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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 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 일러스트=이상진
영원한 사랑을 믿는가?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좀 촌스럽다. 만남도 헤어짐도 '쿨해져 버린' 시대니까. 사랑에 빠진 직후라면 영원한 사랑 운운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도종환(54) 시인은 사랑에 막 빠졌을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사랑의 영원을 노래한다. 이런 사랑법, 예컨대 '사랑의 뒷심'이 세상의 나지막하고 소소한 뒷마당을 지켜가는 소중한 힘이 되기도 한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질 그날을 예비하며 헐벗은 벌판을 경작하는 시인의 어깨는 고단하다. 하지만 현실의 고단함을 기꺼이 짐 지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을 만나는 길임을 믿기에 시인은 '밭 갈고 땀 흘리며' 묵묵히 당신을 그리워한다. 도종환은 이별과 그리움과 눈물의 시인. 1986년 출간 이후 당대의 밀리언셀러였던 시집 《접시꽃 당신》이 시인을 세상에 알렸지만, 이 시집의 놀라운 판매량은 비극적인 개인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80년 광주의 상처로부터 출발한 암울한 시대의 중반에 인간의 근원적 상처인 삶과 죽음을 진정성 가득한 서정시로 빚어 올린 이 시집은 개인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이 긴밀히 연결된 지점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사람들은 시집을 보며 눈물 흘렸고 눈물은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실제로 도종환 시인을 만나면 많이 울었던 사람의 눈빛과 마주친다. 그는 잘 웃는 편인데 그 웃음이 세상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느낌일 때가 많다. 왜 아니랴. 당신이 사랑한 세상은 여전히 문제투성이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오늘의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옥수수밭 옆에 묻은 당신을 끝내 붙잡아두고 싶었던 세상이므로, 이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게 나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므로. '(…)/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접시꽃 당신〉) 쓸쓸하게 버려진 세상의 뒷마당들에 씨앗을 심고 가꾸는 시인은 '공공 선(善)'이랄지 '희망' 같은 구닥다리 말들이 여전히 사랑을 지키는 근원 힘임을 알고 있다. 변방의 사람들을 향해 그가 내미는 노래들은 따뜻하고 순연하다. 그 노래들 속에 사랑의 푸른 빛들이 반짝인다. 영원한 사랑을 믿느냐고? 영원한 사랑은 있다. 내 안에 당신이 있는 방식으로, 혹은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만나는 방식으로. 아무리 세상이 낡고 슬픔이 많다 해도 사랑은 앞으로 나아간다. 【 김선우·시인 】 |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해설> 도종환 시인의 시집 [사랑의 마음에 꽃이 진다]에 실린 글이다.
이 시는 평범한 자연 현상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는 과정을 거쳐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이런 삶의 진실을 평이한 언어로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삶은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인생의 참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방황, 고뇌, 고통, 슬픔 등은 우리가 부정하고, 회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성숙시키고, 완성시키는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 이 시에 담겨 있는 뜻이다.
이 시는 반복과 변조를 통해 시적 의미를 강조하는 동시에 운율감을 조성하여 독자에게 선명한 인상을 심어 주는 작품이다. 1연에서의 '흔들림'과 '사랑'이 2연에서 '젖음'과 '삶'으로 변조되어 있는데 각 시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동일하다. (현대시 작품, 인터넷)
<부산시 범천1동 도종환 시비, 시제는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시인 "나는 들국화 같은 사람"
도 시인은 목원대 교양교육원이 명사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르네상스 교양특강'의 첫 강사로 목원대를 방문해 자신을 '들국화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도 시인은 지난 2011년 출간한 열 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와 같은 제목의 시를 직접 낭송하며 "인생을 시간에 비유한다면 뜨겁게 살아온 30대인 낮 12시에서 1시 사이를 지나 지금 내 인생은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군인 신분으로 언덕에서 총을 겨누며 시민군이 다가오기를 기다린 경험 이후 시대와 정면으로 맞서며 뜨거운 30~40대를 보냈다. ‘분단시대' 동인 결성과 민족문학운동, 부인의 죽음, 해직 교사와 구속, 복직 등을 겪으며 심신의 피로로 쓰러진 뒤 교직을 그만두고 속리산에서 칩거하기도 했다. 이 같은 굴곡진 시간들을 견뎌낸 도 시인은 "나를 일으켜 세운 힘은 좌절"이라며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인생은 이제 막 오전 9시를 지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때이니 소중한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아라"고 당부했다. (중략)
그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중략>"로 시작하는 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를 인용해 꽃과 인생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꽃은 누가 먼저 피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늦게 피더라도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는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려는 노력을 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한 도 시인은 "인생도 꽃과 같아 늦게 피어난다고 절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고 노력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을 ‘들국화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도 시인은 "이름 없는 산과 들 어디든 보는 사람 없어도 묵묵히 꽃을 피우는 게 들국화인데 이처럼 산비탈에 핀 꽃도 황량한 비탈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바꾼다는 데서 절대 그냥 피어나는 꽃은 없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디트 news 24. 목원대 '르네상스 '교양특강')
