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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표작으로 보는 1960년대 이후 시: 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2015년 12월 19일 01시 52분  조회:4433  추천:0  작성자: 죽림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도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 / 1905. 9. 22 함북 경성~ 1977. 5. 23 서울. 시인·언론인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고뇌와 민족의식을 관념적으로 읊다가 차츰 구체적인 현실을 노래했다. 시어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본관은 전주. 호는 이산(怡山).

 

아버지 인준(寅濬)의 3남 3녀 가운데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1년 가산이 기울자 온 가족이 북간도로 이주했다가 1년 만에 돌아왔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915년 경성보통학교에 입학, 1920년 졸업했다. 1919년 이학순과 결혼했다.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한 후, 중동학교에 들어가 1924년 졸업했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나라의대[奈良醫大]에 지원했으나 색맹으로 불합격,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때 이헌구·정인섭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해외문학연구회에 참여했다. 1932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귀국,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하여 서항석·함대훈·모윤숙·노천명 등과 사귀었다. 1941년 2월 창씨개명을 공공연히 반대하는 등 반일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이유로 3년 8개월 동안 옥살이했다. 해방 후에는 민족주의 문학을 건설하기 위한 여러 단체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다. 1945년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했고,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1948년 이승만 대통령 공보비서관, 1956년 자유문학가협회 위원장을 지냈다. 1957년 자유문학사를 세워 〈자유문학〉을 창간했으며, 1958년 세계일보사 사장이 되었다. 1959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52~70년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자유문학〉이 운영난으로 무기정간되자 그 충격으로 고혈압 증세를 보였다. 이듬해 서울운동장에서 야구경기를 관람하던 중 졸도,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가 72세 사망. 198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이산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 삶의 터전을 상실한 비둘기(자연 환경의 파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음)

 

  성북동 ㉦메마른 산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 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 문명에 쫓기는 비둘기(이리저리 쫓겨다니며 옛날을 그리워하는 초라한 신세)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사랑과 평화를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

  (자연과 사람을 잃고 사랑과 평화까지 낳지 못하는 새가 됨)

 

김광섭<월간 문학>(1968.11)

p57

 

(1) 주제 : 자연 파괴와 인간성 상실의 비판과

           자연에 대한 현대인의 향수

   배경 : 1960년대 말 우리 사회가 산업화· 도시화되던 시대

(2) 김광섭(1905-1977) 시인. 호 이산(怡山). 함북 경성 출생. 초기에는 고독과 불안이라는 허무 의식을 노래하였고, 이후 생활적인 소재를 인간애로 노래하였다. 대표작으로 ‘동경’, ‘마음’, ‘성북동 비둘기’ 등이 있다.

 

(3) 상징시, 모더니즘 계열의 시

(4) 성격 - 비판적, 풍자적, 우의적

   어조 - 비판적, 냉소적 어조

   표현 - 비둘기를 의인화, 묘사와 서술을 혼합

 

(4) 

㉠성북동 산- 자연

㉡번지 - 삶의 터전, 비둘기에게는 자연 그대로의 삶의 터전

                  사람들에게는 자연을 도시화시킨 삶의 터전

번지가 생김 - 사람들이 살기 시작함

번지가 없어짐 - 비둘기가 살 터전, 자연이 사라짐

㉢돌 깨는 산울림 - 자연 파괴의 소리,

㉣금 - 자연 파괴로 인한 아픔

  금이 갔다 - 중의적 표현, 비둘기의 아픔

              현대인의 가슴에 따뜻함과 인정이 사라짐

㉤성북동 비둘기 - 산업화로 삶의 터전을 상실한 도시의 소시민

        관습적 상징(평화)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서

        개인의 창조적 상징으로 표현함, 현대 문명의 불모성에 대립되는 자연, 혹은 순수, 사랑을 상징

㉥축복의 메시지 - 내용은 사랑과 평화

㉦메마른 산골짜기 - 메마른 현실, 도시화된 공간

㉧널찍한 마당 - 비둘기의 삶의 터전

㉨채석장 - 현대 문명의 파괴적인 성격과 불모성을 상징하는 시어

㉩포성 - 자연 파괴의 소리,

㉪피난하듯 - 터전을 잃은 비둘기의 처지

           산업화, 도시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소시민의 처지

㉫향수 - 핵심어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 파괴전의 자연, 삶의 터전에 대해 그리워함

