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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시 일가견
2015년 02월 24일 21시 56분  조회:4367  추천:0  작성자: 죽림
 

하이퍼텍스트 詩 쓰기에 관한 견해

 

                                                                           이선

 

 

  하이퍼텍스트 시론은 하이퍼와 텍스트를 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오도르 넬슨이 만든 말이다. 미국작가 조지 피 랜도(George P. Landow)의 저서『Hypertext』(1992)에서 유래된 문학이론이다. 문덕수는 하이퍼텍스트 소설론을 시론에 도입하여 한국 최초로 하이퍼텍스트 시론이라는 새로운 詩 창작 방법론을 개척하였다. 심상운은 컴퓨터의 모듈(module)과 리좀 용어를 시론에 도입하여 하이퍼텍스트 시의 구체적인 정의를 규명하고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 방법론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심상운과 오남구, 김규화, 시문학 시인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던 하이퍼텍스트 詩 쓰기는 이제 다른 문학지 시인들이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 하이퍼텍스트 시는 칭찬과 비평, 공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의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필자의 詩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문예사조도 처음에는 칭찬과 비난을 받는다. 원래 작품이 먼저 활발하게 생산되고 평론가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새로운 문예사조가 탄생하며 인정받는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시는 작품이 먼저 탄생하여 인정받고 문예사조로 등록된 것이 아니다. 컴퓨터의 디지털 전자개념을 시에 도입하여 새로운 시 쓰기 방법론을 모색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시론으로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시 창작론을 만들어가고 연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끈임 없이 새로운 시 쓰기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 창작품이 탄생되고 있다. ‘새로움’은 시의 목표며 예술의 영원한 과제다. 하이퍼텍스트 시인들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많은 눈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에 더 긴장한다. 또한 비평의 칼날을 받을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 관심은 결과로 가는 필수과정이다. 필자는 먼저 매를 맞는 기분으로 필자의 시에 자성의 칼날을 들이대기로 한다.

  필자는 하이퍼텍스트 시파에 가담하여 새로운 시 쓰기를 모색하면서 기쁨의 탄성도 질렀고 회한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이퍼텍스트 시가 내용보다는 표현에 치중하다보니 진정성의 결여와 내용의 가벼움이 문제점으로 지적받았다. 또한 무의미 단어와 이미지의 나열과 결합이 이름만 가리면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다는 작가의 개성이 없다는 지적도 받았다. 새로운 시도가 무엇이냐? 는 지적도 받았다. 필자는 「잃어버린 동화 1」에서 각각의 단절된 이미지를 각각의 연에 배치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미 엘리엇이「황무지」에서 보인 방법론을 이름만 하이퍼텍스트라고 붙인다고 하여 새로운 시 쓰기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회의에 빠졌다. 엘리엇은 필자보다 먼저 연과 연의 ‘낯설게하기’, 사물시를 쓰며 하이퍼텍스트 시가 주장하는 객관화를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시가 당위성을 갖는 것은 엘리엇보다 상상력에서 한 수 위라는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무의미를 추구하며 상상력의 무한대를 자랑한다. 독자에게 감각의 새로움과 새로운 미의식, 무한대의 상상과 자유를 제공한다. 모듈이론에 입각한 무의미 단어와 단어의 조합, 리좀 이론에 입각한 단절된 이미지의 병렬배치가 독자의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새로운 해석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대로 지정하여 주제로 독자를 이끌어 오지 않고 독자에게 ‘보여주기’를 한다. 그 다음은 독자의 자유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이 무한대의 상상력과 자유, 무의미 단어들의 조합이 닮은꼴 시를 양산하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시가 주장하는 최첨단 디지털 시론이 똑같은 물건을 찍어내는 전자시계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무의미 시는 내용의 빈곤과 진정성의 결여라는 문제를 지적받았다. 이 문제는 문덕수가 장시「우체부」에서 ‘사랑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신화와 한국전쟁까지 거시적 소재를 다루면서 내용 부재를 극복하고 있다. 문덕수는 장시「우체부」에서 모든 연약한 인간을 향한 인애하는 마음과 연민을 드러내며 시인이 지양해야 할 시적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문덕수는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물결을 동서양을 오가며 쪽배를 타고 길을 터 낸다. 어느 집에나 편지는 배달되고 시인은 우체부처럼 사랑을 퍼 나른다. 문덕수는 시인의 역량에 따라 하이퍼텍스트 시가 거시적 주제와 소재를 다룰 수 있음을 장시「우체부」에서 증명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이론인 연과 연의 링크를 통하여 무한대의 새로운 이야기를 삽입하여 짜깁기, 모자이크 할 수 있음도 증명했다. 심상운도「검붉은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에서 1연 ‘병원 응급실’, 2연 ‘밥’, 3연 ‘이집트 미라 그림’ 각각의 이미지를 병렬배치하여 ‘낯설게하기’를 실현하며 시적 긴장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사실과 사물을 통한 객관화를 실현하며 하이퍼텍스트 시가 현재성과 실제성을 떠난 비실제적이고 가벼운 언어놀음을 한다는 비난을 극복하고 있다. 심상운의「검붉은색이 들어간 세 개의 그림」은 인간에게 필연적인 병과 죽음, 삶의 문제를 다루며 진정성의 부재라는 하이퍼텍스트 시의 한계성과 오명을 극복하고 시를 한 단계 발전시켰다. 또한 그림에서 모티브를 받아 고대와 현재를 오가며 상상적 공간을 확대하여 시의 스케일을 넓히고 실제적이며 직접적인 실감을 주고 있다. 각각 다른 이미지의 연들을 링크하며 주제폭을 넓혔다.

