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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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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6)
2016년 07월 04일 15시 21분  조회:1880  추천:0  작성자: 김장혁




                         3. 면례
형내와 상철이 소 수레를 몰고 질척질척한 길로 걸어 나가고 근형과 최구장이 주위의 동정을 살피면서 앞뒤에서 소 수레를 옹위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북으로, 북으로 힘겹게 걸어 나아갔다.
그들은 점심때가 되자 걸으면서 주먹밥으로 대충 끼니를 에웠다. 뒤에 다시 섬나라 오랑캐들이 따라오는가 해 흘끔흘끔 되돌아보기도 했다.
오후에도 그들은 별일 없이 한 삼십 리 길을 걸었다.
서산으로부터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했다. 어둠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웠다.
그들은 길옆 마을의 한 집에 렴치를 불구하고 비비고 들어가서 쪽잠을 잤다.
그때 사달이 생겼다.
최구장 옆에서 자는 것 같던 근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놈 새끼 어디 갔을까?”
최구장은 사돈들을 보기 민망스러웠다.
“사돈들이 목숨을 걸고 나선 마당에 어디 갔어? 할배 버리고 이놈 호로 자식.”
최구장이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는 소리를 듣고 상철이 말리었다.
“돌아 오겠습지비. 너무 신경 쓰지 맙소.”
최구장은 계속 하얀 머리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면서 푸념 질을 했다.
“도대체 뭘 하러 갔을까?”
사실 근형은 어두운 장막을 헤치면서 고향 운주동으로 돌아갔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섯 살에 여읜 어머니를 홀로 고향 운주동 뒷산기슭에 모셔둔 채 만주국으로 빠져 가는 것이 속에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안 돼! 자식 된 놈으로 그럴 순 없어. 증조할아버지 유골은 사돈들이 수레로 모셔서 두만강 강변까지 가면 돼! 그새 난 엄마 유골을 파와야 하겠어. 삼촌이랑 새단이랑 일본 놈들의 범 아가리에 물리었는데 찾아보지도 않고 혼자 만주국으로 갈 순 없지.)
이젠 어둠속에서 우뚝 치솟은 기운봉 절벽이 지척에 보였다. 저 멀리 고향 운주동 마을과 산기슭을 감돌아 흐르는 고향의 강 운주하도 희읍스름하게 바라보였다. 이젠 고향의 뒷산 성산도 산발을 따라 희미하게 바라보였다. 엄마가 묻혀있는 선산을 바라보면서 그는 생각을 바꾸게 됐다.
“안 돼,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증조부를 다 만주국에 모시고 갈수 없다면서 반대할 거야. 어제 저녁에 내가 엄마산소 말을 하자 ‘어떻게 한 번에 증조부와 네 엄마를 만주국에 모시고 가겠는가’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 않는가!”
한참 걷다가 그의 머리를 탁 치는 궁리가 떠올랐다.
“옳다. 엄마를 면례해 어머니 고향 업동에 모셔 가자. 그곳엔 외가 집 선산이 있지 않는가!”
근형은 이튿날 동녘하늘이 희읍스름하게 밝아올 때에야 운주동 마을 뒤 선산발치에 이르렀다. 그는 돌 토성 안에 들어선 후 먼저 증조부 산소자리에 가서 묻어 두었던 삽을 손으로 파냈다.
“됐어!”
그는 곧추 산중턱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달려 내려갔다.
빗물에 씻긴 엄마 산소 앞에 꿇어앉은 근형은 할아버지한테서 배운 대로 목 놓아 울면서 말했다.
“엄마- 젊은 년세에 세상 떠난 엄마, 엄마 산소마저 온전히 모시지 못하는 이 불효한 도리깨아들을 용서하옵소서. 흑흑. 이 못난 자식은 엄마를 만주국에 모시고 가지 못해 외가 집 성산에 모셔가려고 합구마. 날 용서하옵소서.”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팔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고 일어나 삽으로 산소를 파재꼈다. 어쨌든 날이 완전히 밝기 전에 일을 끝내야 했다.