㉭쫓기는 새 - 새와 인간은 공존의 관계를 지녔으나 인간에 의해 그 공존이 깨어짐

 

(5)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

현대 문명은 자연을 파괴시키고 인간마저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변화시켰다는 인식을 내포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정서가 메마른 인간은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보고도 더 이상 사랑과 평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6) 문명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준다. 자연을 의인화하여 인간을 비판하고 있다. 사랑과 평화에 대한 열망을 보여 준다. 사라져 가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보여 준다.

(7) 모더니즘 계열의 시 - 현대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8)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관

   -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람

(9) 시인의 의도 - 현대 문명에 대한 야유나 비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물질문명 시대에 자연의 소중함과 사랑,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데 있다.

 

 

 

 

생의 감각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김광섭<현대문학>(1967)

 

(1) 주제 : 생명의 신비로운 부활

 

(2) 시작(詩作) 배경 : 이 시는 1965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1주일간 사경을 헤매다 무의식 혼돈세계에서 다시 소생한, 내적 생명의 체험을 구상화한 작품으로서, 절망, 고통으로 이어진 참담한 투병생활 끝에 새롭게 피어난 생의 감각과 의지를 표현한 시이다.

 

(3) ㉠ 여명 - 부활의 시간적 출발점.

 여명은 ‘날이 샐 무렵’ 즉, 밤으로부터 아침으로 연결되는 과도기적 시간으로, 밤의 절망에서 아침의 희망에로의 전이를 상징한다.

 

(4) 죽음 ----> 생(生)

 ‘살아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가장 먼저 깨닫는가? (감각이다.)

(5) 1연에서는 ‘살아있음’을 청각과 시각의 감각으로 느끼고 있다.

* 종이 울린다(청각)/ * 별이 반짝인다(시각)/

* 닭이 운다(청각)/ * 개가 짖는다(청각)/ * 오고 가는 사람들(시각)

 

(6) ㉡ 내게서, 내게로 - 존재의 중심이 ‘나’임.

내가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세계가 의미가 있음을 깨달음.

 

(7) A: '아픔/장마/흐린 강물', B: '하늘이 무너짐/하늘이 깨짐'과 같은 시어들이 등장한다. A와 B의 시어들이 각각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A : 병고의 체험(고통, 시련)

B : 절망의 체험

 

(8) 3연 - 절망의 체험

*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 육체적 고통까지 겹친 캄캄한 절망 의식

* 깨진 하늘 - 절망

* 흐린 강물 - 저승으로 흐르는 길

 

* 뼈 - 의지

* 푸른 빛 - 희망

 

(9) ‘채송화’의 의미

: 소생과 부활의 생명 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시어

 

(10) ‘흔들어 주었다’ = 일깨워 주었다.

채송화(희망과 부활, 생의 의지)가 나의 생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마음/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나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해설> 1939년 [문장]에 발표된 시이다.

 이 시는 곱고 부드러운 격조와 적절한 은유로 아름다운 언어의 조화를 이룬다. 은유와 상징이 잘 구사되어 세련미와 함께 지적 관조도 보인다. 자기의 마음을 고요한 물결에 비유하여, 심리적 갈등과 함께 파문을 일으키기 쉬운 마음을 지키려는 경건한 자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초기 작품에 속하는 이 시는 자기의 꿈을 잃지 않고 '밤마다 덮음'으로써 시인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지적 관조를 곱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 목록, 인터넷)

* 김광섭 시인의 말이다.