*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남해 유자의 향은 유난히 짙으면서도 은은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세찬 해풍을 견디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아프면서 크는 나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향기가 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도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우고 가장 애틋한 사랑도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깊어졌으니, 어디 빛나는 꽃과 사랑만 그런가요. 아주 작은 이슬에도 젖고 빗줄기에도 휘청거리는 우리 역시 비바람 속에서 더 따뜻한 잎을 피워올릴 수 있습니다. 고난을 딛고 재기한 사람도, 평생 외길을 걷는 장인도, 불모지에서 신산업을 일으킨 기업가도, 실패를 거듭하며 우주의 비밀을 발견해낸 과학자도 우리보다 더 흔들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고두현/문화부장·시인,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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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촟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읍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읍니다
<해설> 시인 도종환의 제2시집 [접시꽃 당신]은 실천문학사에서 1985년 발간되었다.
표제작인 <접시꽃 당신>은 암으로 사별한 아내에 대한 사랑을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시어를 통해 절실하게 노래한 시이다. 이 시에서 아내는 질병으로 인하여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급속하게 생명력을 잃고 있는 존재이다. 작가는 이러한 아내의 모습에 대한 자신의 커다른 슬픔을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오고”와 같은 표현을 통해 숨기지 않고 표현하면서, “남은 하루 하루의 앞날은/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와 같이 아내를 잃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격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보잘 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내 마음의 모두를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아파해야 합니다”라는 깨달음을 통하여 이러한 슬픔을 극복하고,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난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겠다는 아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고백한다. 이처럼 이 시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서정적으로 진솔하게 표현하면서도,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러한 슬픔을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의지로 승화시킴으로써 시적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시집 가운데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시인 도종환과 '접시꽃 당신'
마흔 넘은 대한민국 사람으로 1986년에 출간된 도종환 시인의 시집과 시 《접시꽃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시인은 ‘애절한 사랑’이라는 접시꽃의 꽃말답게 그 시집에서 아내와의 지순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암에 걸려 시한부 생을 살아가는 아내를 간호하며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이 “우수수” 빠져나가는 아내의 여위어 가는 몸을 보며 아려 오는 가슴을 노래했다.
그는 “먹장구름”처럼 시시각각 아내를 덮쳐 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던 아내를 왜 데려가려느냐고 절규한다.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도 아내와 함께 베어 내야 하고, 남아 있는 “묵정밭”도 아내와 함께 갈아엎어야 한다고 애원한다. 한때 그 시집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접시꽃 당신〉이 아내가 죽기 전의 애틋한 사랑 노래라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는 저세상으로 먼저 떠난 아내를 묻고 돌아온 뒤의 쓰라린 회한이 묻어 있는 노래이다. 그는 “살아 평생 옷 한 벌 못해 주고” 마지막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힌 아내에게 한없는 미안함을 느끼고 용서를 구한다. 이어 이제는 만나기 힘든 아내와 자신을 1년에 겨우 한 번 만날 수 있는 견우직녀로 비유하며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토로한다.
도종환 시인은 1991년, 대학 강사와 재혼했다. 많은 독자들이 실망감을 표시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 전교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투옥되었다. 그는 그 당시 재혼 배경에 대해 투옥된 뒤 아이들을 혼자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어쨌든 그가 재혼을 했다고 해서 시집 《접시꽃 당신》의 의미가 퇴색될 수는 없을 것이다.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가와는 독자적으로 작품 자체로서 존재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김원익/신화연구가, '신화, 인간을 말하다')
<도종환(都鍾煥): 1954 - >
*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으며, 충북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충남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주성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 1980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마을에서>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 1985년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발표하며 등단.
*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인해 해직되고 투옥되었으며,
* 1998년 복직되어 2004년까지 충북 진천 덕산중학교에 재직했다.
*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6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중이다.
* 첫 시집인 [고두미 마을에서](1985), [접시꽃 당신](1986),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 2000년대 이후에는 [슬픔의 뿌리](2002), [해인으로 가는 길](2006)을 출간하였다.
