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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과 별과 시 <발문>
강 처중 (당시 경향신문 기자)
동주(東柱)는 별로 발주변도 사귐성도 없었지만 그의 방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모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동주있나" 하고 찾으면하던 일을 모두 내던지고 빙그레 웃으며 반가히 마조 앉아주는 것이 었다.
"동주있나 좀 걸어보자구"이렇게 산책을 청하면 싫다는 적이 없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산이든 들이든 강까이든 아모데를 끌어도 선듯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말없이 묵묵히 걸었고 항상 그의 얼굴은 침을 하였다.
가끔 그러다가 외마디 소리! 그것은 언제나 친구들의 마음을 알지 못할 울분을 주었다.
"동주 돈 좀있나" 옹색한 친구들은 곳잘 그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노렸다.
그는 있고서 안주는 법이 없었고 없으면 대신 외투든 시계든 내 주고야 마음을 놓였다.
그래서 그의 외투나 시계는 친구들의 손을 거쳐서 전당포에 나들이를 부지런이 하였다.
이런 동주도 친구들에게 굳이 거부하는 일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동주 자네 시<詩> 여기를 좀 고치면 어떤가" 하는데 대<對>하여 그는 응하여 주는 때가 없었다.
조용히 열흘이고 한달이고 두달이고 곰곰이 생각하여서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킨다.
그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그 시를 보이지 않는다.
이미 보여 주었을 때는 흠이 없는 하나의 옥이다.
지나치게 그는 겸허온순하였지만 자기의 시만은 양보하지 안했다.
또 하나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을 그 여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고백하지 안했다.
그 여성도 모르고 츤구들도 모르는 사랑을 회답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을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체 고민도 하면서 희망도 하면서 ...., 쑥스럽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그러나 이제와 고쳐 생각하니 이것은 하나의 여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루어 지지 않을 '또 다른 고향'에 대한 꿈이 아니었던가. 어쨌던 친구들에게 이것만은 힘써 감추었다.
그는 간도에서 나고 일본 복강에서 죽었다.
이역에서 나고 갔건만 무던히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좋아 하더니ㅡ 그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려니와 그의 아잇적 동무 송 몽규(宋夢奎)와 함께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2년형을 받아 감옥으로 들어간체 마침내 모진 악형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은 몽규와 동주가 연전(延專)을 마치고 경도에 가서 대학생 노릇하던 중도의 일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나 마지막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운명했지요.
짐작컨데 그 소리가 마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 듯 느껴지더군요."
이 말은 동주의 최후를 감시하던 일본인 간수가 그의 시체를 찾으러 갔던 그 유족에게 전하여 준 말이다.
그 비통한 외마디 소리! 일본 간수야 그 뜻을 알리만두 저도 소리에 느낀 바 있었나 보다.
동주 감옥에서 외마디 소리로서 아조 가버리니 그 나이 스물아홉 바로 해방되던 해다.
몽규도 그 며칠 뒤 따라 옥사하니 그도 재사(才士)였느니라.
그들의 유골은 지금 간도에서 길이 잠들었고 이제 그 친구들의 손을 빌어 동주의 시는 한 책이 되어 길이 세상에
전하여 지려 한다.
불러도 대답이 없을 동주(東柱) 몽규(夢奎)었만 헛되나마 다시 부르고 싶은 동주(東柱) 몽규(夢奎)!
(강 처중<姜處重>)
출처; 윤동주 평전 (송우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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