 " 마음은 간단히 말하자면 '느낌'이다. (중략) 물욕을 버리자는 것이 내 일생의 양심이었다. 일생동안 나에게 변하지 않는 진리는 이 한 가지 뿐이다. 물욕을 버리고 내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이 이 풍파많은 세상에 나를 오래 살게 한데 대한 보은(報恩)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이 시 '마음'은 내게 중요한 작품이다 "

* ​흥규의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물'이라는 사물을 통해 마음의 민감한 흔들림과, 그 평온함에 대한 소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과 일이 있어서 마음의 평화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둘째 연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음의 평화에 충격을 주어 깨뜨리는 사람(돌을 던지는 사람), 어떤 현실적 이득을 취하고자 접근하는 사람(고기를 낚는 사람), 그리고 고요함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노래를 부르는 사람) 등이 그들이다. 작중 화자는 이러한 사람들과의 얽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그는 고요히 자신의 내면 세계에 고립되어 침잠하는 길을 택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별, 숲'은 앞에 등장한 방해자들과 달리 그의 평화를 돕고 지켜주는 자연의 사물들이다. 이 작품에 암시된 바에 의하건대, 세속적 욕망과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기만 할 따름이며, 사람은 오직 자연 속에서 마음의 고요함을 지킬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그의 꿈을 덮어서 고이 간직한다. 이처럼 하는 이유는 `백조'가 오는 날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백조'가 어떤 의미를 가진 은유인가를 단정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바람직한 것은 억지로 의미를 따지기보다 백조의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그 분위기와 느낌을 파악하는 일이다. 한번 상상해 보자. 고요한 물결 위에 흰 백조가 고요히 떠온다. 그 얼마나 고고하고 순백하며 평화로운 모습인가? 이러한 모습의 백조는 이 작품에서 어떤 드높은 순결과 평화의 경지를 상징한다. 그것이 이 시에 나타난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다. 현실의 어려운 굽이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그런 세계를 찾아 떠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이와 같은 경지를 소망하여 잠시 황홀한 도취의 상태에 잠기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일월1동 중동고등학교 교정 김광섭 시비, 시제는 '마음'>​

◈ 시인/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二천원 아니면 三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노을에 가고 없다

 

<해설>​ '시인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는데, 화자는 시인이란 물질적인 이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밝히고 있다. (현대시 작품, 인터넷)

◈ 해바라기/김광섭

바람결보다 더 부드러운 은빛 날리는
가을 하늘 현란한 광채가 흘러
양양(洋洋)한 대기에 바다의 무늬가 인다

한 마음에 담을 수 없는 천지의 감동 속에
찬연히 피어난 백일(白日)의 환상을 따라
달음치는 하루의 분방한 정념에 헌신된 모습

생의 근원을 향한 아폴로의 호탕한 눈동자같이
황색 꽃잎 금빛 가루로 겹겹이 단장한
아! 의욕의 씨 원광(圓光)에 묻힌 듯 향기에 익어 가니

한줄기로 지향한 높다란 꼭대기의 환희에서
순간마다 이룩하는 태양의 축복을 받는 자
늠름한 잎사귀들 경이를 담아 들고 찬양한다

 

 

 

<해설> 해바라기가 피어나는 자연의 배경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현상과 함께 어우러져 생명에 대한 강한 의욕을 느끼게 한다. 순수 자연의 감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잘 표현하고 있다.

