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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조의 길
2015년 06월 12일 21시 43분  조회:4056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조의 길

현대시조는 고시조가 그 창곡과의 분리를 거치는 과정에서 새롭게 성립된다. 물론 현대시조는 창곡과의 분리라는 중요한 변화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3행의 시적 형식을 고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3장 분장 형식이 시적 형식의 전통으로 유지된 셈이다. 현대시조가 여전히 시조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시조가 지니고 있는 시적 특성은 이 불변의 형식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은 신체시를 통한 자유시형을 실험하면서도 현대시조의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였던 시조부흥운동을 주도했다. 최남선의 뒤를 이어 이병기는 현대시조의 시 정신과 기법을 정착시킨다. 이병기는 초기에 연작형식의 시적 정착에 주력하면서 연시조의 현대적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병기의 연시조는 단형의 평시조를 중첩시켜 시적 의미를 확대시켜 놓고자 하는 형식적 실험의 소산이다. 이것은 시조의 단형적 형태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와 상통한다. 이병기가 연작을 통한 형식적인 확장에 전체적인 균형을 부여하며 시적 긴장을 이끌어 가는 것은 형식적 고안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적 주제의 응축과 그 확산의 과정을 전체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내적인 질서에 의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개방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연시조 형식의 창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병기는 현대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함으로써 현대시조가 추구하는 시적 모더니티를 온전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병기의 시조는 전아한 기품을 자랑하고 있지만, 기실은 단조로움에 빠져들기 쉬운 시적 진술에 특유의 감각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병기는 시조를 통해 우리말의 음절량과 그 이음새에서 나타나는 말의 마디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면서 율격을 지켜나간다. 이것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어떤 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주는 요건이 된다. 「난초」와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감각을 이병기 시조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1) 

한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 가고 서늘 바람 일어 오고
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 「난초 1」

(2)

새로 난 난초잎을 바람이 휘젓는다
깊이 잠이나 들어 모르면 모르려니와
눈뜨고 꺾이는 양을 차마 어찌 보리아

산듯한 아침 볕이 발틈에 비쳐 들고
난초 향기는 물밀듯 밀어오다
잠신들 이 곁에 두고 차마 어찌 뜨리아
- 「난초 2」

앞의 인용 작품을 보면, 이병기가 내세운바 있는 현대시조의 ‘격조’ 문제가 떠오른다. 여기서 말하는 격조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시적 상상력의 감각성을 의미한다. 시조라는 단형의 시형식에 동원되는 모든 단어에 생기를 넣어주며 사고와 감정의 기저에까지 침투하는 감각을 말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물론 언어와 그 의미를 통해서 작용하지만 시조의 경우 전통적 의식과 가장 현대화된 정신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병기의 시조는 시조의 부흥이 아니라 새로운 시적 형식과 감각의 발견에 해당한다. 이것은 시조라는 형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고 그 주제에 적합한 새로운 시적 형식과 언어와 감각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병기의 시조에서 확인되는 시적 형식과 그 감각은 일상어의 시적 활용이라는 점에서 현대시조의 새로운 탄생과 직결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체의 관념어를 배제하고 감각적인 일상어만으로 이루어진 이병기의 시조는 시적 언어의 감각적 구현에 있어서 현대시조가 도달할 수 있는 어떤 궁극의 지점에 도달해 있는 셈이다. 

