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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각 신문사 신춘문예 詩調 당선작 모음
2016년 01월 21일 22시 07분  조회:3812  추천:0  작성자: 죽림

 

[201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이중원

 

파란 잉크 주식회사

 

 

                                       이 중 원

 

 

새초롬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시

 

 

빵,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시조 당선소감] 나만의 빛의 온도로이 길의 끝까지…


 

싸늘하게 입김마저 얼 것 같은 공기만큼이나 햇볕이 곱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날. 당선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가슴 벅찬 기쁨도 있었지만 ‘아, 이제 정말로 시작이구나’… 글을 쓰는 손 위에 좀 더 무겁게 실리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래전에 꺼져버린 것 같은 마음속의 불을 다시 지펴주신 아버지, 그리고 언제나 격려 어린 말과 함께 객관적 태도로 작품을 읽어주시는 어머니와 형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건축학적 접근과 관련하여 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르쳐주신 이승훈 교수님, 어려운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시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챙겨주신 유성호 교수님, 금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남규형, 그리고 미력한 습작에도 분에 넘치는 격려를 보내주신 오세영, 윤금초, 홍성란, 박형준 선생님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란, 그리고 시인이란 아마도 자신만의 빛으로 온갖 온도의 현실을 표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저 자신이 그것을 앞으로 얼마나 더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하는 것부터가 저의 첫걸음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길의 끝까지,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1986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입학
―제4회 님의 침묵 전국 백일장 차상

 

 

 

 

[시조 부문 심사평] 정형 구조 넓힐 신인… 더 놀라운 '파란' 기대돼

 

오래된 형식으로 어떻게 오늘의 시를 열어갈까. 기대와 설렘으로 거듭 읽었다. 시조에 입혀온 선입견이나 관념적 답습에 그친 낡은 모사(模寫)와, 작년 응모작을 살짝 고쳐 낸 것들부터 내려놓았다. 새로움을 향한 도전으로 께름한 데다 습작의 양이 등단 후 생존에도 큰 바탕이기 때문이다.

 

당선작으로 이중원씨의 ‘파란 잉크 주식회사’를 올린다. 끝까지 겨룬 응모자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대상을 파고드는 시선이 예각적인 조우리씨, 참신한 어법으로 진술과 이미지의 명도를 높인 김상규씨였다. 서정적 여운을 형식의 미덕으로 삼을 줄 아는 정영희씨, 재기로 정형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 조선의씨도 다시 읽게 했다. 서희정·이태수·이예연씨 등 이십 대가 펼쳐낸 상상력과 발랄한 문법에서도 새로운 시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원씨의 독창적 세계 개진은 그중 단연 돋보였다. ‘파란 잉크 주식회사’는 언어에 촉수를 달고 탐사하듯 세밀한 감각의 깊이로 잡아 엮는 묘사와 진술이 긴밀한 조화가 압권이다. 현실의 다면을 꿰는 독법으로 발생시키는 낯선 미감의 어조 속에 유지하는 정형성도 견고하다. 제목 ‘파란’이 촉발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상상 또한 작품 전편에 이상한 생기와 냉기를 부여한다. 지면 사정상 미룬 ‘열두 개의 계단’은 긴 분량(12편 33수)임에도 매 편 다른 발성과 기법으로 시적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응모작(총 9편 58수)마다 색다른 어법과 고른 수준과 능숙한 형식 운용 등으로 미루어볼 때, 정형 구조를 확장할 신인 탄생으로 기대된다.

 

당선을 축하한다. 더 놀라운 ‘파란’을 열어가기 바란다.


