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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이해인 - 살아 있는 날은
2015년 12월 24일 00시 47분  조회:3629  추천:0  작성자: 죽림

 

 

당고개 성지 ㅡ 이해인 수녀 시비(詩碑) 

 

 

 

 

 서울 용산구 신계동 당고개 순교성지에서

이해인 시비(詩碑) 

 

 

 

 

...제막식에서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을 하며,

일상에서의 순교정신이 더욱 필요하다는 묵상 안에서 이 시를 쓰게 됐다”며“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실천할 수 있는 순교의 삶은 매일 긍정적인 생각을 더하고,

이웃에게 고운 말을 건네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살아있는 날은  

                        이海仁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 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

<해설>

 

1. 연필은 볼펜이나 사인펜으로 쓴 것처럼 뚜렷하지도
않고 색색이 곱지도 않은 부드럽고 연하고, 검은 톤
하나 뿐입니다. 진실되고 수수한 모습으로 신을 섬기
겠다는 뜻이지요. 눅눅하지도 않은 '마른 향내' 난다는
건 소박한 준비나마 충실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2, 연필은 쓰면 쓸수록 줄어들고, 끝을 날카롭게 새우려면
깎아야 합니다. 그런 연필은 지은이의 신앙심을 나타냅니
다.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라도 신을 섬기겠다는..


그런 연필을 전혀 아끼지 않고 몇 번이고 지웠다 다시 쓰
는 신중함을 보이고 있지요. 신실함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3. 그 의지를 굳건히 합니다.
정직한 삶에의 소망.
4. 5  시인으로서 또한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더욱 굳건히 지키겠다는
의지 즉, 신에게 자신의 의지를 천명합니다.

 

 

이해인 시비

위치 : 충남 보령시 주산면 삼곡리 26 시와 숲길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이해인

 

 

 

 

"하늘에도

연못이 있네"

소리치다

깨어난 아침

 

 

창문을 열고

다시 올려다본 하늘

꿈에 본 하늘이

하도 반가워

 

 

나는 그만

그 하늘에 빠지고 말았네

 

 

내 몸에 내 혼에

푸른 물이 깊이 들어

이제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이해인(본명 : 이명숙)

1945년 6월 7일 강원도 양구군 출생

천주교 수녀이자 시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버지가 납북 되었고,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 때는 부산성남초등학교에 다녔고, 서울이 수복된 후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창경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당시에 이해인의 언니가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는 수녀가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1958년에는 풍문여자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이 무렵에 시 〈들국화〉가 쓰여졌다. 이후 1961년에는 성의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졸업 후 1964년에 올리베타노의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세례명은 클라우디아이다. 입회한 이후부터 '해인'이라는 필명으로 가톨릭에서 발간하는 《소년》지에 작품을 투고하기 시작했다. 1968년에 수도자로 살 것을 서원한 후,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경리과 보조 일을 하였다.

 

이후 필리핀에 있는 성 루이스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공부하였다. 귀국한 후 1976년에 첫 시집인 《민들레의 영토》을 발간하였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타 종교에 대한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으며, 〈시경에 나타난 福 사상 연구〉라는 논문을 집필했다. 1983년 가을에는 세 번째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를 발간하였다.

 

1992년에 수녀회 총비서직을 맡게 되었다. 비서직이 끝난 1997년에 '해인글방'을 열어두고 문서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부산 가톨릭대학교의 교수로 지산교정에서 '생활 속의 시와 영성' 강의를 하였다. 2008년에 직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고 2009년 4월부터 부산에서 장기휴양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중 하나인 《말의 빛》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언어 영역 읽기 교과서에 실려 있다.

 

 

 

 

 
 

=================

 

 

 

이해인 시 문학관은

중동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 양구군 파로호 상류에 위치.

한국철학을 대표하는 김형석 안병욱선생의 철학을
테마로한 공간과 조망대 청춘관으로 꾸며져있음.

