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못 위의 잠
-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도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까요, 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1~8행 : 현재 - 아비제비를 바라봄
종암동 버스 정류장, 흙바람은 불어 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 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 그 마음을 오늘 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 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 9~25행 : 과거 회상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마중 나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 그 위의 잠
◈ 26~27행 : 현재 - 아버지의 꾸벅거림을 기억하게 하는 못 위의 잠
[핵심 정리]
◈ 갈래 : 자유시, 서정시
◈ 성격 : 회상적,
◈ 특징
① 못 위에 앉아 잠을 자는 제비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지 못했던 아버지의 처지를 중첩시켜 표현하였다.
② 과거의 사건과 경험을 떠올리는 회상적인 어조로 시상을 전개하였다.
③ 경어체의 표현을 사용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④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등 대상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며 시각적인 심상을 환기하고 있다.
◈ 제재 :
◈ 주제 : 남루했던 아버지의 삶에 대한 연민의 정
[시의 짜임]
1~8행 : 현재 - 아비제비를 바라봄
9~25행 : 과거 회상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마중 나감
26~27행 : 현재 - 아버지의 꾸벅거림을 기억하게 하는 못 위의 잠
[감상과 이해]
이 시의 전체 시상은 병렬적으로 제시되는 두 개이 장면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둥지가 비좁아 못 위에 겨우 앉아서 밤을 지새는 아비제비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기억 속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실직자의 신세를 면치 못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 가야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시적 화자는 비애와 아픔, 좌절감을 느꼈을 과거의 아버지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품의 말미에서 시적 화자는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애틋한 그림자를 떠올리는데, 아버지의 꾸벅거림과 못 위에서 자는 제비의 꾸벅거리는 모습이 겹쳐지고 있다.
이 시는 경어체의 표현을 사용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상의 특징은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작품의 성격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즉,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과 아버지에 대한 느낌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경어체의 어법을 통해 대상을 서술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시각적인 심상을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는데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등은 대상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며 시각적인 심상을 환기하고 있다.
[해설]
이 작품은 27행의 전연시이다. 연 구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다. 제비집 옆의 못 위에서 잠을 자는 제비 아비의 모습과 종암동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한 사내의 모습이 병치되고 있다. 작품의 행간의 의미를 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1-3행 : 너무도 작은 제비집에 새끼들을 재우고 어미는 둥지 위에 간신히 잠들었다.
4행 : 그 옆에 못 하나가 있는데
5-6행 : 제비 새끼들의 아비는 그 못에서 밤을 보냈다.
7-8행 : 그런 제비 아비의 모습을 화자는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 본다. 여기까지를 내용상 하나의 연으로 묶는 것이 좋다.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아빠를 보면서 왜 화자는 눈이 뜨거워진 것일까? 왜 눈물을 흘린 것일까? 감동의 눈물인가? 연민의 감정인가?
9-10행 : 장면이 바뀐다. 너무도 작은 제비집은 흙바람 부는 버스 정류장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너무도 작은' 것이나 '흙바람 불어오'는 것이나 그 환기되는 분위기는 동일하다. 그러한 정류장에 아이 셋과 함께 누군가를 마중 나온 사내에게 시인은 시선을 멈춘다.
11-13행 : 그 사내는 아내를 기다렸다. 그 여자는 오랜 노동을 끝내고 온 모양인지 몇 번의 버스 뒤에서야 비로소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여자의 얼굴이 시인에겐 매우 창백하게 보였고 그래서인지 반쪽의 달조차 매우 창백하게 보인다.
14-16행 : 아이들은 엄마에게 달려가고, 물끄러미 달빛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내'의 모습이 시인에게 각인된다. 창백한 달빛을 바라보며 사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일까?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일까?
17-20행 : 이 부분은 시인의 논평에 해당한다. 정류장에서 만난 그 '사내'가 실업자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는 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오랜 실업 속에서 마땅한 직장도 쉽게 나타나지 않아 변변한 집 한 채 갖지 못하고 단칸 셋방에 세들어 사는 사내. 아랫목에 아이들을 재우고 자신은 결국 '못' 위에서 잠을 자며 힘든 삶을 견딘 사내.
21행 : 정류장에서 그 사내의 가족들이 좁은 거리로 이동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흙바람은 불어오고
22-25행 : 비록 달빛이 식구들이 손잡고 걸어가는 그림자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그렇게 위안하기엔 그들이 헤쳐나아가야 할 삶은 너무도 힘들고 언제나 한 걸음 쯤 뒤쪽에서 걸어갈 수밖에없는 아버지
26-27행 : 그런 아버지의 삶이 바로 '못 위의 잠'이다.
