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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과 詩 그리고 갱신의 길 / ...
2016년 05월 16일 19시 57분  조회:4116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과 시 그리고 갱신의 길
          - 우리 시단의 류파와 나의 경우
       
                                          * 김동진

1985년, 우리 북방시단의 중견이며 또 수필가이고 평론가인 한춘씨가 중국조선족시단의 침체상태를 보고만 있을수 없어 선두에 나서서 모더니즘시를 시도하면서 “시가관념갱신”을 호소하였다. 이 호소는 구체적으로 “몽롱시로 대표되는 서방모더니즘기법”의 도입을 시도하는것으로서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전제로 하여 표현기법에서의 돌파를 주장한것이다. 그로 하여 우리 시단은 고요한 호수에 돌을 던진듯이 파문이 일면서 술렁거리기 시작하였고 잇따라 “시가관념갱신”의 열띤 쟁론이 시작되였다.

당시 나는 서방문예리론을 먼저 접촉한 사람들의 발언에서 나오는 “정신분석학”이요, “의식의 흐름”이요, “흑색유머”요, “모더니즘”이요, “이미지”요, “폭력조합”이요 하는 새로운 단어를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만큼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는 면에서 나의 사유는 경화상태였고 그리하여 시탐구모임에 가서는 뒤구석에 앉아있다가 돌아오는, 할 말이 없는 말석시인이였다.

개혁개방은 문학이 더는 정치에 종속되지 않는 시대를 열어주었고 문인들에게는 전례없이 넓은 창작자유가 주어졌다. “3돌출”의 틀이 무너지고 “시가관념갱신”을 부르짖던 그 시기는 필자에게 있어서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뒤돌아보는 반성과 번뇌의 시기였다.

바로 그때 할빈에 계시는 리삼월선생님께서 편지로 다음과 같은 조언을 보내주시였다.

“쟁론에 류의하기 바랍니다. 시가의 관념을 갱신해야 한다는것은 누가 어떻게 말해도 필요한것이고 또 필연적인것인데 어떻게 갱신할것인가에 분기가 있는것 같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소위 “실험시”들이 그때 적지 않게 창작되였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일러 “몽롱시”, “난해시”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급류에 휩쓸리지 못한 나는 북방의 어느 한차례 시인진맥에서 전통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시인의 하나라는 락후생명찰을 달아야 했다. 그뒤로 이거 안되겠구나 하여 “현대서방철학강요”라는 리론서를 구해 보았는데 알고보니 새로 들어온 서방문예리론과 사조는 남들이 적어서 50년전  길다면 100여년전부터 써먹은것이였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신한것이여서 우리 시인들에게는 관념갱신의 둘도 없는 “보약”이 된것이였다.

어찌했건 새로운것은 우리 시단의 활성화를 이루는 촉매제가 되기에 충분하였고 시단의 면모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준것만은 틀림이 없다. 당시 나는 그러한 “난해시”를 리해할수 없는것을(지금도 잘 리해하지 못함) 자신의 무지로 간주하였고 그렇게 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앞서가는 시우들과 평론가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었다.

평론가들의 말을 빌면 확실하게 “시가관념의 갱신은 풍성한 성취를 거두었다.” 재래식의 따분한 정형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시의 형태결구에 다양한 기법의 인입으로 우선 표현형식의 변화를 다그친것이다. 례하면 이미지시의 출현, 시어의 자유결합, 풍격의 개성화와 같은것이라 하겠다.

그런데도 늘 마음 한구석이 께름직하고 머리 한구석이 개운치 못하였다. 한것은 “시가관념갱신”이 바라는것이 진정 이런것인가, 시는 꼭 이렇게 몽롱하고 난해한 쪽으로만 발전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수 없기때문이였다.

아닌게아니라 시단에서 갱신의 성과를 놓고 중구난방으로 떠드는데 밖에서는 질책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조선족시단의 소위 “현대시(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를 놓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자다가 봉창 두두리는 소리”, “도깨비 기와장 번지는 소리”라는 질책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한것이다.