정수자(시조시인)

 

 

 

[2016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김광희

 

 

바다가 끓이는 아침

 

 

                                  김광희

 

 

 

냄비 속 두부 비집고 순하게 누운 청어

 

여태껏 제 살 찌른 가시들 다독여서

 

들끓는 파도소리로 어린 잠을 깨운다

 

 

물 얕은 연안에도 격랑이 일었던지

 

거친 물살 버티느라 활처럼 등이 굽은

 

어머니 갈빗대마다 소금눈물 가득 찼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대양을 꿈꿨던지

 

시퍼런 등줄기가 심해를 닮아 있는,

 

몸속의 수평선 꺼내 끓여내는 아침바다

 

 


신춘문예-시조 당선 소감 /“시조의 세계가 궁금…이제 용기내 파헤쳐볼 것”


어릴 적 제가 살던 집은 북명사라는 절터에 지은 집이었습니다. 그 집의 부엌 살강 밑의 바닥이 망치나 괭이로 두들기면 흙이 튀어 오르고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북소리가 났습니다. 늘 궁금했지만 차마 그 바닥을 괭이로 파 보지는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 집을 떠나온 후 아직까지도 그 부엌 바닥이 궁금합니다.

 

 그 부엌 바닥처럼 문학의 세계, 시조의 세계가 궁금합니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캐고 파헤쳐서 그 궁금증을 내 손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정해 주는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고 뒤만 따라다녀도 내 자국에 빠져 허둥거렸습니다. 이제는 내 이야기도 해보려 합니다.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찾는 것을 향하여 길을 나서겠습니다.

 

 아버님의 제사장을 보는 중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절로 고기도 더 큰 것이 사졌습니다. 묵직한 장바구니가 무겁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부담스러웠던 제사가 즐거웠습니다. 늘 소심했던 제 자신에게 칭찬도 좀 해 주고 잘 지내자고 악수를 하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어 어릴 적에 살았던 그 집을 찾아가 보아야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면 환하게 웃어줄 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농민신문>에 감사드리며 땀 흘리는 농민을 위해 더욱 발전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광희 ▲1957년 경북 경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3년 경주문학상 수상 ▲시in 동인, 이목회 회원

 

 

 


신춘문예-시조 심사평 /“평범한 생활시조의 상상력과 개성적 접근 주목”

 

 

농민신문사가 시조를 통해서 민족 고유의 시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까닭은 농심의 현재적 관찰과 미래지향적 가치 질서를 확보하기 위함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주제나 소재가 시조의 작품성에 우선할 수는 없었다.

 

 예심 없이 두 심사위원이 골라와 최종적으로 거론된 ‘하늘공원, 슈퍼문 뜨다’ ‘소금이 온다’ ‘바다가 끓이는 아침’ 세 편은 각기 다른 개성과 장점을 지니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가운데 ‘하늘공원, 슈퍼문 뜨다’는 상상력을 통해 역사적 비의(悲意)를 부각하여 호감이 갔으나 표현에 치중하느라 전달력을 잃어버려 배제되었다. ‘소금이 온다’는 아버지가 한평생을 바친 염전에서의 명상적 접근은 좋았으나 삶의 의미와 소금의 가치 사이에서 선택을 놓쳐 공감대를 약화시켜 흠결로 지적됐다.

 

 마지막으로 남은 ‘바다가 끓이는 아침’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청어찌개를 끓이는 평범한 생활 소재를 통해서 힘겹게 살아온 어머니를 발견하는 상상력과 셋째 수 종장의 ‘몸속의 수평선 꺼내 끓여내는 아침바다’의 힘을 확보하는 사유의 깊이에 박수를 주기로 한 것이다. 지나친 정보의 홍수 속에 획일화되고 서로 닮아버린 시조의 현실에서 체험적 생활시조의 또 다른 개성적 접근은 시조의 문을 넓혀 줄 것이란 관점에서 기대를 갖게 한다.


한분순 시조시인 민병도 시조시인

 

 

 

 

 

[2016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조경선

 

옆구리 증후군

 

                              조경선

 

 


손가락을 때렸다 매일 하는 일인데

 

못은 이미 달아나고 의자는 미완성인데

 

날아 온 생각 때문에 한눈팔고 말았다

 

 

상처 많은 나무로 사연 하나 맞추어 간다

 

원목의자만 고집하는 팔순의 아버지에게

 

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어머니 보내고 생의 척추 무너진 후

 

기우뚱 옆구리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낯익은 것 사라지면 증후군에 시달린다

 

최초의 의자는 흔해빠진 2인용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

 

 


◆당선 소감

 

나무를 다듬는 일이 요즘은 두려워집니다. 끌로 모서리를 쳐내고 죽은 참죽나무의 변죽을 다듬어 봅니다. 외풍을 견디느라 거칠어지고 휘어진 것이 눈앞에 있습니다.

