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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의 현주소? / 오감도! 육감도?
2016년 01월 21일 04시 25분  조회:4441  추천:0  작성자: 죽림

감각의 논리로 무장한 미려한 평문 스물여섯 편이 든 <미래파> 시론집

젊은 비평가 권혁웅의 새 비평집이 출간됐다. 알려진 대로 그는 잡지 『문예중앙』에 둥지를 틀면서 새해 벽두부터 불붙은 문단의 젊은 피 수혈이란 뜨거운 화두 속 주인공이다. 2005년 봄 『문예중앙』 혁신호를 내면서 새로운 문학의 적극적인 옹호자임을 자처하고 나선 권혁웅은, 기존의 문단이 ‘경박하다’ 혹은 ‘상업적이다’라는 이유로 이렇다할 주목을 하지 않았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열렬한 애정 고백을 이번 비평집에 담고 있다. 총 3부로 나뉜 이 책은, 필자 자신이 이미 시를 써서 등단했고 두 권의 시집을 상자한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지난 20년간 지인들과 함께해온 시 합평회의 산물로서 어제의 시와 오늘의 시에 대한 비평들로 빽빽하다. ‘사랑처럼, 아름다움도 움직인다, 시 또한 낡은 감각의 갱신을 통해서만 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그의 당찬 문학론은 새로운 감각의 출현, 젊은 시에 대한 편애의 변들을 통해 2005년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밝히는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1부에서는 이미 제 나름의 독자적인 문체와 어법을 구축한 시인들의 이전 시와 근작들에 대한 현재적인 의미를 묻는 6편의 글과 아직 비평적인 조명을 받지 못한 최근의 젊은 시인들을 소개하고 있는 「상사(相似)의 놀이들」과 「미래파」라는 제목의 두 개의 글을 싣고 있다. 2부 전반부에 실은 다섯 편의 글은 필자가 “먼 훗날 쓰게 될 시사(詩史)의 밑그림을 염두에 두고 쓴 글들”이라고 밝혔듯이 한국 시단에 방점을 찍은 별들, 이를테면 김수영을 위시하여 황동규 오규원 서정주 김춘수 기형도 황지우 최승자 정진규 최승호 등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며 한국 시사를 조명하는 글들이다. 2부 후반부에 실은 다섯 편에서는 몇 가지 키워드(집과 시, 구멍들, 흔적들, 사이들, 내통들)로 좋은 시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는 황인숙, 이진명, 이문재, 차창룡, 이윤학, 안도현 등 몇몇 시인들에 대한 작품론이다.

“나는 달을 가리켰는데 그대는 왜 손가락만 보는가?” 이 상투어구가 우리 시 비평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달이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실체’라면, 손가락은 내재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수단’이다. 과연 그런가? 비평은 가치평가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에서 도리 없이 형이상학을 편들 수밖에 없지만, 손가락의 도움 없이 그곳에 이르는 길이란 없는 법이다.
나는 우리의 비평이 늘 주제론에만 편향되어 있는 현실에 문제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분석 대신에 분류가, 해석 대신에 정의(定義)가 앞서는 게 현실이다. 주제론에 함몰되면 실질적인 작품 생산의 결과를 가늠하기보다는 작품을 낳았다고 생각되는 가상의 정신작용에만 주목하게 된다. 의도와 결과는 같은 말이 아니다. 분류와 정의에 따른 영역들, 이를테면 환상시, 여성시, 생태시, 몸시 따위는 시가 구현하는 혹은 시를 산출하는 내재적인 감각의 도움 없이는 제 영역을 확보할 수 없다. 최근 시에 대한 적지 않은 오독은 대개 의도의 오류라고 불러야 할 이 착란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실제로 시를 낳는 것은 몸의 논리를 따라가는 바로 그 감각이다. 비평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이 이 감각의 논리를 재구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시를 몸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비유적인 표현일 수 없다. 시인의 몸은 세상의 여러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기(受容器)이거나 공명통이다. 시에서의 관념은 그런 여러 감각에 대한 상위개념으로서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관념을 우선해선 안 된다. 한 시인의 시란 그가 세상을 관통해오면서 몸에 기록한 여러 흔적들이며, 비평은 그 흔적의 넓이와 깊이와 모양을 먼저 측정해야 한다. 과격하게 말해서 시인론은 작품론의 총합일 뿐이며, 그 역일 수 없다. 비평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감각의 기술론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쓰면서 늘 이 점을 의식했다. 감각이 어떻게 시를 낳는가? 그래서 앞의 말 역시 다음과 같이 수정될 필요가 있다. “나는 손가락을 가리켰는데, 그대는 왜 달을 보는가?” _「책머리에」에서

나는 여전히 시의 역사가 감각의 역사라고 믿고 있으며, 그래서 시사의 기술은 전대 시인과 후대 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감각의 주고받음, 곧 시적 영향의 수수관계에 대한 해명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감각적 현실이 이후의 감각을 보증하고 예견하는 것, 시는 그런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정신(精神)의 역사는 순수 추상의 역사다. 이 말로, 내가 정신사의 기술을 반대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추상(抽象)이란 구상을 딛고 올라선 곳에서 비로소 생겨난다. 추상은 구상을 삭제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요컨대 추상은 구상들을 종합하는 원리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한 구절의 전이(轉移), 한 이미지의 유로(流路), 한 말투의 모사(模寫)들이 쌓이고 쌓여 시의 발화 주체를 만든다. 발화 자체에 주목하지 않고 이 주체들의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을 것이다. _본문에서

  

                                    황병승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다

작년 이맘때는 실연(失戀)을 했는데

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

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

위로해주었지

'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짜부는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잘도 뛰어내려갔지

나는 골치가 아프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짜부야 짜부야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엄마가 그랬을 텐데!"

