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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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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89
2015년 02월 11일 16시 55분  조회:1960  추천:0  작성자: 죽림

 

 

881□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김용락, 창비시선 148, 창작과비평사, 1996

  꼼꼼하고 세밀한 묘사가 시인의 성실성과 뛰어남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방법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이렇게 묘사를 통하여 보여주기 수법으로 보여주기에는 너무나 격렬한 것이다. 이럴 때는 장시로 보여주어야 하거나 아니면 육성으로 직접 육탄전을 벌이는 것이 더 나은 법이다. 이런 보여주기는 자칫하면 남들도 다 아는 것을 다시 보여주는 지루함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시집은 정확히 그 지점에 서있다. 한자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잔재 같다.★★☆☆☆[4337. 11. 10.]

 

882□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신경림, 창비시선 172, 창작과비평사, 1998

  시에서 말을 아끼면 묘사가 되고, 묘사가 깊어지면 상징이 된다. 이 시집은 정확히 그 지점을 지나고 있다. 상징주의의 비틀린 상징과는 달리 이 묘사를 통해서 진입한 상징은 아주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이루어진다. 그래서 아주 깔끔하고, 그 깔끔함의 이면에는 시인의 냉철하고 냉정한 시각이 깔려있다. 주로 삶을 회고하는 방식의 묘사여서 달관과 통찰의 깊이도 느껴진다. 다만 추억에 의존할 때 생기는 정신의 둔화는 피할 길이 없다. 한자 역시 그런 둔함의 일종이다.★★★☆☆[4337. 11. 10.]

 

883□그 여자네 집□김용택, 창비시선 173, 창작과비평사, 1998

  절반의 성공이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나머지 절반은 실패라는 뜻이다. 짧은 시들은 아주 좋은데, 긴 시들은 형편없다. 가장 큰 문제는 시에서 주제가 걱정스러울 만큼 엷어졌다는 점이다. 그 점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사랑타령인데, 이 사랑타령이라는 것이 시집 팔아먹기에는 좋지만, 자연 속에서 삶의 통찰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내면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되면 도사가 될 테고, 현실은 증발할 것이다. 이건 염려할 만한 부분이다. 시 몇 편이 아직까지 한 낱의 희망처럼 붙잡고 있으니 그것을 믿을 일이다.

  시가 구체성을 결여하면 감동의 폭은 넓어지지만 깊이는 얕아진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사랑시가 갖는 맹점이 이것이다. 어떻게 둘러대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연결되지만, 그럴수록 감동은 멀어진다.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시 역시 어떤 분명한 체험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 체험이 시에 나타날 필요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시의 밑바닥에 그 체험이 깔려있어야만 감동이 온다. 시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체험이 분명하지 않기에 시는 관념화한다. 이 점 특히 다른 부분의 태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경계할 일이다.★★☆☆☆[4337. 11. 10.]

 

884□돌아보면 그가 있다□이원규, 창비시선 166, 창작과비평사, 1997

  시가 참 단단하다. 논리의 비약도 재미있다. 그런데 너무 냉정하다. 이것은 내용을 너무 감추고 압축하려는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냉정함이 어느 방향으로 흐를 것인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냉소주의의 냄새가 너무 짙다. 그러면서 뜨거운 혁명을 꿈꾸고 있다. 그러니 말은 뜨겁되 시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것이다. 언어를 단단하게 잘 다루는 능력과는 별개로 주제에 따라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파고들어야 할 것 같다.★★☆☆☆[4337. 11. 10.]

 

885□가시연꽃□이동순, 창비시선 192, 창작과비평사, 1999

  두 가지 특징이 선명하다. 주제가 생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과 절제된 감각의 묘사가 그것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묘사는 언어감각의 뛰어남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은 웬만한 공력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묘사를 하다보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생긴다. 감정을 드러낼 경우 애써 그린 묘사가 그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불필요한 발언을 해서 전체의 분위기와 긴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 절제된 언어감각이 뛰어난 시에서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수필 투의 문장이 많이 섞여있는 것이 눈에 띈다. 게다가 한자까지 섞여서 큰 흠집을 이루고 있다.★★☆☆☆[4337. 11. 12.]