한참을 깎아 내고 다듬다 보면 벗겨져 나간 껍질들이 내 손의 흐름을 지켜보며 재탄생의 떨림으로 다가옵니다. 그럴 때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공방에서 일을 하다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시조를 쓰면서 수년간 다루어왔던 나무의 속을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글 쓰는 방법을 처음으로 열어 주신 장석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쁜 시간에도 끊임없이 가르침을 준 하린 시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정진하라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매일신문사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가족들과 오랫동안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심사평

 

어릴 적부터 한글을 익힌 사람이 일평생을 이 땅에 살면서 시조 한 편 써 본 일이 없이 자신의 삶을 끝맺는다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직무유기를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볼 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가 물려준 정신적 문화유산 가운데 그만큼 시조는 값어치가 있다. 이 사실은 시조를 한 두 편이라도 써 보게 되면 곧 알 수 있는 일이다.

시조는 일정한 형식으로 말미암아 자칫 딱딱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율격을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율격에 매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 까닭에 오랜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많은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공통점은 정형률을 잘 숙지하고 있지만, 그 그릇 안에 새로운 것을 담는 일에 미숙하다는 점이다. 즉 안간힘을 다한 흔적은 역력하나 맛을 내는 일에 한계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시조의 종장 몇 군데만 살펴봐도 여실히 드러난다.

당선작 조경선 씨의 '옆구리 증후군'은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원목의자를 만드는 과정을 노래하면서 넌지시 삶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역작이다. 일상의 삶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끈끈한 가족애를 실감실정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때로는 딱딱한 것도 안락함이 되는 걸까’, ‘슬픔을 지탱하기엔 두 다리가 약하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익숙할 때 놓친다’라는 대목들이 주는 울림이 크다. 남다른 직조능력에서 얻은 표현들이다. 이처럼 일상을 소재로 하되 일상적이지 않다. 새로움이 있다. 수많은 응모작들 중에 단연 돋보인다. 다른 목소리의 출현이다. 같이 보내온 '얼음 발자국'과 '장작'도 참신했다. 신선한 시각과 개성적인 언어 운용이 묘하게 맞물려서 새로운 미학적 발화를 보인다.

끝까지 남은 이들로는 김수환, 이희영, 이윤휸, 김경연 제씨 등이었다. 이들도 나름대로 공정을 오래 쌓은 것이 엿보였지만 당선작에는 다소 못 미쳤다. 당선된 이의 대성을 기원하며, 시조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줄기찬 분발을 빈다.

 

심사위원 : 이정환`시조시인

 

 

 

 

 

 

[2016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최정연

 

물의 독서

 

                           최정연

 


물 아래 달을 봐라

콸콸한 문장이네

몇 개의 모음들이 괄호 밖에 흘러넘쳐

지금은 은어가 오는 시간,

달빛공지 띄우라네

 


산란하는 조약돌도 물 소리 헤이는 밤

오십천 수면 아래

무슨 등불 켜두어서

뜨거운 이마 짚으며

다상량의 달을 보나

 


수심 찬 질문들이 부서지고 또 고여서

물결 책 갈피마다

각주로 박혀있네

내 몸도 출렁, 불려나와

행간의 밑줄 될까

 


[2016 신춘문예] 시조 - 최정연 씨 당선 소감 / 이제는 나만의 색깔로 물들이고 싶어

 

마음이 산만해져 어둑해진 바닷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또 잃었다. 잿빛 하늘이 바다에 닿아 출렁이는 돌담 사이를 기웃거릴 때까지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는 사람 하나를 그리워했다. 