우리의 갱신은 이런 욕을 먹자고 한것은 아닌데 왜서 이런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그것도 한두사람이 소리라면 귀등으로 넘겨버릴수 있겠지만 도처에서 이런 말이 나올 때는 문제가 다른것이다. 몇몇 평론가가 아무리 좋다고 올리추어도 광범한 독자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 시는 실패작이라는것이 나의  판단이다. 

생명의 뿌리인 민족과 생활의 요람인 나라를  초월하여 과연 좋은 시를 쓸수 있단 말인가? 나는 여직껏 민족의식과 국가의식을 떠난 시인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시인이란 자고로 성스러운 이름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을 빙자하여  제멋대로 민족과 나라를 초월할수 있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력대의 노벨문학상 시부문의 작품과 작자를 살펴보아도 일부 그 특별한 기법이 인정받아 수상한 실례가 있지만 그 대부분이 모두 어느 나라에서 살았건, 어떤 기법을 썼건 모두가 자기 나라의 력사와 민족의 애환(전쟁과 평화, 사랑과 증오, 부유와 가난, 선과 악 등등)으로 인간세상과 인간심령의 깊이갈이를 한것이다. 

류파는 류파마다 선언 비슷한 자기의 주장이 있기마련이고 또 그래야 류파로 될수 있는것이며 그것이 바로 세상에 존재할수 있는 리유로 되는것이다. 하지만 자기의것만을 유일정확하다고 소리를 높이면서 모두가 자기를 따르라고 하는것은 아무래도 과분한 욕망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 “창작의 자유”가 주어진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시가관념갱신”은 마땅히 주어진 창작환경속에서 그리고 주어진 자유속에서 내용과 형식의 갱신을 꿈꾸어야 할것이며 우리 민족시의 건전하고도 아름다운 발전을 가져와야 할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기대와 어긋나 독자들이 머리가 아파나서 못보아주겠다는 시를 만들어내고있으니 이는 우리의 관념갱신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시가관념갱신”은 일조일석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기에 실험이 필요했고 모방이 필요했다. 이런 실험과 모방이 말로는 우리 민족 시문학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표현기교에만 집착하여 그 많은 알둥말둥한 새 기법을 마구 도입하는데만 급급해한 결과가 오늘의 이 모습이 아닌가싶다. 그러한 갱신은 유구한 력사속에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맥락으로 다듬어진 그윽한 민족정서와 아름다운 언어운률을 홀시 또는 무시한것은 아닌지 알아보지 않을수 없다.

시에서의 이미지화와 “낯설기”는 현재 좋은 시를 평하는 기본조건의 하나로 보아진다. 그래서 “낯설기”하기에 고심하는데 그렇다고 딱딱한 어휘배렬이거나 시어의 이상한 조합이거나 복합이미지의 창조만으로 “낯설기”가 완성되는것이 아니다. 나는 “낯설기”의 근본은 고유한 우리의 다채롭고 풍부한 언어의 새로운 발견과 여러 기법의 유기적인 결합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의 시어를 보면 어제도 오늘도 늘 쓰던 시어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시어들을 가지고 새로운 시를 만든다고 한다.

친일행위가 있어 력사의 말밥에 오르면서도 한번도 반성한적이 없다는 서정주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단의 시성으로 받들리는것은 그가 민족어의 대부이기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한국시단에서 이때까지 서정주시인만큼 우리 민족의 고유어를 아름답게 피루어낸 시인이 더는 없다는것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낯설기”도 우리 민족의 생활속에 잠재하고있는 입맛을 돋구는 언어의 끊임없는 발견이 없이는 아니될줄로 안다. 빈곤한 언어를 가지고 모방을 한들 난해를 조성하는 기법의 “낯설기”밖에 될것이 없다는 말이다.

일본은 모방의 전능대가이다. “모방하는 원숭이”로 소문난 일본의 재간은 모방하여 자기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발전한 과학기술을 리용하여 남이 크게 만든 산품을 가져다가 작게 또 작게 하여 완전한 자기만의 산품인 미니형 신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있다. 모방으로 자기의 문화와 전통을 이룩하고 세계의 주목을 받는것도 일본민족이라고 한다. 뜻인즉 모방도 재치있게 하면 자기의 창조로 된다는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이런 모방재능이 결여하다.