한참 무덤을 파다가 말고 그는 주위를 살피면서 마을 쪽으로 슬금슬금 달려 내려갔다.
절처럼 쓸쓸한 고향집에 이른 그는 울안에 다른 동정이 없자 인차 집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집안 식구들의 체취가 풍기는 집안을 눈으로 쓸어보다가 그는 바 줄을 얻어다가 안방에 놓여있던 궤를 묶어 둘러멨다. 삽짝문을 열고 바깥동정을 살펴보아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근형은 궤짝을 메고 바깥으로 살금살금 나와 걸음아 날 살려라고 뒷산으로 줄달음쳤다.
그가 산중턱에 있는 엄마 산소에 이르렀을 때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그는 궤짝을 산소 옆에 내려놓기 바쁘게 엄마 유골을 하나하나 궤안에 담으면서 중얼거렸다.
“엄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합소. 엄마 산소를 이 좋은 고향에 모시지 못하고 엄마 고향에 모셔 갑구마. 놀라지 말고 내가 모시는 대로 가깁소. 이제 엄마 고향에 엄마를 모셔가겠습구마. 외할머니랑 함께 편안히 계십소.”
그는 엄마 유골을 다 궤안에 담자 덮개를 닫고 꾸벅꾸벅 절을 아홉 번이나 올렸다. 그리고나서 그는 궤를 업고 수림 속을 꿰지르고 나가 령 길을 잡아타고 남으로 걸었다.
한참 걸으니 동녘하늘에 구름을 꿰뚫고 아침햇살이 몇가닥 내리 비추었다.
그런데 그는 온밤을 자지 못해 곤기가 몰려 오는 것을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안 돼! 일본 놈들에게 잡히기 전에 엄마를 엄마 고향에 편안히 모셔가야 해.”
근형은 머리를 흔들면서 도정신하여 운주하 강변까지 다가갔다. 그 곳은 운주동과 한 오리 떨어진데다가 키 넘는 버들 숲이 우거진 강변이여서 보통 일본 놈들의 시선이 와 닿지 않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근형은 궤를 벗어 조약돌 우에 올려놓고 누런 흙물에 세수를 했다. 순간 곤기가 사라지고 정신이 들었다. 하여 그는 누런 흙물을 둬 모금 들이마시고 궤를 업으려고 두 손을 궤를 묶은 바 줄에 걷어 넣었다.
이때 갑자기 버들 숲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날벼락 치듯이 울렸다.
“뭘 하는 놈이야? 꼼짝 말고 손 들엇!”
근형이가 머리를 돌려 피뜩 보니 일본헌병대 옷을 입은 조선 자위대 개다리 놈들이 총을 겨냥하고 버들 숲에서 뛰쳐나왔다.
“에쿠! 큰일 났구나.”
근형은 궤를 제꺽 업고 사품 치며 흐르는 강물에 철썩 뛰어들었다.
푱 푱!
총알이 날아와 궤짝에 꼽혔다.
근형은 궤에 머리를 딱 붙이고 헤엄치면서 하류 쪽으로 둥둥 떠내려갔다. 그는 놈들이 자기를 겨냥하기만 하면 물속으로 머리를 숨겼다. 어려서부터 자맥질에 이름 있는 그여서 물속에 갈아 앉아 한 일, 이분은 숨어 있을 수 있었다.
한참 후에 멀리 떠내려가서 물위로 머리를 살며시 내보내 강변 쪽을 살펴보았다. 저 먼 발치에서 놈들끼리 지껄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마 총에 맞아 물귀신이 됐을 거야!”
“그래! 물 위에 다시 대가리를 내밀지 않는구먼.”
“돌아가자! 끼무라 국장에게 유격대 한 놈을 쏴 죽였다고 보고하자.”
“허허허, 그래! 우린 상을 톡톡히 타게 됐어!”
“우린 탄약을 메고 가는 유격대원을 쏴서 물귀신을 만들었으니까. 하하하.”
