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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 랭보
2015년 03월 07일 21시 23분  조회:5247  추천:1  작성자: 죽림

1871.5.15 시인 드메니에게 '견자의 편지'를 써서 보내다

 

 

  천재란 단지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각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는 단순히 ‘성실한’ 정도를 넘어서서 ‘미칠 정도’로 노력한다. 아르튀르 랭보가 그랬다. 어린 시절부터 랭보는 마치 글자를 먹는 염소와 같았다. 그는 라틴어 고전과 프랑스 현대문학 작품을 읽고 또 읽고, 그 뼛속까지 외우기를 거듭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시인이 되었다.

 

 

  1871년 5월 랭보는 시인으로서 자신의 세계관을 밝히는 중요한 편지 두 통을 쓴다. 13일에는 담임선생이자 학창시절의 최고 멘토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편지를 써보냈으며, 15일에는 스승의 친구이자 시인인 폴 드메니에게 또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두 통의 편지에 모두 자신이 쓴 시를 동봉했다. 랭보의 ‘견자의 편지’는 바로 이 두 통의 편지를 말한다. 두 통의 편지에 랭보는 독특한 시론(詩論)을 피력하면서 자신이 ‘견자’(見者, voyant)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견자’는 랭보의 시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어가 되었다.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예고한 편지 - “시인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견자로 만듭니다.”

 

 

  이장바르는 랭보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스승이었고, 드메니는 랭보의 습작 시절에 힘이 되어준 시인이었다. 이장바르에게 보낸 ‘견자의 편지’는 간결하고 함축적인 데 비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는 시와 시인에 대한 랭보의 생각이 상세하게 담겨 있는 체계적인 시론이었다. 랭보는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랭보의 시 의 육필 원고 일부

 

 

  “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 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 사랑과 고통, 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 시인은 그 자신을 추구합니다. 자신 속에 모든 독소를 걸러내어 오직 그 정수만을 간직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모든 신앙과 초인적인 모든 그의 힘이 필요한 말할 수 없는 고역입니다. 거기에서 그는 가장 위대한 죄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범죄자, 가장 위대한 저주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의 박식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가 미지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그는 그의 영혼을 단련해서 가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누구보다도 풍요해진 영혼을!

 

 

  그는 미지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미쳐 날뛰며 자기 환각들에 관한 지식을 상실하고 말 때에 그는 반드시 그 환각들을 볼 것입니다. 그는 지극히 엄청나고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한 약동 속에서 죽어도 좋습니다. 그때에는 가공할 만한 다른 작업자들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러진 바로 그 지평선에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이준오 역)

 

 

  이 편지들은 랭보가 앞으로 ‘견자’로서 세계를 자유롭게 항해하겠다는 출사표였다. 아버지와 같은 자신의 스승들에게 성장한 자신을 보여주면서, 사랑받고 싶다고 외친 외로운 소년의 애정 표현이기도 했다. 시의 길을 가는 랭보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온 이장바르와 드메니였지만, 랭보의 갑작스런 비약은 적지 않게 당황스런 것이었다. 그들은 랭보를 이해하지 못했고, 랭보에게 현실을 고려하여 인내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미 랭보는 돌아올 수 없는 세계를 향해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을 건너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그 세계를 향한 힘찬 고동소리가 바로 ‘견자의 편지’였다.

 

 

 

  지적 욕구와 탐구정신, 엄청난 욕망 아래 감춰진 나약함과 억제된 에너지

 

 

 

                                                                     첫 영성체를 받던 날 12살의 랭보(1866)

 

 

  아르튀르 랭보의 처녀작은 <고아들의 새해 선물>(1869년 작, 1870년 1월 발표)이다. 이전에 라틴어로 쓴 시가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문학작품으로 쓴 것이라기보다는 학습의 일환으로 쓴 것이었다. 첫 작품이 보통 시인의 내면을 비치는 거울이 되듯이 이 작품 또한 랭보의 내면에 숨어 있는 고아의식을 발현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드센 아내가 싫어 집을 떠나버렸고, 아버지 없는 자식들을 키우느라 어머니는 과도하게 엄격하였다. 아르튀르의 형제로는 형 프레데리크, 여동생 비탈리와 이자벨이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교육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하지 못한 아르튀르 랭보는 채워질 수 없는 결핍감으로 시달려야 했다.

