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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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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73
2015년 02월 11일 16시 27분  조회:2047  추천:0  작성자: 죽림
 

721□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하종오, 창비시선 32, 창작과비평사, 1981

  소설에 ‘전지적 작가시점’이라는 것이 있다. 마치 신처럼 등장인물의 심리를 다 꿰뚫어본 듯한 태도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시점이다. 이 시집의 화자가 바로 소설로 치면 그런 관점에 해당한다. 그런데 전지적 작가시점의 특징은 화자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설픈 광대로 전락하고 만다. 사물은 그 사물이 갖는 특징이 있고, 그 특징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해석이 정도를 넘어서면 사물의 존재를 해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주장을 살릴 수는 있지만, 시를 살리지는 못한다. 시집 속의 시들 거의가 동일시의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각기 사물이 되어서 본 세계를 노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무리한 요구를 하면 사물은 내 생각으로부터 이반된다. 그럴 때 시는 관념성이 짙은 넋두리로 변한다. 죽음이 중요한 상징이었던 시대에 다양한 죽음을 노래했으면서도 그것이 시대의 의미를 담지 못하고 죽음에 대한 넋두리로 끝난 것은 그러한 오류를 보여주는 예이다. 무리한 해석이 시를 끝내 시답지 못하게 한 시집이다. 다만 운율을 살리려고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시의 관념성을 보완하기 위한 땜질이었다면 그건 자충수이다. 한자는 청산해야 할 악습이다.★★☆☆☆[4337. 7. 22.]

 

722□전야□이성부, 창비시선 30, 창작과비평사, 1981

  한 시인의 정신이 그 시대의 정신을 대신하는 수가 있다. 그것은 시인의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영광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가 갖는 막막한 절망의 정서를 시인의 시에서 살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를 통해 말을 하는 시인들의 입을 정권이 닫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답답함은 굴절되어 나타난다. 그 굴절의 모습이 이 시집의 1부에 잘 나타난다. 단단히 정제된 정신이 시 전체의 긴장을 만들고 있다. 2부로 넘어가면서부터 다소 그 긴장이 풀리지만, 그리고 4부에서는 개인의 삶 때문에 시대 전체의 문제가 묽어졌지만, 이 긴장을 낳은 정신이 시에서 영롱하게 빛난다.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시인만의 몫이다. 이미지들이 큰 것을 말하기 위해서 제 자리에서 은은히 빛을 내는 그런 절제력은 시 쓰는 재주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한자는 갈수록 오점이 될 것이다.★★★☆☆[4337. 7. 23.]

 

723□새재□신경림, 창비시선 18, 창작과비평사, 1979

  감정을 묘사로 대신하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곳곳에서 불거진 감정들은 이미 무언가 말을 하기로 하고 나선 자의 태도이다. 그 말은 장시 <새재>에 와서 활짝 핀다. 서사시의 어려움은 <서사>와 <시>라는 어울릴 수 없는 조립에서 온다. 서사는 사건의 양식이지만, 시는 시간의 절단면인 순간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서사시를 쓰는 시인의 임무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조화는 대부분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이 시집의 장시는 아름다운 묘사가 뛰어나지만 결국 사건을 제시하는 방법이 너무 밋밋한 것이 흠이다. 그리고 내용 역시 진부하다. 사건을 시로 다루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증거가 되겠다. <새재>가 갖는 상징성을 두루 살렸으면 좋겠는데, 그 사건이 일어난 근거지라는 것 이외에는 이 시에서 상징하는 바가 없다. 그리고 사건의 정황을 알아볼 수 있는 시대문제를 제시했어야 하는데, 사건만이 등장하다 보니 모든 상황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서사시에서 그것은 결점이다. 한자는 버릴 수 없는 업보인가?★★★☆☆[4337. 7. 23.]

 

724□소리집□강은교, 창비시선 34, 창작과비평사, 1982

  파도가 없는 바다랄까? 어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고른 투를 보여주는 시집도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밋밋해 보인다. 이 밋밋함은 감정의 모호함과 주제의 관념성 때문에 더하다. 이런 특징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이 정해지지 않은 것과 그나마 하고자 하는 것도 관념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언어가 늘 더 많이 동원된다. 경제성에 민감한 시에서는 단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은 일상의 사물을 다루는 시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시인이 갖는 어조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그런 밋밋함 하나 정도는 있어도 서운치 않으리라. 한자를 청산하지 못한 것 역시 단점이다.★★☆☆☆[4337. 7. 24.]