근형은 궤짝에 머리를 딱 붙이고 하류 쪽으로 떠내려가다가 놈들이 저 멀리 버드나무숲으로 사라지기를 기다려 궤짝을 묶은 바 줄을 왼손으로 잡고 남쪽 대안으로 헤엄쳐 나갔다.
한식경이나 허우적거려서야 한 사품 치는 운주하를 건널 수 있었다. 궤가 강바닥에 닿자 그는 허리를 펴면서 물속에서 일어나 궤를 안고 무릎을 치면서 찰랑거리는 강물을 헤가르면서 절버덕절버덕 뭍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뭍에 이르자 먼저 궤부터 훑어보았다.
“아니, 이게 뭐야? 궤에 총구멍이 숭숭 뚫렸구나!”
그는 바삐 덮개를 열고 궤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유골을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총구멍이 뚫린 대퇴골을 보고 두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엄마! 엄마를 욕보게 한이 불효자식을 죽여 주옵소서! 엄마는 세상 떠서도 머리로 내게 날아드는 총알을 막으셨구먼요. 엄마, 저 일본 놈들에게 천벌을 내립소! 엉엉~”
푱 푱!
“서라!”
이때 갑자기 북쪽 대안에서 또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형이 머리를 홱 들어 건너다보니 금방 총을 갈기던 놈들이 쫓아왔던 것이다. 그 놈들은 돌아가려다가 시체를 보지 못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말머리를 돌려 창을 찌르는 교활한 수법을 쓴 것 같았다.
근형은 궤를 둘쳐 업고 줄행랑을 놓았다. 발밑에 총알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면서 푱 푱 박히며 모래가루가 폴싹폴싹 튕겨 올랐다. 귀전에서도 총알이 무섭게 비명을 지르면서 스쳐지나갔다.
푱 푱!
그가 논밭까지 달려갔을 때다. 총알이 날아와 머리에 쓴 삿갓마저 구멍을 뚫었다. 삿갓이 총알에 맞아 발부리에 떨어져 나뒹구는 것도 돌볼 새 없었다. 근형이 줄행랑을 놓는데  총소리는 점점 더 자지러졌다.
그는 황급히 논 둔덕 밑에 살짝 엎드렸다가 엉금엉금 기면서 궤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끌고나갔다.
개다리들은 논 둔덕 위에 드러난, 움직여가는 궤짝 모서리를 보고 왝왝 소리칠 뿐이었다. 나중에 그 놈들은 강을 헤엄쳐 건너와 추격할 엄두도 못 내고 닭을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한참 후 개다리들은 새로 놓은 운주교를 건너와서 쫓아오려고 상류 쪽으로 뛰어갔다. 그 틈을 타 근형은 일어나 또 줄행랑을 놓았다. 운주하를 건넌 다음에는 별 곡절 없었다. 하루 동안 걸어서 해질녘에는 무난히 업동에 있는 외가 집 선산에 갈수 있었다. 그는 온종일 쌀 한 알 먹지 못하였는지라 너무 배고파 외삼촌 네 집에 들렀다.
큰외삼촌 허득필과 둘째외삼촌 허명철, 그리고 이모 명실은 모두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야단쳤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큰외삼촌은 근형의 잔등에서 궤를 받아내려 놓으면서 눈이 떼꾼해졌다.
근형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외삼촌댁은 혀를 끌끌 차면서 바삐 저녁밥상을 차려 놓았다. 근형은 허기 찬 나머지 볼이 메지게 기장밥을 먹었다. 그런데 빈속에 너무 급히 밥을 먹어 밥에 취해 까무러쳐 쓰러졌다.
코를 드렁드렁 고는 근형을 보고 득필과 명철은 머리를 절절 저었다. 큰외삼촌네 맏아들 성룡과 딸애 보금은 고모사촌 형님과 오빠가 초면인지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모네 둬 살 되는 아들 차종범은 형이 죽었는가 하여 “형님, 형님!”하고 애타게 부르면서 흔들었다.
이튿날 근형은 외가집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 유골을 어머니 고향 업동 뒷산에 편안히 모셨다.