 파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해와 그런 해를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를 시인은 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인 정념에 헌신하는 모습으로 보고 있으며, 그리고 해바라기의 모습이 태양을 찬양하는 해바라기의 강인하고 정열적인 모습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태양신인 아폴로(일부에서는헬리오스라고도 함)가 날마다 전차를 몰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하늘을 가로질렀으며, 밤에는 거대한 컵을 타고 북쪽으로 흐르는 대양의 해류를 따라 항해한 것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해바라기를 보고 느낀 서정적 화자의 서정이 집중적으로 노래되었다기보다는 그것을 주지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전개된 일종의 주지시라고 할 수 있다. 표현 감각이 통일성을 부분적으로 결여한 데다 이미지 전개에 다소 혼선을 보이고 현학적인 수사를 많이 쓴 것도 이러한 주지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해바라기의 인상을 화사하고 정열적인 성격으로 빠짐없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시 작품)

===================================

 

 

저녁에/김광섭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해설> 1969년 [월간중앙]에 발표된 작품으로 1975년 김광섭의 시집 [겨울날]에 실려 있다.

  이산(怡山) 김광섭(金光燮)은 오염되어 가는 지상의 문명을 고발한「성북동 비둘기」의 시인이면서도 동시에 천상의 별을 노래한「저녁에」의 시인이기도 하다. 지상과 천상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의 세계에서는 한 울타리 속에 있다. 인간은 땅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인 까닭이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것을 영어로 컨시더(consider)라고 하지만 원래의 뜻은「별을 바라다본다」라는 말이다.

  옛날 사람들은 실제의 바다든 삶의 바다든 별을 보고 건너갔다. 점성술과 항해술은 근본적으로 하나였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천문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이 세상에서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밤하늘의 별이요, 마음 속의 시(도덕률)」라는 칸트의 경이(驚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저녁이 되어서야, 그러니까 어둠이 와야 비로소 그 정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로 시작되는 그 시제(詩題)가「저녁에」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시의 의미를 더 깊이 따져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해서「저녁에」의 시를 이끌어 가는 언술은「별」(천상)도「나」(지상)도 아니다.「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라는 언술의 주체는「나」가 아니라「별」이다. 나는「보다」의 목적어로 별의 피사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그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의 다음 시구에서는 지상의 사람이, 그리고「나」가 언술의 주체로 바뀌어 있다. 시점이 하나가 아니라 병렬적으로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하늘과 땅, 별과 사람, 그리고「내려다 보다」와 「쳐다보다」가 완벽한 대구를 이루며 동시적으로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과는 달리 언어로 표현할 때는 불가피하게 말을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히 그 순위가 생겨나게 마련이다.「저녁에」의 경우도「별」이「나」보다 먼저 나와 있다. 즉 별이 먼저 나를 내려다 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시선에 있어서 나는 수동적이다. 첫행의 경우 시점과 발신자가 별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점의 거리를 결정하는「이」,「그」,「저」의 지시 대명사를 보면 별의 경우에는「저렇게 많은 것」이라고 되어 있고, 사람의 경우는「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시점 거리가「저렇게(별)」보다「이렇게(사람)」가 훨씬 더 가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사르트르처럼 본다는 것은 대상을 지배하고 정복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보고 남이 나를 본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격렬한 싸움인 것이며, 인간의 삶과 존재란 결국 이러한 눈싸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유명한 명제「타자(他子)는 지옥」이란 말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그 시선이 그러한 눈싸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로 정다운 것이 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저렇게 많은 별중에」라고 불렸던 별이 나중에 오면「이렇게 정다운 별 하나」로 바뀌는 그 의미는 무엇인가.

  저렇게에서 이렇게로 변화하게 만든 그 시점은 누구의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저녁에」라는 시 읽기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다.

  답안을 퀴즈 문제처럼 질질 끌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펼쳐보면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 시의 제목처럼「저녁」이라는 그 시간이다. 별이 나를 내려다본 것이나 내가 별을 쳐다본 것이나 그 이전에 저녁이 먼저 있었다. 저녁이 없었다면, 어둠이라는 그 시간이 오지 않았으면, 내려다보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모두 불가능해진다.