 

725□명궁□윤후명, 문학과지성시인선 5, 문학과지성사, 1979

  허무주의와 결벽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된 시집이다. 삶은 이런 것이라는 전제와, 시는 이러 해야 한다는 일정한 선이 만나서 다른 관점을 허용치 않는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혹독한 모순과 상처로 점철된 삶의 양상들을 나타내는 데 이미지들이 동원되고 있고, 그 부분은 다른 평범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눈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세계여서 이미지의 배열이 아주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설정한 내용이 어려워 이미지가 어려워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시의 방향성이 불필요하게 특별해서 시가 어려워진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가 많고, 그런 이미지들이 깨끗이 정리되지 않은 삶의 어떤 전제를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지를 않는 것이다.

  표제작인 <명궁>의 경우 뛰어난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은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다. 죽음의 서슬만을 느끼기에는 활이라고 하는 장비가 갖는 상징성이 너무 확연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태도는 삶을 비극과 종말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을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면 이런 시집 하나 정도는 있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다. 한자는 끝내 부담으로 남는다.★★☆☆☆[4337. 8. 2.]

 

726□아니리□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93, 문학과지성사, 1990

727□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10, 문학과지성사, 1979

728□크낙산의 마음□김광규, 문학과지성시인선 50, 문학과지성사, 1986

  독일 시인 브레히트 시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읽으면서 시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번역자를 보니 김광규였다. 오늘날 김광규의 시가 그런 꼴을 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유였다. 누구나 흉내는 낸다. 그리고 그 흉내가 그대로 그 사람의 한계가 되는 수가 있다. 김광규의 시가 그런 경우이다. 브레히트의 시는 길고 연작이 많다. 시가 길면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긴 호흡을 이용해야 하는 시인의 고육책이다. 그리고 이런 쉬운 어법은 대신에 세계를 보는 명징한 시각으로 보완된다. 세계를 보는 시각이 고르고 새로울 때 쉬운 어법은 그 세계를 드러내는 방법이 된다.

  김광규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와 브레히트가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는 거의 같은 점이 없다. 규모 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히트의 방법이 김광규의 방법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될 수 없는 방법을 자꾸 되는 것으로 하려고 하다 보니 수필체의 어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시의 2할 정도만 추려서 선집을 만든다면 그럭저럭 읽을 만한 시집이 될까, 지금 상태로는 시로 보기 어렵다. 내용이 늘어진 데다가 상징성 또한 약하기 때문이다. 좀 더 응축되어야만 할 시들이다. 쉽게 쓰기 위해 몸부림 친 시에서 한자가 용납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4337. 8. 2.]

 

729□몰운대 행□황동규, 문학과지성 시인선 101, 문학과지성사, 1991

730□미시령 큰바람□황동규, 문학과지성 시인선 131, 문학과지성사, 1993

  김광규 시집 세 권을 거쳐 황동규 시집을 두 권이나 이어 읽으면서 보니 수필과 시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김광규의 시는 수필과 시의 관계를, 황동규의 시는 일기와 시의 관계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일기는 개개 사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부분 부분의 사실성이 중요하다. 그 사실성을 통하여 일상을 반추하고 거기서 삶의 교훈을 추론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의 주제도 주제지만 각 절의 묘사가 지향하는 사실 관계와 진실성이 작품의 형상성에 중요한 기능을 맡는다. 그러나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교훈에 가까운 관념이 아니라 그 개념에 대한 암시이나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개 사실의 실제성이나 사실성보다는 그것이 갖는 함축성의 확산 가능성을 중요시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개되는 이미지에서 그 이미지 자체에 독자의 생각이 머물게 하면 효과가 반감된다. 낱낱의 생각에 붙잡혀서 전체의 상징성이나 감수성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기가 해낼 수 없는 시만의 장점이다.

  따라서 낱낱의 이미지가 스스로 의미의 장을 형성하면서 독립하면 안 된다. 전달하고자 하는 감성, 또는 느낌을 그 의미가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이미지에서 다음 이미지로 넘어갈 때 그런 덜컹거림이 있으면 일기로서는 성공일지 모르되 시에서는 실패이다. 바로 이 점을 황동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여행을 다니고 있다. 여행 이미지는 사건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대부분 특별한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사건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을 띤다. 그 보고서는 다름 아닌 일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시로서는 거의 치명상이다.★★☆☆☆[4337.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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