이병기와 함께 현대시조를 가꾸어 나간 시인으로 이은상이 있다. 노산은 전통 시조의 풍류적 속성에 시적 의지와 기개 등을 덧붙이고자 하였고, 김상옥은 보다 더 섬세한 미의식을 시조의 시적 형식을 통해 추구하고자 한다. 조운의 시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적 형식미는 시조의 가능성이 그 형식에 있음을 다시한번 입증한다. 이호우와 이영도의 감성적인 시조도 주목되는 업적이다. 이태극은 시조 시학의 확립에 앞장서면서 시조의 시적 영역을 일상적인 것에까지 넓혀나가는 데에 주력한다. 그리고 서정주, 조지훈, 박재삼 등의 시적 성과 가운데에는 시조 형식에서 빚어지는 가락의 균제미를 현대시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도 나타난다. 현대시조는 정완영에 이르러 그 격조를 다양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게 된다. 정완영의 시조에서 볼 수 있는 시적 형식과 주제의 변주는 시조의 닫혀 있는 형식을 새롭게 열어 놓는다. 그러므로 현대시조가 정완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떤 한 단계의 완성을 보게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조오현은 시조의 가치 영역을 불교의 선의 경지로 전환시켜, 선시조(禪時調)라는 새로운 양식을 정착시킨다. 불승의 입장에서 조오현이 시적 출발을 시조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다. 조오현은 운명적으로 시조를 끌어안고 선의 다양한 화두(話頭)와 대면해 왔다. 「무산 심우도」 자체가 보여주는 종교적인 경지는 말할 것도 없고, 「무자화(無字話)」 「무설설(無說說)」 등에서 보여주는 역설의 언어는 그 자체가 곧 선의 화두이면서 그 언어적 해체에 해당한다. 조오현은 시조의 언어를 선(禪)의 화두로 끌어올리기 위해 3장 형식에 집착하면서도 그 내적 역동성을 주목한다. 시조 3장의 형식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것이다. 조오현의 시조는 말을 다스리는 법도를 보여준다. 여러 가지 목소리를 하나의 시적 정황 속으로 끌어들이며 그 속에서 시적 긴장을 만들어 내는 조오현의 새로운 시조 형식은 달리 ‘이야기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시조 형식은 시조가 자랑해온 균제(均齊)의 미를 넘어서면서 더 넓고 더 높은 ‘포괄의 미학’을 확립한다. 시조의 정신이 현실 속에서 하나의 인간적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있다면, 조오현의 ‘이야기조’는 모든 계층의 인간의 말과 소리들을 포괄하고자 한다. 여기서 대화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목소리들은 절간의 승려의 것이기도 하고, 산간 초부(樵夫)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정의 대장장이처럼 평범한 하층민들의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살아 있는 말 그 자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하나로 통일된 언어로 표출되지 않는다. 이 목소리들은 내적으로 이미 대화화된 말들이다. 따라서 이 목소리를 드러내는 말들의 내적 대화성은 시적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늘 존재하며 그 대화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현실화한다.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앞의 인용에서처럼 조오현은 시조의 균제된 형식 속에서 역동적인 대화적 공간을 열어 놓는다. 기존의 시조에서 말하는 주체가 하나의 목소리로 모든 사물을 포섭하던 방식과는 달리 앞의 시조들에는 몇 개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내적 대화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시적 정황 자체도 정적(靜的)인 데에서 동적(動的)인 것으로 변화한다. 조오현이 시조의 시적 형식 속에 끌어들이고 있는 말은 다른 말과 대화적 관계를 맺으면서 그 형태적 구체성을 획득한다. 말은 언제나 타자에게 말을 걸고 질문을 유도하고 대답을 지향한다. 그리고 드디어는 내적 대화성이 표현되는 시적 형식의 발견으로 나아가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시적 공간에 끌어들인 하나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그 자체가 선의 화두에 해당하기 때문에 하나의 이야기이면서도 시적인 무드를 살린다. 이 무드의 시학을 살려내면서 ‘이야기조’의 새로운 시 형식이 만들어내는 시적 공간이 바로 선의 공간인 셈이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 「아득한 성자」

조오현의 시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은 선(禪)의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말과 사물의 소리는 궁극적으로 그 존재가 살아 있음을 뜻하는 징표이다. 소리가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곧 말이고 사물의 소리는 곧 그 생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말과 사물의 소리가 서로 섞여 하나의 이야기를 빚어내는 것이다. 조오현은 바로 이 살아가는 것들의 말과 소리를 담아 시조를 만들어내면서 시인으로서 아득한 성자의 길에 나선다. 말과 소리는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시인은 사람의 말소리를 부리면서 그리고 모든 사물의 소리를 끌어안으면서 시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한다. ‘뜨는 해’와 ‘지는 해’라는 말로 암시하고 있는 시작과 종말의 의미를 넘어서면 거기서 무엇이 가능할 것인가? 이 질문이야말로 우문(愚問)에 해당한다. 시인은 이미 중생의 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이야기조’의 시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말이라는 것은 존재를 넘어서는 곳에서 비로소 시가 된다. 그리고 그 시가 곧 하나의 화두로 자리잡는다. 

오늘의 시조 시단에는 장순하, 최승범, 이상범, 김제현, 윤금초, 조오현, 박시교, 한분순, 이우걸, 홍성란 등이 서 있다. 장순하의 절조, 최승범의 풍류, 이상범의 감각은 시조의 시적 위상을 새롭게 가늠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한다. 김제현은 사설시조의 가능성을 천착하는 여러 가지 노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홍성란은 시조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현대시조의 시적 형식에서 시 정신의 지향점을 찾고 있다. 현대시조의 운명은 물론 시조시인의 손에 달려있지만, 이들만이 그것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시조가 추구해야 하는 시적 현대성은 한국문학 자체의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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