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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론, 박치원 론
2015년 02월 19일 16시 52분  조회:4525  추천:0  작성자: 죽림

김수영 론

-- 생애와 시적 경향을 중심으로

 

 

                                        심 상 운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식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1968, 「詩여, 침을 뱉어라」에서 발췌)

 

1960년대 치열한 의식(意識)을 무기로 시대의 한 복판에 뛰어든‘현실참여(앙가주망)’의 시인 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2가 관철동 1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선린상고(善隣商高)를 거쳐 도일, 1941년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했으나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 8·15광복을 맞아 귀국하여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다. 1949년 김경린(金璟麟)·박인환(朴寅煥)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1949)을 간행하여 젊은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6·25전쟁 때에는 미처 피난을 못해 의용군으로 끌려 나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 후 교편생활, 잡지사·신문사 등을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그 결실로 1958년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하였으며, 1959년에 시집『달나라의 장난』( (춘조사1959)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작활동은 1960년 4,19 이후 모더니즘에서 현실참여로 전환하면서 왕성한 열기를 뿜어냈다. 모더니즘적인 지성을 바탕으로 시를 통한 사회적인 발언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그림자가 없다」,「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기도」,「육법전서와 혁명」,「푸른 하늘은」,「만시지탄은 있지만」「나는 아리조나의 카보이야」,「거미잡이」등 현실참여의 시편들은 그를 1960년대 한국현대시의 중심에 서게 했다. 그는 시 창작을 넘어서서 자신의 신념을 현실적인 행동으로도 실천하였다.1965년 대학생들의 ‘6.3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동조하여 박두진, 조지훈, 안수길, 박남수, 박경리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 성명서>에 서명을 한 것이 그 예(例)다.

 

1968년에는『사상계』1월호에 발표한 평론「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발단으로,「조선일보」지상을 통하여 이어령과 3회에 걸친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여 <펜클럽> 주최 문학세미나에서「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였는데, 현실참여시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치열한 삶은 짧게 끝났다. 1968년 6월 15일, 밤 11시 10분경 귀가하던 길에 구수동 집 근처에서 버스에 부딪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6일 아침 8시 50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대상으로 시작활동을 시작한 그는 4·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참여시’로 방향을 전환함으로써 한국현대시사에 1960년대 대표적인 현실참여의 시인으로 각인되었으며, 한국참여시의 ‘거대한 뿌리’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한 이래 마지막 시「풀」에 이르기까지 23년 간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수영의 시는 초기의 모더니즘 시, 1950년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인간의 삶의 문제와 그에 대응하는 개인적 정서에 초점을 맞춘 시기의 시, 1960년 4·19 기간의 감격과 1961년 5,16의 좌절을 표현한 시기의 시, 그 이후 1960년대 중반의 소시민의식(小市民意識)에서 벗어나 사회적 삶의 조건을 비판한 시기의 참여시로 논의될 수 있다.

 

 

그는 생전에 에머슨의 논문집 『20세기 문학평론』을 비롯하여 『카뮈의 사상과 문학』 『현대문학의 영역』등을 번역하였다. 사후에는 시선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1974년) 산문선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년) 시선집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민음사1979) ,산문선집 『퓨리턴의 초상』(1976년),『김수영 시선』,『김수영 전집 1-시』,『김수영 전집 2 - 산문』(1981년)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전집 출간을 계기로 민음사(民音社)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했고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사망 1주기를 맞아 도봉산에 시비(詩碑)가 건립되었고(1969), 미완성의 장편소설 『의용군』이 『월간문학』(1970)에 발표되었다. 1988년에는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창작과 비평사)이 간행되었다.

 

 

김수영 시의 시사적(詩史的) 맥락에 대해 평론가 김현은“1930년대 이후 서정주, 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難澁性)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하였다. 김현은 시의 예술성을 난삽성으로 보았으며, 김수영의 시편들을 예술성보다는 시의 사회적 발언과 참여라는 시각에서‘구체적 개념의 시’로 인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1960년대 프랑스의 장폴 사르트르가 벌인 앙가주망(engagement) 운동이 한국의 젊은 문인들에게 끼친 정신적인 영향의 결과인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사르트르가 주장한 앙가주망은 정치행동이나 사회참여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시대와 상황의 구속에서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앙가주망은 각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극히 윤리적인 사상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4.19의 승리감 속에서‘역사’와‘민중의 실체’를 인식한 김수영에게 5.16의 억압감은 극복해야할 대상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극복의 에너지를 당시의 젊은 지성들이 지지하고 합세하는 현실참여 사상(앙가주망)에서 얻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일본의 「진보적」지식인들은 소련한테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흰 원고지 뒤에 낙서를 하면서

그것이 그럴듯하게 생각돼서

소련을 내심으로도 입 밖으로도 두둔했었다

---당연한 일이다

 

(중략)

五·一六 이후의 나의 생활도 생활이다.

