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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詩
2015년 05월 31일 22시 52분  조회:4484  추천:0  작성자: 죽림

 

애지의 초점/이 시인을 조명한다:


*조재룡 평론가의 김영찬 작품론:

<애지> 겨울호 김영찬 신작시 5편/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인용

 

 

의사 상상력과 시

-일상을 일구어내는 서정의 한 방식

 

     

 

                                                               조재룡(평론가/고려대불문과교수)

 

 

 

1. 상상력과 시, 시와 상상력

 

  20세기 벽두를 화려하게 장식한 새로운 정신의 궤적은, 오늘날 대다수가 인정하고 있음에도 당시에는 낯설기만 하던 어떤 세계를 활짝 열어 보임으로써, 역사 속에서 놀랄만한 가치를 획득해내었고, 실험과 도전 속에서 지금도 여전히 실천 중인 무언가를 시에서 만들어내었다. 인간의 시원(始原)이자 욕망일 무의식의 세계를 억압하는 일을 제 업으로 자본주의의 신비한 손이 되어 세계를 차츰 잠식해나갔던 19세기의 과학적 실증주의나 이성중심의 세계 재편작업을 그토록 통렬하게 비판해마지않았던 그 중심에는 바로 시인들과 예술가들이 있었던 것이다. 미추선악을 준거 삼아,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터부시되어왔던 것들, 이성과 합리라는 탈을 쓴 실질적인 억압과 폭력에 비추어서 가장 추악하다고 분류된 것들, 사회적 규범과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억압받아왔던 근본적인 우리의 욕구, 한마디로 우리가 ‘무의식적 욕망’이라고 부르는, 당시에는 세상에 알려지지 조차 않았던 어떤 것으로부터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원초적인 힘을 포착해내는 일도 거개는 프로이트에 의해 희미하나마 그 가능성이 모색되기 시작했던 그 무렵을 살았던 시인들의 몫이었다. 시는 이 세계, 즉 낯설고, 두려우며, 때론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새로운 인식의 영역에 제 발을 들임으로써, 이후 독창적인 활동공간을 외로이, 그러나 꾸준히 개척해 나아갔다. ‘합리’라는 저 준엄한 억압의 기제를 꿰뚫고서 상상력이 제 몸을 내밀기 시작한 것은 실상 그리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이리라.

  발칙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항적들이 그리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반드시 낯설게 다가오지만은 않는 데는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앙드레 브르통(A. Breton)이 제기한 도발에 가까운 제안, 그럼에도 제 비범함으로 인해 비난을 모면 받을 혜안마저 함께 일구어낸 새로운 사유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제안은, 그러니까, 당시에는 가히 청천벽력에 가까웠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더구나 선언문에서 매우 불편한 방식으로 제시된 주장들 중 거개가 현재 적극적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데서 브르통의 통찰력과 예지마저 엿보이기도 한다. 이 ‘선언’ 이전과 이후, 예술, 아니 예술의 영역은 확연히 달라졌으며, 이와 더불어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 눈과 판단, 감성과 태도도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면, 바로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역사를 지나오는 그 고비 고비마다 과감한 퍼포먼스를 마다하기 않았던 시적 실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2. 상상력으로 지어진 “시인의 공화국”

 