소리치기도 귀찮아서

하늘이 절로 무너져 내렸으면

하고 바랐지

작년 이맘때에는

짜부도 나도

기진맥진한 얼굴로

시골집에 불쑥 찾아가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했지

채마밭에 앉아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직은 안 죽어'

배시시 웃다가

검은 옥수수 알갱이를

발등에 흘렸었는데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백내장에 걸린 늙은 짜부를 들쳐업고

짜부가 짜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랐지

 

 

 

 

*월간《현대문학》2010년 2월호

 

 

 

오감도와 달리 찌릿찌릿 육감도의 전율이 엄습하는 시 

시를 써도 어떻게 이다지도 다를 수 있는가.
황병승의 오월풍경은 이렇게나 남다르다.

   어느덧 오월,

   아름답고 좋은 날이 또다시 와서

   지나간 날들이 우습고

   간지러워서

등짝을 살 살 살 긁어주는 오월의 햇볕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실연 후 '비 내리는 우체국 계단에서/

사랑스런 내 강아지 짜부가/위로해주'는 오월의 추억이란 이처럼 착잡하기만 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괜찮아 울지 마 죽을 정도는 아니잖아'

짜부가 어느 집 강아지인지 병색이 짙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직은 안 죽어' 라고 말하는

화자는 분명 짜부가 아닐 텐데  죽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병, 아무리 태연한 척 스스로를 달래려 해도 왜 아니겠는가.

오월의 태양은 억장 미어지는 심사를 못 본 체 뒤로 하고 역설적이게도 찬란하기만 한 것이다.  

    백내장에 걸린 늙은 짜부를 들쳐업고

    짜부가 짜부가

    부드러운 앞발로

    살 살 살 등짝이나 긁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인 그는 햇볕 안 드는 반지하 단간방에서 아내 금홍이 흐트러 놓고 몸 팔러 나가면 하릴없이 온종일

화장품 뚜겅이나 열어보며 허송세월 하던 저 1930년대의 날개 없는 시인, 이상의 분위기를 연상케한다. 

아니 오감도와는 달리 별개의 육감으로 우리를 당혹케 하는 육감도의 전율이 시의 행간 행간에 점철한다. 김영찬(시인 )   

 

 

황병승

/서울예대 문창과 추계예대 문창과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3년 《파라21》신인문학상 당선.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트랙과 들판의 별』. 

 

 

   배가 고파서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때

   꿈속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나 하나 때문에

   무지개 언덕을 찾아가는 여행이 어색해졌다

 

   나비야 나비야 누군가 창밖에서 나비를 애타게 부른다

   나는 야옹 야아옹, 여기 있다고, 이불 속에 숨어

   나도 모르게 울었다

   그러나 내가 금세 한심해져서 나비는 나비지 나비가 무슨 고양이람,

   괜한 창문만 소리나게 닫았지

 

   압정에, 작고 녹슨 압정에 찔려 파상풍에 걸리고

   팔을 절단하게 되면, 기분이 나쁠까

 

   느린 음악에 찌들어 사는 날들

   머리빗, 단추 한 알, 오래된 엽서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이 괜스레 미워져서

   뒷마당에 꾹꾹 묻었다 눈 내리고 바람 불면

   언젠가 그 작은 무덤에서 꼬챙이 같은 원망들이 이리저리 자라

   내 두 눈알을 후벼주었으면.

 

   해질 녘, 어디든 퍼질러 앉는 저 구름들도 싫어

   오늘은 달고 맛 좋은 호두파이를 샀다

   입 안 가득 미끄러지는 달고 맛 좋은 호두파이,

   뱃속 저 밑바닥으로 툭 떨어질 때

   어두운 부엌 한편에서 누군가, 억지로,

   사랑해 ······ 하고 말했다.

 

- 멜랑꼴리호두파이

 

 

 

 


소년도 소녀도 아니었던 그해 여름

 


처음으로 커피라는 검은 물을 마시고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삐뚤빼뚤 엽서를 쓴다


누이가 셋이었지만 다정함을 배우지 못했네

 


언제나 늘 누이들의 아름다운 치마가 빨랫줄을 흔들던 시절


거울 속의 작은 발자국들을 따라 걷다 보면

 


계절은 어느덧 가을이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놓아둔 흰 자루들

 


자루 속의 얼굴 없는 친구들은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스무 살의 나에게 손가락 글씨를 쓴다

 


그러나 시간이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새들은 무거운 음악을 만드느라 늙지도 못했네

 


언제나 늘 누이들의 젖은 치마가 빨랫줄을 늘어뜨리던 시절


쥐가 되지는 않았다 늘 그 모양이었을 뿐.

 


뒤뜰의 작은 창고에서 처음으로 코밑의 솜털을 밀었고 

 

처음으로 누이의 젖은 치마를 훔쳐 입었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쥐가 되고 싶었다

 

꼬리도 없이 늘 그 모양인 게 싫어


자루 속의 친구들을 속인 적도 상처를 준 적도 없지만 

 

부끄럼 많은 얼굴의 아이는 거울 속에서 점점 뚱뚱해지고


작은 발자국들을 지나 어느새 거울의 뒤쪽을 향해 걷다 보면

 

계절은 겨울이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시간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어둠 속에서

 

 

조금 울었고 손을 씻었다

 

조금만 더

 

 

- 너무 작은 처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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