 국장인지 뭔지 하는 놈 때문이야. 그 놈의 졸개들이 우릴 끌어 왔잖아.”
이때 뽕녀라는 위안부도 건너와서 맞장구를 치었다.
“다 일본 놈들 때문이야. 일본 놈들이라면 이가 갈려.”
상순은 한참만에 물었다.
“오늘 일본 놈들이 적은 거 같은데. 우릴 따라 바람 쏘이는척 하다가 여기서 달아나면 안 되오?”
“쉬.”
옥설은 식지를 입술에 대더니 문 밖에 귀를 기울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달아난단 말 말아요. 저 놈들한테 들키는 날엔 목이 날아 나제이.”
만금은 눈이 데꾼해서 “어디로 뛰어? 겹겹이 총칼을 들고 지키는 걸 못 봤어? 전번에 뽕녀가 달아나다가 들키지 않았나. 일본 놈들이 뒤뜰 안에 매달고 몽둥이로 쳐 반 주검을 만들었어.” 하고 말했다.
상순은 한숨을 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늘 한대장이 올 거니까. 빨리 자리를 뜨세요. 괜히 우리 때문에 곤경을 치르겠어요.”
충국은 바늘방석에 앉은것처럼 안절부절 못하면서 상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상순은 바로 앉으면서 “거 한대장이란 누구요?” 하고 궁금해 물었다.
옥설은 술상을 한쪽으로 치우면서 “관동군 부연대장이라고 하더구먼요. 세상 나쁜 놈이야. 같은 조선 사람이 우릴 일본 놈 밑에서 짓뭉개져 죽게 만들었제이.” 하고 도도도-거리었다.
만금이도 공소했다.
“그 놈이 우릴 끌고 동만으루 되간다잖아?”
이때 복도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한 연대장, 오셨습니까?”
바깥에서 주인이 일본말로 인사하는 말이었다.
“왔어요. 범이 자기 흉을 하면 온다고 그 놈이 왔어요. 빨리 자리를 뜨세요. 저 놈은 우리가 다른 손님을 모시는 걸 보면 좋아 안 한다니까요.”
옥설의 말에 만금도 “얼른 자릴 피하세요.” 하고 방에서 빠져 나갔다.
“가자!”
상순이 충국에게 눈짓했다.
“벙어리라더니 중국말 하네.”
만금은 앵두 같은 입을 쫑긋 했다.
상순은 돈을 술상 우에 활 주어 던지고 은실의 손목을 잡아끌며 "달아나자!" 하고 황급히 뒤 창문을 열고 뜰에 뛰어 내렸다.
"은실이, 저년이, 어디로 도망쳐!"
위안소 소장놈이 고래고래 고함치며 뒤창문으로 내다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상순은 담장 밑에서 은실을 떠밀어 올리려고 악을 썼다.
땅땅!
총알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와 벽돌담장에 박혀 불꽃을 튕기었다.
상순은 뒷담을 뛰어 올라 은실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땅!
"앗!"
총알이 은실의 팔에 박혔다. 은실이 관통상을 입은 팔을 붑잡으며 담장 밑에 퉁 떨어졌다.
"은실아! 은실아!"
푱!
총알이 상순의 발부리에 날아와 박혀 불티가 튕겼다.
"빨리 도망쳐!"
충국이 담장을 뛰어넘으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위안소 소장 놈이 권총 방아쇠를 재차 당기려는 순간 상순은 몸을 날려 담장을 뛰어내려 도망쳤다.
"오빠~!"
"빠가요로(제길할)!"
담장 안에서는 은실의 울부짖음소리가 일본 소장놈의 욕지거리가 반죽해 울렸다.
상순은 담장 모서리를 잡고 되 기어오르려고 했다.
"안 돼! 총앞에서 어떻게 구한다고 그래?"
상순은 은실을 구하지 못해 맴돌이쳤다.
충국은 상순을 마구 끌고 골목길로 도망쳤다.
그들은 굽이굽이 돌아 도망치다가 뒤가 잠잠하자 멈춰서 뒤돌아보면서 헐떡거리면서 잠간 숨을 돌렸다.
"안 돼, 은실을 승냥이 우리 안에 두고 돌아갈순 없어."
상순은 북산공원에까지 도망쳐가서도 은실을 구해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와 맴돌아쳤다.
이튿날 동녘이 희붐히 밝아오자 상순은 위안소로 향했다.
"가지 말라! 너 혼자 어떻게 구한다고 그래? 우리 어째 길림에 왔니? 유격대에 쌀을 사서 가져가는게 중요하지. 은실을 구하는게 중요하냐?"
상순은 주춤 멈춰섰다가 또 터벅터벅 산아래로 내려갔다.
"안돼. 은실이 잘못 될거 같아."
상순은 기어이 산을 내려 시내에 들어갔다.
그는 골목길을 이리저리 에돌아 위안소 부근에 살금살금 접근했다. 그런데 위안소 토성을 잡고 들어가려다가 이상한 감을 느꼈다. 위안소 안에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웬 일일가?"
상순은 위험을 무릅쓰고 당장을 기어넘어갔다. 그가 위안소 벽에 기대 집안 동정을 살펴보니 휑뎅그렁했다.
"꼭 무슨 일이 있구나."
상순이 벽에 기대 앞마당쪽으로 살금살금 나갈 때였다. 만복차림의 중국인이 집안에서 나와 마당에 나왔다.
"꼼짝 말엇!"
상순은 그자의 목을 끌어안고 조이면서 물었다.
"위안부들을 어데 끌어갔어?"
"아니, 이 목을 놓소."
"바른대로 대라. 안 그럼 죽어!"
"일본 놈들이 끌고 봉천으로 갔습니다."
"뭐라고?"
"더러는 진수해라는데 가고."
"넌 무슨 놈이야?"
"난 이 집 주인이요. 일본 놈들이 내 살림집을 강점해 위안소를 꾸렸던 거요."
그자는 상순의 손이 느슨해지자 울상을 했다.
"장사, 이 목을 좀 놓고 말하기요."
상순은 중국인의 목을 활 놓아주었다.
"그래 위안부들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
"예, 예. 그 놈들이 어제 웬 청년들이 위안부를 끌고 달아나려고 한 사건이 있었소. 위안소라는게 발각되자 급히 위안부들을 끌고 이 자리를 뜬 거 같습니다."
"길림 시내에는 위안부들이 없어?"
"건 잘 모릅니다."
(은실아, 어데 있어?)
상순은 위안소 안을 몽땅 훑어보았다. 은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나와!
이때 언제 왔는지 충국이 손을 홱 휘둘렀다.
상순은 별수 없이 위안소에서 무거운 피눈물의 발을 뗐다.
"길림 역으로 가지 말자. 위험해!"
"그래."
그들은 송화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룡담산 앞의 철교를 건넜다.
룡담산 령길이 아무리 험악해도 일본 놈들 눈밑을 지나기 보다는 쉬운 것 같아 산을 넘고 들을 지나 강밀봉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때 산굽이돌이에서 짐차가 달려왔다.
"기차에 앉아 진수해로 가자."
"위험해."
"언제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 타자."
상순의 말에 충국은 포로병처럼 마지못해 뒤따랐다.
       그들은 굽인돌이에서 기차가 속도를 늦추는 기회를 타서 절벽에서 짐차 바곤에 뛰여내렸다.
       그들의 등뒤에서는 늦가을 바람이 무서운 비명을 지르면서 공포를 몰고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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