  우리 시인들이라고 왜 이걸 모르겠는가? 초현실주의라는 명칭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시인으로 조향이나 김경린을 꼽을 때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통의 한 표식이 생겨날 법하겠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시단이 일구어낸 것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 그것의 기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떤 문제의식, 즉, 이분법의 부정과 상상력의 활용이었다. 특히나 2000년대 이후로 이 땅에서 감행되고 있는 아슬아슬하고도 스릴 넘치는 시적 모험도, 좀 과장하자면, 초현실주의 선언이 없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감각에 대한 성찰이나 이분법에 대한 강한 거부, 금기의 탈신비화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섬세한 포착에서 승리의 팡파르를 힘차게 울리고 있는 듯 보인다. 아니, 우리시가 이렇게, 질퍽한 일상을 헤집고 다니면서 길러 올려 대중들에게 선보인 터부에 대한 성찰이나 일상자체를 도치시켜 천연덕스레 늘어놓는 환상적인 수법들은 이들의 감성과 사고가 ‘의식 / 무의식’, ‘이성 / 비이성’, ‘시 / 산문’, ‘사회 / 개인’, ‘다수 / 소수’, ‘중심 / 주변’, ‘성스러움 / 세속’이라는 전통적으로 고착되어온 이분법을 거뜬히 넘어서는 지점에 가닿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장난과 해프닝, 패러디와 조소가 허용되는 것이며, 그것이 허용되는 만큼, 하찮은 것이라 치부해왔지만 결국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실질적인 주체인 일상은 시적 공간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되살아나고 또 가장 독특한 시적 체현을 만들어낼 주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모든 영역에 상상력의 메스를 드리우는 작업에서 착수된 시적 실험은 그리하여 ‘무의식의 의식으로써의 추체험’이자, 바로 아포리아의 연속을 미지를 향한 모험으로 전치시키며 한 걸음 전진하며 모더니티를 궁리해내는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김영찬 시인이 제 시에서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지점도 여기인 듯하다.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루이스 부뉴엘이나 살바도르 달리의 도저한 상상력이 무의식의 나라로 떠나고자 서둘러 채비하는 시인의 의지와 맞물려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 가서는 안 될 나라로

발길 돌려 가보면 거기엔 뜻하지 않게 두 대쯤의 피아노와 살찐

수탕나귀가 기다리고 있겠다 싶은 뭐 그런 이야길 나누게 되죠.

 

<당나귀> -부분-

 

  “피아노와 살찐 수탕나귀가 기다리고 있겠다 싶은”, 시인이 고구한 이 세계는 서로 짝을 이룰 수 없는 것들을 한데 이어 붙인 ‘자유연상’의 소산일 것이다. 거개의 통사 운용을 이 자유연상법에 빚지면서 시인은 “자동기술법”을 운용하노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시인의 이와 같은 ‘의지’는 “범접하지 못할 나라”가 “시가 금지된 장소”(<당나귀>)라고 말하는 데서 보다 강하게 표출되며, 심지어 “아나키스트의 달빛” 아래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으로 지어올린 “시의 공화국”을 지배하는 “법황”이 바로 자신이라고 시인은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인이 말하는 “시의 공화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아니, 시인은 이 공화국을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케케묵은 법령집이 태풍에 낱장 찢겨 날아간들 무슨 상관,

구법을 정비할 시간에

노래가 노래를 부르도록, 밥이 밥밥밥 목구멍에 밥술 떠넘기도록

그리고 열국들이 올망졸망 이마를 맞대고 있는

세상의 국경초소에서는

강/약소국의 모든 국경수비대들이 정확히 이 날짜, 이 시간에 뚝,

일시에 무장을 푼 뒤

바로 그 자리에

국경 파괴조를 편성, 자동기술법을 운용하면 될 법한 일,

[...]

눈높이 높은 혹성 위로 지평을 넓히자고 행과 행,

연과 연의 고도를 연달아 수정 중인 여기는

The Republic of Poetry

왕관은 쓸모가 없는 게 당연해,

몸과 맘이 함께 녹슬어 가는데 뭘~

 

<무정부주의자의 달밤> -부분-

 

  ‘연민’과 ‘공포’만을 조장한다며 플라톤이 시인을 내쫓았던, 합리와 이성으로 무장된 “법령집”이 주권적 지배를 참칭하는 폴리스의 반대편에는 이렇게 “국경”이 파괴되고, “자동기술법”에 의해 “왕관”을 “쓸모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나라가 존재한다. 바로 이 나라에서 시인은 “행과 행, 연과 연의 고도”를 수정해 가면서 제 상상력의 공화국 짓고 자신만의 희망과 꿈을 그곳에서 한껏 빚어보는 것이다. 