근형은 어머니 산소에 꾸벅꾸벅 절을 하고나서 무릎을 꿇고 한바탕 대성통곡 쳤다.
“엄마, 이젠 눈을 감으시고 편안히 주뭅소. 이곳엔 일본 놈들이 알지 못하는 외가 집 선산입구마. 지척에서 엄마를 모시지 못하는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줍소. 이제 만주국에 가면 언제 올지 모르겠습구마. 언젠가는 조선 강산에서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강산을 찾은 다음엔 꼭 다시 찾아와 잘 모시겠습구마. 서른 살도 안 되는 새파란 연세에 돌아가신 우리 불쌍한 엄마, 흐 흐 흑, 아이고, 불쌍한 우리 엄마, 엄마를 두고 살길을 찾아가는 이 도리깨아들을 용서해주옵소서. 다행히 외가 집이 있으니 대신 잘 모시리라고 마음 놓고 갑구마. 이제 기회만 있으면 고향에 와서 엄마를 찾아 뵙겠습구마. 엄마! 흑흑흑.”
큰외삼촌 허두필이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치는 근형을 일궈 세웠다.
“됐다. 우리가 네 엄마 산소를 잘 보살필게. 근심하지 말고 떠나거라.”
근형은 이후에 찾아와도 엄마 산소를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비석처럼 모와 날이 선 둬자 길이 되는 바위 돌을 들어다가 산소 앞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산소자리를 잘 기억해두려는 듯이 주위를 죽 돌아보았다. 업동 북산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외가 집 선산은 정말 풍수가 좋은 명당자리였다.
근형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슴에서 큰 맷돌을 내려놓은 듯이 시름은 놓은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그는 외가 집에 돌아가 외삼촌댁에게서 주먹밥을 한주머니나 얻어가지고 그 길로 북쪽을 향해 떠났다.
작별하는 외삼촌은 눈물을 머금고 어깨를 들먹이는 근형을 안고 어루만지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근심 말고 떠나거라. 종종 인편에 소식이나마 전해 달라.”
“삼촌네도 여기 맞갖잖으면 만주국에 들어오오. 우린 아마 명옥이 시집간 함흥촌에 가서 살 거 같소.”
“응, 그래. 우리도 조만간에 일본 놈들의 성화에 여기서 살 것 같지 못하다. 그때 함흥촌에 가든지 하지. 일본 놈들을 조심해 잘 가거라.”
근형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머니 고향마을을 떠났다.
저 마을 동구어귀에서 외가 집 식구들은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되돌아보는 근형에게 끊임없이 손을 저었다.
      
           4.친일주구의 끝장


       근형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애타게 기다릴 것 같아 바지가랭이에 휘파람소리 나게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는 일본 놈들이 지키는 운주교를 건널 엄두도 내지 못하고 황급히 사품 치는 운주하에 뛰어들었다. 한참 소용돌이치는 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개발헤엄을 쳐서야 겨우 운주하를 건넜다.
닭 알만큼 한 조약돌을 보는 순간 그의 뇌리에는 돌팔매로 일본 놈들을 겁 먹여 도망치게 하던 생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갔다.
(옳지, 일본 놈 새끼들이 달려들면 조약돌로 대갈통을 까버리고 도망치자. 그 놈들은 돌멩이만 날아가면 유격대가 왔는가고 질겁하지 않는가. 허허허. 그게 묘수로다.)
그도 돌팔매질에 재미들었다.
(진달래 고모만큼 돌팔매질 하면 얼마나 좋겠니. 흥!)
그가 한창 조약돌을 주어 호주머니에 넣을 때었다. 갑자기 검둥이가 뛰어와 끼깅거리면서 앞다리를 들고 주인의 품에 매달리며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검둥이야, 넌 어데 갔다가 불쑥 나타났니?”
근형은 큰 어선을 만난 것 같았다.
검둥이는 주인의 말을 알아들었던지 앞에서 달리다가 주춤 멈춰서더니 되돌아보면서 꼬리를 휘휘 저었다.