 

 

  학창시절의 랭보는 항상 우수한 학생이었다. 특히 라틴어를 배우고 암송하는 그의 솜씨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는 놀랄 만한 기억력으로 라틴어로 된 글 여러 쪽을 어렵지 않게 암송했다. 그는 라틴어 시의 구성을 유심히 분석해보고, 그 속에서 단어의 유희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으며, 라틴어 시의 창작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남들은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을 랭보는 오히려 즐겼다.

 

 

  특히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중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이 랭보를 학술경연대회에 내보내기 위해 담임인 아리스티드 레리티에로 하여금 그를 특별 지도하게 했다. 랭보는 자연스럽게 담임이 좋아하는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베르길리우스를 읽으며 랭보는 시의 창작 기법을 음미하고, 원문과 프랑스어 번역문을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하나하나 맛보았다.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와 <농경시>의 차이를 간파해내는 랭보의 예지는 이미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농경시도 전원시와 배경도 다르지 않고 작자의 자연에 대한 사랑도 여전하지만, 농경시에 오면 ‘일’이 ‘시’를 밀어내고 있음을 예리한 소년은 날카롭게 간파해냈던 것이다. 그는 베르길리우스 외에도 수많은 대가들의 작품을 탐독했고, 그들의 저서 속에서 들끓는 이미지들을 발견해나갔다. 그것은 세계 창조의 이미지였고, 묵시록과 대홍수의 이미지였으며, 태초와 종말의 이미지였으며, 천국과 지옥의 이미지였다.

 

 

  1870년 수사학 반의 담임 교사로 온 조르주 이장바르는 학창시절의 랭보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이었다. 이장바르는 랭보의 지적 욕구와 탐구정신, 엄청난 욕망 아래 감춰진 나약함과 억제된 에너지를 꿰뚫어보았다. 랭보 또한 진보적인 스승의 세련된 정신세계와 열린 사고방식을 존경했다. 이장바르를 통해 엘베시우스와 장 자크 루소를 알게 된 랭보는 내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팡탱 라투르의 그림 <테이블 모퉁이>의 일부로 폴 베를렌(왼쪽)과 랭보(가운데)가 나란히 앉아 있다.

 

 

  무엇보다 이장바르가 구독한 <현대 고답시집>에서 발견한 프랑스의 많은 시인들의 시세계는 랭보에게 문학에 대한 열정을 한껏 키워주었다. 특히 샤를 보들레르는 랭보에게 신이 되었다. 보들레르를 통해 랭보는 시인이란 평온한 영혼의 소유자가 아니며, 시란 세계에 대한 반항이자 금지된 세상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야흐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꿰뚫어보는 강렬하고도 예민한 투시력을 갖춘 시인의 출현이 임박했던 것이다.

 

 

 

  폴 베를렌과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파국 맞은 '시인의 사랑'

 

 

 

 

 

                                                                     폴 베를렌이 스케치한 랭보의 모습(1872)

 

 

  1871년 5월 ‘견자의 편지’에 대한 드메니의 답장이 늦어지자, 아르튀르 랭보는 자신이 견자의 편지에서 실제 ‘견자’로 지목했던 몇 명의 시인 중에서 테오도르 드 방빌을 대화 상대로 선정했다. 방빌에게 편지를 써놓고 기다리는 동안,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친구 샤를 브르타뉴의 입에서 시인 폴 베를렌에 관한 얘기가 튀어나왔다. 베를렌은 랭보가 ‘견자의 편지’ 말미에서 고답파시인 중에서 진짜 시인으로 꼽은 견자였다. 브르타뉴는 뜻밖에도 베를렌과 친분이 있는 친구였다.