  물론 이 공화국은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시인은 이 공화국을 완성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 시인의 전투가 전면전이라기보다는 구덩이를 파 그 안에 웅크리고서 적을 주시하다 간헐적으로 튀어나와 공격을 감행하고는 다시 숨어버리는 참호전에 비교적 가까워 보이는 것은 시인의 말마따나 이 실험이 “의도하지 않은 사고”(<당나귀>)에 바탕을 두고 진행되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의 끝에서 끝으로 통하고 싶은”(<당나귀>) 시인의 강한 욕망과 투지를 매개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3. 시니피앙에서 환유의 공간으로

 

  때문에 기법이 다양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아니 이 기법은 오히려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시니피앙’에서 출발해야한다고 시인이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문자들은 발음에 의존하여 서로가 서로를 옮겨 다니며, 그리하여 자유로운 연상기법이 부차적 산물로 따라 붙는다.

 

  퐁텐불르, 불.루.불.루

     -퐁텐블루는 방중술과 무관함

[.....]

 

  접이불루接以不漏 후 모처럼 깊은 잠에

빠진 저녁

[......]

 

‘퐁텐블루’라는 

브랜드 마크의 아침이 잘게 부서진다

 

<아라공의 별> -부분-

 

 

 

그건 모자란 모자

 

<모자란 모자> -부분-

 

 

- 울진항 거기에 울진이 발생한 건 어쨌든

사실이었네

 

<울진> -부분-

 

  ‘의미를 넘어선’ 말놀이에 대한 이 같은 천착은 기실 시인의 작품에서 그다지 표출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의식(그의 ‘시학’)을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사상적 원천이다. 시인이 “시어란 자율적인 의미망을 갖는 것으로 순수한 음성, 혹은 글자로 축소된 기호나 다름없다”(<시작노트>)는 말을 들고 나와 ‘러시아 형식주의’를 인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상어가 언어학적 재현 즉, 음성, 형태론적 요소 등이 독자적인 가치를 갖지 못하고 의사소통의 기능만 갖는 데 비해 시어에 있어서는 의사소통 목적은 부차적이고 오히려 언어학적 재현이 자율적 가치”(<시작노트>)를 얻는다는 시인의 지적은 바로 음성조작과 이 조작에서 생겨나는 뉘앙스를 신봉하는 시인의 저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야콥슨이 말한 것처럼 “I like Ike”가 과연 시의 전부일 것이며, 또 ‘시적 기능’을 충만하게 드러내주는 온전한 표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음성조작만으로 시가 완성될 수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시인의 작품에서 목격되는 음성조작이나 컴퓨터 기호의 과도한 차용은, 하나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정서를 감추거나 혹은 효과적으로 제 정서를 포장하고 은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러고 여기에 바로 음성조작이나 시인이 즐겨 사용하는 하이퍼텍스트의 차용, 혹은 패러디의 가치가 놓여있다.

 

컴퓨터와 친해진 나 컴퓨터자판이 나에게 무임승차시켜 준

同心圓,동심원의 안내를 받아 어느 날 

동심원 따라 먼 여행 떠난다

동심원의 가장자리 그 곳은 깊은 침묵이 사는 곳

그 자리에 나를 슬쩍 대입해 본다


동심원 위에 ♠♤나뭇잎 ♤하나로 나는 ♡떠 있다 ♧∞

동심원 ——>>동 심 원——->>> 원은 멀어진다, ○은 ——->.

∝―->동심圓 만들어----> 멀어져서 遠 ∞∽∝^^^ ~~ ~ ~~~~~·
멀고 먼 변두리 우방을 향해 ○ )))) ))) )) ) 물결 만들어 퍼진다

먼 곳으로 떠나며 멀어질수록 원의 영토는 넓어지고

의미는 조용히 물결 긋지만


집 떠나와 멀어질수록 나는 왜 힘이 딸릴까?

이파리 위에 엄지발가락 하나 겨우 걸치고 사는 나
동심원 밖으로 자꾸 밀려나간다

♡∝~~·~ >%%%%%% ㅁ ㅁ ㅁ ########^^^^^ ~~ ~ ~~~~~·
∝^^^^ ~~ ~ ~~~~~·,,,,,,,사랑 띄워 멀리 따라간 물결 
변방에 가서 목숨 거두고 中心 지워지고 없는 湖面 위에서 나는 
손가락 몇 개만 겨우 부지한다


(((((((((((((((동심원)))))))) ))))) ))) )) )


O
0

c
.

