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온몸시론"
2015년 11월 06일 22시 33분  조회:4181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5년 11월 26일 08시 50분 ]

 

[ 2015년 11월 26일 08시 50분 ]

 

[ 2015년 11월 26일 08시 50분 ]

 

[ 2015년 11월 26일 08시 50분 ]

 

 

 
 
[ 2015년 11월 26일 08시 50분  ]

 

 

발칸(巴尔干)지역 여러 나라들이 난민제한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대량의 난민들이 마케도니아(马其顿)와 그리스 국경에 발이 묶이게 되는 상황을 초래. 난민들의 단식투쟁은 그들이 입국제한정책에 대한 불만.  일부 난민들은 바느실로 서로의 입을 꿰매주는 등 단식투쟁으로 입국제한정책에 항의.

난민의 고초...
===========

 

시힘,
           그 자유의 모험


김수영의 시는 전기의 모더니즘, 후기의 참여시로 양분된다. 그의 시는 30년대에 전개된 모더니즘과는 다른 50년대 우리시의 새로운 모더니즘의 경향을 따른다. 그러나 1960년 4·19를 계기로 그의 시는 이른바 참여시의 특성을 보여주고, 참여시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시론을 발표한다. 그의 시와 시론이 60년대 순수/참여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서 다루게 될 <시여, 침을 뱉어라>는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이 주최한 문학 세미나에서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이라는 주제로 그의 생각을 펴고, 그 후 다시 지면에 발표한 것이다. 김수영이 이 시론에서 강조하는 것을 대별하면, 시를 쓴다는 것과 시를 논한다는 것, 산문의 의미와 모험, 참여시의 효용성, 자유와 사랑의 개념 등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서두에서 김수영은 시에 대한 그의 사유가 아직도 명확한 것이 못되고, 그러한 모호성은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도구로서 유용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로서 이 글을 시작하고 있다. 이 "모호성"의 옹호가 시의 존재의 규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시의 신비를 풀려고 하는 노력을 배가하게 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나의 모호성은 시작을 위한 나의 정신구조의 상부 중에서 가장 첨단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없이는 무한대의 혼돈에의 접근을 위한 유일한 도구를 상실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249)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므로 시작상 "명철의 개진"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시인이 시를 논할 때에도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김수영은 시를 쓰고 논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에 있어서의 형식과 내용의 문제와 연관하여 사고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시를 쓴다는 것(즉 노래)은 시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성"과, 시를 논한다는 것은 시의 "내용"으로서의 "현실성"과 동의어가 된다. 즉, <시를 쓴다>는 것이 "시의 형식"을 대표하고, <시를 논한다>는 것이 "시의 내용"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수영의 말을 들어보자.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250)

위에서 "동시에"는 "무엇을"의 대답에 해당된다. 김수영에 의하면 이러한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라는 것이 되고, 이것이 바로 시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반면 시를 "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김수영은 비평이나 시론을 쓴다는 것은 "의미"이고 "모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시에 있어서의 모험이란 말은 세계의 개폐, 하이데거가 말한 <대지의 은폐>의 반대되는 말이다. 엘리오트의 문맥 속에서는 그것은 의미 대 음악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엘리오트도 그의 온전하고 주밀한 논문 "시의 음악"의 끝머리에서 <시는 언제나 끊임없는 모험 앞에 서있다>라는 말로 <의미>의 토를 달고 있다. 나의 시론이나 시평이 전부가 모험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들을 통해서 상당한 부분에서 모험의 의미를 연습해보았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로, 나는 시단의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참여시의 옹호자라는 달갑지않은, 분에 넘치는 호칭을 받고 있다. (250)

김수영은 산문이란, 세계의 개진으로 이 말은 사랑의 유보로서의 <노래>의 매력만큼 매력적이라고 한다. 또한 시의 본질은 이러한 개진과 은폐의, 세계와 대지의 양극의 긴장 위에 서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시에 있어서의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생각할 때, 내용과 형식이 등치의 관계가 된다. 즉,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서 생각되어져서는 안되므로, 내용이 반 형식이 반과 같은 도식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성의 편에서는 하나의 시작품이 자기의 전부이고, 산문의 편, 즉 현실성의 편에서도 하나의 작품은 자기의 전부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긴장, 모험)의 탐색은 급기야는 참여시의 효용성을 주장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시의 예술성은 무의식적이다. 이는 시의 기교라는 것을 의식할 때는 진정한 기교가 못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만 김수영은 시에 있어서의 산문의 확대작업을 통하여 내용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실토하고 있다.
여기서 <내용의 면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말은 사실은 <내용>의 말이 아니라, <형식>이 하는 혼잣말이라는 주장을 덧붙인다. <내용>은 언제나 밖에다 대고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지껄여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시의 기적"이 와서 진정한 민족의 역사의 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수영은 참여시의 효용성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시가 시로서의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자유의 서술"로 그쳐서는 안되고 "자유의 이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김수영에 있어 "모험은, 자유의 서술도 자유의 주장도 아닌 자유의 이행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후좌우의 설명과 같은 지루한 장광설이 필요 없다. 바로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과 같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듯이,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형식>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김수영은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 "혼란"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문화의 본질을 근원으로 발효시키는 이러한 "누룩의 역할"을 하는 것이 진정한 시의 임무라고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구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254) 