 

이해인 시인(수녀님)

수많은 시들로 희망과 위로를 주신 분이며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시며

암투병 후에도 따뜻한 글씩씩함 잃지 않아서 국민이모라는

별명까지 얻으신분

교통카드와 주민등록증이 전 재산이라는 분

하늘나라로 이사를 간다는 분

아품과 연민과

사랑과 기쁨이 함께 들어있고

바람과 비와 했살이 함께 녹아있는 이해인님 시들로 문학관을 채우고...

언제 읽어도 편안하고그리고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잘 전달되는 이해인님의 시... 

 

 

중 동부전선 최전방지역인 강원도 양구군 파로호 상류에 위치

 

첫 시집 인 민들레의 영토

나의 시가 민들레 솜털처럼 미지의 독자에게 날아가 위로와 희망을 줬을때 행복하다고 말함

 

 

어머니로 부터 물려받은 유품과 원고

 

 

사회를 살아가노라면 꼭 필요한 말이겠죠

 

 

 

 

 

 

 

 

      2층엔 북한 평안도가 고향인

     한국철학을 대표하는 김형석 안병욱선생의 철학을 테마로한 공간과 조망대

     청춘 관   으로 꾸며져 있음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이자 시인인 저자는

1945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1964년 수녀원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1976년 종신서원을 한 후 오늘까지 부산에 살고 있다.

필리핀 성 루이스대학 영문학과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으며,

9회 새싹문학상2회 여성동아대상6회 부산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1,고독에게

 

 

나의 삶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먼데서도 팽팽하게 
나를 잡아당겨 주겠다구요?

얼음처럼 차갑지만
순결해서 좋은 그대

오랜 사귀다 보니
꽤 친해졌지만
아직은
함부로 대할 순 없는 그대

내가 어느새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게
그 맑고 투명한 눈및으로
나를 지켜주겠다구요?

고맙다는 말을
이제야 전하게돼
정말 미안해요

 

 

 

고독에게2

 

 

당신은
나를 바로 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가장 가까운 벗들이
나의 약점을 미워하며
나를 비켜갈 때

노여워하거나
울지 않도록
나를 손잡아준 당신

쓰라린 소금을 삼키듯
절망을 삼킬 수 있어야
하얗게 승화될 수 있음을
진정 겸손해야만
삶이 빛날 수 있음을
조심스레 일러준 당신
오른을 당신에게
감사의 들꽃 한 묶음
꼭 바치렵니다

제 곁을 떠나지 말아주세요
천년이 지나도 녹지 않는
아름다운 얼음 공주님...

 

 

꿈을 위한 변명

 

 

아직 살아 있기에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꿈꾸지 말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꿈이 많은 사람음
정신이 산만하고
삶이 맑지 못한 때문이라고
단정 짓지 마세요

나는 매일 
꿈을 꿉니다
슬퍼도 기뻐도
아름다운 꿈
꿈은 그대로 삶이 됩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내일의 이야기도
꿈길에 그려질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꿈이 없는 삶
삶이 없는 꿈은
얼마나 지루할까요

죽으면 꿈이 멎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꿈을 꾸고 싶습니다.

꿈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비의 연가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향해 날으는
한 마리 순한 나비인 것을

가볍게 춤추는 나에게도
슬픔의 노락 가루가
남몰래 묻어 잇음을 알았습니다.

눈멀 듯 부신 햇살에
차라리 날개를 접고 싶은
황홀한 은총으로 살아온 나날

빛나는 하늘이 훨뤌 날으는
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가난한 마음임을 가르치는
풀잎들의 합창

수없는 들꽃에게 웃음을 가르치며
나는 조용히 타버릴
당신의 나비입니다.