복종의 미덕!

思想까지도 복종하라!

일본의「진보적」지식인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필시 웃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전향기(轉向記)」에서

 

「전향기(轉向記)」는 자신의 사상과 의식의 전향경위를 회고담(懷古談)같이 시에 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지적인 풍자와 비판을 통한 현실안주(現實安住)를 거부하는 의식의 표출이 들어 있다. 따라서 당시 지식인들에게 자신과 같은 현실의식을 고취하고자하는 사상적(思想的)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래서 시의 형태가 산문과 구별할 수 없는 형태가 된 것 같다.

 

그의 시편 중에서 마지막 시가 된「풀」은 그의 현실참여 사상을 뿌리로 한 시로서「폭포」「눈」과 함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전향기(轉向記)」의 지적인 풍자와 비판의 메시지와는 다른 면에서 시적인 형상화에 성공한 시로 인식된다. 시를‘관념의 진술(陳述)’이 아닌‘관념의 비유(比喩)’로 치장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전문

 

이 시의 풀과 바람을 자연의 풀과 바람이 아닌 비유의 대상로서의 풀과 바람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김수영의 사회참여의 경향성에 비추어 볼 때 타당성을 갖는다. 그래서 이 시는 저항적이고 주지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의 관념시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시의 의미는‘풀(민중)⟷바람(권력), 눕다(굴복) ↔ 일어나다(저항), 울다(패배) ↔ 웃다(승리)’라는 대립구조에서 파악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바람, 비⟶ 반민중 세력, 억압, 독재 권력, 가혹한 현실, 자유로운 삶을 억압하는 힘)과 긍정적인 것(풀 ⟶ 권력자에 천대받고 억압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불의에 저항해온 민중)으로 분리된다. 이 시의 시적효과는 네 개의 동사(눕는다, 울었다 일어난다, 웃는다)가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역동적인 리듬에서 발생한다. 이 리듬은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민중의 수동성과 능동성 즉 권력에 대한 굴복과 저항이라는 양면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민중의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깊이 있게 드러낸다.

 

그러나「풀」을 민중과 권력의 대립구도로만 해석할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시해석의 단선화(單線化)다. 그리고 풀의 자연적 생태적 환경을 도외시(度外視)한 점이다. 비를 몰아오는 바람이 없으면 풀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풀의 생명력은 바람과 비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런 관점은 시적사유(詩的思惟)와 상상력(想像力)도 자연환경의 원리(原理)에서 이탈하지 않고 부합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풀」을 관념에 의지(依支)하지 않고 시의 독자성을 살려서‘시 속에 표출된 풀의 생태’를 그대로 음미해보는 것도 이 시의 감상법이 된다. 그럴 경우「풀」은 비유에서 벗어난 ‘사물시(事物詩)’로 읽히고 시의 해석도 단선화에서 해방되어 독자들의 상상영역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열린다.

 

김수영의 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를 지나치게 사회적 발언의 도구로 몰아간 것이다. 시를 예술적 목적에서 사회적 발언도구로 전환한 후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것은 의식화 되고 편향된 관념의 노출이다. 그는 자신의 관념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시를 썼다고 할 수 있다.「전향기(轉向記)」에서와 같은‘시의 산문화(散文化)와 의식화(意識化)는’는 김수영 시의 사상적 경향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시를 1920년대 계몽주의를 내세운 이광수의 문학과 같은 경향으로도 읽을 수 있게 한다.

 

 

송욱 론

-- 생애와 시와 시론의 특성을 중심으로

 

 

 

                                                                                   심 상 운

 

 