  저녁이란 어둠의 시작이 운명처럼 나와 별을 함께 맺어주고 끌어안는다. 그리고 그 저녁이라는 한 순간의 시간 속에서 우연처럼 별 하나와 나 하나가 만난다. 이러한 우연, 그러나 절대적인 운명과도 같은 이 마주보기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이차원(異次元)과 그 절대 거리를 소멸시키는 저녁인 것이다. 저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인간의 삶 그것처럼 어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래서 저녁은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의 관계를 탄생시키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그것들의 사라짐을 예고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저녁은 밤이 되고 새벽이 되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라는 둘째 연의 시구이다. 만남은 곧 헤어짐이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그 진부한 주제가 여전히 이 시에서 시효를 상실하지 않고 우리 가슴을 치는 것은 그것이 시적 패러독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에서 볼 수 있듯이 빛과 어둠의 정반대 되는 것이 그 사라짐의 명제 속에 교차되어 있다. 그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이면서도 사라지는 시간과 장소는 빛과 어둠이라는 합칠 수 없는 모순 속에 존재한다. 저녁의 시간이 빛과 어둠으로 다시 분리될 때 나와 별은 사라진다. 이것이 슬프고 아름다운 별의 패러독스이다.

  그러나 김광섭은 한국의 시인인 것이다. 사람들은 멀고 먼 하늘에 자신의 별을 하나씩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고 믿는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서 천문학의 별을 배우기 전에 멍석 위에서 별 하나 나하나를 외우던 한국의 어린이였다. 그러기 때문에 별의 패러독스는「타자(他子)는 지옥이다」가 아니라「타자(他子)는 정(情)이다」로 변한다. 그리고 그 한국인은 윤회의 길고 긴 시간의 순환 속에서 다시 만나는 또 하나의 저녁을 기다린다.

  그것이 한국인의 가슴속에 그렇게도 오래오래 남아있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마지막 그 시구이다. 그 시구가 화가와 만나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극작가와 만나면 한편의 드라마가, 그리고 춤추는 무희와 만나면 노래와 춤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만나서는「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의 만남이 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의 하나와 마주보듯이 박모(薄暮)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상의 별 하나와 만난다.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인지도 모르는 운명의 만남을…….

  그리고 그렇게나 먼 빛과 어둠의 두 세계로 사라진다해도 우리는「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시구를 잊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만나랴」라는 의문형으로 끝나있지만 그러한 시적 상상력이 존재하는 한「정다운 너 하나 나하나」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과 땅의 몇 광년의 먼 거리를 소멸시키고 영원히 마주 보는 시선을 어떤 시간도 멸하지 못한다.

  별이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별을 쳐다보는 수직적 공간, 그리고 그것을 에워싸는 저녁의 시간……. 그 순간의 만남을 영원한 순환의 시선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시가 맡은 소중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이어령/교수)

* 인간의 존재성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린 작품이다. 시의 형식은 전3연 11행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이고, 내용은 별을 시의 제재로 삼아 관조적·사색적 어조로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과 운명을 노래한 상징적 성격의 서정시이다.

제1연에서는 어둠 속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밝은 별들과 그에 대조되는 인간현실의 고뇌를 '저렇게 많은 중에서의 별 하나'와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나 하나'로 대응시켜 노래하여 인간의 절대고독감을 강조하였다.

  제2연에서는 밝음 속으로 사라지는 별과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나를 통해 '별'로 대표되는 자연과 '나'로 대표되는 인간의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강조하였다. 별과 나의 거리감은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해 갈수록 심해지는 인간관계의 단절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동시에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숙명을 노래한 것으로 풀이된다.

  제3연에서는 인간을 유한한 존재로 보는 시인의 생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빛과 어둠이라는 정반대의 모순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만남을 통해 이별을 노래하고자 한다. 특히 불교적 인연관과 윤회사상을 느끼게 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구절에서 시인은 점점 물신화되어가는 각박한 인간사회라 하더라도 살아갈 희망과 가치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재회의 기대감으로 표현하였다.