부디 꿈꾸며 살게 해 주십시오
버려진 꽃들을잊지 않게 하십시오

들릴 듯 말 듯한 나의 숨결은
당신께 바쳐지는
無言의 기도

당신을 향한 맨 처음의 사랑
不忘의 나비 입니다, 나는

 

 

나를 위로하는 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나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너에게 띄우는 글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다정한 친구이기 보다는 진실이고 싶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 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할 너와 나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너와 나의 만남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진실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래, 이제 더 나이기보다는 우리이고 싶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현실을 언제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접어두자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내 혼(魂)에 불을 놓아

언제쯤 당신 아에 꽃으로 피겠습니까. 불고 싶은
대로 부시는 노을빛 바람이여. 봉오리로 맺혀 있던 
갑갑한 이 아픔이 소리없이 터지도록 그 타는 눈길과 
숨결을 주십시오. 기다림에 초조한 애 비 밀스런 가슴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나의 가느다란 꽃슬이 가느다란 
슬픔을 이해하는 은총의 바람이여, 당신 앞에 "네"라고 
대답하는 나의 목소리는 언제나 떨리는 3월입니다. 
고요히 내 혼에 불을 놓아 꽃으로 피워 내는 뜨거운 바람이여.

 

 

벗에게1

내 잘못을 참회하고 나서
처음으로 맑고 투명해진
나의 눈물 한 방울
너에게 선물로 주어도 될까?

때로는 눈물도
선물이 된다는 걸
너를 사랑하며 알았어

눈물도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임을
네가 가르쳐주었어

나와의 첫 만남을
울면서 감격하던 너

너를 너무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웠던 내 마음
이해하면서도 힘들었지?

나를 기다려주어 고맙고
나를 용서해주어 고맙고

그래서 지금은 내가 울고 있잖아

 

벗에게2

내가 누구인지
벗이여
오늘은 그대에게 묻고 싶다

잠에서 깨어나
거울 앞에서 바라보는
낯선 얼굴의 나

밤길을 걷다
나를 따라붙는
나보다 큰
나의 검은 그림자가
두렵고 낯설었다

이젠 내가 나와 친해질 나이도 되었는데
갈수록 나에게서 멀어지는 슬픔

나를 찾지 못한 부끄러움에
오늘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내게

벗이여 
무슨 말이라도 해다오

 

 

벗에게3

 

 

내가 죽더라도
너는 죽지 않으면 좋겠다
꼭 죽어야 한다면
내가 먼저 죽으면 좋겠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같은 날 같은 시에 죽으면 좋겠다

이 또한
터무니 없는 욕심이라고
너는 담담히 말을 할까

우정보다 더 길고 깊은
하나의 눈부신 강이 있다면
그 강에 너를 세우겠다

사랑보다 더 높고 푸른
하나의 신령한 산이 있다면
그 산에 너를 세우겠다 

내게 처음으로
하늘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내 목숨보다
귀한 벗이여

 

보고 싶다는 말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
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

보고 싶은데......

비오는 날의 첼로 소리 같기도 하고
맑은 날의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한
너의 목소리

들들 때마다
노래가 되는 말
평생을 들어도
가슴이 뛰는 말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감칠맛 나는
네 말 속에 들어 있는
평범하지만 깊디깊은
그리움의 바다

보고 싶은데......

나에게도 
푸른 파도 밀려오고
내 마음에도 다시
새가 날고......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슬픈 날의 편지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주십시오
이유 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성 금요일의 기도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 주소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 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베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죽음의 쓴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때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민 들 레

 

 

은밀히 감겨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차라리 입을 다문 노람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솜털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바람한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민들레의 영토(領土)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져다보는
인정(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江)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은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름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빈 꽃병의 말 2

 

 

꽃들을 다 보낸 뒤
그늘진 한 모퉁이 에서
말을 잃었다

꽃과 더불어 화려했던
어제의 기억을 가라앉히며
기도의 진주 한 알
입에 물고 섰다
하얀 맨발로 섰다

아무도 오지 않는 텅 빈 가슴에
고독으로 불을 켜는
나의 의지

누구에세도 문 닫는 일 없이
기다림에 눈 뜨고 산다

희망의 잎새 하나
끝내 피워 물고 싶다

 

 

바람이 내게 준 말

 

 

 

넌 왜
내가 떠난 후에야
인사를 하는 거니?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왜 제때엔 못하고
한 발 늦게야 포현을 하는 거니?