이 정도 독해를 하였으면 이제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과거에 시인은 못 위에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제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연히 종암동 버스 정류장에서 한 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내의 모습에서 제비 아비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다. 남편은 실직자이고 아내가 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인물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이 사내와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많지 않은가? IMF 실업대란 이후 우리 사회에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옷깃을 세우며 당당히 서 있으려 했지만 자꾸만 움츠려는 어깨를 가진 아버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못 위에서 꾸벅 꾸벅 잠들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아버지. 비록 자신은 구조 조정의 시퍼런 칼바람이 삶이 지치고 힘들어도 가족만큼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쉬게 하고 싶은 이 시대의 슬프고 위대한 아버지. 겉으로는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외면한 채 차가운 못 위에서 꾸벅이며 안식을 취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뜨거운 눈물과 연민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쨌거나 이러한 아버지 모습에 대해 시인은 연민과 안타까움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관련작품]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의 정을 노래한 시
김종길 성탄제 / 고은 성묘 / 박재삼 ‘추억에서’ / 기형도 ‘엄마 걱정’ / 이성복 ‘또 비가 오면’ / 이용악 ‘달있는 제사’ , ‘플벌레 소리 가득차 있었다’ / 강우식 ‘어머니의 물감상자’ / 정한모 어머니 / 정인보 자모사 / 김상훈 아버지의 창 앞에서
꾸벅거리는 아비제비⇒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함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아비제비의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시적 화자
제비집→정류장 : 과거 회상의 시작됨
흙바람 : 삶의 고단함과 세파
시적 화자에게 비친 삶에 지치고 고단한 어머지의 삶을 상징 / 감정이입
창백한 표정의 어머니를 바라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심리 /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경제적으로 무력한 자신에 자책의 심리 - 화자의 추측
달빛 : 잠시나마 단란하고 정겨운 식구들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소재
과거에서 현재로 되돌아 오는 부분으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드러나 있다.
아버지의 삶 =못 위의 잠
【나희덕 시인】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
*연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
*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반 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시론집으로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 접시의 시』 등.
=================================
1. 나희덕의 시와 삶 - 역사주의 비평으로 분석하기 나희덕은 첫 시집《뿌리에게》후기에서 '시란 내 삶이 진솔하게 육화된 기록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시인과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시를 통한 '사회·역사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인 체험과 융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노력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그녀에게 있어 시란 삶이고, 삶이 곧 시인 것이다. 1.1. 창비시선 95『뿌리에게』중「우리는 들에서 떠났네」- 원본확정 나희덕의 시「우리는 들에서 떠났네」는 1991년 발행된 그녀의 첫 시집『뿌리에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나희덕이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지 2년 만에 출간된 것으로 창작과 비평사 출판사에서 창비시선 95로 나왔고 이 시는 시집 제 1부에 게재되어 있다. 1.2. '우리'의 역사성 - 언어의 역사성 제목과 시 본문에 걸쳐 등장하고 있는 '우리'라는 말은 유독 우리 민족이 즐겨 쓰는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는 말하는 이가 자기와 자기 동아리를 일컬을 때, 말하는 이와 제 삼자만을 일컬을 때, 말하는 이와 말 듣는 이만을 일컬을 때, 일부 명사 앞에 쓰이면서 '나의'의 뜻으로 쓰일 때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나', '너', '그들'도 아닌 '우리'라 함은 이 시를 통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라는 말은 나와 너,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말로 동질감을 나타내고자 할 때 자주 쓰인다. 본문에서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시속에서의 '우리'는 '뿌리내리지 못한,' '들에서 떠난' 자들이다. 중심부에서 이탈한 자들, 혹은 버려진 자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의 동질감이라는 것에는 절박함이 들어있다. 중심에서 벗어나 주변부에서 하나가 되는 '우리'에게는 들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자리잡고 있으며 '꿈자리마처 덮치는' 냉혹한 현실이 있다. 결국 '우리'는 그 상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어디론가 밀려갈'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절박함에서 오는 동질감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1.3. 교사로서, 여성으로서의 나희덕 - 작가의 전기 나희덕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하기 전인 1988년부터 수원의 창현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교사 생활을 하였다. 