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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현재 중국의 대다수 도시가 그러하듯이 연길도 자고 깨나면 변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바야흐로 변하고 있다.
우선 연길공항은 40만의 인구를 가진 소도시에 걸맞지 않게 진출인구가 대단해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관광버스도 전에 보지 못했던 대형호화외제차들이 줄을 지어 달리고 있고, 5성급대우호텔이 4성급으로 강급 되니 국제호텔이 5성급의 자격으로 문을 열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40만 소도시에 5성급호텔이 들어서고 또 기타 관광호텔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은 아마 세상에서 연길을 으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로는 전에 비해 아주 시원스럽게 넓어졌고 길 양옆의 올망졸망 나름대로 복잡하게 들어섰던 문시방(門市房)들은 사라져 도시환경이 한결 깔끔해졌다. 건널목의 지시등은 초수까지 밝혀주어 서울보다 더 선진적인 감이 든다.
부르하통강과 연집강은 아주 아름답게 꾸며놓아 밤이면 훌륭한 관광지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정부청사부터 일반 사무실에 이르기까지 컴퓨터화가 되어 세계조류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고 있다.
물건은 당지 값싼 것부터 질이 좋고 브랜드가 좋은 고차원을 따지면 한국에 있는 것이면 연길에 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노래방의 실내장식과 음향시설은 서울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 웬만한 음식점들의 실내장식도 한국보다 훨씬 호화롭다.
젊은 여인네들이 아침저녁이면 호화외제차를 끌고 애를 학교에 데려가고 데려오는 수가 수년 전에 비해 굉장히 많아졌다.
도시건축물과 시민들의 소비를 보면 연길은 부자도시임에 틀림없다. 확실히 연길이 많이 또 크게 변화했다.
하지만 필자는 엄청난 변화 뒤에 숨겨진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을 보아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것을 하드웨어(硬件)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프트웨어(軟件)라 부르는데, 연길을 놓고 보면 하드웨어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으나 소프트웨어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즉 연길은 도시건축을 비롯해 눈에 보이는 것은 크게 변하고 있으나 시민의식은 변화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들이 전에 비해 경제적인 경쟁의식과 남녀관계의 개방화 등등이 변화된 것들도 있지만 선진적인 시민의식 같은 소프트웨어는 전혀 개변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연길에서 4일 동안 머물면서 일을 본 것은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부서였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실로 실망이었다.
연길에서 지식인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00기관에 가서 노크하고 들어갔더니 ‘주인’은 몸을 의자에 뒤로 기댄 채 손님을 맞고 말하는 태도도 마치 죄인을 대하는 것처럼 혹은 자기한테 뭘 빌려 간 것처럼 굉장히 쌀쌀하다.
어떤 기관의 공무원은 사무실에 전화로 00를 찾는다고 말하면 “아무개를 찾는 전화를 왜 여기에 거는가?” 고 버럭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어버린다.
한국의 어떤 은행에서는 웃는 얼굴로 손님을 서서 맞은 다음 업무를 처리해주는데 비해 연길의 은행 사무원들은 인사는커녕 마치 자기한테 신세를 지러 간 것처럼 손님을 쌀쌀하게 대한다. 기타 공공기관도 손님을 외면하고 자기네끼리 한담을 하는 등 거의 다 서비스태도가 예전과 같이 쌀쌀하다.
하루는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하게 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는데 사연은 이러했다. 친구 밑에 층에 사는 집의 전원이 끊겼다. 그 집에서는 전기세를 다 지불했는데 사무원이 그 옆집이 전기세를 납부하지 않은 것을 바꿔 잘못 전원을 끊어놓았다. 억울하게 당한 주인이 전기공사사무원에게 따지고 드니 그 사무원이 하는 말이 가관이다. 죄송하다고 사과할 대신 “전기를 보고 못 보는 것은 나의 손에 달린 것이니 시끄럽게 떠들면 전기를 주지 않겠다.”고 윽박찌른다.
공공기관의 사무원들은 아직도 시민들에게 서비스를 한다는 의식이 없이 마치 전기, 수돗물 등 시민들의 필수적인 것들을 관리하는 사무원들은 자기의 개인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권세를 부리고 있다.
일을 보자면 먼저 전화연락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일부연길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참으로 기분이 잡친다. 연길의 전화문화는 제고되지 않고 확실히 낙후되어 있다.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가 발달해야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이 제고되어야 한다. 시민의식의 제고는 당연히 공공기관의 사무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연길은 도시건축이 발달했고 도시환경이 많이 변화되었으나 시민의식이 변하지 않았다.
물론 시민의식 제고의 문제는 연길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년 전 필자가 심양출판사에 일보러 갔을 때 편집장이 하는 말이 “중국에 차가 엄청 많이 늘어났지만 차문화가 형편없이 낙후되듯이 중국의 하드웨어는 엄청난 변화가 있으나 소프트웨어는 변화된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고 했다.
필자가 이번 중국에 갈 때 장춘으로 갔는데, 인천공항에서 장춘행비행기는 먼 곳에 세워놓고 버스를 타고 탑승한다. 버스 안에 공중아가씨 두 명이 의자에 앉아 서로 희희닥닥 거린다. 만약 외국의 공중아가씨라면 자리를 손님에게 내어주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일 것이고, 손님들 앞에서 떠들지도 않을 것이다. 중국에서 공중아가씨라면 고차원의 서비스교육을 받았을 터인데 그러하니 일반 백성들이야 더 말해 뭘 하랴!
한국에 돌아올 때 장춘공항에서 한 조선족유학생이 짐이 초과되어 나 보고도와 달라고 해서 선뜻 대답했는데 탑승수속을 맡은 아가씨가 나보고 그 학생의 이름을 묻는다. 나는 난생 초면의 사람의 이름을 알 리가 없어 떠듬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 학생을 도와주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공항의 규칙이 그러하기에 의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만약 당신이 이 분을 계속 도와주려하면 오늘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나는 참으로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 오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적인 여권에 한국법무부가 내준 비자로 수속에 문제가 없는데 타인의 짐 때문에 내가 한국에 올 수 없다는 것은 말이나 되는가는 것이다. 마치 공항이 자기네 집 것이고 나의 운명이 자기 손에 달려있는 양, 중국사무원들의 의식수준이 참으로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연길도 그러하지만 해마다 10%의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있는 중국이 겉보기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는 듯 하지만 국민의식은 제고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한국에서 여러 해 동안 묵어 있던 사람들이 고향에 가면 여러모로 불편을 느낀다. 먼지가 많은 것은 그려러니 하고 각오하지만 사람들의 행동거지와 언행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당지 사람들은 한국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의 이런 반응에 꼴깝 떤다고 얄궂게 본다. 이 때문에 알게 모르게 갈등이 일어난다. 고향에 간 사람들이 한사코 하루빨리 한국에 오려고 발버둥치는 데는 이러한 원인이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생활이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향의 하드웨어가 변화하는 것도 좋지만 소프트웨어가 개선, 변화되어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 흩어진 조선족들이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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