한국시단이 서방리론과 사조를 받아들인 현대시의 력사는 이미 백년을 꼽는다. 그러니 우물안의 개구리였던 우리보다 상당히 앞선것인데 지난해 작가이며 언어학자인 양효성씨가 한국시단을 향해 “과연 우리는 모방이라도 제대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앞서 김지하시인은 “이미지와 상징, 기호에 경도되여 사치를 부리면 안된다.”, “현재 한국시는 혼돈, 추함, 렵기, 리기 등의 요소가 지배”한다고 지적하였고 최근에는 “독자”라는 닉네임의 주인이 사이트 “문학의 창”에 “시인들에게 드리는 고언”을 올리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시를 읽으면 골치가 아픕니다. …때로는 아름답지 못한 비틀린 시어마저도 소위 ‘시어’라고 극찬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끼리 문단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문인과 민중사이를 단절시키는 성벽쌓기를 주저하지 않고있습니다. …딱딱한 서양식표현법에 물들어 아름다운 우리식표현법이 배척당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건, 현재 우리 나라 시인들의 의식전환이 있지 않고는 향후 모든 시인들은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해질것이라는 점입니다.”

“독자”는 이렇듯 안타깝게 우수한 전통을 무시하는 한국의 현대시와 시단의 병집을 꼬집으면서 시인들의 의식전환을 요구하고있다.

손꼽아보니 우리가 시가관념갱신을 하면서 살아온지도 자그마치 25년이나 된다. 하나의 인생에 25년은 결코 작은 수자가 아니다. 내가 보건대 이 25년의 관념갱신은 25년의 쟁론과 25년의 분기로 하여 현재 우리 시단은 여러 파가 있겠지만 크게 두개의 류파로 나뉘여진 상황이다. 낡은 모식에서 해탈하지 못한 극히 개별적인 시인을 제외하고 하나는 모더니즘시만이 시이고 다른것은 시가 아니라고 하는 소위 현대파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시의 우수한 전통(시어와 정서와 운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리론과 사조를 접목해야 한다는 소위 접목파이다.

누가 나에게 일부러 “당신은 어느 파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접목파라고 대답한다. 나는 고금중외의 좋은것들에서 자양을 뽑아 우리의것을 살지우는 그런 갱신만이 진정한 갱신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하면 “모더니즘”(현대주의)이요, “포스트모더니즘”(후기현대주의)이요, “아이디얼리즘”(리상주의)이요, “휴머니즘”(인문주의)이요, “센티멘털리즘”(감상주의)이요, “다다이즘”(허무주의)이요, “오토마티즘”(자동주의)이요, “이마지즘”(이미지주의)이요 하는 그 많은 “주의”(主义)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알맹이를 뽑아 그것을 영양제로 우리의 전통시를 더욱 호함지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면서 잊지 말아야 할것은 우리가 신선하다고 말하는 이런 사조나 주의들이 모두 우리가 겪어본적 없는 자본사회의 권력과 금전, 인간사회의 첨예한 모순, 갈등속에서 그 시대, 그 사회의 시인들과 철학인들이 심령의 허무와 정신의 고독에서 해탈하는 방법으로서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것이다.

이러한 갱신을 개량이라고 하면 어떨가? 비유하건대 한국의 한복과 같은 개량 말이다. 한국에서는 우리 민족 전통복장의 고유의 멋스러움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감각이 돋보이는, 간편하고 실용적인 개량한복을 만들어내였다. 개량한복은 고리타분함과 거치장스러움에서 벗어난 하나의 훌륭한 보기이다. 이는 집으로 말할 때  쓰러지는 초가집을 허물고 그 터전우에 현대의 선진적인 건축재료로 추녀 높은 우리식의 전통식 한옥―팔간기와집을 짓는것과 같은 경우이다. 우리것을 잃지 않는 현대, 우리를 위하여 복무하는 현대란 바로 이런것이다. 하긴 취미와 여건에 따라 양복을 입고 양옥을 지을수도 있겠지만 그속에 우리의 말과 글이 살아있고 우리의 노래와 춤이 살아있고 우리의 된장내음, 김치내음이 살아있다면 문제로 될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우리 시단의 갱신도 이런 개량식이 되였으면 좋겠다.