하늘 거긴 어때? 여긴 좋아. 마음 쓸쓸해지는 그런 저녁에 날아온 소식은 떠난 이가 보내 준 애틋한 선물 같기도, 오래 게으른 자에게 당신이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느냐고 묻는 서러운 질문 같기도 했다. 잠시 울컥했지만, 저 겨울나무처럼 초연하기로 하자.

그동안 새겨놓은 내 발자국은 지워지고 없거나 삐뚤삐뚤한 모양새다. 부끄럽다. 어린 시절 추억 속에는 늘 시가 있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사소함 속에도 시는 조용히 함께하지만, 너무 오래 돌보지 않은 그것은 녹슨 피리나 다름없다. 칭얼대고 흐느끼는 그들을 끝끝내 버리질 못하고 살았다. 이제는 나를 갱신해야 할까. 스스로 깊어지는 힘으로 가장 정직한 나만의 색깔로 자신을 물들여 보고 싶기도 하다.

먼 길 돌아서 오는 사람에게 새로운 꽃 피우도록 지면을 허락해주신 국제신문과 모국어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려보라 다독여주신 심사위원 전연희 서태수 선생님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겸손한 자세로 오래 보답하겠습니다. 오래전 한 그루 나무로 그 숲이 되고 산이 되신 모교의 스승 오규원 선생님! '자네가 그것이 시라면 시가 맞네'라며 빙그레 웃으시던 그 미소가 그립습니다.

다정한 벗님들, 함께 가자며 내내 손잡아 주시는 영덕문협 회장님께도 넙죽 인사 올립니다. 어두운 밤길에 나를 바른길로 돌아오게 해주는 내 살 같은 가족, 그리고 자식을 하늘로 먼저 보내고 힘든 시간을 홀로 지키고 계시는 친정어머니, 아프도록 사랑합니다.


▶약력=1968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제1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 부문 '정열식물원' 금상 수상(2015년). 현재 경북 영덕에 살며 논술글짓기 강사로 활동.

 

 

 

[2016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 신선한 패기와 성장 가능성에 방점

 


98명 361편의 응모작을 두고 우선 심사위원의 자의성을 최소화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준거를 마련했다.

예심에서는 시조 형식과 문학 미학의 보편적 속성을 기준으로 많은 작품을 배제하고 10여 작품을 본심에 올렸다. 본심 기준을 세분화하여 '1. 율격 운용의 자질 2. 제재 해석의 참신성 3. 시상의 심화 확장성 4. 정서 전달의 효율성'을 준거로 삼았다.

본심에서는 동일인의 다른 응모작의 균등한 수준 유지 여부도 참고하면서 거듭 논의를 거쳐 여섯 편을 선정하고, 다시 논의 끝에 '곶감, 먼 길 뜨다' '쉬어가라, 쉬어가라' '횡단보도'를 내려놓았다.

최종으로 최정연의 '물의 독서', 나동광의 '낚시', 백윤석의 '돌도끼 리모컨' 세 편 작품의 장단점에 대한 세밀한 검토를 거듭하였다.

'돌도끼 리모컨'은 마지막 수인 셋째 수가 시상 확장, 상징성에서 결정적인 아쉬움을 남겼다.

나머지 두 작품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낚시'는 원숙미가 돋보이는 흠결 없는 완제품 같이 다듬어졌지만, 그것이 오히려 신선함을 떨어뜨렸다. '물의 독서'는 발랄한 위험성이 있지만, 생동감 넘치는 신선미가 돋보였다.

심사위원들은 신춘문예 공모의 전통적 취지를 살리고, 아울러 시조단에 청량감 전파를 위해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하기보다 신선한 패기와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찍기로 하였다.

특히 당선작 '물의 독서'는 찰랑이는 시어로 이미지를 다양화하고 있다. 시조의 보법을 경쾌하게 운용하는 능숙함, 행갈이와 쉼표 하나에도 많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섬세함을 함께 지녔다. 다만, 최정연 씨 작품들은 자유분방함으로 인하여 시조가 지닌 형식적 미감이 오히려 넘치는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작가의 의도적 장치로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시조 창작의 소양이 될 것이라는 점에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했다. 