김수영의 "온몸시론"의 이행은 그의 말을 빌면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 된다. 사실 시인의 존재는 "모기소리보다 더 작은 목소리"를 내는데 불과하다. 만약 시인이 "아무도 하지 않은 말"을 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인의 소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정체되어 있다하더라도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상황도 달라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의 굴절 속에서도 힘차게 추동 되어왔던 "민족시" 혹은 "민중시"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시(혹은 시인)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다시 원점에 서서 지금 우리의 조건을 짚어봐야 겠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763 인생은 비극이라 생각할 때 비로서 살기 시작하는것... 2016-11-06 0 4671
1762 미국 현대시인 - 월리스 스티븐스 2016-11-06 0 3936
1761 따옴표(" ")가 붙은 "시인"과 따옴표가 붙지 않는 시인 2016-11-06 0 4719
1760 모더니즘 경향의 시인들 시를 알아보다... 2016-11-06 0 3998
1759 모더니즘시, 현대 문명을 비판하다... 2016-11-06 0 4892
1758 김기림 모더니즘시 리론작업, 정지용 모더니즘시 실천작업 2016-11-06 0 4211
1757 모더니즘 문학과 도시의 문학 2016-11-06 0 4102
1756 한국 모더니즘 시의 흐름은 어떠한가... 2016-11-06 0 3530
1755 [자료] - 포스트모더니즘을 알아보다... 2016-11-06 0 3471
1754 [자료] -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알아보다... 2016-11-06 0 4299
1753 詩人 되기 먼저 자기자신을 완전히 깨닫는것, 곧 구리쇠 잠깨어 나팔 되기 2016-11-06 0 3636
1752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감상하기 2016-11-05 0 4350
1751 詩란 자연과 함께 인간의 덕성을 말하는것이다... 2016-11-05 0 4320
1750 너무나 많은 라침판이여,-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이라... 2016-11-03 0 3734
1749 詩는 "만드는것"이 아니라 생체를 통한 "발견"이다...... 2016-11-02 0 4167
1748 윤동주가 사랑했던 시와 시인들 2016-11-01 0 4288
1747 죽은지 10여년 지나서야 시적 가치를 찾은 "악의 꽃" 2016-11-01 0 4216
1746 프랑스 상징파 시인, 모험가 - 랭보 2016-11-01 0 4238
1745 프랑스 상징파 시인 - 베를렌느 2016-11-01 0 4825
1744 詩란 우연스러운 "령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언어행위이다... 2016-11-01 0 4360
1743 파블로 네루다 시모음 2016-11-01 0 6304
1742 칠레 민중시인 - 파블로 네루다 2016-11-01 0 4980
1741 詩쓰는것이 돈벌이 된다면 어렵다는 말은 사라질것이다... 2016-11-01 0 3636
1740 조기천시인과 김철시인 2016-11-01 0 4331
1739 백두산은 말한다... 2016-11-01 0 4063
1738 "백두산"과 조기천 2016-11-01 0 4227
1737 "백두산", 완결물이 아니라 미완물이다... 2016-11-01 0 5056
1736 체코 문학을 알아보다... 2016-10-31 1 5975
1735 시인이 된다는것은... 2016-10-31 0 3867
1734 "풀"의 시인 김수영을 다시 떠올리다... 2016-10-31 0 5232
1733 "곰팡이는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것처럼..." 2016-10-31 0 4178
1732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 있는것을 아는 모양이다"... 2016-10-31 1 3862
1731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2016-10-31 0 4361
1730 한국적 모더니즘 대변자 김수영 작품 공자에 젖줄 대다... 2016-10-31 0 3964
1729 변변한 불알친구 하나 없어도 문학이란 친구는 있다... 2016-10-31 0 3954
1728 니체은 니체로 끝나지만 공자는 공자로 지속되다... 2016-10-31 0 3665
1727 詩란 사자의 울부짖음이다... 2016-10-31 0 3880
1726 참말이지 과거는 한줌 재일 따름... 2016-10-30 0 3771
1725 정지용, 김기림과 "조선적 이미지즘" 2016-10-30 0 4161
1724 김기림, 그는 누구인가... 2016-10-30 0 4418
‹처음  이전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