오늘도
이끼 낀 돌층계에 앉아
생각에 잠긴 너를
나는 보았단다

봉숭아 꽃나무에
물을 주는 너를
내가 잘 익혀놓은
동백 열매를 만지작 거리며
기뻐하는 너를
지켜보았단다

언제라도 
시를 쓰고 싶을 땐
나를 부르렴

어느 계절에나
나는 네게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단다
나의 걸음은 
네게로 달려가는 
내 마음보다도 빠르단다

사랑하고 싶을땐
나를 부르렴

나는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으면서
심부름 잘하는
지혜를 지녔단다

세월이 가도 늙지 않는
젊을을 지녔단다

 

 

비 밀

 

 

겹겹이 싸매 둔 장미의 비밀은
장미 너만이 알고
속으로 피흘리는 나의 아픔은
나만이 안다

살아서도 죽어 가는
이 세상 비인 자리

이웃과 악수하며 웃음 날리다
뽀얀 외롬 하나
구름으로 뜨는 걸
누가 알까

꽃밭에 불밝힌 장미의 향기보다
더 환히 뜨겁고
미쁜 목숨 하나

별로 뜨는 사랑 
누가 알까 

 

 

살아 있는 날은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깍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깍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시의 집

 

 

나무 안에 수액이 흐르듯 
내 가슴 안에는
늘 시가 흘러요

빛까로 냄새도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
그냥 흐르게 놔두지요

여행길에 나를 따라오는 달처럼
내가 움직일 때마다
조용히 따라오는.....

슬픔때도 
힘이 되어주는 시가 흘러
고마운 삶이지요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우정일기 1

 

 

1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
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
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친구야.

2
전에는 크게, 굵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야
기하더니 지금은 작게, 가늘게 내리는 이슬비처럼 조용히 내게 오는
너.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는 쉬임없이 나를 적셔준다.

3
소금을 안은 바다처럼 내 안엔 늘 짜디짠 그리움이 가득하단다.
친구야. 미역처럼 싱싱한 기쁨들이 너를 위해 자라고 있단다. 파도
에 씻긴 조약돌을 닮은 나의 하얀 기도가 빛나고 있단다.

4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구나. 네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이 나의 몸까지도 아프게 하는 거
너는 알고 있니? 어서 일어나 네 밝은 얼굴을 다시 보여주렴. 내게
기쁨을 주는 너의 새 같은 목소리도 들려주렴.

5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너도 보고 싶니, 내가? 내가 너
를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좋아하니, 나를? 알면서도 언제나 다시 묻
는 말. 우리가 수없이 주고받는 어리지만 따뜻한 말. 어리석지만 정
다운 말.

6
약속도 안했는데 똑같은 날 편지를 썼고, 똑같은 시간에 전화를 
맞걸어서 통화가 안되던 일, 생각나니? 서로를 자꾸 생각하다보면
마음도 쌍둥이가 되나보지?

7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네가 다 훔쳐가서 나는 편지에도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며 너는 종종 아름다운 불평을 했지? 오랜만에 네게 편지 
를 쓰려고 고운 편지지를 꺼내놓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무슨 말을 
쓸거니?' 어느새 먼저 와서 활짝 웃는 너의 얼굴. 몰래 너를 기쁘게 
해주려던 내 마음이 너무 빨리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구나.

8
'밥 많이 먹고 건강해야 돼. 알았지?' 같은 나이에도 늘 엄마처럼
챙겨주는 너의 말. '보고 싶어 혼났는데... 너 혹시 내 꿈 꾸지 않았
니?' 하며 조용히 속삭이는 너의 말. 너의 모든 말들이 내게는 늘 아
름다운 노래가 되는구나, 친구야.

9
나를 보고 미소하는 네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아도, 네가 보내준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어봐도 나의 그리움은 채워지질 않는구나. 너
와 나의 추억이 아무리 아름다운 보석으로 빛을 발한다 해도 오늘의
내겐 오늘의 네 소식이 가장 궁금하고 소중할 뿐이구나, 친구야.

10
비오는 날 듣는 뻐꾹새 소리가 더욱 새롭게 반가운 것처럼 내가 
몹시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네가 내게 들려준 위로의 말은 오랜 세월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단다.

