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주제
함동선
주제는 작가가 그려 내고자 하는 제재, 곧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상 내용을 말한다. 이것을 독일어로 테마thema라 하는데 시의 중심 사상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제는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무엇인가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엇인가 하는 주제와 이 주제의 재료가 되는 제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렇다면 제재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제재란 예술 작품, 학술 연구와 같은 것의 주제가 되는 재료로, 제재=소재+주제라는 등식으로, 제재는 주제의 개념을 포함한다. 따라서 소재가 없으면 주제도 현실화할 수 없다는 변증법적인 상호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주제와 동기의 관계는 어떤가? 동기에 대해선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지만, 동기는 주제와 소재의 양쪽에 각각 보완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제가 소재를 통해 파악될 수도 있고, 소재가 주제를 유인하는 경우도 있다. 양쪽은 각기 한 쪽의 원인이고, 작품의 동기가 된다. 주제가 무엇을 쓸 것인가 할 때의 그 무엇이라면, 동기는 왜 쓰는가 할 때의 왜에 해당된다. 이것을 정리하면 제재는 소재와 주제로 성립된 주제의 개념이고, 동기는 주제와 소재에 각각 의존해서 시를 쓰게 하는 사상적 충격 또는 사상적 감동을 뜻한다. 한 편의 시는 소재(제재) → 동기 → 주제로 구성된다.
한 편의 시 작품은 그 시 작품을 쓰게 하는 사상적 동기 즉 소재 → 제재에서 감동에 직결되는 정신적 반응으로 시작된다. 이 때 시인은 그 제재에서 받은 자극과 반응의 충격으로 왜 쓰는가 하는 왜에서 점차로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표현 욕구에 부딪치게 된다. 이 무엇이 바로 한 편의 시의 중심이 되는 작자의 사상이다. 시의 주제는 동기의 구체화를 말한다. 동기의 구체화란 무엇인가? 어떤 제재(소재)에서 받은 감동 있는 경험 즉 가슴에 후끈 느껴지는 마음의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 마음의 내용은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생관 세계관과 맥을 같이 한다. 김동리金東里는 그의 ꡔ소설작법ꡕ에서 주제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생의 의미’라고 하였다.
주제는 시를 쓰는 태도와 연관된다. 그것은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의 주제는 첫째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주제 둘째 이미지를 추구하는 시에서 정확․정밀․확실한 이미지의 주제, 또는 사물 자체를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거나 표현미에 치중하는 주제, 셋째 무의식을 추구하는 시에서 이성 이전의 무질서한 의식의 단편들을 자동 기술적으로 표출한 주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주제는 다음과 같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유치완 「생명의 서」의 전문
시 「생명의 서」(동아일보 1938.10.19)는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이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권속을 거느리고 북만주로 가서 농장을 관리하는 등 방랑하던 때 쓴 작품이다. 시 「바위」, 「깃발」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 시의 제목으로 된 시집 ꡔ생명의 서ꡕ에 수록된 시 작품들은 거의 망국의 한을 달래며 흥안령 가까운 북만주의 벌판에서 쓴 작품들이다. 그의 자작시 해설 ꡔ구름에 그린다ꡕ에서 「여기에는 눈도 닿지 않는 광막한 광야뿐입니다. 그리고 무작정 험악한 세월이 있을 뿐입니다. 그 가운데서 해가 아침이면 땅 끝에서 나타나 하늘 한복판에 진종일 걸려 지나가는 마지막 피보다 붉게 물들어 저 쪽 땅 끝으로 떨어져 까무라칠 뿐, 다시 버러지같은 애걸 아니면 될 대로 되라는 자기自棄의 태세뿐인 것입니다」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의 시 의식에는 언제나 허무가 응시하고 있었다고 그는 자작시 해설에서 술회하고 있다.
이 허무 의식은 이 시의 제재가 되고, 이 제재에서 생명에 대한 회의 그것이 동기가 된다. ‘나의 지식’은 생명의 본질을 모르고, ‘삶의 애증’은 생의 여러 가지 체험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고 몸부림친다. 지식과 체험으로도 생명의 본질을 파악할 수 없다는 생명의 밑바닥에는 허무가 깔리고,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생명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생명 추구의 몸부림’이 이 시의 주제가 된다.
한편 이 시에서의 ‘나’는, 작자인 청마뿐만 아니라 이 시를 읽는 독자도 이 시 속에 있는 ‘나’임을 깨닫게 된다. 이 시 속에 있는 ‘나’는 많은 사람 속에 있는 ‘나’인 것이다. 여기에 이 시가 지니고 있는 보편성이 있다. 때문에 나 자신 속에, 이 시 속에 있는 ‘나’가 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시를 읽기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 오던 ‘나’이었지만, 이 시를 읽고 비로소 이 시 속의 ‘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의 내부에서 ‘지식의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유형의 주제는 의미를 추구하는 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둘째,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시는, 영국의 비평가 및 철학자인 흄T. E. Hulme과 미국의 시인 파운드E. Pound가 이끈 신시 운동이다. 세계 제1차대전에서 전사한 흄은 낭만주의 문학의 주관주의와 모호성을 비판하고 시에 있어서 건조한 견고성dry hardness을 강조하였다. 파운드는 간결하고 견실한 언어, 리듬과 의미의 일치, 틀에 박힌 문구나 관용적 표현의 거부, 형용사는 장식이 아니고 바로 내용 등이라는 이미지 시론을 주장하면서 객관성과 정확성을 강조하였다.
