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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작법 저너머...
2016년 01월 10일 05시 43분  조회:4863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고재종


헤겔은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라는 아리송한 말을 『법철학』에서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헤겔의 상속인들이 좌파와 유파로 갈리게 되는 헤겔 사유에 내재한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좌파들은 이 말의 앞부분에 방점을 찍고, 우파들은 이 말의 뒷부분에 방점을 찍는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란 곧 인간의 사유가 언제라도 현실로 전화될 수 있다는 것으로 철학의 실천적 의미를 극대화한 주장이다. 이성적 사유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이론적 실천으로 전화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단순히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반면에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란 명제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이성적 사유의 결론이라는 주장으로 현실을 정당화할 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실제 헤겔은 반동적인 독일의 정치적 현실을 이상화함으로써 진보의 반대편에 서고, 그 결과 한동안 파산선고를 받은 채 사상사의 변경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잠깐이라도 눈여겨보면, 헤겔의 보수적 선회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적인 것, 곧 존재하는 것이 이성적 사유의 결과일 수 없음은 명확하다. 현실은 오히려 지극히 비이성적인 탐욕의 결과이거나, 반이성적인 폭력으로 은폐된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 삶에 파묻혀 사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허위와 위선에 더 이상 분노하지 못한다. 그 분노가 우리의 현실적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잠언에 몸을 떨지만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자각에 몸을 비켜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르다. 시인은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고통에 기꺼이 온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비록 그 진리가 영원히 자유와는 무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예감하면서도 시인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저항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존재해야 할 것들을 즉각적으로 이끌어내며 또 표출한다. 그 표출이 불러일으킬 고통이 실핏줄 구석구석을 터질 듯이 메워 갈지라도 기꺼이 그 고통 아래에 목을 늘어뜨린다. 이 또한 상상력의 일종이다. 현상을 통해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 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사유의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17) 받들어 꽃 -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사 힘이 센 304호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이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서 피어난 과꽃 
한 송이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18) 北魚 -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열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시 (17)은 전복적 상상력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중 아파트 어귀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친다. 아이들은 우리가 항용 마주치는 아이들이 그러하듯 시끌벅적하게 서로 한껏 총질을 해대며 ‘죽어, 죽어!’를 외치고 있었을 터이다. 그것이 현실이다. 이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섬뜩하고 짠하다. 아이들의 노는 방식이 섬뜩하고, 왜 아이들이 이렇게 놀고 있을까 하는 원인에 대한 탐구는 분단된 내 조국의 아픈 상채기 하나를 만지는 듯해 서글프다. 그러나 그저 그렇겠거니, 어른들이 그렇게들 살고 있으니 아이들이라고 무어 다를 것이 있겠어 하고 외면해버릴 우리와 달리 시인은 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는 아이들을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받들어 총’이 아니라 ‘받들어 꽃’이라고, 죽음의 놀이가 아니라 작은 생명에 대한 지극한 외경의 의식을 행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에 대한 굴종 대신 생명에의 축복으로 아이들 놀이가 바꾸어져야 한다는 것을 부드럽게 주장한 것이다.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왜곡과 은폐의 더께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빛나는 삶의 진정성을 일구어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전복적 상상력의 탁월한 기능이다. 
시 (18)은 참 재미있는 시이다. 식료품가게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브러져 있는 북어를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가슴속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꿈꾸는 가운데 교묘하게 북어가 사람으로 대체되어 있다. 헤엄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북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그 순간 느닷없이 커다란 입을 벌린 북어들이 큰소리로 ‘너도 북어지!라고 귀가 먹먹하도록 계속 부르짖는 눈부신 전복으로 시를 끝맺고 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라 찌부러진 요즈음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19) 銀山鐵壁 -오세영 

까치 한 마리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하늘을 
엿보고 있다. 
銀山鐵壁. 
어떻게 깨뜨리고 오를 것인가. 
문 열어라, 하늘아. 
바위도 벼락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 
문 열어라, 하늘아. 

은산철벽이다. 은산철벽이라 함은 禪家에서 禪僧들이 화두를 참구하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다. 온 산이 온통 흰 눈으로 덮이고 얼음으로 짜 올려져 철벽을 이룬 상태인 바, 세상의 分別智 정도로는 도대체 그걸 깨뜨릴 수 없다. 한마디로 백색 절망의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의 까치 한 마리, 곧 선승은 홀로 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있다. 백천간두에 처해있는 것이다. 한 발만 까딱 잘못 재겨 디뎌도 수천 수만 리 허공으로 추락해버릴 그 자리. 그 한계상황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올라야 하는데, 그 하늘조차 새파랗게 얼어붙어 있다. 은산철벽을 먼저 깨트려야 되는데, 그래야 그나마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오를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상황은 여전히 암담하다. 전후좌우를 헤아려보고, 차가운 이성과 불같은 감정을 동원해보고, 피투성이의 몸부림을 해봐도 눈에 보이고 귀로 열리는 것은 추호도 없다. 
안 된다. 안 된다. 그렇다면 에라이 모르겠다. “문 열어라, 하늘아,” 호통칠 수밖에 없다. 분별지 같은 걸로 어림없는 세계. 직관력 아니고는 어림짐작할 수도 없는 세계. 결국 선승으로서는 일대 전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이 하늘하고 상대를 하는 것이다. 이모저모 따질 것 없이 곧바로 하늘하고 맞붙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문을 여는가. 
결국 “바위도 벼락 맞아 깨진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은산철벽 속 어떠한 고통이라도 감수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만 비로소 난초 꽃, 곧 삶의 극적인 진실이 열리는 것이다. 그것도 “문열어라, 하늘아”라고 다시 한번 호통치는 그 용기로 인해서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고통에 처했을 때 마지막 뚝심으로 돌아서서 그 몰아대는 자를 악착같이 물어버리는 대전복이 청천벽력처럼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진실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하늘에다 대고도 호통칠 수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깨달음. 그러기에 시형식도 여러 진술이나 묘사를 생략하고 간명한 막대기 같은 언명만 필요하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없이 팽팽한 긴장과 절제의 언어만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불립문자의 세계를 말하기 때문에 여타의 모든 말들은 언어도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 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인 상상력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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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확인 / 윤후명