 

 

  브르타뉴에게서 베를렌의 연락처를 안 랭보는 곧 베를렌에게 편지를 썼다. 아울러 시 <웅크림> <세관원들> <앉아 있는 자들> <강탈당한 마음> <놀란 아이들>을 필체가 좋은 친구 들라에에게 베껴 적도록 하여 동봉했다. 편지를 보낸 지 나흘째가 되자 초조해진 랭보는 또 <나의 작은 연인들> <첫 영성체> <민중들이 다시 모여드는 파리>를 동봉하여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9월 초, 드디어 베를렌의 답장이 브르타뉴의 집 주소를 통해 랭보에게 날아들었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위대한 영혼이여, 어서 오시오. 우리는 당신을 원하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토탈 이클립스>는 파리에 도착한 랭보가 기차에서 내리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베를렌과 랭보의 운명적인 만남이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랭보는 파리의 시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새로 쓴 대작 <취한 배>를 들고 베를렌을 향해 성큼 다가섰다. 그것이 그들에게 커다란 축복이었으나 엄청난 저주였음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을까? 그들은 문학적으로 서로에게 깊이 매료되었고 더불어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다정다감한 어머니의 정도 느껴보지 못한 랭보가 더 적극적이었다.

 

 

  베를렌은 랭보와 아내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다. 1873년 7월 10일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격분한 베를렌이 랭보를 향해 총을 쏘았던 것이다. 두 발의 총알 중에서 한 발이 랭보의 왼손에 상처를 입혔다. 베를렌은 기소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랭보는 로슈로 돌아와 나중에 그의 대표작이 되는 연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쓴다. 10월에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출간되었으나, 그 책은 프랑스 문단과 독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1874년에는 전에 썼던 <채색 판화집>을 정리하면서 새로 쓰게 된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랭보는 시작활동을 중단하였다.

 

 

  랭보의 시는 대상에 대한 상투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모든 감각이 뒤틀렸을 때 보이는 새롭고 놀라운 사물의 현현을 시적 이상으로 삼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랭보의 시가 프랑스 문학사 속에서 두 가지 점에서 새롭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세련된 과장법을 음절 단위의 리듬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전통이었던 프랑스 시에 대한 대담한 반항이었으며, 또 하나는 기독교 정신에 기반을 둔 유럽 문명 자체에 대한 문학적인 회의였다. 랭보는 예리한 송곳 같은 시선으로 사물의 핵심 속으로 파고들어갔으며, 그 이면에 숨은 본성을 꿰뚫어봄으로써 예언자적인 시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랭보의 출현은 이처럼 프랑스 문학사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그에게 조명을 비출 여유가 없었다.

 

 

 

  "나는 미지에 도달합니다" - 세계를 떠도는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베를렌은 랭보에게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자신의 별명답게 랭보는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감옥에서 나온 베를렌이 랭보에게 신앙을 권했을 때도 랭보는 거절했다.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랭보는 안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1875년에는 걸어서 이탈리아에 가서 밀라노에서 머물기도 했다. 1876년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 용병으로 자원해 하르데르베이크에서 머물다 자바로 떠났다가, 8월 15일 탈영하여 희망봉과 아일랜드를 거쳐 12월 중순 샤를빌에 도착했다. 1878년에는 키프로스 섬의 채석장에서 일자리를 얻지만, 이듬해 5월 장티푸스에 걸려 로슈로 돌아온다. 9월이 되자 다시 떠나지만 마르세유에서 병이 재발해 돌아왔다. 1881년부터는 에티오피아의 여러 지역을 돌면서 상인이자 탐험가의 삶을 산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방랑벽이 랭보의 피 속에서 뜨겁게 돌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하라의 랭보(1883)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와 무기를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ㅡ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내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ㅡ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 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아르튀르 랭보, 「나의 방랑생활」 전문 (김현 역)