근형은 다가가 검둥이의 대가리를 툭툭 다독여 주고 나서 조약돌을 넣어서 묵직한 자기 젖은 옷을 검둥이 잔등에 달아맸다. 그리고 양손에 닭 알만큼 한 조약돌을 서너 개씩 골라 쥐고 뒷산으로 씨엉씨엉 발걸음을 다그쳤다.
그가 검둥이를 앞세우고 운주동 뒷산기슭에 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검둥이가 왕왕 짖어댔다.
근형이 숲속에 납작 엎드려 길을 내려다보니 말발굽소리가 어지럽게 박근해왔다.
뒤이어 털 한 모숨이가 한길수가와 수길 등 놈들을 한 무리 이끌고 뛰어왔다. 분명 놈들은 운주하를 건넌 근형을 발견한 것이 틀림없었다.
“에크, 저놈들을 어쩌느냐?”
근형이 중얼거리는데 검둥이가 뒤에 대고 “왕왕!”짖어댔다.
근형이 황급히 몸을 홱 틀며 돌아섰다.
뒤에서 외눈깔백이 야마모도 소장 놈과 코 수염 쟁이 끼무라 국장 놈이 말을 타고 시퍼런 군도를 빼들고 숱한 졸개들을 휘몰아 덮쳐왔다.
근형은 숱한 놈들을 당할 수 없는지라 검둥이를 보고 짖지 말라고 주둥이를 틀어막고 나무숲속에 몸을 숨겼다.
“금방 개 짖는 소리를 들었지? 분명 이 뒷산에 올랐어! 샅샅이 뒤져!”
끼무라 국장 놈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쳤다.
근형은 숨을 딱 죽이고 슬슬 기여 머루덤불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때 한길수란 놈이 외눈깔을 해가지고서도 권총을 뽑아들고 두리번거리면서 이쪽으로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검둥이가 한길수를 보고 벌떡 일어나면서 짖으려고 했다. 근형이 검둥이의 주둥이를 꽉 쥐고 눌러 앉혔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푱! 푱!
한길수는 머루덤불 속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총을 쏘았다.
“유격대 놈들이 여기 머루덤불속에 있다! 붙잡아라!”
근형은 들킨 것을 알고 몸을 일으키면서 조약돌을 날렸다.
딱!
면바로 외눈깔배기 한길수놈의 낯빤대기에 맞았다.
“앗!”
한길수놈은 말 잔등에서 퉁 떨어졌다. 질겁한 그 놈은 말을 버린 채 도망치면서 되돌아보지도 않고 뒤에 대고 헛총을 갈겼다.
졸개들도 다른 머루넝쿨에 대고 헛총을 갈기면서 덮쳐들 엄두도 못 내었다. 그 새 백마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뒤쪽에서 야마모도소장과 끼무라 국장의 무리가 덮쳐왔다.
한길수는 주춤 멈춰 서서 다시 이쪽 머루 덤불 쪽을 권총으로 가리켰다.
“저 머루덤불속에 있습니다.”
끼무라는 한길수를 쏘아보면서 욕지거리를 했다.
“한 대장, 유격대 저 머루덤불속에 있는데 왜 이쪽으로 도망쳤쏘까?”
끼무라 국장 놈은 시퍼런 군도로 머루덤불 쪽을 가리키면서 고함쳤다.
“샤게끼(사격)!”
땅! 땅! 땅!
물샐 틈 없이 날아간 총알에 한 오십 미터 떨어진 곳에 덮여있는 머루넝쿨이 마구 끊어져 내려앉고 잎사귀가 튕겨났다.
“깨갱!”
개 비명소리가 들리었다.
“도쯔게끼(돌격)!”
끼무라 국장이 군도를 휘두르면서 명령했다. 놈들은 일제히 머루넝쿨 쪽으로 덮쳐갔다. 그런데 머루넝쿨을 샅샅이 뒤져도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웬 일인가?”
끼무라 국장은 한길수를 쏘아보면서 투덜거렸다.
