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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하늘이 영화 '동주'에서 삭발 투혼을 보였다. 사진은 '동주' 스틸컷. |
“두 사람이 어떻게 어둔 시대를 이겨냈고 그 시가 어떻게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영화로 담고 싶었다. 그리고 비명에 간 그들의 청춘과 그 시대를 위로하고 싶었다”는 게 이 감독의 의도이니 내가 어쩌랴.
영화엔 13편의 시가 나온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이란? 우리 천손민족에겐 별이란 하나의 초월 의지이며 온 곳으로 돌아갈 곳이다.
'별 헤는 밤'과 '서시' 가 인상적이다. 적진의 형무소 창에서 내다보는 밤하늘엔 초롱초롱한 별들만 가득하다.
형무소에서 알 수없는 약물주사를 맞고 객혈하면서 죽어갈 때 읊는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서시'는 그렇게 감정선을 절정으로 밀어 올린다. 이 영화의 전편을 흐르는 기조는 '부끄러움'이다. 어느 시대이건 부끄러움을 알고 사는 이는 덜 부끄러운 것인 만큼 지금 기득권 세대들에겐 부끄러움을, 젊은 세대들에겐 전쟁이나 식민의 상황을 그저 관념적으로만 여길 뿐 구체적 감각을 인지하는지를 거듭 묻고 있는 듯하다.
영화를 본 후 내 삶의 의미가 겹쳐진다. 주권 없는 대한 암흑기를 당시 지식인들이 빠져 나가야 하는 어둠이듯이 나는 이 자본의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좌절감만 엄습해서 나를 당혹하게 하고 아릿한 뒷맛을 만든다.
시의 정서만이 나를 후려치는 게 아니라 시대상의 아픔이 사정없이 나를 후려치는 채찍이다. 요즘 말하는 참여문학의 개념이 아닌 문학의 본질이자 시대적 아픔을 녹여낸 문학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그것이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 문학은 대중들 앞에서 큰소리로 선동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들의 밑가슴에서부터 공감을 갖게 해서 스스로 뒤에서 밀고가는 저력이 아닐까 한다. 소위말해서 '정서적 공감'이랄까.
당시 몽규에게는 일제라는 구체적인 싸워야 할 적이 있었다. 동주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거대한 힘과 자기 정체성의 괴리에서 오는 인간적인 부끄러움을 대중들의 정서로 확대하고 있다.
이 시대 알수 없는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현재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나의 정체성마저 놓쳐버린 이 시대의 정신적인 고아가 되어 버렸다는 자각이다.
무엇과 싸워야 하고 어떤 정체성을 갖고 대항해야 하는지? 현재 이 어려운 세상과 싸우는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이는 진정 없는가? 한마디로 '방황'이란 대응으로 ‘땡강’을 부려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