11
아무도 모르게 숲에 숨어 있어도 나무와 나무 사이를 뚫고 들어와
나를 안아주는 햇빛처럼 너는 늘 조용히 온다.

12
네가 평소에 무심히 흘려놓은 말들도 내겐 다 아름답고 소중하
다. 우리집 솔숲의 솔방울을 줍듯이 나는 네 말을 주워다 기도의 바
구니에 넣어둔다.

13
매일 산 위에 올라 참는 법을 배운다. 몹시 그리운 마음, 궁금한 
마음, 즉시 내보이지 않고 절제할 수 있음도 너를 위한 또 다른 사랑
의 표현임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다. 매일 산 위에 올라 바다를 보 
며 참는 힘을 키운다. 늘 보이지 않게 나를 키워주는 고마운 친구야.

 

 

우정일기 2

 

 

14
내 얕은 마음을 깊게 해주고, 내 좁은 마음을 넓게 해주는 너. 숲
속에 가면 한그루 나무로 걸어오고, 바닷가에 가면 한점 섬으로 떠
서 내게로 살아오는 너. 늘 말이 없어도 말을 건네오는 내 오래된 친
구야, 멀리 있어도 그립고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친구야.

15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천사의 몫을 하는 게 아니겠어? 참
으로 성실하게 남을 돌보고, 자기를 잊어버리고, 그래서 몸과 마음
이 늘 사랑 때문에 가벼운 사람은 날개가 없어도 천사가 아닐까? 오
늘은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

16
친구야, 이렇게 스산한 날에도 내가 춥지 않은 것은 나를 생각해 
주는 네 마음이 불빛처럼 따스하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야. 꼼짝을 
못하고 누워서 앓을 때에도 내가 슬프지 않은 것은 알기만 하면 먼 
데서도 금방 달려올 것 같은 너의 그 마음을 내가 읽을 수 있기 때문
이야. 약해질 때마다 나를 든든하게 하고, 먼데서도 가까이 손잡아
주는 나의 친구야, 숨어 있다가도 어디선지 금방 나타날 것만 같은 
반딧불 같은 친구야.

17
방에 들어서면 동그란 향기로 나를 휘감는 너의 향기. 네가 언젠
가 건네준 탱자 한알에 가득 들어 있는 가을을 펼쳐놓고 나는 너의
웃음소릴 듣는다. 너와 함께 있고 싶은 나의 마음이 노란 탱자처럼
익어간다.

18
친구야, 너와 함께 별을 바라볼 때 내 마음에 쏟아져 내리던 그 별
빛으로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너와 함께 갓 피어난 들꽃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을 가득 채우던 그 꽃의 향기로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

19
네가 만들어준 한 자루의 꽃초에 나의 기쁨을 태운다. 초 안에 들
어 있는 과꽃은 얼마나 아름답고 아프게 보이는지. 하얀 초에 얼비
치는 꽃들의 아픔 앞에 죽음도 은총임을 새삼 알겠다. 펄럭이는 꽃
불 새로 펄럭이는 너의 얼굴. 네가 밝혀준 기쁨의 꽃심지를 돋우어
나는 다시 이웃을 밝히겠다.

20
너는 아프지도 않은데 '아프면 어쩌나?' 미리 근심하며 눈물 글썽
인다. 한동안 소식이 뜸할 뿐인데 '나를 잊은 것은 아닌가?' 미리 근
심하며 괴로워한다. 이러한 나를 너는 바보라고 부른다.

21
'축하한다. 친구야!' 네가 보내준 생일카드 속에서 한묶음의 꽃들
이 튀어나와 네 고운 마음처럼 내게 와 안기는구나.
나를 낳아주신 엄마가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 오늘. 내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너를 만날 수도 없었겠지? 먼데서 나를 보고 싶
어하는 네 마음이 숨차게 달려온 듯 카드는 조금 얼굴이 상했구나.
그 카드에 나는 입을 맞춘다.