 

심사위원 전연희 서태수 시조시인

 

 

 

 

[2016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정지윤

 

날,세우다

 

                         정지윤

 

 

동대문 원단상가 등이 굽은 노인 하나

 

햇살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숫돌에 무뎌진 가위를 정성껏 갈고 있다

 

 

지난밤 팔지 못한 상자들 틈새에서


쓱쓱쓱 시퍼렇게 날이 서는 쇳소리


겨냥한 날의 반사가 주름진 눈을 찌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눈초리를 자르고 


무뎌진 시간들을 자르는 가위의 날


노인의 빠진 앞니가 조금씩 닳아간다

 


늘어진 얼굴에서 힘차게 외쳐대는


어허라 가위야, 골목이 팽팽해지고


칼칼한 쇳소리들이 아침을 자른다

 

 

잘 쓴 시보다 울림이 있게… 시 오는 문 열어두겠습니다

 

 

시조의 멋과 맛에 끌려 시조를 쓰기 시작했다. 혼자서 시조를 쓰면서 막막하기도 했지만 아무도 없는 숲에서 노래하는 새처럼 자유로웠다. 외로웠으나 충만했다.

오래전 나를 떠난 말들이 수많은 것을 스쳐 내게로 온다. 아픔은 늘 길들여지지 않은 채 달려온다. 슬픔을 잃는 것은 사랑을 잃는 것. 살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더 많이 아파해야 할 것이다.

두렵고도 가슴 벅찬 당선, 이제 시작이다. 잘 쓴 시보다는 울림이 있는 시, 세계에 대한 고민과 아픔이 녹아 있는 시를 쓰기 위해 치열하게 갈고닦으며 정진할 것이다. 나의 기준과 경계를 넘어야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늘 시가 오는 문을 열어 두고 기다릴 것이다.

혹한의 추위보다 사람들 사이에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더 춥고 서글프다. 모두가 힘들다고, 어렵다고 몸을 움츠릴 때 멀리서 매화가 한 뼘 부풀어 오른다.

사랑하는 가족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모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용기를 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964년 경기 용인 출생 △2015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심사평]시조  ▼고된 삶에서 찾은 건강한 희망… 상투성 벗고 미학적 도전 주목▼

 

 

 신춘문예 투고작을 심사하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는 언제나 같다. 젊고 새로운 작품이 있기를, 날카로운 도전의 미학이 있기를, 기성에 물들지 않은 자기만의 목소리가 있기를, 그리고 시조의 경우 하나 덧붙여서, 정해진 음보(마디)를 자신의 가락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노래가 있기를 빈다. 올해도 이 기도에 응답해주는 작품이 적지 않았다. ‘울돌목에서’ ‘하피첩을 읽다’ ‘금빛 자오선’ ‘거미’ ‘응웬씨의 저녁’ ‘날, 세우다’ 등이 그랬다.

‘울돌목에서’와 ‘하피첩을 읽다’는 역사적 소재를 시화한 작품으로 시대의식을 반추하고 촉구하는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큰 울림과 개성이 부족해 보였다.


오늘의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금빛 자오선’의 경우, 시조의 사명을 자각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보지만 인식의 깊이나 시문장의 묘미를 얻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거미’와 ‘응웬씨의 저녁’은 노동자의 삶을 다룬 체험 위주의 작품들로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는 성공적이지만 이 시조를 쓴 시인들의 상상력의 깊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 선자들은 ‘날, 세우다’를 당선작으로 정하는 데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을 노래하되, 고된 삶의 값싼 비애나 연민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는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건강한 희망을 보여주었다.

 

‘눈초리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아침을 자르’는 가위의 변용 이미지를 통해 자칫 상투적인 내용을 지루하게 끌고 가는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우리 시조의 지평을 확장시킬 미학적 도전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건강한 삶의 자세, 날카로운 시선, 그만이 지닌 감수성과 시적 화법은 이 신인을 믿는 선자들의 희망의 근거다. 대성을 빈다.