,

                

         <동심원 ♤하나> -전문-

 

 

  이렇게 언어 자체에 호사를 부려가며 텍스트가 현란한 이미지를 뿜어낼 때, 그 속에 포장된 것, 은폐되어 있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 시인의 지난하지만 헛헛한 ‘정서’의 반향이다. 현란한 이미지나 컴퓨터 언어라 일컬어지는 메타 기호들의 사용도 시인의 서정을 파괴하거나 그 울림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데 바로 시인의 모순이 있다. 아무리 시인이 원하는 세계라 해도, 그 세계는 기호의 단순한 조작을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여기서 실패를 맞보며,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음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작품에서, 멋부린 듯 시도해본 테크닉이 얻지 못하는 무언가를 뛰어난 비유와 곡진한 감성으로 길러오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김영찬의 시 세계의 끝 간점과 그 시작점은 이렇게 동일한 하나의 묶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묶음을 감수성이나 서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이 서정의 힘은 바로 절절한 제 심정을 환유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에서 울려 나온다.

 

물고기가 물에서 풀려나와 허공에 갇히는

 

*

집과 집 사이

언어와 언어 사이

바위와 벽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따개비 같은 치어들

집들은 물에서 만난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미끄러워

아무것도 품지 못하고

 

수초로 그늘진 골목에 방언을 숨긴다

 

물고기가 떠나버린 집

밤이다

밤이면 밤마다 야광충처럼 달려드는 속어들

불면의 밤은 잘 안 나오는 볼펜 끝에

침 발라 길을 내며

물고기를 물고기의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러니까 물고기만의 어눌한 언어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만이 길이 아니므로

상처 난 꼬리지느러미에 발광체 환한 비늘을 달고

물고기는 한사코 길 아닌 길을 헤엄쳐

언로를 터야한다.

 

절망의 피사체, 원본 없는 시뮬라크르

 

물고기의 밤은 뻐금거리는 아가미에 거품 뽀글거리는

신조어를 낳지만

밤마다 고요히 물 속에 누위 물귀신이 되는

꿈만 꾼다

 

<물고기는 물고기의 밥> -전문-

 

  환유가 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결곡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은 자기복제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걸맞을 법한 언어의 운용과 그 쓰임이 자아내는 절망감을 제 시를 써 나가야 한다는 시인의 절박한 심정에 빗대어 소화해내는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시인이 고유한 시적 성취를 이루어내는 지점은 바로 여기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인 고유의 상상력의 소산이자, 오히려 시인에게는 “내가 나를 치료하는 방법”(<쇠똥구리 아젠다>)이며, 탁월한 비유를 통해 시작(詩作)의 고통을 역설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시뮬라크르” 세계에서 빚어진 절망과 고독을 제 경험으로 치환하는 개별적인 방법인 것이다.

 

어제의 시뮬라크르, 복사본인

아침이 또 왔다고?

도둑고양이가 담벼락에 흘린 오줌자국 같다고?

아침밥 거르기로 한 건지 전깃줄에 나란히 웅크려 앉은

참새 일가족

 

<페가수스 별자리를 스치다> - 부분 -

 

 

4. 추억의 알레고리와 목가적 정서

 

  김영찬 시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말이 흐르는 데로 놔두어 기술한 것 같은, 도무지 의미를 솎아낼 수 없을 법한 구절들도 사실 시인이 강조한 바 있는 ‘무의식’이나 ‘자동기술법’에 의존해 기술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목가적이고 농경적인’ 시정의 피안에서 제 가치를 이루어지고 있기에 나름의 합리적인 질서를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거개가 언어의 이중분절이라는 특성과 통사 요소들의 인접성에 의지해 감정을 다독거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시인에게 있어 무의식을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은 실상 무의식에 웅크리고 있을, 억눌린 세계의 바깥으로의 분출이라기보다는, 의식의 정교한 조작에 가깝다고 여겨지며, 바로 여기에서 시를 읽고 해석할 가능성도 함께 살아나는 것이다.

