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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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합군과 토공대
2010년 01월 29일 12시 55분  조회:3874  추천:47  작성자: 김송죽
 

                  련합군과 토공대

                                                      김송죽

   

   이광인선생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제의를 수용하여 일떠세운 한족총련합회를 가장 반동적이 라면서 그것마저도 김좌진의 죄악으로 치부하는데 아무럼 그럴수가 있는가? 나는 우선 이광인선생이 그때의 한족총련합회라는 무슨 조직이였다는것을 알기나하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던 그 조직의 “대강”을 연구해 보면 그것이 반동인가 아닌가를 분별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강”은 아마 소학생앞에 읽어도 알아볼것 같다. 그 어떤 정치를 목적해서 세운 조직인 것이 아니라 주도가 대중의 생(生)을 위하는 교민단합의 조직이였던 것이다. 제 교포의 사활(死活)을 지극히 념려해 생겨난 그 조직자체가 어쩌면 반동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것이다. 조직자체에는 절대 죄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조직에서 주요인물의 하나였던 김종진이 반공사상이 깊어 호의로 찾아온 사람의 성의도 몰라봐주고 되려 비리성적으로 적의를 품으면서 악의적으로 조폭하게 나와서 일을 그르친데 있는건데 죽이겠거든(물론 죽였만) 그나 죽일것이지 왜 그런 사람과 결탁했느냐고 트집잡고 김좌진마저 죽일대상으로 점을 찍고 생명을 끝끝내 앗아낸것은 자랑할바가 못된다. 그것은 잘된일 아니다. 그를 찾아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든지 아니면 항의라도 해봤더면 좋지 않았을가? 워낙은 호의를 품고 찾아간것이 김종진으로 하여 적의로 변한게 아니고 뭔가. 한데도 김좐진을 만나 담화한번 없이, 유감한마디없이 무작정 목숨부터 앗아낸 것은 생각이 짧고 요동치는 감정을 공제못한, 경험도 자격도 너무나 미숙했던ㅡ조선산당(화요파)의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수 없다. 그같은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정하지 않으면 종당에는 남을 해치고는 자작지얼(自作之孼)의 경지에 이르기 마련인 것이다. 리광인선생은 이만한 상식도 없이 반동이요 뭐요 허투루 평하니 유감그럽다.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면 그 한족총련합회의 대강을 내놓고 분석하면서 조목조목 “죄증”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이 신사다운 학자풍이라고 본다. 내가 학자도 아닌 주제에 권념하니 어리석다고 여기겠지만.

 

   다음 또 한가지. 이광인선생은 김좌진이 중국 구국과 손잡았던 일을 끄집어내여 그것이 마치 죈것 처럼 피력하는데 력사지식과 자격을 소유한 교수님이겠는데 어쩌면?......

  간단히 그때의 형편을 돌이켜보고 시비를 하겠거든 계속하기바란다.

 

  김좌진은 시종 자기의 군사력을 이끌고 항전을 계속하려했다. 그런데 적에 비해 력량이 부족해 출격작전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차 마침내 1928년 5월에 중국 구국군 13군사령 양우일(楊宇一)이 참모 손림(孫林)을 김좌진장군에게 특파하여 그를 초청했던것이다.

   김좌진 장군은 바라던 일이라 흔연히 나섯다 그는 왕청현 석두하자에 있는 13군총사령 양우일을 만나 그와 공동대적의 필요성을 진진하게 론했다. 그리고 중국국민당 만주공작책임자인 공패성(貢沛誠), 그리고 또 23,000여명의 기병과 보병을 거느리고있는 악유준(岳維峻), 역시 그와 비슷한 병력을 보유하고있는 사가헌(史可軒) 등과도 한자리에 만나서 조중련합전선을 구축할 협의를 했다.

   이번 중국측과 련계를 달아줌에는 유일당건립에 힘쓰고있는 연병호(延秉昊)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중국정계의 유력자며 또한 재벌이기도 한 공패성은 중국정부의 요로(要路)에 밀사를 보내여 이번 일을 알리는 동시에 장작림이 어떤 태도를 취하더라도 이 공동의 작전을 인증하고 원조하라는 청원을 하는 한편 자기의 것과 후원가들의 재력을 합해 왜적토벌군의 무력을 갖추기에 있는 힘을 다하였다. (지금돈 250만딸러가량.)

   이번 <<韓中聯合軍>>을 조직하여 독립군은 표면으로는 중국중앙군 제8군이라는 군호를 사용하기로 하고 군자금 400만원과 기타 무장의 조달을 받기로했다.