 

이근배·이우걸 시조시인 

 

 

 

[2016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백윤석

 

문장부호, 느루 찍다2

 

                                      백 윤 석

 


점 하나 못 챙긴 채 빈 공간에 갇히는 날
말없음표 끌어다가 어질머리 잠재우고
글 수렁 헤쳐 나온다,
바람 한 점 낚고 싶어


발길 잡는 행간마다 율격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 말의 지문 따옴표로 모셔다가
들레는 몇 몇 구절을
초장으로 앉혀야지


까짓것, 급할 게 뭐람 쌍무지개 뜨는 날엔
벼룻길 서성이는 달팽이도 불러들여
중장은 느림보 걸음,
쉼표 촘촘 찍어 보다


그래도 잘 익혀야지, 오기 울컥 치미는 날
뙤약볕 붉은 속내 꽉 움켜쥔 감꼭지로
밑줄 쫙! 종장 그 너머
느낌표를 찍을 터

 

 

 


[당선소감] / 꿈에서 조차 글 썼던 힘든 시간들의 보상인듯

    

 

꿈에서도 글을 썼습니다. 꿈속에서 쓴 글이 너무 좋아 잊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외우다가 다 외웠다 싶어 눈을 뜨면 캄캄 절벽 같은 앞날….

2000년부터 글을 썼으므로 햇수로 따지면 꽤 오랜 시간이지요. 신춘문예 최종심에 몇 차례 거론된 후 절필한지 5년. 늦게 떠났던 이민생활의 어려움이 다시 펜을 들게 했습니다. 작년 9월 부랴부랴 귀국해서 근 1년여를 잠을 아끼며 창작과 퇴고를 거듭했습니다. ‘이 힘들고 고된 길을 왜 내가 사서 가려 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을 사리물고 버텨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시련 뒤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온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행복합니다. 힘겨웠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준 제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 시조의 눈을 뜨게 해주신 윤금초 교수님, 한분순 선생님, 같이 공부한 열린시조학회 회원들, 그리고 배우식 회장님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부모의 이민에도 구김살 없이 훌륭하게 자라준 아들 세진과 딸 유진이와 이 영광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가 걸음마의 시작입니다. 방심하지 않고 치열하게 우리의 가락을 노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61년 서울 출생·건국대 경영학과 졸업
●중앙시조백일장 4회 입상
●현재 (주)예인건설산업 근무

 

 


[심사평-박기섭]‘느루 찍은’ 문장부호, 행간의 변화 이끌어
 

 

새해 벽두, 우리는 신생의 불씨를 안고 완고한 기성의 벽을 허무는 한 편의 득의작을 기대한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역사와 자연, 인간과 생명에 대한 다양한 성찰과 인식의 층위를 보여주었다. 정독 끝에 ‘다산, 화성에 오르다’(송태준), ‘김 발장을 뜨며’(김승재), ‘막그릇을 위한 안단테’(송정자), ‘구형왕릉’(임채주), ‘문장부호, 느루 찍다’(백윤석) 등을 가려냈다.

 

그 중에서 올해의 당선작은 ‘문장부호, 느루 찍다’다. 제목부터가 현대시조의 ‘현대성’을 강하게 부각하는 이 작품은 메타시의 성격이 짙다.

 

시조 3장의 속성을 적절한 비유와 적확한 표현으로 풀어내고 있다. 말없음표·따옴표·쉼표·느낌표 같은 문장부호를 제목 그대로 느루 찍음으로써 행간의 변화를 이끈다.

 

네 수의 결구를 각기 다르게 처리한 데서 보듯, 일상에 만연한 감성의 상투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창조의지가 충일하다.

이는 신춘문예에서 기대하는 분명한 미학의 개진을 보여주는 일이다.

 

또 한 사람의 시인을 맞는 기쁨이 크다. 시조의 묵정밭을 가는 보습이 된다는 각오로 정진해 주길 바란다.