192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일본 교토(京都)대학을 거쳐 서울대학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1948년). 미국 시카고대학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 문리대 교수를 거쳐 인문대학장을 지낸 송욱은 시「장미」「비오는 창」이『문예(文藝)』(1950)지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제1시집『유혹(誘惑)』(1954)을 상재한 이후 1956년 영미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영향을 받은 12편의 풍자 연작시「하여지향(何如之鄕)」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1년에는 하여지향 (何如之鄕)」과 「해인연가 (海印戀歌)」등을 수록한 제2시집 『하여지향(何如之鄕)』을 펴냈다. 이어 1971년에는 이데아와 관능, 사상과 육체의 조화를 밀도 있고 간결하게 읊은 제3시집 『월정가 (月精歌)』를 펴냈다. 제4시집『나무는 즐겁다』(1978)와 사후(1980,4,21)에 엮어진 제5시집 『시신(詩神)의 주소(住所)』(1981) 등에서 보여준 그의 모더니즘의 시편들은 그의 시세계의 독특한 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탐미(眈美)와 서정(抒情) 그리고 풍자와 익살을 통한 현실비판의 기법으로 평가 받은 그의 제2시집『하여지향(何如之鄕)』(1961)에 대해「풍자, 자기 비하의 아이러니―송욱론」,(『

문예2000』, 1997. 1.)을 발표한 이승하(시인, 중대문창과교수)는 편저『송욱』(새미작가론 총서·13, 2001)에서 “1950∼60년대에 있어 송욱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 독특한 시세계는 전통지향의 서정시와 모더니즘 계열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그 당시 우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엄혹한 일제 36년을 통과하면서 거의 완벽하게 사라진 현실풍자시의 전통이 송욱에 의해 되살아난 것도 그렇거니와, 서구 작시법을 응용하면서도 우리말과 한자를 갖가지 방법으로 배치하여 실험한 실험정신은 높이 사주어야 할 송욱만의 덕목이다.”라고 하였다.

 

다음은 연작시「하여지향(何如之鄕)」의 시편 중에서 뽑은 시다.

 

청계천변 작부를

한 아름 안아 보듯

치정 같은 정치가

상식이 병인 양하여

포주나 아내나

빛과 살붙이와

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앞에서

다달은 낭떠러지!

 

---「하여지향(何如之鄕) 5 」전문

 

이 시에서 송욱 시의 개성을 드러낸 표현은‘치정 같은 정치’라는 풍자어구(諷刺語句)다. 언어유희 같지만 단어의 앞뒤를 바꿈으로써 벌어지는 의미의 차이가 환기시키는 풍자는 현실과 부딪칠 때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언어폭탄이 된다. 이와 함께‘현금이 실현하는 현실 앞에서’의 현금과 현실의 첫소리와 한자의 동일함이 빚어내는 감각은 이 시가 얼마나 서민적이고 현실적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의 풍자시는 동영상의 이미지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시의 끝 구절‘다달은 낭떠러지!’는 금방이라도 추락하는 듯한 동적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이런 풍자시를 통한 그의 사회적 발언은 1950〜60년대의 한국 사회상을 날카로운 비판의 눈으로 응시하고 그려내고 있다는 데, 시적 의미가 부여된다.

 

그대 알몸은

 

관세음 보살

 

묵직하고 보드라와

 

신비로운 바윗덩이 궁둥이

 

한 아름 안에

 

우주가 현신한다

 

-「나체송 (裸體頌)」전문

 

송욱은 자신의 시가 프랑스의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나체송 (裸體頌)」에는 육체를 통해 지성을 표출한다는 영미 주지주의의 영향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는 서구의 비너스가 아닌 한국의 관세음보살을 대상으로 인간의 아름다운 육체와 우주의 합일(合一)을 표현함으로써 서구 미학의 틀에서 벗어난 송욱만의 독자적인 시선을 확보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런 사회풍자와 관능 미학의 시편들과 함께『사상계』에 연재될 때부터 관심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끈『시학평전(詩學評傳)』은 그의 독자적인 안목에 의해 동서(東西)의 문학사상과 작품을 비교 연구한 시의 이론서라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1969년에 나온 『문학평전(文學評傳)』역시 동서의 시인ㆍ소설가ㆍ문학사상가 등의 작품과 이론을 비교ㆍ분석했다는 점에서 뜻 깊은 업적으로 평가된다.

 

이승하는『시학평전(詩學評傳)』에 대해“영미 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1950∼60년대 상황에서 국적 있는 비평을 했다는 것도 후학이 본받아야 할 사항이다. 외국문학 전공자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외국과 자국의 문학에 대해 시종일관 비판의식을 갖고 연구 비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론서『시학평전(詩學評傳)』, 문학평론집『문학평전(文學評傳)』,『문물(文物)의 타작(打作)』, 시집해설서『님의 침묵(沈默)』은 다 일정한 문제점도 지니고 있지만 이들 책이 없는 그 시절의 비평사(批評史)는 다소 공허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한다.

