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세탁기가 없던 시절, 아이가 요에 오줌을 싸면 어떻게 했을까. 요를 말리려면 빨랫줄에 널고 바지랑대로 빨랫줄이 처지지 않게 튼튼히 받쳐놓아야 했다.
윤동주 시인은 스무살 전후에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동시도 함께 썼다. 간도 용정에서 발간되던 ‘가톨릭 소년’지에 1936, 37년에 여러 차례 동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오줌싸개 지도’도 그 중의 한 편이다. 그는 만주 명동촌에서 태어나 1938년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주로 만주에서 성장하고 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돈 벌러 간 아빠 계신/만주 땅”이라는 표현을 보면 화자인 아이의 자리는 만주가 아니다. 만주에 살았지만 시인의 의식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은 고국 땅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동주를 보고 울었습니다. 몽규를 보고 울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서 입술을 다문 채 소리없이 눈물만 연신 흘렸습니다. 영화가 끝났는데 가슴이 저려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울었습니다.” 동시를 쓰는 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삼일절에 나도 가족과 함께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를 보았다. 시를 쓴 해맑은 청년 동주와 그 시대 젊은이들이 헤쳐간 삶이 흑백 화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윤동주의 ‘서시’를 다 외지 못했다고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그 구절이 너무 와 닿기 때문에. 막 출간된 김응교의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와 지난해 나온 안소영의 ‘시인 동주’를 펼쳐도 윤동주의 시와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