생각은 이러하지만 생각처럼 갱신은 그렇게 쉬운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전통시에 현대를 접목하려고 꾀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래서 국외의 유명시인들과 대비하면서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세가지의 치명적인 부족점이 있었다. 하나는 자연과 인간사회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 그들과는 전혀 비할수도 없이 천박한것이고 다음으로 그들과 같이 풍부한 문학수양과 종합지식, 탐구정신을 갖추지 못한것이고 그 다음으로 장악하고있는 시어가 너무나 빈약한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자질을 가지고 시인이 된것이 부끄럽다.

그래도 자존의 마음은 죽지 않아 가던 길에서 돌아설 생각은 없다. 한글자씩 배우면서라도 내나름의 견해와 주장을 가지고 갱신에 생명소모를 해야하는거다. 접목파의 최대의 약점이 시의 이미지화를 비롯한 여러가지 기법을 유용하게 활용하는면에서 선명한 돌파를 가져오지 못한것이라고 자인하면서 나는 우리 시단의 시가관념갱신의 현실을 바라보며 나의 견해와 주장을 다시한번 반복한다.

“나는 전통을 사랑한다. 그러나 전통을 한사코 고집하지는 않는다. 전통은 뿌리와 같은것이여서 계승, 발전시켜야지 전면부정하거나 말살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관념을 갱신한다고 하여 일조에 현대파로 둔갑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재간도 없거니와 현대파라고 하여 다 좋은게 아니기때문이다.

나는 접목을 시도한다. 그것만이 나의 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시의 고유한 민족성을 잃지 않으려는 아집이기도 하다.

나는 지나치게 난해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시의 안중에는 광범한 인민대중(독자)이 없다. 시가 소수인이 심심풀이하는 수수께끼거나 오락궁이 되는것은 시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관(观)에 대한 변명”이라는 부제를 단 “나의 문학관”에서 밝힌것이다.

나는 나의 이런 주장과 견해가 스스로 옳다고 여길뿐이지 절대로 유일정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실천만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진리앞에서 각자의 주장과 견해는 오로지 장구적인 실천에 의거하여 그 무게와 가치를 확인받을수 있기때문이다.

시가관념갱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속형으로써 끝이 없는 사유와 행위작업이다.

우리 시단의 시가관념갱신이 25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서 시인마다 우리의 갱신이 어디까지 왔으며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가를 한번 랭철하게 숙고해봄이 좋지 않을가? 25년간 우리의 시가관념갱신이 시인들의 의식구조변화와 더불어 풍성한 성과를 거둔것도 비하할수 없는 사실이고 25년간의 시가관념갱신이 새로운 관념의 새로운 문제와 분기로 하여 시단에 조화롭지 못한 분위기를 형성한것도 묵과할수 없는 사실이다.

좋은 시를 한수라로 더 창작하여 중국조선족문학과 시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싶은 우리 시인들의 심정은 똑같은것이다. 따라서 류파가 형성된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진정 두려운것은 류파마다 자타의 장점과 약점을 정시하지 않고 무조건 절대적으로 자기만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시야비야하는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시인이 불과 몇십명밖에 안되는 우리의 시단에 무슨 희망을 기탁할수 있을것인가? 이점을 깨우쳐야만 우리의 시단에는 지나간 25년보다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시의 번창기가 도래하게 되리라는것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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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12) 김동진 시인
   


 
중국 교포 사회의 끈끈한 인간관계를 잘 모른다. 다만 문인들의 교류는 어느 곳에서든 끈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처럼 서로 잦은 왕래를 하면서 막걸리잔을 비우듯 그들도 술잔을 기울이면서 회포를 풀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 김동진 시인은 거나한 술꾼의 폼을 다 갖춘 풍모를 보여주는 시인중의 시인이시다. 걸출한 대머리에 옅은 선그라스를 끼고 연변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흡사 이방인의 모습이다. 그는 교포사회의 대표적인 시조시인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조가 풍류적인 멋, 혹은 자연생태적인 것들을 소재로 시를 쓰는 방향으로 제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에 그가 보여주는 시조는 자연생태적인 것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참여적 기풍을 보여주는 시가 많다. 그가 노래한 대부분의 시조들은 남과 북, 민족의 한이 서린 사연들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자연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역사적인 진실을 찾아 시의 길이 열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인 모양이다.