   그런데 예상밖의 일에 그만 뒤틀어지고말았다. 얼마안가서 장작림이 이 일을 알고는 즉시 정예부대를 출동하여 준비중에 있던 토벌군의 무장을 해제하는 한편 악유준과 사가헌 두 장군을 체포하였을뿐만아니라 공패성은 주동분자라하여 즉석 3년판결을 내려 감옥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거사는 요람람에서 그만 요절당하고 만 것이다. 과연 맹랑한 일이였다!


   국공량당도 한때 손잡고 구국항일을 한적이 있다. 리광인선생은 그래 중공력사의 그 한단락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치는가? 그때는 중공의 결책이 틀린것이였다고 비난하지야 않겠지? 1928년, 그때 조선공산당(화요파)가 그래 무슨 항일무장부대를 갖추고있었는가? 무력항쟁을 하여야 할 때였는데 그네들이 그래 김좌진의 독립군과 련합군을 결성해 손잡고 대적할 조건이나 갖추고있었단말이다? 나는 9.18사변이 일어나 일제가 동북을 침략해서야 그들은 중국공산당으로 전향해 피어린 항일전을 한 것으로 알고있다. 그것은 옳고 잘된일로 본다. 하지만 김좌진이 중국 구국군과 손잡고 련합군을 조직했다해서 그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살해했다면 틀린것이다. 자기들은 원쑤와 그렇게 싸워내지도 못하면서 항일에 나선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은 것은 대단한 착오고 죄악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량환준의 증면만 믿고 그것을 잘된 영웅행동으로 부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독립군의 “토공대”가 공상당을 마구살해했다는데 그건 대체 어느때의 일이였는가? 김좌진이 대체 조선공산당과 무슨 원쑤진 일이 있어서 제가 거느리는 독립군을 “토공대”로까지 편성해 토벌에 나섯단말인가? 나는 “한국독립군사”를 읽어보았는데 거기에는 김좌진이 살았을적에 자기가 지휘하는 독립군으로 “토공대”를 조직해 공산당토벌에 나섯다는 것이 없었다. 력사교수인 이선생은 어느문헌을 보고 그러는지? 혹시 애비가 죽자 등단한 동북군벌 장항량이 <<中韓共産黨取締法>>을 제정해 공산당사람들을 “토벌”할때의 일을 념두에 두고 말하는건 아닌지? 그걸보고 말하면야 옳지. 남대관과 백남준이를 골간으로 하는 한패의 “토공대”대가 어느날 비밀리에 만주 <<공비토벌대장>>인 길림성 군법처장 왕계(王啓)를 찾아 떠나서 확실히 동족을 살해하는 죄악의 길을 걸은적이 있으니까. 한데 그것은 김좌진이 살해된 후의 일이다. 독립군인 고강산(高崗山)은 김좌진장군이 피살된 이틑날로 복수를 단행코저 “독립군모험대”를 조직해갖고 나섯다. 중광단이 조직되였던 그때로부터 대한군정회, 북로군정서를 거쳐 시종 김좌진을 적극돕고 따르었던 이 대종교도는 구천에 간 장군의 원혼을 부르면서 워쑤를 갚고야말리라 맹세했던 것이다. 내보게는 이광인 선생은 지금 사후(死後)에 발생한 일마저 끌어다가 김좌진을 죽여야만했던 리유로 만드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하는건 신사적이되는 같지 않다. 아무리봐야 도리에 맞지 않으니까. 시비할줄을 아는 것 같은 선생이 어쩌면?..... 력사를 연구하는 사학자의 각도에서 한번다시 사색하기바란다. 왜서 전에는 없었던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김좌진장군이 피살되여서는 극심하게 발생했는가를. 이에 대해 매일 력사롸 씨름하는 리광인선생은 그래 생각해보지 않았단말인가? 미처못했다면 지급이라도 생각해보는게 좋겠다. 자작지얼(自作之孼)이라는 어구가 있는데 한번 사전도 뒤져볼 것을 권고하는바이다.


