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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論 [마지막 연]
최영철
몽키 스패너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바이스 프라이어의 꽉 다문 입술로 오밀조밀하게 도사린 내부를 더듬으며 세상은 반드시 만나야 할 곳에서 만나 제나름으로 굳게 맞물려 돌고 있음을 본다 그대들이 힘 빠져 비척거릴 때 낡고 녹슬어 부질없을 때 우리의 건강한 팔뚝으로 다스리지 않으면 누가 달려와 쓰다듬을 것인가 상심한 가슴 잠시라도 두드리고 절단하고 헤쳐놓지 않으면 누가 나아와 부단한 오늘을 일으켜 세울 것인가
타일 벽 [앞 2연]
주강홍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난다 반듯한 네 귀들이 날카롭게 모진 눈인사를 나누고 같은 방향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고무망치의 등 두들김에도 끝내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 화목이란 말은 그저 교과서에나 살아 있는 법 모와 모가 만나고 선과 선이 바르게만 살아 있어 어디 한구석 넘나들 수 있는 인정은 없었다 이가 딱 맞다
나사 [전문]
송승환
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만나는 곳에서는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그 속에 기름 묻은 저녁이 떠오른다 한 바퀴 돌 때마다 그만큼 깊어지는 어둠 한번 맞물리면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떠올랐던 별빛마저 쇳가루로 떨어진다 얼어붙어 녹슬어간다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오른다
▣ [연장論]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고 [타일 벽]은 2003년 계간 {문학과 경계} 신인상 공모 당선작이며 [나사]는 2003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 공모 당선작입니다. ◦ 3편 다 '충격'과 '감동'의 차원에서는 운위하기 어렵고, 결국 '깨달음'을 지향하는 시라고 여겨집니다. - [연장論]은 건설현장의 공구를 소재로 삼은 시인데 궁극적으로는 이웃과의 연대와 화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 많이 배웠건 많이 가졌건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무인도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 인간의 결국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타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고립되고 만다는 주제가 숨겨져 있습니다. - 우리 각자가 이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연장의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주제도 유추해볼 수 있지요.
◦ [타일 벽]을 쓴 사람은 건설회사 사장입니다. - 그래서 이 분이 쓴 시는 다 현장성이 두드러집니다. - 타일을 의인화한 이 시는 공사현장에서 펼치는 인생론입니다. - 욕실 타일 벽 공사를 하면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고무망치의 두들김에도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타일의 저항과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의 의미입니다. - 공사현장에서 타일 벽은 이가 딱 맞아야 하지만 우리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렇습니까. - 때로는 언밸런스이고 때로는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오리무중이지요. - 하지만 타일 벽이 그래서는 안 되지요. - 규칙과 규율을, 감독과 관리의 세계에 있습니다. - 그래서 시는 제4연에 가서 역전을 시도합니다.
낙수의 파형(波形)만 공간 가득하다 물살이 흔들릴 때마다 욕실 속은 쏴아쏴아 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낸다 욕실을 지배하는 건 모서리들끼리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이 아니었다
▣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에 반항하려고 욕실의 물살이 "쏴아쏴아/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냅니다. ◦ 세상 너무 모나게 살 필요가 없는 법, 때로는 두루뭉실하게, 때로는 비스듬하게 살아가자고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송승환의 시는 나사의 의미를 확장하여 당선작이 되었습니다. - 시인은 사물의 본질을 파고들어 미세하게 그려내기도 하지만 내포(內包)보다는 외연(外延)을 지향하기도 합니다. - 이미지 연상작용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송 시인은 그 기법을 멋지게 사용하여 독자에게 깨달음을 줍니다. - 나사는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일종의 화두가 되었던 것입니다. - 나사의 사전적인 의미 고찰에 머물지 않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추었기에 그는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안다는 것과 깨닫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 앎은 지식의 영역이고 깨달음은 지혜의 영역입니다. - 시는 우리에게 충격과 감동과 함께 깨달음을 줄 수 있습니다. - 철학서 한 권, 역사책 한 권에 들어 있는 내용을 압축하여 한 편의 시로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세상에서는 시인이라고 합니다. - 깨달음이란 '크게 느낀다'는 뜻이 아닐까요?
◦ 우리가 사물과 인간에 대한 관찰의 안테나를 계속 세우고 있으면 시로 쓸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 좋은 시는 늘 우리 주변의 사물을 잘 살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의 손에 의해 씌어지는 것입니다. - 일기나 수기는 자신이 체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면 되지만 시는 축소지향의 장르입니다. - 구질구질 설명하지 않고 몇 마디로 줄여서 쓰면 그것이 바로 촌철살인이고 정문일침입니다.
◦ 시는 '충격'과 '감동' 혹은 '깨달음'을 지향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하면서 강연을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 제 강연을 경청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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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숲속에 서서 / 정희성
49. 태백산행 / 정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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