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소속이었던 시인인만큼 교직원 노동자로서의 생활이 시속에 담겨 있으며 특히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 할 수 있다.「우리는 들에서 떠났네」에는 직접적인 제자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아니나, '우리'의 자식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 아이들은 '흔들리는 불빛 아래 쪼그리고 앉아 숙제하고' 있으며,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의 마지막 뿌리'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작은 불씨 마냥 간직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치고 있는 '가난한 양떼'들이며 정체성을 상실하여 '들에서 떠나와 또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나희덕은 90년대 초에 등단한 여류시인이다. 90년대에 문단에 여성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것과 관련하여 시문학에서도 나희덕의 등장은 이것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여류 시인의 시가 갖고 있는 개성이란 어떤 것일까. 나희덕의 시에서는 여타 다른 시인들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모성이 흐르고 있다. 소소한 일상 - 대학시절의 흔적들, 교사 노릇을 하며 겪은 일들, 가정생활의 느낌들 그리고 기타 사회·경제적인 문제들 - 이 시에 묻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이 시속에 묻어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따뜻하게 감싸안으려 하는 모성적 따뜻함이 느껴진다. '철없던 시절의 단꿈'을 꾸고 있을 때, 어디선가 다가오는 '포크레인'은 '우리의 꿈자리마저 덮'쳐버리고 말지만 이내 '식은땀을 씻어내리다 보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인은 삶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 끝 어딘가에 삶의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를 발견하고 그것을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1.4. 들에서 떠나 어디론가 밀려가다 - 역사적 전후관계 속에서의 의미 이 시에서는 동작이 이어지고 있다. 어딘가에서 떠났고 떠남 혹은 밀려감이라는 다음 행위가 이어지고 결국 '어둠도 가시고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2연과 4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연에서는 '우리는 들에서 떠나와 또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방향을 상실한 '우리'의 고민의 흔적이며 앞으로 이러한 삶이 쉽게 끝나지 않고 고난이 계속 될 것이라는 아픈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3연에서의 '논밭이 쩍쩍 갈라지고,' '천정에 우르릉 금이' 가고, '포크레인이 걸어들어와 우리의 꿈자리마저 덮치는'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삶이란 떠난 자들이 겪게 되는 고통인 것이다. 결국 이런 말은 지난한 삶에 대한 파노라마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폴 고갱(Paul Gaugin)의 작품을 비교함으로써 더 선명하게 그 내용의 의미가 전달이 된다. 고갱의 1897년 작품인『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o are we? Where are we?)는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의 삶을 화폭 하나에 담아내고 있으며 인생의 단면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그려내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낙원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타히티의 이브에서부터 흐느끼는 표정의 인물들, 그리고 페루 미이라의 자세로 쪼그리고 앉아 점쟁이 같은 노파에 이르기까지 상징성으로 충만해 있다. 또한 고갱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성경에 비교될 정도의 주제를 가진 철학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다분히 철학적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고갱의 작품과 나희덕의 시「우리는 들에서 떠났네」는 '통시적 관계를 벗어나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사용된 동일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1.5. 상실감의 시대 - 문화적 배경 이 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91년 발행된 나희덕의 첫 시집『뿌리에게』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다. 나희덕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기는 80년대 말이었고 첫 시집이 간행된 시기는 91년으로 90년대 초의 일이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냉전시대의 종식에서 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어진 이념의 붕괴, 탈정치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또한 크게 보면 이 시기는 세기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시를 통해서 갑작스런 이념의 붕괴와 공산주의 체제였던 동구 국가의 해체로 혼란스러웠던 그 시대의 '우리'들을 보여준다. '개구리 울음소리로 가득'한 공간, '포크레인이 걸어들어와' 꿈자리 마저 뒤숭숭하게 만드는 공간은 시대적으로 이념을 상실해버린 '우리'가 처한 위치이다. 이념이 전부라 믿었던 80년대, 그 믿음이 깨어진 90년대. 그 10년만큼의 거리감은 '우리'를 주변부로 내쫓아냈고 우리는 그저 다시 '어디론가 밀려가는' 것이다. 세기말적 분위기로 진행된 이 시기는 연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80년대 말 90년대 초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이 문화적 배경은 시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1.6. 기승전결의 스토리 - 전통적 관례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기승전결의 형식은 원래 한시(漢詩)의 절구체(絶句體)에 있어서의 구성법을 그 유래로 하고 있다. 