 

 

박기섭 시인

 

 

 

[2016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김연희

 

봄눈

 

                김 연 희

 


사뭇, 
 
그리운 이는 
 
사뭇 그리운 채로
 
 
뚫린 허공에 낮달이라 걸어두고
 
 
홀로 핀 매화 가지에

 

 

 

분 

 

눈이 오네

 

 

 

[2016 신춘문예-시조 당선 소감 김연희] "초심으로 '詩中有畵 畵中有詩' 길 찾아갈 것"


어두운 벽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달력을 못 박아 두고 싶은 12월!
마음 졸이던 몇 날이 초조히 흐르다 날아든 당선 소식에 가슴 벅차오르는 기쁨과 그리고, 이내 밀려드는 중압감에 시조공부와 함께 시작된 박물관 산책길에 들어섭니다. 마지막 휴가 나오는 날 기쁜 소식을 안고 온 작은 아이와 기다리던 첫눈이 축복하듯 반겨주네요!
서예문인화 전공강의 시간마다 모암 윤양희 교수님께서 좋은 시를 선별하여 소개해 주시던 한편 한편들이 저를 시조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그림을 그린 뒤 畵題를 쓰기 위해 시집과 한시를 찾아 읽으며 나의 그림에 내가 지은 시와 글씨와 전각으로 詩 書 畵 刻을 함께 이루고 싶다는 저의 수줍은 바람에 언제나 한결 같이 멘토가 되어주신 모암 선생님께 머리 조아려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지를 날마다 깨닫는 일입니다. 첫 마음을 잊지 않고, 따뜻한 눈길과 느린 걸음으로 '詩中有畵, 畵中有詩'의 길을 찾아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올려주신 심사위원님과 부산일보사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고, 많은 날들을 함께 해 온 또 함께 걸어 갈 문우들과 어려울 때마다 아낌없이 마음을 얹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축하를 보내 온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일에 빠져 소홀했던 가족들과 성탄의 달에 감사와 기쁨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김연희/1959년 강원도 태백 출생. 계명대 서예학과 졸. 서예문인화작가 겸 방과후학교 서예강사

 

 

 

 

 

[2016 신춘문예-시·시조 심사평] '큐브'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참신한 표현 돋보여 '봄눈' 가락의 묘미, 회화성,연가류의 애틋함 조화

 


올해 접수된 시작품은 2천 편에 가까웠다.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많게 투고됐다. 시의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긴 하나 다르게 보면 올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 싶으리만큼 힘들고 스산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당수의 시가 생활고에 젖은 내용이거나, 늙음과 관련된 쓸쓸한 감정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두운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음을 밝힌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주름의 집', '움파', '물의 건축설계도', '자연사박물관', '큐브' 등이다. 먼저 '주름의 집'은 삶의 쓸쓸함을 거미의 집에 빗대어 탁월하게 형상화한 점은 돋보였으나 삶의 문제를 너무 탐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제기되었다. '움파'는 파의 움이 싹트는 자연적 현상의 의미를 잘 살려내었으나 표현의 신기성에 머물고 만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물의 건축설계도'는 삶의 외로움을 풍부한 감성과 사물의 참신한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시대적 문제의식이 빈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은 뼈 이미지의 특성을 통해 삶의 쓸쓸한 이면을 독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이 계속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붙잡았으나 너무 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점이 신춘작품으로 뽑기에 주저케 하였다.

 

이에 비해 '큐브'는 작품 전체가 우리시대의 문제의식을 참신한 발상과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고, 무엇보다 투고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전망에 대한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제기되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큐브'를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당선자의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단의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란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듯 한 편 한 편 작품을 읽어나갔다. 소재가 새로워졌다는 점,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가 거의 없다는 점, 제목이 구어체로 달려 있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우리 생활과 가까운 노래라서 시조의 현실의식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 등이 선자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특별한 개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서정시로서 시조를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벌초' '어머니의 틀니' '푸성귀 음표 피어나다' '가을 한토막' 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당선작으로 밀기엔 조금씩 약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예스럽다거나 참신성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상이 너무 평이하고 제목과 내용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 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시인의 안목과 능력은 우리 시조시단의 한 이채가 되리라 확신하며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오정환·이우걸·김경복

 

 

 

 

[2016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고혜영

 

 

 

 

          

역광의 길

 

※소감·심사평은 2016년 1월 1일자, 당선작은 1월 4일자부터 게재됩니다.

