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현상의 시학적 탐색-「날(生)이미지」로
1991년에 출간된 『사랑의 감옥』과 1995년에 출간된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에서 시인은 다시 「문학」으로 되돌아온다. 다시 문학적 언어의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다.
오규원의 반어적 어법이나 광고 패러디시는 시의 의미공간을 보다 확산시키고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와 정치적인 억압을 날카롭게 풍자,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당대적인 의미를 얻었지만, 고도로 다원화되는 혹은 변화되는 현실 사회에 광고형식의 기능적인 언어로는 더이상 맞설수 없다는 한계를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언어화된 현실의 힘을 빌려 세계의 허구성과 절대적 의미를 해체하고자 하는 중기의 문명비판시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비전을 확보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광고라는 기능화된 형태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에게 그것은 비슷한 방식의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그로 하여금 다시 「언어」의 문제로 돌아가게 만들었을 것이다.
시쓰기와 시적 방법론에 유난히 예민했던 오규원은 파편화된 형태로 파편화된 사회에서의 시쓰기란 더 이상 적절한 방법이 아님을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도구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언어를 「해석과 환원」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던 오규원의 시들은 이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자신의 관념으로 해석해 오면서, 우리의 삶에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실재를 창조하는 기제가 다름아닌 은유의 원리라고 파악했다.
그러나 은유적인 해석은 일종의 명명(命名)행위이며 어느 정도 정형화된 사고의 틀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세계를 왜곡할 수 있는 모순과 위험을 내포한다. 다시 말해 삶의 다양한 양상을 획일적으로 재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를 왜곡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의 세목을 개념화시켜 해석하고 나열해오던 기존의 은유적인 방법론을 반성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시선과 현상을 중시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러나 그 질문과 반성은 초기시에서 던져지던 관념적인 형태, 혹은 중기시에서 던져지던 도구화된 형태의 것이 아니라 보다 실체화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한 남자가 가운데가 접힌 식단표 사이로
머리를 박는다 한 여자가 즐거운 얼굴로
남자의 세계를 건너다본다 건너다보는
세계는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다면 나는
이 순간을 위해 믿고 싶다 그 사이 벽을 타고
기어내려 오던 ··고고한 가락은 힘에
부치는지 여자의 목을 잡고 늘어진다 오오
나는 당신께 사랑을 원하지 않았어요-
……
남자는 다시 식단표 사이로 고개를 처박고
여자는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톡톡친다
세상이 저렇게 가볍게 톡톡 울린다고 누가 말했다면
이 순간을 위해 내가 믿지 못할 이유를 누구에게 물어보랴?
-「세계는 톡톡 울리기도 한다」에서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즐겁게 연상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식탁을 가볍게 「톡톡」치는 여자의 이미지는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마주 앉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투명한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 두 시집에는 유난히 의성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톡톡」이나 「툭툭」 「척척」 「쭐쭐」이라는 의성어마저 일종의 부피감을 느끼게 한다. 일상의 삶을 가볍게 흐르도록 만드는 시인의 감수성은 「톡톡」이라는 의성어에까지도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사물과 현상 그 자체를 보다 투명하게 인식하려는 태도와 깊이 맞물려 있으며, 시인은 이런 시선으로 아름답고 선명한, 그러면서 유의미한 삶의 한 장면을 인식의 선반위에 진열하고 있다.
뱃속의 아이야 너를 뱃속에 넣고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 엄마는
털옷을 고르고 있단다 털옷도 사랑만큼
다르단다 바깥 세상은 곧 겨울이란다.
……
오 그래 그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리고 가려 한단다 그렇게 한동안
견뎌야 하는 곳에 엄마가 산단다
언젠가는 털옷조차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뱃속의 아이야 너도 태어나서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부드러운 바람이나 햇볕 하나로 너도 울며 세상의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되 리라만 -「사랑의 감옥」에서
시인은 길 위에 펼쳐진 소박한 삶에서 의미의 공간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난장의 리어카에 붙어서서」엄마는 뱃속의 아이에게 「어찌이 추운 세상을 다 막고 가릴 수 있겠느냐. 구멍 숭숭한 사랑의 감옥으로 너를 데려 가」겠다고 말한다.