  이 시는 생명 자체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노래한 김광섭의 후기작품으로 화려한 시적 수사를 절제해 한폭의 수묵화와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물질문명으로 인해 인간적인 따뜻함과 진솔함을 상실해가는 현대인들의 고독한 모습을 '별'과 '나'의 대조를 통해 존재론적 차원으로 승화시켜 형상화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1970년 서양화가 김환기(金煥基)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화제(畵題)로 대작을 그렸으며, 이 시에 곡을 붙인 대중가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만들어져 애창되기도 했다. (두산백과)

 

* '별'과 '나'는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위안을 삼고, 그 위안 속에서 새로운 삶을 계속해 가는 인간사의 일반적 원리를 보여 준다. 아울러 시적 화자인 '나'는 이런 진리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도 발견하고 있다. 자연과 이에 의존하며 살았던 인간들은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점점 서로 멀어져만 간다. 하나는 밝음 속으로, 하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이런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또 다른 평범한 진리를 찾아내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미래를 기약하는 깨달음에 도달하고 있다. 즉 바라보며 사라지는 존재들 사이에서 정다움을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 정다운 이별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권에 잡히는 현대시)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심초

 

 

 

 

 

* 조선일보 2014년 1월 7일 덕성여대 김현숙교수의 글이다.

  "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수화 김환기(金煥基·1913~1974)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1970년에 열린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자 뉴욕시대 점화(點畵)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환기미술관에서 개최한 기념전 1부의 제목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인 것만 봐도 이 그림의 위상과 상징성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화가는 두고 온 고국의 산천과 벗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하루 종일 되뇌며 점을 찍었다고 하는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환기 블루'라 불리곤 하는 푸른빛이 어딘지 모르게 온화하면서도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화가가 고국의 산천과 벗들을 목 놓아 그리워하면서 점을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환기의 푸른색 추상화에서 온기가 느껴진다고 한다면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바로 앞 구절이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임을 상기한다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환기의 19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232×172㎝/개인소장>

 

<친구의 초상. 구본웅작>

 

인연을 만드는 대장간 (구활/수필가, 매일신문 '구활의 고향 맛')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은 애절하고 그리운 정이 화폭 속에 알알이 박혀있다. 화가의 고향은 목포 앞바다의 안좌도라는 섬이다. 그는 어릴 적 바다를 보며 자랐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란 그림은 뉴욕 생활에 권태가 깃들 무렵 김광섭 시인이 소포로 부쳐준 ‘저녁에’란 시를 읽고 그걸 소재로 그린 것이다. 시 한 편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고향을 떠올려 준 것이다.

그는 큰 캔버스를 끄집어내 점을 찍고 그 속에 바다를 그려 넣었다. 화가는 하루 16시간씩 작업하면서 출렁이는 파도와 별빛과 달빛을 투사시켰다. 그 외에도 보고 싶은 고향 산천과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들을 그려 넣었다.

  화가의 아내는 재혼으로 얻은 김향안이다. 그녀는 시인 이상의 아내였다. 경기고녀와 이화여전 영문과를 다닌 신여성 중에서도 뛰어난 재원이었다. 스무 살 때 여섯 살 많은 이상과 결혼했으나 이상은 4개월 만에 요절하고 말았다. “결혼 4개월 동안 낮과 밤이 없이 즐긴 밀월은 월광(月光)으로 기억할 뿐”이라며 이상을 추억하곤 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었고, 김향안의 본 이름은 변동림이었다. 딸 셋을 둔 김환기와 결혼하면서 변동림이란 이름을 버린 것이다. 변동림은 화가 구본웅의 계모인 변동숙의 배다른 동생이다. 시인과 화가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둔 두 남편들이다. 자매의 남편들을 동서라 부른다. 그러고 보니 변동림의 남편 이상과 김향안의 남편 김환기도 동서지간이라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서두에 ‘두 그림 사이에는 깊은 강이 흐른다’고 말한 저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덕수궁 100선 전에서 두 그림의 배치가 어찌 되었는지 사실은 그게 궁금했다. 대작과 소품이란 크기의 차이 때문에 가까이 붙어 있지는 못했겠지만 마주 서서 째려보거나 혀를 껄껄 차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왜냐면 동서지간이니까,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중략)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김광섭의 시 ‘저녁에’)

