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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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속의 빈곤
2011년 10월 10일 09시 18분  조회:6586  추천:2  작성자: 김정룡
 
 
“世風日下, 人心不古, 今不如昔”
‘효(孝)’와 ‘예(禮)’는 중화문명의 산물이며 아울러 동방문화에 있어서 비중 높은 전통이다. 특히 ‘동방예의지국’으로 불리는 우리민족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효’와 ‘예’를 매우 중시해왔다.

‘효’는 자식이 부모에게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며, ‘예’는 사회적으로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존경하는 태도로 깍듯이 대하는 것이다. 우리선조들은 조선조 518년 동안 유교확립을 통해 ‘효’와 ‘예’의 정신이 타민족에게 비해 굉장히 밝았다.

19세기 60년대부터 만주에 이주하기 시작한 조선인은 낯설고 물선 땅에서 선조들의 ‘효’와 ‘예’의 정신을 지키고 살아왔기에 신중국 건립 후 56개 민족가운데서 가장 사리가 밝은 민족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렇듯 ‘효’와 ‘예’의 정신이 으뜸이던 조선족이 문화혁명이란 10년 동란을 거쳐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린 사람이 연장자를 존경하는 예의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8년 말 중국이 개혁개방을 실시함에 따라 조선족은 돈을 쫓는 사회로 전환되어 전통적인 ‘효’와 ‘예’의 정신이 크게 타격을 입어 현재는 위·아래의 사회질서가 말이 아니게 변해가고 있다.

1992년 중한수교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불어친 한국바람, 일명 코리안드림을 살펴보면 재한조선족사회가 얼마나 ‘예’에 굶주려 있는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지난 9월 12일 우리민족전통명절인 추석날에 서울구로고등학교운동장에서 하나은행 주최로 ‘추석맞이중국동포노래자랑’이 열렸다. 한국사회와 조선족사회에서 새로 무섭게 스타로 떠오른 백청강이 출연하여 노래자랑무대가 한결 빛났고 수천 명의 관객이 환희에 휩싸여 들끓었다. 이 행사는 실로 재한조선족에게 큰 명절선물이었다.

그러나 그렇듯 좋은 행사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의자에 버젓이 앉아 구경하고 지팡이에 의지하는 불편한 할머니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구경하고 있는 광경이 동북아신문 장헌국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필자는 이 사진 한 장이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적으로 빈곤하게 살아가는 우리재한조선족사회를 가장 잘 반영하였다고 진단하고 싶다. 혹시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해드렸는데 할머니가 괜찮다고 거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할머니를 땅바닥에 방치해둔 결과만으로도 우리는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 알다시피 코리안드림은 우리조선족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를 안겨주었다. 부모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 자녀들의 공부뒷바라지를 하고 심지어 유학까지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아파트까지 장만해주고, 자신들의 노후에 쓸 돈을 마련하였다. 한편 경제적인 부를 쌓은 동시에 우리는 정신적인 것을 너무 많이 잃었다. 이를 잘 나타내는 물증이 바로 노래자랑에 있었던 광경이다.

중국어에 다음과 격언이 있다. “세상기풍이 날로 못해 가고 인심이 예전과 같지 않으니 오늘이 과거보다 못하구나(世風日下, 人心不古, 今不如昔).” 이 구절이 곧바로 우리 재한 조선족사회현실을 말하는 것 같아 맘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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