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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18세기 중엽 이후가 되자 음악·회화·조각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통일성 ·이론성의 주장이 일어났으며,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오스트리아 고전파 음악, J.L.다비드, J.A.D.앵그르 등의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시대가 출현하였다. 그러나 예술을 갖가지 미(美)의 법칙으로 규제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였으므로, 19세기부터는 보다 자유롭고 정서적인 낭만주의가 대두되었다. 고전주의는 후에 생겨난 많은 예술사조의 한 정점을 이룬다. 조화 ·균정(均整) ·명석(明晳)함을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사조를 추구.
낭만주의
18세기에 주요한 유럽 국가들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확립된 고전주의를 일반적으로 계승함과 동시에 이성(理性)을 인식의 유일한 수단으로 삼은 계몽주의의 지배를 받았다. 고전주의는 보편절대적인 미(美)의 관념에 입각하여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복잡보다 간명(簡明)함을,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을, 토속성보다 도회성을, 노골적인 것보다 우아함을, 파격보다 균제(均齊)를 중시하는 귀족문화였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이 되면서 절대왕정의 이완 및 부르주아지의 발흥과 함께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욕구가 분출하는 한편, 계몽주의 그 자체에서도 이성에 의한 비합리적인 면이 드러나자 지금까지 경시되었던 감각현상들에서 인간성의 진실을 찾음과 동시에 고전주의가 모범으로 삼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고대(古典古代)로부터 자국의 과거로 눈을 돌리고, 거기에서 새로운 문화의 원천을 찾으려는 기운이 일어났다. 이 무렵에 일어난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사람들의 마음에 환멸감을 일으켰다.
사실주의
미술 ·문학에서 이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은 A.콩트가 주창한 실증주의의 영향과 함께 이상주의적 계몽주의와 환상적 낭만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19세기 중엽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예술운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중세 유럽에서도 낭만적 ·공상적 소설과 함께 사실적이며 풍자적인 우화시(寓話詩)나 《여우 이야기》와 같은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예술유파로서 확실하게 사실주의가 나타난 것은 19세기이며, 먼저 회화부문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G.쿠르베가 당시의 아카데미즘 화풍에 반항하여, 돌 깨는 작업이나, 목욕하는 여인 등 지극히 현실적인 그림을 사생(寫生)하였으며, 특히 유명한 《오르낭의 매장(埋葬)》(1850)과 같은 작품으로 사실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제자에게 “천사를 본 일이 있는가. 그대 아버지를 보고 그려라” 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또한 쿠르베의 친구인 샹플뢰리가 문학의 영역에서 사실주의를 주장한 것이 프랑스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투쟁의 시초라고 한다.
자연주의
자연을 유일의 현실로 간주하는 입장. 원래는 철학 용어이지만 1870년 이후 문학, 미술 등 예술 분야를 지배한 사조를 가리킨다. 사실주의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 제시하고자 하였다면 자연주의는 대상을 자연과학자 또는 박물학자의 눈으로 분석, 관찰, 검토, 보고하는 것이다. 이 용어는 모든 자연 현상은 과학적으로 논증될 수 있다는 철학의 한 분파를 설명해 주며 또한 개인의 운명은 자유 의지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에 의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인물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던 문학의 학파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결과 자연주의 작가들은 인물이 어느 정도 야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정하면서 개인을 내적 혹은 외적 힘의 희생자로 그린다. 자연주의는 야비한 일상적 현실을 묘사한 극단적 사실주의의 한 형식이다.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가 이러한 학파의 중요 인물이었고 졸라를 추종한 사람들로는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무어(Edward Moore), 조지 기싱(George Gissing), 미국 작가 프랭크 노리스(Frank Norris)와 시어도어 드라이저(Theodore Dreiser)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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