 

 

송욱은 1964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인류가 지금까지 겪어온 모든 사상과 체험을 나의 환경과 배경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과대망상(誇大妄想)을 가끔 가진다. 이에 대한 교정책(矯正策)은 분석과 종합과 통일이 작용을 할 수 있는 건축적인 기술밖에는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그의 두 문학론(『시학평전』,『문학평전』)은 그의 이런 학문적 방법과 인식의 소산으로 이해된다.

 

『송욱의 삶과 문학』(한국학술정보, 2009)을 저술한 박종석(울산대 강사)은 “한국문학계에서 철저히 소외당한 송욱. 그가 남긴 문학사적 업적만 살펴본다면 그 면면이 한국문학사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해야 마땅하건만, 그의 타고난 비타협적이고 옹고집인 성격과 거침없는 의견표출 등은 그에 대한 진지한 문학사적 고찰을 막았다. 그러나 송욱의 문학적 가치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의 문학사적 조명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르 밀리언』지는 한국문학을 소개하면서 송욱의 「하여지향(何如之鄕)」을‘이데올로기를 떠난 앙가쥬망의 시인’의 작품으로 소개하였다. 유고시집인 『시신(詩神)의 주소(住所)』(일조각, 1981)는‘용사(用事)의 패러디화’라는 독특한 시적 장치와 함께 노장 사상의 철학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확신과 원칙, 그리고 지식과 인생 경험을 가진 진정한 비평가였던 그의 문학사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송욱 문학의 진정한 뿌리를 밝히는 자료’로서 이 책은 기능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현대시비평가(現代詩批評家)로서의 송욱은 1960년대 한국 시론 연구에 앞장서서 체계적인 연구, 분석적인 태도, 다양한 문학론의 소개 및 접목 등으로 한국시의 비평수준을 높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그래서 그는 서구문학론의 수용과 비판을 주체적으로 소화하여 주체적 비평 의식을 가진 시론가(詩論家)로 평가된다. 구미(歐美)의 시론을 체계화한 학문을 바탕으로 그가 이루어 놓은 실제 비평의 성과는 이후 비평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지고 분석·비판한 김소월, 김기림, 정지용 등 한국시사의 중심 부분은 한국시비평사에서 의미 있는 내용으로 남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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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원 론

-- 생애와 시적 경향을 중심으로

 

 

                                  심 상 운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나서 국학대학교 문학부 국문과를 졸업하여 시인으로서, 고등학교 교사로서 한 생애를 살다 1990년 별세한 그는 1955년 시집『하나의 행렬』을 발간함으로써 시단의 인정을 받고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생전에 데뷔 시집 『하나의 행렬』(시작사1955년) 을 비롯하여『위치(位置)』(한국자유문학자협회.1957년)『사월이후(四月以後)』(신조문화사.1960)『공휴일(公休日)』(양우사.1968) 『꽃의 의지(意志)』(1975) 『얼굴을 주제(主題)로 한 다섯 개의 시(詩)』(1985)등 여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리고 평론으로는 「이육사논고(李陸史論考)」가 있다.

 

그의 시적 경향은 대체로 현대문명과 도시인의 일상적 생활상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도시인의 감성이 담긴 주지적(主知的)인 경향의 시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의 시편 중 연작시「서울」에는 1940년대의 마포나루의 풍경이 사실적(事實的)으로 그려져 있어서 시대적 풍물시(風物詩)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봄이면 강물이 풀리는

쌉쌀한 바람 불면

인천에서 배가 온다

누런 조기를 가득 싣고

소금 배며 새우젓 배들이 줄이어 들어온다

황포돛단배가

강물위에 깃발을 흔들 듯이

민어 대구도 싣고

마포나루에 돛을 내린다

--연작시「서울」전반부

 

“박치원시인의 연작시「서울」에 나오는 마포나루의 풍경이다. 물론 서울대교며 양화대교 등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의 얘기다. 당시 마포나루터에는 매일 수십 척의 황포돛배가 드나들어 그야말로 파시(波市)를 이루었다. 이 배들은 주로 황해(黃海)에서 잡은 수산물을 잔뜩 싣고 왔는데 그중에서도 새우젓이 특히 유명했다. 그래서 마포나루터에는 언제나 새우젓 독이 산처럼 쌓였고 새우젓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 마포나루는 6ㆍ25로 강화도 쪽 한강하구가 막히면서 뱃길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 물길을 요즘은 황포돛배대신 최신형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중앙일보 「분수대」에서 발췌) 1927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는 청소년시절 경험한 서울의 풍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이제는 먼 과거의 시간 속에 매몰된 1940년대의 서울의 풍물을 연작시「서울」에 담은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현대시에서 풍물시의 면모를 보여준 시인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1936년 시집『사슴』으로 문단에 데뷔한 백석이다. 그는 시 속에 특유의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였고, 당시 북방지역의 토착풍속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한국 민중의 삶을 형상화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치원의 연작시「서울」도 급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1940년대의 서울의 모습을 흑백사진같이 보관했다는 점에서 평가된다. 그래서 그의 시는 1930,40년대의 서울을 이야기할 때 인용 시로 쓰이고 있다.