                                                          2010.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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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두만강
날자:2010-01-29 19:05:42
김송죽 어른님~~어른님이나 저나 다가 력사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공동한 언어가 있고, 또 직접 만남의 인연이 없으면서도 존경해 왔습니다. 지금도 이는 여전합니다. 시비는 시비고~~혼동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기회가 있으면 찾아 뵙고, 허심탄회하게 배울 것입니다. 저는 진실을 인품의 기본으로 생각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신민부와 한족총련합회에 대해서도 전적 부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반일기치는 진정 우러릅니다. 유감은 반일이 아니라 반공기치를 내든 그들입니다. 신민부, 한족총련합회 견해도 저 일개인의 견해가 아닙니다. 이는 민족출판사에 의해 1995년 12월에 출판된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2--불씨를 보시면 잘 알수가 있습니다. 불씨의 이책 \"민족주의계렬의 반일투쟁\"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여 있지요. 이책의 주필이 우리 중국조선족 력사분야의 최고권위이신 박창욱교수이십니다. 또, 신민부나 한족총련합회 부분 글을 쓴 이도 김춘선박사, 교수로서 현재 연변력사학회 회장입니다. 우리 학계의 견해이니 참조하셨으면 하구요. 또, 조공당에 의한 김좌진장군 암살이 잘되였다고 보지 않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기에 저는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대 력사비극이라고 하는 겁니다. 조공당이 너무 과격하게 나온 점이 유감스럽습니다. 이를 지적하면서 김좌진장군도 그렇습니다. 왜서 중국구국군 등과는 손을 잡으려 하면서도 조공당 등 사회주의 계렬하고는 그렇지 못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김좌진장군의 력사적 오유가 아닐가요?! 발생하지 말아야 할 비극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요?! 오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중국구국군과 손을 잡은게 잘못이고, 이것이 암살을 초래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어른님이 조공당이 김장군을 죽였는데 토공대가 그렇게 나서는게 무엇이 잘못되였느냐 하는 식으로 나오니 우리 피어린 항일사를 눈물로 쓰는 우리로서는 접수되지 않지요. 또 하나는 리강훈 옹의 말을 철칙으로 받아 들이니 리해가 안가는 거지요. 리강훈 옹은 반공에 앞장선, 환영받지 못할 인물입니다. 씀이 길어지는것 같군요. 다시 다시 진심을 터놓으면, 강경애는 이 암살과 무관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조선족사회에 광복전 우리 문학을 연구하는 분들이 여러분인데, 강경애에 대해서 정말 깊이있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강경애연구자 몇몇 박사, 교수들이 모두 저의 친구들입니다. 저도 강경애작가에 대해서 일가견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연구를 믿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번 시비에 아이디로 진실님이 등장하지만, 저도 아직 진실님을 모르고 있지만 제가 보건대 김좌진장군 암살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아는 분입니다. 우선 자제하고, 진실님께서 배울바가 큽니다. 더우기 박상실이 리복림이라는 이 점은 우리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는 점입니다. 이를 저는 아직 잘 모르기에 저의 글에 박상실이 리복림이라고 아직 쓰지는 않습니다. 저는 서로 존경의 의미에서 절대 감정적으로 나오지 않겠으니 서로가 존경하며 우리 력사에서 헤염쳐 봅시다. 저는 이번 선생의 거센 반론 출현에 가담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강경애 문제나 김좌진장군 암살 면에서 어른님이 그런 주장으로 나서니 저도 나서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저희들이 가만 있으면 흥, 저놈들이 찍소리도 못하는 걸 보면 강경애는 그런 년이 옳구나 여길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미 글들도 더러 올리고, 새로 글들을 써서 올리게 된거지요. 시비는 시비고, 앞으로 서로 거래하며 지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리광인 드림, 머나먼 강남땅에서
3   작성자 : 두만강
날자:2010-01-29 15:55:41
김송죽어른님, 력사공부를 하셨다는 분이, 김좌진장군의 피살에 대해선 몰라도 너무도 모르십니다. 우리도 김좌진장군의 항일명장임을 충분히 긍정합니다. 하면서도 장군의 철저한 반공을 력사사실 그대로 지적합니다~~
2   작성자 : 두만강
날자:2010-01-29 15:45:52
김송죽어른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어른님과는 더 할말이 없어요. 그래, 하늘에 사무치는 토공대의 죄악을 그냥 싸고 돌 타산입니까? 김좌진장군의 반공을 싸고 돌 타산입니까? 아직까지고 저는 분촌을 지켜 왔습니다. 이강훈 옹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하세요? 어른님이 이 모양이면 이강훈 옹의 철저한 반공을 온 천하에 드러낼 것입니다~~~~~
1   작성자 : 진실
날자:2010-01-29 14:53:15