제 1구를 기구(起句), 제2구를 승구(承句), 제3구를 전구(轉句), 제4구를 결구(結句)라 하며, 이 네 구의 교묘한 구성으로 한 편의 절구를 만드는 방법이 기승전결에 해당하는 것이다. 기구에서 시상을 일으키고, 승구에서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며, 전구에서는 장면과 사상을 새롭게 전환시키고, 결구는 전체를 묶어서 여운과 여정이 깃들도록 끝맺는 것이다. 또한 시작품 외에도 소설이나 희곡에서 줄거리나 구성을 고안하는 데도 사용되는 형식 중 하나가 바로 기승전결이다. 이러한 점에서 나희덕의 이 시는 이러한 전통적 관례를 아주 모범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연으로 이루어진 시를 들여다보면 1연에서는 들에서 떠나는 모습, 2연에서는 떠나는 우리의 자식들의 모습, 3연에서는 꿈자리마저 덮치는 외부로부터의 공격, 4연에서는 어둠이 가신 세상에서 어디론가 다시 밀려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지고 있으며 또한 한시의 절구체 형식을 통해서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갈등이 생기는 3연과 갈등이 해소되고 또 다른 현실이 펼쳐지는 4연은 독자에게 긴장감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
뿌리에게 / 나희덕
부패의 힘 /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눈 내리는 아침
할머니는 손수 지어놓으신 수의로 갈아입으셨다 수의는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에 싸여 있었다 수의를 지어놓고도 이십년을 더 사신 할머니는 백살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이 되어서야 연듯빛을 군데군데 넣어 만든 그 수의를 벽장 속에 숨겨둔 날개옷처럼 차려 입으신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버선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도 허지, 그것을 안 맨들 양반이 아닌디 아닌디...... 어리등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의 두 입술은 설핏 웃는 듯도 하였다 상자 속에는 버선 대신 삼베 두 조각이 들어 있어서 그걸로 잘 마른 장작 같은 두 발을 싸드렸다 삼베 두 조각을 두고 할머니는 왜 끝내 버선을 만들지 않으셨을까 1978년 7월 15일자 신문지 에 싸여 있던 수의 한벌과 삼베 두 조각으로 따뜻하게 여며 입고 할머니는 1998년 1월 19일 아침 횐눈이 내리는 새로운 집으로 걸어들어 가셨다
보리수 밑을 그냥 지나치다 / 나희덕
와온臥溫에서 / 나희덕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 넣을 때,
옥수수밭이 있던 자리 / 나희덕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 나희덕
듯 웃고 있을 것이고
다음 생의 나를 보듯이 / 나희덕
칸나의 시절 / 나희덕
난롯가에 둘러앉아 우리는
길 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상현上弦 / 나희덕
어떤 出土 / 나희덕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흑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섶섬이 보이는 방 / 나희덕
- 이중섭의 방에 와서
이중섭과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6.25 전쟁 중 살던 방, 초가집의 오른 쪽 끝에 있다
벗어 놓은 스타킹 /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생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
나희덕 시인 김수영문학상 (1999) 현대문학상 (2003) 수상
< 뿌리에게 >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 그 곳이 멀지 않다 > 산문집 < 반통의 물 > 등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생에 대한 반성으로 여성으로서 자기 정체성 찾아가는 과정 표현
“이전에 삶이란 과거가 만들어낸, 견뎌야 할 어떤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과거가 미래를 만들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들뢰즈의 말처럼, 기억의 되새김질보다 생성의 순간에 몸을 맡기고 싶다. 오늘도 봄 그늘에 앉아 기다린다, 또 다른 나를.(‘시인의 말’ 중에서)” 생에 대한 단단한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내는 시인, 나희덕의 시집 ‘야생사과’(창비)가 5년 만에 나왔다.
그가 ‘시인의 말’을 통해 밝힌 대로 상처와 고통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왔던 그의 시선은 좀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야생사과’를 통해 자신에게 야생사과를 건네준 사람들이 사라진 수평선에서 등 뒤에 서있던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대화’를 통
해 자기 속의 자벌레는 타인 속의 무당벌레에게 말을 건네 대화를 시도한다. 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제가 페미니즘적인 기조를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많은 시들이 가부장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경계를 넘는 여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죠.” 이는 “내 안의 물기가 거의 말라갈 무렵 낯선 땅에서 물의 출구를 발견한 셈이다. 무수한 나를 흘려보내는 것이 첫 물줄기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었다”는 작가의 말과도 연관된다. ‘누가 내 이름을’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에서는 가부 장적인 세계로부터 독립해 경계 너머의 삶을 지향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아냈다. 특히 ‘분홍신 을 신고’에서 시인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시간을 벗어나 어디론가 갈 수 있다고 노래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붙잡아두었던 분홍신을 벗고
경계를 넘어서 나아가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보이지만 그럴 때조차 시에서는 아버지란 존재를 빼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스스로 강을 건너야 함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모른 채/ 조금만 기다리세요/ 다 왔어요.(‘우리는 낙엽처럼’ 부분)” 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착학과 교수로 8년째 재직 중이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