 

     

 

 

 

 

 

 

 

 

확인

 

                          윤후명

 

너 가고 있는 길

나도 간다

길 가는 사람은 많고 많으나

둘만이 아는 길은

따로 있음을 믿는

길이다 믿어야 한다

머나먼 세상 끝

아득한 남해섬

마늘 싹과 보리 싹 파아랗게 밟으며

가고 있는 길

비린 술 한 잔에 영혼을 달래면서

세상 미련 죄다 떨쳐 버리면서

가고 있는 길

그러므로 사랑이

삶을 확인한다

 

(2006.7.3. 개작)

 

윤후명 육필시집 < 먼지 같은 사랑 > 중에서

 

 

 

윤후명(尹厚明) 윤상규(尹常奎) 연보

 

 

1946년 강원도 강릉 출생. 본명은 윤상규이나 필명인 윤후명을 사용함.

 

16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 당선, 시인 등단

 

1969년 연세대학고 철학과 졸업. 시 동인지 <70년대> 창간 동인.

 

1977년 시집 <명궁(名弓)> 발간.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산역(山役)> 당선, 소설가로 등단.

 

1980년 소설 동인지 <작가> 창간 동인.

 

1983년 거제도 체류. 중편소설 <돈황의 사랑> 출간, 이 작품으로 녹원문학상 수상.

 

1984년 단편소설 <누란> 출간, 이 작품은 뒤에 <누란의 사랑>으로 개작하여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1985년 단편소설 <엉겅퀴꽃>과 <투구게>를 중편소설 <섬>으로 개작,

       이 작품으로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1986년 단편소설 <팔색조>가 MBC 베스트셀러 극장 방영.

 

1987년 산문집 <내 빛깔 내 소리로>, 중편소설 <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 출간.

 

1988년 중편소설 <높새의 집>이 국제 팬 대회 기념으로 <한국 소설집>에 번역 수록.

 

1989년 소설집 <원숭이는 없다> 출간.

 

1990년 장편소설 <별까지 우리가>, <약속 없는 세대>, 산문집 <이 몹쓸 그립은 것아>,

       시집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문학선집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출간.

 

1992년 장편소설 <협궤열차>, 장편동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

       시집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출간.

 

1993년 단편소설 <돈황의 사랑>이 프랑스 출판사(Actes Sud)에서 번역 출간.

 

1994년 중편소설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로 현대문학상 수상.

 

1995년 중편소설 <하얀 배>로 이상문학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기획분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강사.

 

1997년 소설집 <여우 사냥>, 산문집 <곰취처럼 살고 싶다> 출간. 한국소설학당 설립.

 

1998년 추계에술대학교 강사.

 

1999년 단편소설 <원숭이는 없다>가 독일에서 <한국 소설집>에 번역 소개.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선임.

 

2001년 소설집 <가장 멀리 있는 나> 출간.

       추계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가협회 이사, PEN클럽 기획위원회 위원.

 

2002년 단편소설 <나비의 전설>로 이수문학상 수상. 산문집 <그래도 사랑이다> 출간.

       대한매일신보 명예논설위원, 연세대학교 동문회 상임이사 위촉.

 

2003년 산문집 <꽃> 출간.

 

2004년 동화 <두부 도둑> 출간, 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선임.

 

2005년 장편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 출간. 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2006년 시와 소설 신화집 <사랑의 마음, 등불 하나> 출간,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 단편소설 <촛불 랩소디>로 제7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소설집 <새의 말을 듣다> 출간, 이 작품으로 제10회 동리문학상 수상.

 

2008년 <21세기문학> 편집 위원.

 

현재 문학비단길 고문,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 한국문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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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얼굴 / 윤후명

 

                        

 

 

 

 

 

 

 

 

 

얼굴

 

                          윤후명

 

가장 사랑하는 고운 님에게

시들지 않는 추파를 엮어 드리리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내 승냥이의 얼굴을 보여 드리리

 

 

윤후명 육필시집 < 먼지 같은 사랑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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