“당신 눈에 똥이 폈쏘까? 머루넝쿨속의 개를 보고서도 유격대인가고 소리쳤쏘까?”
"아니, 분명 머루덤불 속에서 인기척이 났는뎁쇼."
"헛소릴 작작 쳐! 금방 개새끼 깨갱거리는 소릴 듣지 못했어? 눈이 멀었지. 귓구멍도 멨어?"
끼무라의 비난소리에 한길수는 피 묻은 볼을 가리키면서 자기 판단을 고집했다.
“아닙니다. 끼무라 국장님, 이걸 보십시오. 난 분명 유격대가 뿌린 돌멩이에 맞았습니다.”
끼무라 국장은 졸개가 머루넝쿨 속에서 들춰낸 피 묻은 조약돌 서너 개를 가져오라고 하여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는 오른손으로 코 수염을 매만지더니 혀를 날름거렸다.
“음, 소까(그래). 분명 유격대야! 그 놈은 총에 맞았어! 빨리 수색해!”
야마모도 소장 놈이 옆에서 의문스러워했다.
“금방 개가 깨갱거리는 소리 들렸소. 혹시 개가 총에 맞지 않았을까? 개가 버스럭거리는 걸 가지고 한 대장이 놀라 소리친 게 아닌가?”
끼무라 국장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고함쳤다.
“나니(뭣이)? 아니야, 아니? 개가 돌멩이를 우리 한 대장한테 뿌릴 수 있쏘까? 한 대장 백마도 감쪽같이 잃어졌어! 개가 백마를 타고 달아날 수 있쏘까? 유격대는 백마를 타고 달아났어! 잔말 말고 빨랑빨랑 이 산을 샅샅이 수색해!”
야마모도도 머리를 끄덕였다. 놈들은 머루 숲을 꿰뚫고 나가 산중턱 수림 속을 수색하면서 나갔다.
사실 근형은 한길수가 말을 버리고 달아나는 순간 백마를 제꺽 타고 수림 속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런데 검둥이가 뒤에서 주인을 엄호하느라고 머루덩쿨 속에서 조약돌주머니를 멘 채 맴돌면서 뒤에서 쫓아오는 놈이 있으면 물어 메치려고 하다가 총에 엉덩이를 맞았던 것이다.
한참 백마를 타고 달리던 근형이 뒤를 흘끔 보니 검둥이가 따라 달려올 뿐 놈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말에서 내려 검둥이의 대가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검둥이의 엉덩이 털에서 피가 낭자하게 흐른 것을 발견했다.
“아니, 이게 웬 일이냐?”
근형이가 살펴보니 검둥이가 엉덩이에 총알을 빗맞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다행히 조약돌을 호주머니에 넣은 웃옷을 달아맸기에 총알이 조약돌에 맞으면서 빗맞은 것 같았다.
“에이, 너를 하마터면 목숨 잃게 할번 했구나.”
그는 매부 상순에게서 배운 대로 괴춤을 까고 검둥이의 엉덩이에 대고 소변을 보았다.
“검둥이야, 내 매부 알려준 약이란다. 오줌은 지혈시키고 소염시킨단다.”
검둥이는 꼬리를 휘휘 저으면서 주인의 소변을 몸에 받았다.
일을 마치자 근형은 검둥이를 안고 말 잔등에 뛰어올랐다.
“저놈이야! 백마를 탄 저 놈을 나포햇!”
뒤를 보니 한길수무리가 추격해오고 있었다. 근형은 검둥이를 안은 채 고삐로 말 잔등을 힘차게 갈겼다.
“쨔!”
백마는 주인을 갈았지만 말을 잘 들었다. 백마는 네 굽을 안고 산기슭 수림 속으로 달아 들어갔다.
“땅!”
“땅!”
갑자기 뒤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렸다. 함성소리와 비명소리도 들리었다. 근형이 뒤를 돌아다보니 산기슭을 에돌아간 수림 속 길에 한길수의 무리가 보이지 않았다.
(웬 일일까?)
근형이 의아해하면서 수림 속 오솔길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였다.