  필자도 하이퍼텍스트 시「詩人을 위하여」와 「잃어버린 동화 1」에서 아동 성폭력 문제를 다루었다. 「詩人을 위하여」에서는 동네 할아버지와 운전기사,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12세 소녀 ‘은지’ 를 1연의 중심소재로 하여 사회문제로 부각시켰다.「잃어버린 동화 1」에서는 친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딸이 아버지를 고소하며 중벌을 내려줄 것을 판사에게 건의한 기사를 토대로 근친상간을 사회적 이슈로 문제제기하였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 시 쓰기에서는 주제는 ‘드러나지 않게’, 시적 표현은 ‘강’하게 써야 한다. 미의식과 상상력을 증폭시킬 것, 주제보다는 표현에 중점을 둔다. 필자의 졸작 「잃어버린 동화」일부를 소개한다.

 

 

  로켓을 타고 잃어버린 시간의 간이역에 내리면

  30년 전, 울고 있는 계집아이

  원초적 본능, 하이에나의 이빨에 머리카락이 잡혀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고 절뚝거리며 빙글빙글 돌다

  하늘과 땅이 홑이불처럼 거꾸로 뒤집혀,

  그녀 몸을 덮치던 날

 

  빨갛고 초록인 어둠

 

  그 뒤, 아이의 습한 동굴 속에선

  아빠의 구불거리는 갈색 음모들이 뒤엉켜 거꾸로 줄기가 치솟는 거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아~악,

  입, 귀, 콧구멍, 구멍이란 구멍에서 초록 줄기가 뻗어 나와

                                     - 이선, 「잃어버린 동화」부분

 

  근친상간과 아동성폭력은 큰 사회문제지만 집중조면을 받지 못하고 음성적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아동성폭력을 다루면서 칙칙하지 않게 어떻게 미의식적 표현을 하면서도 진정성과 주제를 어떻게 부각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아이의 마음에 ‘빨갛고 초록인 어둠’으로 상상적 색채감을 주었다. 또한 ‘아~악, / 입, 귀, 콧구멍, 구멍이란 구멍에서 초록 줄기가 뻗어 나와’ 부분에서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상처받은 아이를 필자는 식물로 바라보았다. 식물은 누가 물을 주거나 옮기지 않으면 붙박이로 자기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의 연약하고 수동적인 상황은 식물처럼 슬픔을 안고 자란다. 아이의 몸과 마음, 뿌리가 모두 아빠의 음모로 온통 생각이 집중되어 갖혀 버린 아이를 상상해 보라. ‘입, 귀, 콧구멍, 구멍이란 구멍에서 초록줄기가 뻗어 나와’ 아이의 일생을 지배할 것이다. 온 몸이 아프다고 절규도 목하는 아이. 필자는 온 몸에서 아픔의 줄기가 자라는 식물성 아이를 통하여 아이의 절박함, 절대극한 상황, 사회적 단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세상의 음모에 맞서는 연약한 소녀를 고발함으로써 역으로 세상을 고발한 것이다. 진정성의 결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또한 아날로그 시와 똑같은 주제를 어떻게 표현과 상상력을 가미하여 하이퍼텍스트 시를 완성할 것인지가 고민사항이었는데, ‘음모’와 ‘구멍’, ‘초록 줄기’를 링크하며 답을 찾았다.

  하이퍼텍스트 시는 앞으로도 많은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공격을 환영한다.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많은 공격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이퍼텍스트 문예사조가 탄생하려 하고 있다. 싹을 자르려고 노력하지 말고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 지켜보는 믿음도 작가의식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와 하이퍼텍스트 시를 쓰려고 고민하는 시인들도 천편일률적인 언어조합에 머물지 않고 시적 진정성과 표현의 새로움을 찾기 위해 더 고민하여야 한다. 하이퍼텍스트 시를 쓰는 동료들에게 어딘가 비슷한 닮은꼴 시들이 양산되지 않길 바란다. 앞으로 하이퍼텍스트 시는 예술의 필요조건인, 유일성과 창조성, 철학성을 획득한 하이퍼텍스트 시론에 입각한 완성된 하이퍼텍스트 시 작품을 쓰는 것이 하이퍼텍스트 시를 쓰는 필자와 모두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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