 

찾아왔네, 그 옛날의 애창곡 엘가가

제 집으로

침묵을 깨고 돌아왔네

엘가를 귀가시킨 건 퀴퀴한 골방

서가에 꽂힌 책들은 아마도 펼쳐본 적이 없어

곰팡이 핀 활자들의

축제일

낡은 음반은 마음껏 엘가를 귀찮게 굴겠지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그리고 엘가의 침묵>  -부분-

 

  시인이 구가한 하이퍼텍스트의 활용이나 모자이크, 혹 연상 작용을 통해 빠르게 엔딩으로 치닫는 글쓰기는 그러나 거칠게 펼쳐보인 초현실주의적인 풍경이라기보다는 과거에서 울려나오는 “애창곡 엘가”처럼 목가적인 정서와 따뜻한 해방감, “곰팡이 핀 활자들”처럼 우리의 가냘픈 과거를 반추하게 하는 소소하고도 “퀴퀴한”, 그리하여 진솔하다고 해도 좋을, 마치 “낡은 음반” 같은 이미지들을 연차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구름과 바람과 햇볕의 통행 말씀인가?

그것들은 언제나

immigration passport control 없이 자유로왔다고 적혀 있지

새로 돋아난 poesy version으로 별빛이 한 다발 묶여 백지 위에 번지지

그것들은 에스프리의 패찰을 달고 아무 행간에나 불쑥불쑥

달빛을 몰고 오지

 

<무정부주의자의 달밤> -부분-

 

  따라서 가파른 상상력은 “구름”, “바람”, “햇볕”, “별빛”, “달빛” 같은 어휘들에 둘러싸여 파괴와 실험보다는 추억의 알레고리를 만들어내는 데 보다 할애된다. 이와 같은 농경 사회적인 상상력으로의 회귀는 시인의 기억(‘무의식’이라고 해도 좋을)에 들러붙어 있는 자연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이라는 강박관념을 현재로 불러내는 핵심이자 이것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는 알레고리로 자리 잡는다. 

 

빠리 제 8구, 레제뚜왈 광장 근처 몽소공원

 

모파상이 그의 일생을 따라다닌 한 여자, 잔느와 함께

석상으로 서 있는 곳

밤에 달맞이꽃이 피어야 한다면 이런 곳이어야 겠지

 

<달맞이꽃에 대한 나쁜 기억>  - 부분 -

 

  프랑스 파리의 “몽소공원”을 거닐다 문뜩 목격하게 된 “석상”에서 발동하기 시작한 상상력은 “날아와서 양재천 뚝방에 핀 달맞이꽃들”(<달맞이꽃에 대한 나쁜 기억>)로 이어지는 자유연상을 통해 완성된다. 이 상상력은 공간을 초월하되, 공통된 기억을 반추하는 방식으로 시인을 붙들어 매기고 있기에 시인의 서정을 기록하는 알레고리가 된다. 파괴적인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서정을 전통적이고 자연적이라고 말할 근거도 여기에서 생겨난다. 비록 시인이 “컴퓨터를 끄고 찢어진 휴지처럼 담배꽁초처럼 / 짜리몽땅한 몰골”을 하고 “더 이상 썩을 것도 없고 망가져야 갈 수 있는 / 몸뚱이 / 막무가내 갈 데까지 간 막가파”(<쓰레기통의 건국신화>)라고 제 자신을 몰아세워도, 필경 시인이 활용하고자 한 무의식의 세계는 시인의 현재적 의식과 과거의 기억을 서로 연결하고 나아가 이 양자를 지배하는 어떤 정서를 통해 표출되고 만다. 바로 이 현재와 과거에서 시작된 기억의 알레고리를 통해 시인은 불멸의 한 자락에 가닿는 것이다.

 

벚꽃이 지는 속도는
              초속 1mm

 

내 사랑 아이스크림이 혀를 녹이는 기간은

영겁에의 억류

 

무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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