 

886□산은 새소리마저 쌓아두지 않는구나□김영무, 창비시선 178, 창작과비평사, 1998

  언어를 다루는 솜씨도 나름대로 빼어나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독특한 개성이 있다. 그런데도 한 가지가 빠진 듯한 것은, 시로서는 내용이 함량 미달인 것을 자꾸 시로 만들려는 태도 때문이다. 그 태도가 시의 곳곳에 군더더기를 남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시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남기지 않는, 살을 깎아내는 결단이 더 필요한 경우이다. 시인이라는 이름과 시집이라는 것으로 만족하자면 이대로 두어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깊어질 필요가 있다. 한자는 깊어지지 않는 한 조건이다.★★☆☆☆[4337. 11. 12.]

 

887□집은 아직 따스하다□이상국, 창비시선 174, 창작과비평사, 1998

  할말을 묘사로 대체하고, 그것을 적당한 호흡에 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 넘치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사물 너머의 어떤 중요한 세계를 놓치지 않고서 독자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하도록 유도하는 힘도 좋다. 특히 제1부와 제4부의 작품들이 그렇다. 그런데 시집 중간에서 많은 작품들이 긴장이 해이해졌다. 아쉬운 일이다. 아마도 현실의 문제에 상상력이 짓눌린 것 같다. 현실의 문제가 절박할수록 상상력은 가벼운 행보를 해야만 시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이 부분만 보충한다면 정말 대단한 시인이 될 것 같다. 한자는 덫이다.★★★☆☆[4337. 11. 13.]

 

888□긴 사랑□나해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171, 문학과지성사, 1995

  시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이 시집은 잊고 있다. 옛날 같으면 이 정도의 퉁김만으로도 독자는 감동했겠지만, 지금의 독자는 그렇지 못하다. 하도 조미료를 많이 먹은 탓에 입맛마저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시가 꼭 그들의 입맛에 맞도록 조미료를 칠 필요는 없겠지만, 옛날의 맛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면, 조미료를 쳐대는 모습을 보고서 무언가 그것을 넘어설 어떤 방안을 찾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시가 지나치게 짧다. 짧아져야 해서 짧다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더 길어져야 할 듯한데도 짧아졌다면 그건 문제이다. 조금은 더 길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 시들이다.★★☆☆☆[4337. 11. 13.]

 

889□푸른빛과 싸우다□송재학, 문학과지성시인선 142, 문학과지성사, 1994

  특수한 내면풍경을 드러내는 것이 시의 고유 영역이라는 고집과, 타고난 무관심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무중력 공간의 시를 낳고 있다. 마치 시장 속에 박힌 점집 같다. 절집 같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고고한 척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손님이 오든 말든 상관없다는 투다. 이래 가지고야 장사가 안 되지는 않겠지만,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그런 부분도 시의 한 영역이기는 하나, 욕심이 너무 클 때 나오는 실수이기도 하다. 좀 더 문을 열 필요가 있는 시집이다. 문패를 한자로 달아서야 구세대 밖에 또 누가 드나들겠나?★★☆☆☆[4337. 11. 13.]

 

890□나의 우파니샤드, 서울□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140, 문학과지성사, 1994

  너무 수다스럽다. 그 수다스러움이 일종의 전략일 수는 있겠지만,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사이가 너무 느슨해져서 긴장마저 떨어뜨린다면 그건 낯설게 하기도 아니고 상상의 과잉도 아니니 다른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가 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발견한 또 다른 세계를 장황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할 말을 대신하는 것 역시 지루함의 한 원인이 된다. 그러니, 하는 말에 견주어 그 말로 전해오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면 듣는 쪽에서는 잔소리로 들리는 법이고, 잔소리 앞에서는 누구나 귀를 닫고 딴 짓을 하는 법이다. 시가 잔소리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다. 상상력이든 언어이든 좀 절제된 어떤 몸짓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 이왕 경전을 번역하려면 한자보다는 그냥 한글이 낫지 않겠는가?★★☆☆☆[4337.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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