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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도와 ‘멋’, ‘맛’, ‘판’ (김정룡)
2007년 11월 02일 16시 11분  조회:6336  추천:77  작성자: 김정룡

16. 풍류도와 ‘멋’, ‘맛’, ‘판’  


 김정룡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외모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며, 곧 민족마다 나름대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이다. 예하면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이 모이면 외모로는 구분이 안 된다. 또 유럽백인이나 아프리카 흑인이 모였을 경우 마찬가지로서 외모로는 민족구분이 되지 않는다. 오직 언어로서 구분이 가능하다. 

 민족과 민족 간의 언어차이는 곧 문화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인 가세히데아키(加漱英明)는 저서 ‘추한 한국인’에서 “멋이란 낱말은 중국어와 일본어에 없는 유일하게 한국인만 사용하는 어휘이다.”라고 지적했다. 비록 ‘추한 한국인’이 얄밉기는 하지만, 필자는 그의 이 ‘멋’에 대한 지적에서 크게 힌트를 얻었다. 즉 필자는 한중일 세 가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말 ‘멋’을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할 경우 대충 의역(意譯)은 가능하나 완벽하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있는 해당 어휘가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하면 ‘멋’은 중국어로 ‘美’, ‘瀟洒’, ‘帶勁’, ‘意思’, ‘浪漫’ 등등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멋’의 뜻을 완벽하게 나타내지 못한다.

“야, 너 대가리는 멋으로 달고 다니느냐?”에서 멋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정확히 옮길 수가 없다. 

 ‘풍류도와 한국인의 종교사상’의 저자 유동식 교수는 ‘멋’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풍류도의 의미내용을 규정하는 말이 곧 멋이다.” 그는 또 “멋은 풍류도의 기본정신이며 기본 넋이다.”라고 말했다. 고대우리민족은 교리교의가 있는 종교가 없었으므로 풍류도가 우리민족의 종교역할을 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과거 조선족에 관한 여러 편의 글에서 “우리민족은 멋의 민족이다.”라고 정의를 내린 바가 있다. 

‘맛’이란 낱말도 중국어와 일본어로 정확히 번역되지 않는다. 예하면 중국인은 우리말 ‘맛’을 ‘미도(味道)’, ‘풍미(風味)’라고 하는데, 이는 고대 중국의 도교와 풍류도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은 ‘맛이 있다’를 ‘먹기 좋다’는 뜻으로 ‘하오츠(好吃)’라고 하는바 이 ‘好吃’는 우리말 ‘맛’의 뜻을 그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 일본어에 우리말 ‘맛’에 해당되는 어휘로서 ‘아지(味)’가 있는데 ‘아지(味)는 우리말 냄새라는 뜻에 가깝다.

‘판’이란 낱말도 역시 우리민족만이 특이하게 사용하는 어휘이다. 예하면 ‘노래판’, ‘춤판’, ‘술판’, ‘오락판’, ‘도박판’, ‘싸움판’, ‘난장판’, ‘개판’, ‘X판’ 등 ‘판’을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場’으로 번역할 수는 있으나 이 ‘場’은 우리말 ‘판’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우리말 ‘판을 치다’, ‘판이 깨지다’, ‘판을 흐리다’, ‘판에 뛰어들다’ 등을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하기 매우 힘들다. 
 
우리민족은 세상에서 그 어느 민족보다 판을 벌리기를 좋아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고전음악에 ‘판소리’라는 것이 있는데, 이 ‘판소리’는 곧 고대 우리민족이 풍부하고 다양한 여러 가지 ‘판’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판소리’가 중국고전음악과 일본고전음악에 비해 독특한 한민족의 특성을 반영하는 민족음악이라 할 때, 우리민족이 얼마나 ‘판’의 문화를 중시해왔는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어 말해서 ‘멋’, ‘맛’, ‘판’이란 낱말은 우리민족만이 지어낸 말이며, 이것이 곧 문화적으로 타민족과 구분되는 요소이며 이는 고대우리민족의 종교가 아닌 종교, 즉 풍류도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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