 

「어항」은 서울의 도심을 어항으로 비유하여 도시인(서울사람)들의 생활상을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그려낸 시로서 연작시「서울」의 사실적인 기법과는 대조(對照)되는 시다.

 

유리 컵 같은 어항, 유유한 체 하는 금붕어 서너

마리 연 신 몸 놀려, 고 자리를 선회, 고 자리 흔

적 없는 물무늬 진공의 深層, 그 심층의 언덕

바지 가는 호흡 고스란이 어여뻐 새끼 낳고

새끼 어미 고대로 줄줄이 뻗어 내린 生活史, 진공

속 時流의 한 점 나는 지금 어항 속 淡水族을

문득 기뻐 즐겨 위안하는 어진 우리 종족의 나

의 선회라는 생활의 시류 심층의 언덕바지. 얼

굴의 웃음, 가는 입김, 콧수염을 웅켜잡은 가

는 손아귀, 저편 하늘은 빛 뿌려 가로수.

 

싱싱한 鋪道의 아우성, 향기찬 우리들, 초여름 안

에 어항의 숨가뿐 숨소리, 어서 나는 물이라도

갈아 주어야겠다.

-----「어항」전문

 

 

시의 문맥이 잘 풀어지지 못하여 이미지가 불투명하지만,「어항」속에는 시인의 그림자가 투영(投影)되어 있다. 그는 여름날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들여다보고‘진공의 深層, 그 심층의 언덕/ 바지 가는 호흡 고스란이 어여뻐 새끼 낳고/새끼 어미 고대로 줄줄이 뻗어 내린 生活史,’라는 사유(思惟)에 잠기면서 도시 속에서 어항의 물고기같이 사는 자신의 존재를 그 속에 투영한다. 그리고‘싱싱한 鋪道의 아우성, 향기찬 우리들, 초여름 안/에 어항의 숨가뿐 숨소리’라는 밝고 긍정적인 도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자신의 사유를 메시지가 아닌 이미지로 나타낸 것이 이 시에 들어 있는 박치원의 모더니즘 기법이다.「손목 時計를 차고」에서도 밝고 긍정적인 감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성을 추구하는 주지적(主知的)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손목시계를 차고

왼팔을 휘둘며

덤벙덤벙 살아왔다

나는 내 팔뚝 시계에 갇혀서

半徑을 分秒처럼 돌면서

제법 똑닥거리며

줄기차게 지겹도록

그것이 반복과 무의미를 동반한

그것이 아무리 내 왼 팔을 휘젓는다고 해도

유리 안의 숫자가 너무 뚜렷하고

平面이 낭떠러지가 되는 이유를

알 수 없듯이

한여름 무자비한 광선과

한겨울 눈의 폭력처럼

유리 안 時間을 올라탈 수 있을까

나는 시계 안 分針처럼

또렷이 똑딱거리면서

내 심장소리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도 난 손목시계에

밥을 주면서 너무나 또렷한

유리 안 半徑, 낭떠러지 숫자 판을

들여다보면서 무한한 행복감에

젓는다. 내 죽음의 시간을 바라보듯이

----「손목 時計를 차고」전문

 

현대 문명의 산물(産物) 중에서도 도시인들의 손목에서 잠시라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 손목시계다. 그것은 시간의 개념이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했기 때문이다. 박치원시인은 그 작은 시계 속에 자신의 존재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유리 안 半徑, 낭떠러지 숫자 판’이라는 이미지로 냉엄한 시간의 원리를 인식하고 분침(分針)의 소리를 자신의‘심장소리와 닮았다고’한다. 그러면서‘무한한 행복감’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으로‘죽음의 시간’까지 바라본다. 이런 시적 사유는 그의 형이상학적인 주지시(主知詩)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치원은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자기만의 시적 방법에서 성취를 이루어내지 못함으로써 시단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도 기록될만한 업적을 보여주지 못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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