*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상(1990), 제22회 정지용 문학상(2009), 제5회 윤동주상 문학 대상(2010), 제13회 백석문학상(2011), 제20회 공초문학상(2012) 등을 수상하였다.
◇ 국회의원 도종환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다.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인 16번을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정치인이기 보다 시골 마을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순수 시인이기를 바랬다. 그도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이 되면서 "국회의원에는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위의 강력한 추천과 충북 출신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당선 안정권 순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집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에서 "가난과 외로움과 좌절과 절망과 방황과 소외와 고난과 눈물과 두려움으로부터 내 문학은 시작되었다"고 썼다. 그는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강둑에 쪼그려 앉아 울어야 했고 국물 수제비를 먹으며 학찰 시절을 보냈다고도 했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에서도 국어 선생님의 꿈을 키워 시골 중학교 교사가 된후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을 출간, 베스트 셀러 작가로 우뚝 섰다.
'접시꽃 당신'은 암 진단을 받은 아내가 낳은지 네달 된 딸과 세살 된 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자 그 과정에서 쓴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접시꽃 당신', '병실에서', '암병동' 등을 묶어 시집을 낸 것이다. 당시 전국 일간지는 도 시인을 인터뷰하기 위해 몰려 왔고 그의 인기는 시간이 갈수록 식을 줄을 몰랐다. 지금도 도 시인의 접시꽃 당신은 문학 청소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가을비' 등은 교과서에도 실려 많은 학생들의 암송시가 되기도 했다.
도 시인은 전교조 출범 초기 충북지부장을 맡아 일하다 감옥살이도 했다. 그가 포승줄에 묶여 구치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이 잡혀가야 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충북 국정감사에서 도 시인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당시의 시국 상황은 쉽게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해직 10년 만에 그는 다시 시골의 중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아 그 답게 시골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기도 했다.
도 시인은 "명성이 계속 수입으로 이어지게 슬픈 얼굴을 한 시를 쓸수도 있었으나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치열하되 거칠지 않은 시, 진지하되 엄숙하지 않은 시, 아름답되 허약하지 않은 시, 진정성이 살아 있되 거창하거나 훌륭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진정한 서정 시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느 시골 마을에서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텃밭을 가꾸며 산과 강과 하늘과 산새 소리를 시로 쓰며 촌노처럼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살아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조용히 살기를 원한 그를 정치판이 그냥 두지 않았다. 결국 연막탄이 터지는 진흙탕 국회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동안 유명 작가 중에 소설가 김홍신씨, 김한길씨 등이 국회의원을 지냈다. 처음에는 왕성한 활동으로 박수를 받았으나 결국 흐지브지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은 그들이 작가도, 정치인도 아닌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도 시인은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 접시꽃 당신의 순수한 이미지가 혹시 연막탄 정치판에서 눈물, 콧물에 젖어 끌려 나오고 결국은 시인으로써도 정치인으로써도 잊혀진 사람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도 시인은 상임위 활동을 '문방위'에서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한류를 대중문화가 이끌고 있지만 앞으론 본류 문화가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힘써 보겠다"고 말했다. 또 "경제 민주화 실현은 물론, 보편적 복지 달성과 불안한 남북관계를 극복해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일조하고 싶다"고도 했다.
시 쓰는 일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정치다. 접시꽃 당신이 국회의 문을 나올때 정치인으로써도 성공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시인으로 다시 돌아와 더욱 성숙하고 감동적인 시를 쓰기를 기대한다. (조무주/논설실장, 충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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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1954. 9. 27 충북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도종환은 청주 중앙초등학교를 거쳐 청주중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3년 동안 원주고등학교에서 유학한 뒤 바로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시 <고두미 마을에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85년 충청북도 청원군 부강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 발간한 그의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는 이미 이때부터 깊숙한 자기 울림의 세계를 그려낸 훌륭한 시인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또한 어린 두 아이를 두고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에게 바친 시집 〈접시꽃 당신〉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1988)이라는 2권의 시집은 그가 얼마나 깊은 사랑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도종환은 교사가 된 후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수인의 몸으로 교육 시집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1989)을 발간했다. 그후 도종환은 전교조 충북지부장으로서, 또한 충북문화운동연합의장으로서 활동했다. 그는 청주와 대구를 넘나들며 '분단시대'라는 동인 모임을 결성, 군부독재의 탄압에 맞서 동인지 간행을 주도했고(1984년 1집을 발간한 이후 5집까지 발간함) 그 문학적 열정과 업적을 인정받아 1990년 '신동엽 창작 기금'에 이어 제7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그는 1990년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과 〈그대 가슴에 뜨는 나뭇잎 배〉, 그리고 1998년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를 발간했다. 또한 1993년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와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1994), 그리고 〈부드러운 직선〉(1998) 등을 연달아 발표했다.