22
친구야, 너는 눈물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니? 너무 기쁠 때에
도, 너무 슬플 때에도 왜 똑같이 눈물이 날까? 보이지 않게 숨어 있
다가 호수처럼 고여오기도 하고, 폭포처럼 쏟아지기도 하는 눈물.
차가운 나를 따스하게 만들고, 경직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고마운
눈물. 눈물은 묘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내 안에도 많은 눈물
이 숨어 있음을 오늘은 다시 알게 되어 기쁘단다.

23
아무리 서로 좋은 사람과 사람끼리라도 하루 스물네 시간을 함께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것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나를 늘 쓸쓸하
게 하는 것 중의 하나란다. 너무 어린 생각일까?

24
나는 따로 집을 짓지 않아도 된다. 내 앞에서 네가 있는 장소는 곧
나의 집인 것이기에, 친구야.
나는 따로 시계를 보지 않는다. 네가 내 앞에 있는 그 시간이 곧
살아 있는 시간이기에, 친구야.
오늘도 기도 안에 나를 키워주는 영원한 친구야.

 

 

어 머 니

 

 

당신의 이름에선 
색색의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다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겇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히 담겨 있는
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왜 그럴까, 우리는

 

 

자기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 
그리도 길게 늘어놓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네
아니, 처음부터 아예
듣기를 싫어하네

해야 할 일 뒤로 미루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하고
기분에 따라
우선 순위를 잘도 바꾸면서
늘 시간이 없다고 성화이네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
한 조각의 미소를 그리워하며
외롭게 괴롭게 누워 잇는 이들에게도
시간 내어주기를 아까워하는

건강하지만 인색한 사람들
늘 말로만 그럴듯하게 살아 있는
자비심 없는 사람들 모습 속엔
분면 내 모습도
들어 잇는 걸
나는 말고 있지

정말 오 그럴까
왜조금 더
자신을 내어놓지 못하고
그토록 이기적일까, 우리는.......

 

 

어느 꽃에게

 

 

 

넌 왜
나만 보면
기침을 하니?
꼭 한마디 하고 싶어하니?

속으로 아픈 만큼
고운 빛깔을 내고남 모르게 아픈 만큼
사람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오늘도 나에게 말하려구?

밤낮의 아픔들이 모여
꽃나무를 키우듯
크고 작은 아픔들이 모여
더욱 향기로운 삶을 이루는 거라고
또 그 말 하려구?

 

 

 

어느 말 한 마디가

 

 

어느 날 내가 네게 주고 싶던
속 깊은 말 한 마디가
비로소 하나의 소리로 날아갔을 제
그 말은 불쌍하게도 
부러진 날개를 달고 되돌아왔다
네 가슴 속에 뿌리를 내려야 했을
나의 말 한 마디는
돌부리에 채이며 곤두박질치며
피 묻은 얼굴로 되돌아왔다
상처받은 그 말을 하얀 붕대로 싸매 주어도
이제는 미아처럼 갈 곳이 없구나
버림받은 고아처럼 보채는 그를
달랠 길이 없구나
쫓기는 시간에 취해 가려진 귀를
조금 더 열어 주었다면
네 얼어붙은 가슴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열어 주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겠니
말 한 마디에 이내 금이 가는 우정이란
얼마나 슬픈 것이겠니
지금은 너를 원망해도 시원찮은 마음으로
또 무슨 말을 하겠니
네게 실연당한 나의 말이
언젠가 다시 부활하여 너를 찾을 때까지
나는 당분간 입을 다물어야겠구나
네가 나를 받아들일 그 날을 기다려야겠구나

 

장미를 생각하며

 

 

우울한 날은
장미 한 송이 보고 싶네

장미 앞에서
소리내어 울면

나의 나눔에도 향기가 묻어날까

감당 못할 사랑의 기쁨으로
내내 앓고 있을 때
나의 눈을 환히 밝혀주던 장미를
잊지 못하네

내가 물 주고 가꾼 시간들이
겹겹의 무늬로 익어 있는 꽃잎들 사이로
길이 열리네

가시에 찔려 더욱 향기로웠던
나의 삶이
암호처럼 찍혀 있는
아름다운 장미 한송이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오늘도 내 마음에
불을 붙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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