앞에서 달리던 검둥이가 근형의 팔소매를 물고 끼깅거리다가 산중턱 수림 속을 향해 “왕왕!” 짖는 것이었다.
“이 놈 개새끼, 갈 길이 바쁜데 왜 이래?”
손바닥으로 대가리를 슬쩍 때려도 깨갱거리면서도 막무가내였다.
“무슨 일이 있어?”
검둥이는 몸뚱이를 꿈지럭거리다가 근형의 팔에서 빠져나가 땅바닥에 풀썩 뛰어내리더니 수림 속을 향해 “왕왕!” 짖어댔다. 그러고는 꼬리를 휘휘 저으면서 근형을 쳐다보았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근형은 놈들을 멀리 따돌린 것을 보고 검둥이가 달리는 쪽으로 백마를 타고 따라 뛰어갔다. 한참 뒤따라가 보니 웬걸 그 곳에 셋째삼촌과 넷째삼촌 그리고 새단이 피 못이 된 채 쓰러져 있지 않겠는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새단이!”
근형은 궤를 내리워 놓고 새단의 어깨를 쥐여 흔들었다.
그 소리에 경민과 경욱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으흐흑, 근형이구나. 네가 어떻게?”
넷째 삼촌 경민이가 끊어진 오른손을 잡고 가까스로 일어나 앉으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삼촌, 어떻게 돼 이런 수림 속에 누워 있습둥?”
넷째삼촌 경욱이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앞질러 대답했다.
“어제 저녁에 진달래랑 유격대들이 우리를 구해냈다. 야마모도랑 우리를 서대문형무소에 끌어가라고 헌병 놈들에게 명령하더라. 우리는 뛸 데 없이 죽었구나 하면서 며칠 전에 남쪽으로 정처 없이 끌리어갔다. 그런데 업동을 지나 마천령을 넘을 때 난데없이 돌멩이가 쉭쉭 날아와서 헌병 놈들이 넷이나 쓰러지지 않겠느냐? 뒤이어 길 양옆의 수림 속으로부터 십여 명 말을 탄 복면괴한들이 덮쳐 나와 나머지 두 놈을 비수로 단칼에 목을 썩뚝 베 버렸지. 복면한 검정헝겊을 푼걸 보니 진달래중대장이랑 최동욱 중대장이랑 데리고 온 항일유격대 대원들이 아니겠느냐? 그들에게 구원돼 어제 밤으로 여기까지 왔단다.”
“그래 진달래고모랑 어데 있소?”
근형이 묻자 경욱은 “산 아래로 우리 식구들을 데리러 갔다. 그들은 우리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장백산으로 들어가려다가 말고 말머리를 돌려 마천령 부근에 매복해있다가 우리를 구원하였단다.”라고 대답했다.
이때 경민이가 산 아래를 가리키면서 “저기 온다! 진달래 여동생이랑 온다.”
산 아래를 보니 진달래랑 셋째삼촌네 맏아들 근활(봉문)이랑 넷째삼촌네 근호랑 데리고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박한 한길수란 놈을 말에 태워가지고 스적스적 끌고 오지 않겠는가.
근형은 한길수란 놈을 보자 눈에 불티가 튕기었다.
“작은고모, 저놈을 당장 처단하오. 저놈한테 아까운 말을 태울게 있소?”
근형은 검둥이 잔등에 처맨 옷에서 조약돌을 꺼내 연속 한길수놈에게 뿌렸다.
딱! 딱!
한길수 놈은 조약돌에 대갈통을 맞고 “아이쿠!” 비명을 지르면서 말 잔등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진달래는 유격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저 섬나라 오랑캐 개다리 놈을 나무에 묶어라!”
유격대 대원들은 피투성이로 된 한길수 놈을 피나무에 묶어놓았다.
진달래는 모젤권총을 빼들고 한길수 놈한테로 다가갔다.
“늙다리 개다리 놈아, 네 놈도 조선 사람인데 왜 내 나라 강토를 짓밟는 일본 놈들의 개가 돼 우리 조선 형제자매들을 못살게 구는 거냐? 네 놈의 죄악은 만 번 죽어도 마땅해!”