 

 

  랭보의 방랑벽은 진정한 견자가 되기 위한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견자의 편지’를 들추어보자.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선 자기 자신을 완전히 깨닫는 일입니다. 그는 그의 영혼을 추구하며, 그것을 검토하며, 시련을 가하고 가르쳐갑니다. 자신의 영혼을 알고 나서는 그것을 가꾸어가야만 합니다. (……) 소중한 일은 영혼을 기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곰프라치코스(스페인의 전설에 나오는 괴물로 얼굴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험상궂으며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를 본따서 말이죠.”

 

 

  랭보는 자신의 영혼을 검토하고 시련을 가하기 위해 끊임없이 방랑을 일삼았다. 그렇게 하면 영혼을 기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방랑이 “지극히 엄청나고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사물들에 의한 약동”을 제공하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방랑은 곧 반항이었다. 그것은 정착의 꿈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한 정신에 대한 거부였다. 미국 듀크 대학교 불문학 교수였던 월리스 파울리는 이렇게 말했다. “랭보는 일상에 반항했다. 철이 들면서 그는 가족(정확히는 가족 중의 한 사람)에게 반항했고, 샤를빌 중학교의 교사들에게 반항했고, 노트르담 교구 소속 성당의 사제들에게 반항했고, 샤를빌이라는 지역 사회에 반항했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급기야 19세기 프랑스 시단에 반기를 들었다.”

 

 

 

  한쪽 다리를 절단했지만 전신으로 퍼진 암세포를 막을 수 없었다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알루미나시옹>이 실린 프랑스 폴리오 문고

 

 

  너무도 뜨겁게 살았던 나머지 랭보의 생애는 일찍 저물게 된다. 1891년 연초에 랭보는 오른쪽 무릎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다리가 심하게 부어오르자 랭보는 들것에 실려 중간 거점으로 삼곤 했던 아라비아 반도의 아덴으로 간다. 그곳에서도 병을 고칠 수는 없었다. 고국에 돌아와 마르세유의 콩셉시옹 병원에 입원한 랭보는 한쪽 다리를 절단한 후 로슈로 갔지만, 다시 악화되어 병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제 전신으로 퍼진 암세포를 막을 길은 없었다. 1891년 11월 10일 젊은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지옥의 계절’을 굵고 짧게 보낸 후 ‘천국의 계절’을 향해 갔다.

 

 

  아르튀르 랭보가 ‘견자의 편지’에서 샤를 보들레르를 ‘최초의 견자이자 시인의 왕이며 진짜 신’이라고 했듯이, 랭보는 보들레르의 가장 창조적인 계승자였다. 보들레르로부터 시작한 프랑스 상징주의는 베를렌을 거쳐 랭보에게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으며, 스테판 말라르메 와 폴 발레리를 통해 현대시의 또 하나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랭보의 파격적인 시는 현대시의 혁명이었다.

 

 

  보들레르를 현대시의 기원이라고 하지만 그의 다양한 실험이 랭보에게서 더욱 분명하게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은 내용은 자유롭되 형식은 전통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연작에 이르면 내용과 형식이 모두 어떤 격도 따르지 않는다. 보들레르가 혁명의 시작이라면 랭보는 혁명의 완성이었던 것이다.

 

 

  그가 일생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를 창작한 기간은 15~20세의 약 5~6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단 5년 동안에, 그것도 10대의 소년으로서 전 세계 시문학의 중심에 우뚝 선 그는 진정으로 천재였다. 천재는 자신이 5년 동안에 이룩한 업적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평생 걸리는 일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 또한 랭보가 절필한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20세 이후에도 랭보는 시를 썼다. 20세 이전에 펜으로 시를 썼다면, 그 이후에는 몸으로 시를 썼던 것이다. 펜으로 쓴 시는 깊이 있게 연구되어왔지만, 몸으로 쓴 시는 아직도 세심한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몸으로 쓴 시가 더 난해한 것일까?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랭보』, 클로드 장콜라 저, 정남모 역, 책세상, 2007.