추위와 가난, 고통으로 얼룩진 이 척박한 세상은 견고한 감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가 고르는 「구멍 숭숭한 털옷 안의 집」이야말로 삶의 고통과 갈등을 무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공간인 것이다. 그곳에는 아무리 갇혀 있어도 힘들거나 외롭거나 고통스럽지 않기에 뱃속의 아이는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구멍 숭숭 뚫린 남루한 털옷,- 「사랑의 감옥」은 삶의 긍정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해방의 이미지 공간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여성의 모성애를 세계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변주시킨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삶의 긍정과 희망이야말로 감옥같은 현실을 넉넉히 감싸안을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시인의 전언을 읽어낼 수 있다.
♀♀ 중간생략 ♀♀
버스 정거장 푯말이 하나 있다 쇠기둥과 나란히 선 한 사내의 얼굴도 팻말처럼 동그랗 다 동그랗고 차다 차들이 다니는 길 안쪽 경흥공업 주식회사 건물은 사철 푸른 나무 울타 리가 꽉꽉 지키고 있다. 스포츠형 머리의 학생이 휘파람을 불며 사철나무 아랫도리를 구 둣발로 내지르고 있다. --「외곽」에서
시인은 풍경의 한 장면과 사물을 단편적이면서도 기계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앞의 작품들에서는 객관적인 익명의 정조만이 감돌뿐 시인의 존재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이제 관념을 제거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언어를 그는 「대체관념」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재해석이나 재구성이 아닌 의미가 정해져 있는 형태가 아닌 다른 어떤 것. 명명하거나 해석되기 이전의 알몸의 사물과 현상. 이것을 시인은 「날(生)이미지」라고 밝히고 있다.
시인은 명명하고 해석할때 중심축으로 쓰는 은유적 수사법을 버리고 사물을 묘사할때 쓰는 환유적 수사법을 중심축에 두면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체의 관념을 거부하고 시를 쓰겠다는 이유는 언어가 이데올로기에서 파생된 의미로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의미는 존재의 진실을 은폐하며 사물과 세계를 훼손시키고 파편화시킨다.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독재라는 정치적 메타포와 같다. 여기서 시인과 독재가는 근본적으로 만난다」(「네 개의 노트」)고 한 산문에서 이미 시인 자신이 밝혔듯이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 허구성을 파기하는 방법은 자신과 세계를 구속하지 않는 살아있는 현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언어로부터 혹은 인간의 일정한 시각으로부터 의미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획일적인 의미의 공간을 지워나가고 언어에 자유를 불어넣을 것. 그것이 최근의 오규원이 보여주고 있는 작업이다.
5. 나아가면서:언어가 창조한 「해방의 이미지 공간」
우리는 언어의 관념성에서 출발한 오규원이 그의 시작 과정에서 어떻게 그 관념성을 반성하고 물신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갔으며 또 끊임없는 방법론의 갱신에 따라 현상의 탐구로 나아가게 됐는지를 살펴보았다.
시종일관 「언어」라는 문제를 중심축에 두고 70·80년대 자본주의의 기능화된 사유구조와 파편화된 현실에 맞서는 대결의지를 보여주던 시인이 90년대의 변모를 거쳐 최근 시집에서 관념과 의미를 배제한 「날(生)이미지」를 운용(運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날(生)이미지」는 시인의 언급을 빌리자면 「정해져 있는 의미가 아니라 활동하는 이미지」일 뿐이므로 세계를 함부로 구속하거나 왜곡하거나 파편화시키지 않는다.
사물이나 현상 그 자체가 가지는 한 순간의 이미지를 환유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세계의 현상을 획일적인 관념의 틀속에 가두지 않으려는 시인의 노력은 초기부터 탐구해왔던 죽은 관념이나 죽은 언어와의 싸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의 껍질을 벗겨나가는 것.
사물이나 현상을 내쪽으로 끌어당겨 해석하기보다는 시인 스스로 현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 보이고 수용하는 것. 그리고 의미의 세계보다는 실체의 세계를 지향하는것. 이것이 오규원이 도달한 시적 여정의 한 결론이다.
그 살아있는 의식속에는 시인 스스로 「톡톡」치면서 열어보인 우주의 공간이 꿈틀거리는 삶이 스며들어 있다. 나도 그 「톡톡」두들긴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언어가 창조한 시원(始原)의 공간속에서 새롭게 열린 사물과 세계를 꿈꾸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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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빨래 / 정일근
빨래
정 일 근
다시 시작해야겠다
찌든 걸레 같은 삶을 헹구고
부는 바람 앞에 하얗게 펄럭이고 싶다
한 줌 오욕의 물기마저
다 말리고 싶다
남루여
산 번지 빈 마당 가득 눈부신
깨끗한 남루여
정일근 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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