  화가 구본웅은 이상에게 ‘친구의 초상’을 그려 주었다. 시인 김광섭은 친구인 김환기에게 ‘저녁에’란 시를 써 주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명화를 낳게 했다. 이상의 아내 변동림은 요절한 시인의 임종을 지켰으며,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도 남편의 임종을 지킨 후 미술관을 지어 주었다.

 

 

 

 

 

 

 

 

 

 

 

 

 

              

 

 

 

 

 

 

 

 

           <김광섭(金珖燮): 1905 - 1977>

 

* 1905년 함북 경성군 어대진 출생, 호는 이산(怡山).

*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 1932년 대학졸업 후 귀국하여

* 1933년 모교인 중동학교의 영어교사가 되었다.

* 1933년 [삼천리(三千里)]에 <현대영길리시단 (現代英吉利詩壇)>을 번역, 발표했고, 같은 해 시 <개 있는 풍경>, [신동아]에 평론 <문단 빈곤과 문인의 생활>을 발표했다.

* 1934년 [문학(文學)]에 <수필문학고 隨筆文學考>, [조선문학(朝鮮文學)]에 <현대영문학에의 조선적 관심(朝鮮的 關心)>을 발표했다.

* 1935년 [시원(詩苑)]에 <고독(孤獨)>을 발표하면서 시작(詩作)을 시작했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동경(憧憬)>, <초추(初秋)> 등이 있다.

* 1937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 연극운동에 가담하였다.

* 1938년 제1시집 [동경(憧憬)]을 출간했다.

* 1941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하여,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후에는 문화 및 정치의 표면에서 활동하였다. 중앙문화협회의 창립, 전조선문필가협회 총무부장, 민주일보 사회부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출판부장, 민중일보 편집국장, 미군정청 공보국장을 거쳐, 정부수립 후에는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공보비서관을 지냈다.

* 1955년부터 경희대학(慶熙大學) 교수로 10여년간 교편생활을 했고, 한국자유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위원장직을 맡고, [자유문학(自由文學)]을 발행했다.

* 1966년 시집 [성북동 비둘기]와 1971년 [반응(反應)]릏 출간했다.

* 1977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 저서로는 [김광섭시전집](1974)과 번역시 [서정시집(抒情詩集)](1958) 등이 있다. 1958년 서울시문화상, 1965년 5 · 16문예상, 1969년 문공부 예술문화대상을 수상하였고, 1970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충남 홍성군 성곡리 한용운생가 민족시비공원 김광섭시비, 시제는 '나의 사랑하는 나라'>

 

 

나의 사랑하는 나라/김광섭

지상에 내가 사는 한 마을이 있으니
이는 내가 사랑하는 한 나라이러라

세계에 무수한 나라가 큰 별처럼 빛날지라도
내가 살고 내가 사랑하는 나라는 오직 하나뿐

반만년의 역사가 혹은 바다가 되고 혹은 시내가 되어
모진 바위에 부딪혀 지하로 숨어들지라도
이는 나의 가슴에서 피가 되고 맥이 되는 생명일지니
나는 어디로 가나 이 끊임없는 생명에서 영광을 찾아

남북으로 양단되고 사상으로 분열된 나라일망정
나는 종처럼 이 무거운 나라를 끌고 신성한 곳으로 가리니

오래 닫혀진 침묵의 문이 열리는 날
고민을 상징하는 한 떨기 꽃은 찬연히 피리라
이는 또한 내가 사랑하는 나라 내가 사랑하는 나라의 꿈이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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