                                                         

 

 

  랭보의 시를 이해하기 힘든 독자에게 클로드 장콜라의 『랭보—바람구두를 신은 천재 시인』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랭보의 삶은 그의 시와 비슷하다. 이 책은 랭보의 모든 것을 놀라우리만치 꼼꼼하고 흥미롭게 정리한 평전이다. 어린 시절의 랭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의 문학사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시절의 삶에 대해 이 책은 매우 친절하고도 섬세하게 전해준다. 이 평전을 읽고 랭보의 시를 읽으면, 그의 작품이 더 이상 어렵지 않을 것이다.

 

 

 

 

『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삐에르 쁘띠피스 저, 장정애 역, 홍익출판사, 2001.

 

 

 

  삐에르 쁘띠피스의 『랭보—지옥으로부터의 자유』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가미하여 극적으로 구성한 평전이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편안하게 랭보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랭보가 죽은 후에야 여동생 이자벨은 비로소 오빠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잠깐씩만 집에 들르곤 했던 오빠가 밖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오빠의 사후에야 랭보를 알았듯이 세계 또한 그러했다. 랭보는 사후에야 진정으로 이해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롤랑 드 르네빌르의 『견자 랭보』(이준오 옮김, 문학세계사, 초판-1983/중판-1992)는 저자의 소르본 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하여 펴낸 책이다. 이 책은 랭보의 시 속에 담긴 사상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어 동양적인 신비 사상과 시인의 예언자적인 면모를 깊이 있게 분석하였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랭보가 1871년 5월 15일에 드메니에게 쓴 견자의 편지 전문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 월리스 파울리 저, 이양준 역, 사람들, 2011.

 

 

 

  그 밖에도 랭보와 베를렌의 삶을 함께 조명한 『저주받은 시인들』(앙리 뻬이르 지음, 최수철・김종호 옮김, 동문선, 1985)과 『랭보와 베를렌느 비교론』(이준오 편역, 예림기획, 1999), 랭보를 존경했던 가수 짐 모리슨과 랭보의 정신세계를 비교한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도 흥미롭다. 무엇보다도 랭보의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되어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시를 번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번역시를 읽다보면 번역에 불만을 갖게 되기 쉽다. 그러나 완벽한 번역이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그들에게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차창룡 | 시인, 문학평론가. 글을 쓴 차창룡은 1989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됐으며, 제1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고시원은 괜찮아요』『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등 다수의 시집으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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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삼류 트로트 통속 야매 련애시인>> 2015-04-26 0 4651
461 詩여, 침을 뱉어라! 2015-04-25 0 4264
460 공자 시 어록 2015-04-23 0 5072
459 詩란 惡魔의 酒... 2015-04-23 0 4655
458 詩란 삶의 파편쪼가리... 2015-04-23 0 3962
457 <소리> 시모음 2015-04-23 0 4129
456 천지꽃과 백두산 2015-04-23 0 4489
455 영국 시인 - 드라이든 2015-04-20 0 5228
454 詩論하면 論字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하지만... 2015-04-20 0 3629
453 영국 시인 - 알렉산더 포프 2015-04-20 1 4997
452 프랑스 초현실주의 대표시인 - 앙드레 브르통 2015-04-20 0 8453
451 프랑스 시인 - 자크 프레베르 2015-04-20 0 4593
450 詩歌란?... 2015-04-20 0 3878
449 프랑스 시인 - 앙리 미쇼 2015-04-20 0 4765
448 시문학의 미래를 생각하며 2015-04-20 0 3873
447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시를 써보기 2015-04-20 0 4504
446 해체시에 관하여 2015-04-20 0 4991
445 브레히트 시의 리해 2015-04-20 0 3887
444 詩的 變容에 對하여 2015-04-20 0 3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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