진달래가 모젤권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기려 할 때였다.
한길수 놈이 피범벅이 된 우멍한 눈을 가슴츠레 뜨고 지껄였다.
“총만 쏴 봐라! 끼무라 국장과 야마모도가 당장 뛰어와 네 놈들을 한 놈도 없이 소멸해버릴거야!”
진달래는 권총 끝으로 한길수 놈의 턱을 쳐들고 암범처럼 호통 쳤다.
“끼무라 놈 보고 오라고 해. 몽땅 네 놈처럼 죽여 버릴 테다! 금방 보았지? 산기슭 수림 속 길에서 그 놈들이 우리 용맹한 장백산 항일유격대에 혼쭐난 걸. 우멍한 개 눈깔로 똑똑히 보았지? 그 놈들이 도망치지만 않았으면 우리 돌멩이에 몽땅 죽었을 게다!”
원래 진달래랑 경민과 경욱의 식솔을 데리고 산기슭을 에돌아 빠진 수림 속 길에서 금방 산에 올랐을 때였다.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앞에서 근형이가 개를 안은 채 말을 타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뒤에서 한길수와 끼무라 국장 놈이 말을 탄 한 무리 일본 헌병들과 개다리들을 끌고 뒤쫓아 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달래 중대장은 최동욱 중대장과 함께 산기슭 수림 속에 숨었다가 일본 놈들과 한길수 등 개다리들에게 매복습격 전을 들이댔던 것이다. 그들은 제일 먼저 달려오던 한길수 놈에게 오라를 뿌려 목을 걸어 생포했다. 최동욱 중대장은 유격대원들을 지휘해 일제히 보총과 권총으로 사격해 뒤따르던 놈들을 대여섯 놈 살상했다. 특히 진달래 중대장이 뿌린 조약돌에 몇 놈이 보기 좋게 대갈통이 터졌다. 한길수 놈도 오라를 받고서도 도망치려다가 진달래가 날린 조약돌에 얻어맞고 쓰러졌다가 유격대원들에게 생포됐던 것이다.
진달래 중대장은 권총으로 한길수를 겨누었다.
“오늘 우리는 일본 놈들에게 수난당한 백의동포들을 대표하여 네놈을 처단한다!”
근형이 검둥이의 잔등에 매단 옷에서 큼직한 조약돌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작은고모, 아까운 총알을 쓸게 있소. 아예 조약돌로 이 놈의 대가리를 박산내기요.”
“좋아!”
진달래는 권총을 옆구리에 차고 조약돌을 쥐여 한길수의 대가리에 뿌렸다.
딱!
“앗!”
한길수는 비명을 질렀다.
“이건 네놈에게 수난당한 우리 큰아버지랑 새단 조카랑 원수를 갚는 게다.”
이번에는 근형이 조약돌을 뿌렸다.
딱!
“아이고! 날 더 욕보이지 말고 총을 놔라!”
조약돌에 턱을 빗맞은 한길수가 애걸복걸했다.
“네 놈을 그렇게 쉽게 죽게 할 순 없어!”
경민과 경욱 그리고 새단이랑 조약돌을 쥐고 우르르 쓸어왔다. 근활과 근호도 돌멩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딱! 딱! 딱 따 닥! 따다닥!
숱한 조약돌이 원한을 안고 한길수에게로 사납게 날아갔다. 한길수의 대가리는 성한 곳이 없었다. 나무 아래에는 한길수의 더러운 피가 낭자하였고 피 묻은 조약돌이 널려 있었다. 이젠 비명소리도 없고 피가 낭자한 한길수 놈의 대가리도 앞으로 축 늘어뜨려졌다. 진달래는 숨진 한길수 놈을 나무에 비끌어 매 놓은 채 말 잔등에 올라탔다.
한길수 놈을 처단한 후 진달래가 거느린 유격대는 네 개 소조로 나뉘어 최구장의 일가식솔들을 만주국으로 호송하는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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