군중들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이 얼굴들
축축한 검은 가지의 꽃잎들
「지하철 정거장에서」
파리의 정거장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는 군중들 속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얼굴들의 인상을 어둡고 축축한 지하철 정거장에서 피어난 “꽃잎”에 비유한 이미지를 그렸다. 이 때 “꽃잎”은 시인이 직접 느낀 정서의 등가물로써 엘리어트의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과 비슷한 것이다. 이 시를 두고 파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년 전에 나는 파리의 라꽁꼬르드에서 지하철에서 내려 갑자기 한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얼굴, 그리고 한 아름다운 어린 아이의 얼굴,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운 부인을 보고서, 그 날 종일 그 인상 받은 것을 나타낼 말을 찾고자 애썼지만, 그 돌연한 감정만큼 가치있고 아름다운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30행의 시 한 편을 썼지만 그것을 찢어 버린 것은 그것이 소위 “강열도强烈度 제2위第二位”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후에 그 반 정도의 시를 썼고, 7년 후에 위와 같은 시구를 지었다.
이와 같이 파운드는 한 순간의 인상을 아주 선명하게 나타내면서, 시란 이미지로써 표현되었을 때 그것은 좋은 산문처럼 간결하고 정확해진다고 하였다. 그는 객관성과 정확성을 무엇보다 강조한 시인이다.
이러한 경향은 정지용鄭芝溶, 김기림金起林, 김광균金光均 등의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광균의 시 「뎃상」을 살펴본다.
1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우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우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 우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울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김광균 「뎃상」의 전문
김광균의 시 「뎃상」의 주제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시골 풍경의 묘사이다. 한 폭의 그림처럼 노을, 전신주, 고가선, 구름, 깃발, 나무, 들길 등은 아무런 선입관 없이 객관적으로 사물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때 시적 화자의 감정은 절제되어 있고, 시적 자아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향료, 보랏빛, 색지, 한 다발의 장미 등은 시각적 이미지의 명암을 선명하게 하기 위해 끌어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외로운 들길’의 경우 화자의 감정이 드러나 있고, 은유를 통해 서술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점은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이 영미英美의 이미지즘 영향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전봉건全鳳健의 시 「피아노」를 살펴보자.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전봉건, 「피아노」의 전문
이 시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이미지의 표출이 독특하다. 피아노를 두드리는 손과 그 리듬에서 ‘열 마리씩/스무 마리씩/신선한 물고기’를 연상하고, 그 생선에서 파도를 연상하고, 그 파도에서 다시 생선을 잡는 ‘칼날’을 연상하는 이미지는 새롭고도 이질적이다. 결국 이 시에서는 이질적이고 진부한 면을 벗고 새로운 대상을 보는 주제를 발견한다. 그 주제는 표현미다. 이러한 시의 내면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일 이러한 시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현대시의 흐름에는 의미를 찾는 시도 있지만, 위의 시와 같이 의미가 없는 표현미에 정성을 쏟는 시도 있다. 새로운 각도에서 대상을 발견하는 주제는 감각을 나타내는 시, 다시 말하면 의미를 포함하지 않은 사물에 대한 감각미를 나타낸다. 형태미 또는 형식미는 표현미의 다른 말임을 일러 둔다.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 문덕수, 「꽃과 언어」의 전문
문덕수의 이 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새로운 수법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은 이미지와 이미지로 결합된 이 시는, 무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초현실주의 시의 한 흐름이기도 하다. 무의식의 세계관 이성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경험의 단편적인 축적 그대로의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식의 세계란 경험의 단편적인 축적이 이성에 의한 정리 과정을 거쳐, 어떤 개념이나 관념으로 형성되는 심리를 가리킨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란 이와는 딴 심리의 세계이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우리의 경험이 우리 안에 축적 방치되어 있어, 오히려 이성의 세계보다 더 인간의 영감이나 욕망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 심층부의 심리이다. 이러한 단편적인 경험들이지만 일단은 심리의 내부를 통과하였음으로 이미지라 부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이미지와 이미지를 떠오르는 대로 연상 작용에 의해 쓴 시는, 가장 순수하고 새로운 것이어서 우리들에게 쾌적한 감각의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이성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시는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언어’가 ‘꽃잎’에 닿자 한 마리의 ‘나비’가 되고 또 ‘꿀벌’이 된다는 이미지의 전개는 쾌적한 감각의 공감을 일으키므로 이 시의 주제는 「새로운 생명력의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적 진실은 언어로 창조한 것으로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새로운 것이고 가장 순수한 감각임을 알 수 있다.
시의 동기가 때로 주제와 같은 경우가 있다. 개화기 시가, 사랑의 시, 그리고 정치적 주제, 사회적 주제로 쓴 시가 이 범주에 든다.
시의 주제는 어떤 소재에서 느낀 ‘인생의 의미’를 어떤 동기 즉 왜 쓰는가 하는 태도에 따라 소재의 배치와 구성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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