이제 김좌진장군에 대하여 몇가지 정의를 어렵지 않게 내릴수 있다. 무엇보다도 김좌진장군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김좌진장군이 반공주의자가 되면, 오늘날 김좌진장군에 대하여 연구한다는 사람들속에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김좌진장군 본인에게는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반공했다는 사실을 덮어감추므로써 한 민족진영내의 종파싸움에서 암해당한 것으로 추론하는 것은 당당하고 떳떳하게 반공했던 김좌진장군을 더 억울하게 만들수 있다. 김좌진장군 본인도 결코 이렇게 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현재까지 발굴된 만주의 항일투쟁사 자료를 종합하면 김좌진장군의 청산리전투는, 단지 청산리에서 있었던 전투만을 가지고 말해서는 안된다. 홍범도의 봉오동전투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당시의 반일투쟁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그리고 세상에 알려졌던 지명도로 볼 때도 홍범도는 모든 면에서 김좌진의 대선배였다.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웃기는 일일지 몰라도 만주의 독립군 제 1호를 손꼽으라면, 1920년대에 있어서 홍범도의 앞에 설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머지 문제는 김좌진장군을 누가 사살했느냐는 문제인데, 당시 간도에서 창작활동을 진행한바 있었던 여류작가 강경애의 동거남과 그의 부하 박상실에 대하여 주장하던 한국의 대부분 역사 학자들이 이미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은 문제의 박상실에 대하여 그의 자초지종을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상실이 바로 리복림이라는 사실은 생전에 회고담을 남기었던, 지희겸 (조선공산당 엠엘파, 중국공산당 주하중심현위 제1임 서기) 의 녹음테프를 보관하고 있었던 그의 딸 (연변 농학원)이 이 자료를 관련자들에게 공개하면서, 보다 자세하게 리복림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당시 아성에서 할빈으로 가는 길에 나포된 것으로 보도되었던 조선청년 박상실은 바로 당시 아성에서 할빈으로 가다가 기차에서 호로군의 몸 수색에 걸려 다부산즈속에서 권총이 나오는 바람에 체포되었던 리복림이라는 사실을 재차 고증하게 되었다. 이 시간은 리복림과 갑자기 연계가 두절된 상태에서 리복림을 찾고 있던 중에 그가 호로군사령부에 잡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회고한 양환준의 회고와도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특히 함부로 왈가불가할수 없는 것은 주하의 흑룡궁에서 지하사업을 하였던 허형식 (항일연군 제3군 후임 군장, 제 3로군 총참모장)과 당시 주하중심현위 비서장으로 있었던 김책의 사이에서 교통원으로 일했던 양재문 (이미 사망, 현재 가목사시 열사능원에 안장되어 있음)은 허형식과 친하게 지냈으며, 리복림은 영안에서 김좌진을 저격한뒤 김좌진의 사람들이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바람에 한동안 아성의 횡산저자에 와서 허형식의 집에 숨어지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 양재문은 이런 사실을 누구에게 들었겠는가? 양재문의 신분으로 볼때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직접 허형식과 리복림 이 두사람에게서 들었을수 밖에 없다. 당사 자료로써 추적이 가능한 허형식의 중국공산당 입당 소개인을 북한에서는 김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에서는 최용건이 아니면 바로 리복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않다. 김책이나 최용건, 허형식, 리복림, 이들이 당시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하였던 조선인들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 양재문의 회고담을 의심하지 못한다. 그리고 리연록장군의 회고록 \"지나간 년대\"에서도 리연록장군이 독립군의 수령을 저격하고 도망쳐오는 길에 영안에서 자기를 찾아온 리복림을 도와주었다고 회고했으며, 이와같은 사실은 중국인민해방군 \"항일전쟁총서\" 항일연군 제4군 리연록 편에서 언급되어 있다. 물론 그 독립군의 수령이 바로 김좌진이라고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때 세간에 알려졌던 사살당한 독립군의 수령은 오로지 김좌진 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장 주요한 증거는 양환준의 회고담인데, 이 회고담 앞에서 한국의 모든 항일투쟁사 방면의 역사학자들이 현재까지도 아무런 반론을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의 역사학계에서는 김좌진장군의 아들로 알려져있는 김두한이야말로 진짜로 김좌진장군의 아들이 옳냐, 아니냐를 놓고 열을 올렸던 적도 있다. 부하였던 이범석의 의해 엄청나게 부풀려졌던 청산리전투와, 공산주의자에 의한 암살, 김좌진장군의 일생이 남기고 간 영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과 중국에 있어서 공동의 원수였던 일제와 싸우기 위하여 민족주의자들까지도 오히려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는 때, 오히려 일제보다도 더 미워했던 공산주의자들을 해치기 위하여 호로군과 손을 잡고 중동선상에서 반공산주의 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은, 간적접으로 공산자주의 자들을 잡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었던 일제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정할수 있단말인가. http://www.nykca.net/bbs/zboard.php?id=column1&no=1815 김좌진장군의 신화를 깬다------------발취해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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