도종환은 1998년 9월 충청북도의 작은 시골 학교인 진천 덕산중학교로 복직되었다. 그는 2004년 건강 문제로 교직을 떠났다. 그밖의 저서로는 시집 〈슬픔의 뿌리〉(2002)·〈해인으로 가는 길〉(2006), 산문집 〈모과〉(2000)·〈사람은 누구나 꽃이다〉(2004)·〈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2000), 동화 〈바다유리〉(2002)·〈나무야 안녕〉(2007) 등이 있다. 민족예술상(1997), 거창평화인권문학상(200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부문 예술상(2006) 등을 수상했다
도종환 시 모음
접시꽃 당신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저녁숲
이 서시는 매우 단정하며 ‘뼈의 언어’가 범종소리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낡고, 오래되고, 병든 언어가 곧 도종환 시의 “뼈의 언어”가 아니던가. 여기서 “뼈의 언어” 언표가 되어야 옳다. 이 “뼈의 언어”는 단지 침묵의 형식을 통하여 말의 시위를 자연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음 시에서 뼈의 언어는 무엇일까?0년 선조 3년이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고봉 기대승에게 쓴 편지이며 황은 퇴계선생 자신의 이름이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강으로 오라 하셔서
사랑은 어떻게 오는가
빨래
종이배 사랑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처처불상
수펑나무 뿌리가 석굴을 덮으며
빈 방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귀가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모두들 인사말처럼 바쁘다고 하였고 헤어지기 위한 악수를 더 많이 하며 총총히 돌아서 갔다 그들은 모두 낯선 거리를 지치도록 헤매거나 볕 안 드는 사무실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일을 하였다 부는 바람 소리와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지는 노을과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밤이 깊어서야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돌아와 돌아오기가 무섭게 지쳐 쓰러지곤 하였다 모두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몸에서 조금씩 사람의 냄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터전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쓰지 못한 편지는 끝내 쓰지 못하고 말리라 오늘 하지 않고 생각 속으로 미루어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결국 생각과 함께 잊혀지고 내일도 우리는 여전히 바쁠 것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지친 걸음으로 혼자 돌아올 것이다
비둘기
양식을 하늘에서 찾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
나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
내 목소리를 듣기만 하여도
내 안의 시인
전 재산 -김군자 할머니 말씀
외로운 거 그게 제일 힘들지 뭐 어려서 부모 잃고 열일곱 살 때 일본 군대 끌려가 악몽 같은 삼 년을 위안소에서 보냈지 행인지 불행인지 사랑한다는 사내 하나 있더니 저 먼저 목을 매고 딸은 다섯 해를 살다가 죽고 술집 식모살이 막일 단추 끼우기 그렇게 살았어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뼈 마디마디가 저려오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왜 이렇게 살이 시리고 힘이 드는지 나만 힘든 건지 남들도 마음보다 몸이 먼저 아픈지
돈을 왜 다 내어놓느냐고? 나도 그애들처럼 고아였잖아 정선에서 장사할 때 모은 돈하고 지원금..... 안 쓰고 모은 건데 나무 적은 돈이라 미안해 전 재산이랄 게 있나 요란 떨 거 없어
지금도 아프지 별 차도가 없어 시간도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혼자 살았으니까 외로운 거 그게 제일 힘들었지 뭐
자작나무
자작나무처럼 나도 추운 데서 자랐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맑지만 창백한 모습이었다 자작나무처럼 나도 꽃은 제대로 피우지 못하면서 꿈의 키만 높게 키웠다 내가 자라던 곳에는 어려서부터 바람이 차게 불고 나이 들어서도 눈보라 심했다 그러나 눈보라 북서풍 아니었다면 곧고 맑은 나무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못짓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외롭고 깊은 곳에 살면서도 혼자 있을 때보다 숲이 되어 있을 때 더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새벽별
새벽하늘에 들어가지 못한 별 하나 떠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가장 고요해지는 때를 기다려 우리들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온 별인지도 모르지요 오손도손 사랑하고 가슴 아파도 하는 얘기에 귀 기울이다 모두들 소리도 발자국도 없이 돌아갈 때에 너무도 가까이 내려와 오래오래 혼자 눈물짓다가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진 별인지도 모르지요 남들보다 늦게까지 한 사람을 사랑하던 마음인지도 모르지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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