 

 


[시조 부문 당선소감]아이 위한 치유로 시작한 글쓰기 덕분

 


30여년 봉직했던 직장 퇴임 후, 계약직 첫 출근 날, 신문사가 당선소식을 알려왔다. 막내 아이의 독서 치유로 시작된 것이 글쓰기 치유로 이어지면서 우리 아이는 어느새 꽃과 별과 달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어눌한 표현들이지만 아이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만한 보석들이다. 나에게 글을 쓰게 한 것은 바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승일이의 덕이었다. 

아이의 눈높이로 단어를 이어가며, 단어 하나하나에 가락을 입혔다. 그렇게 시조는 내게로 왔고, 글쓰기야말로 가족에게는 슬픔을 이기는 약이었다.

직장, 사회활동, 가족 및 불편한 아이의 수발 등의 그 와중에 끼어든 글쓰기가 어느새 나의 중심에 자리 잡고 말았다. 시조라고 해서 과거형 노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의 한 형태라 배웠다. 이번 당선작 '역광의 길'은 순전히 일요일 아침 친정인 성산포 신양리로 향하는 동부산업도로가 선사한 초딩 수준의 가을 수채화인 셈이다. 미흡한 제 글로 문단 말석에 세워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우선 감사드린다.

시조가 젊어져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시조쓰기에 골몰하는 우리 '젊은시조 문학회' 회원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기억의 창고에서 아직도 유년의 감성을 꺼내 쓸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 준 나의 고향 신양리 바다와 올레길, 동네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심을 품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꼭 껴안아드려야겠다. 공직생활을 은퇴하고 멀리 캄보디아에서 공직의 경험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남편께 사랑한다 전한다. 


▶약력 ▷1958년 제주 성산읍 신양 출생 ▷탐라대학교(현 국제대학교) 사회복지(석사) 졸 ▷전 NH농협은행 지점장 ▷젊은 시조문학회 회원.

 

 

 

[시조 심사평]'역광' 속의 의미 찾기

 


2016 한라일보 신춘문예가 사고를 쳤다. 지금까지 시와 소설만 공모해 오던 낯익은 풍경 대신, 시조부문을 신설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한라일보가 신춘문예를 시행한지 사반세기 만의 일이다. 사실 신춘문예를 시행하는 전국의 거의 모든 일간지들이 그렇듯이 시, 소설과 더불어 시조를 공모하는 것이 대세다. 현대시조의 역사적, 문화적, 문학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을 빌어 언급해야 하겠지만, 한라일보의 변화가 한국시조계에 던지는 희망은 크다.
 
그만큼 큰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읽었다. 공모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응모작의 숫자도 많았고, 작품의 질적 수준도 오랜 기다림에 값하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이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작품을 가리는 것은 결코 녹록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고심 끝에 '개밥바라기별'(조우리) '어느 아침'(장영심) '역광의 길'(고혜영) 등 세 편을 최종적으로 남겨두었다. 어느 작품을 선택해도 개성적 목소리로 시조에 현대적인 새 옷을 입혀줄 신인이 될 것이란 기대를 걸어도 좋을 작품들이었다.

'개밥바리기별'은 신선하고 패기는 있었으나, 비유를 통한 참신한 이미지의 생성이 아쉬웠고,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아침'은 물질로 쏠리는 현대인들의 심리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지만, 역시 시적 이미지 형성이 아쉽고, 신선미가 부족했다.

결국 '역광의 길'을 당선작으로 민다. 이 작품은 가을 숲의 나뭇가지들처럼 비움의 미학을 통해서 고단한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떠나갈 무렵 해서 제 속내 다 드러낸 길'에서 '빨간색 화살표 하나가 역광 속에 보인다'는 표현은 압권으로 시 전체에 탄력과 긴장감을 준다. 어쩌면 그 표현대로 시인의 길, 특히 신인의 길은 역광 속의 의미 찾기일 지도 모른다.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1호 당선자로서의 기대에 값해 주기를 바란다.


시인 오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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