아래는 흑룡강성 조선민족출판사에서 펴낸 그의 시조시선집에 쓴 그의 시조에 대한 견해이며, 그가 가고자하는 문학의 좌표같은 혹은 시작 노트 같아서 일부분을 인용한다. 그는 여전히 조국을 찾아 길을 가고 있고 민족을 찾아 길을 가고 있다. 문학이라는 기제를 통해서...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자랑스러운 우리 문학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일임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세상에 우리 겨레의 오곡밥 같은 정감세계를 소복소복 담을 수 있는 이토록 깜직하면서도 어여쁜 그릇이 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으로 하여 스스로 긍지를 느낀다.

할머니께서 내내 반짝반짝 닦아놓으시던 대물림 놋식기 같은 이 작은 그릇에 그토록 풍부하고 섬세한 정감세계를 재미나게 담아온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도 그러하거니와 이러한 시조에 우리 조상의 청순하고 고결한 체취와 숨결이 스며있다는 것으로 하여 시조의 당당한 존재가치는 의심할 바 없는 것이리라.

시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한생에 진정으로 좋은 글 하나만 얻어볼 수 있다면 천개의 밤을 지새운들 무슨 후회가 있을가? 꿈이 푸르르고 사랑이 진실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이러한 꿈과 사랑과 고통이 능히 새로운 나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고 믿으면서 이 새벽도 동트는 두만강변의 노을빛 하늘을 바라본다."


고조선

김동진


천지의
조화로다
묘향산 절승경개

단군의
뜻이 어린
천오백년 고조선아

해뜨는
아침의 나라
금수강산 삼천리.



북위 38도선


억수의 비줄기도
씻어가지 못한 치욕

끊어진 레루장이
벌겋게 울고있는
여기는 북위 38도선
산그늘이 어둡다

꿈이 다른 대문밖에
원성을 걸어놓고
한세기가 저물도록
풀지 못한 옥매듭

철조망 가까이 하면
해와 달도 어둡다.


1998년 6월



발해고성(古城)


옛날
발해왕이
울바자 세운 자리

성은 허물어져
티끌로 날려가고
유적지 하얀 패쪽이
오늘을 지켜본다

봄가을 몰아치는
북녘의 비바람에
토담은 씻기여도
씨앗만은 품었던가

그날의
백대후손 같은
방초만 푸르러라

꿈이던가 생시던가
흘러간 흥망사화

옛숨결 찾아보는
회포끓는 한가슴이
낮아진 황성옛터에
애수로 들먹인다.

1998년 8월


청자기의 꿈


파아란 하늘가에
송이구름 살아있고
소나무 푸른 가지
백학이 넘나들어
살포시 안아보고픈
어여쁜 빛갈일세

흙으로 빚었건만
옥으로 빛나는건
다듬은 천년꿈에
애틋한 소망이라
옛사람 모두 갔어도
뜻만은 남겼구려.


1993년 5월


백두산


천심(天心)의 뜻을 지닌
백산으로 솟아올라
뿌리 깊은 줄기줄기
삼천리에 뻗었으니

반만년
배달족속의
기둥뼈가 네로구나

칠성별 우러르며
드리는 정화수(井華水)
천지샘 맑은 물에
비껴내린 흰옷자락

칠천만
가슴가슴에
하얀 얼로 나붓기네.

1998년 2월


김동진 시인 약력
1944년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 출생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 졸업
중국소수민족문학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훈춘시문화국 창작원, 부연구관원
<연변문예>문학상, <진달래>문학상,
<은하수>문학상 등 30여차 수상.
시집 <가야금 소리>, <안개의 강>,
<칠색무지개>(7인집), 청자기의 꿈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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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14) 김응룡 시인
   

 
상처의 자욱이 짙다. 우리 민족의 모든 시인들이 특히 그렇다는 생각이다. 상처가 없는 민족의 시라면 그 시에서 상처가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거짓과 허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시에 조국 잃은 아픔을 노래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고 팔레스타인의 시에 슬픔과 애환의 역사를 노래하지 않은 것을 본적이 별로 없다. 그것은 번역된 시편들이 별로 많지 않아서 혹은 원문을 받아 읽어내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필자가 접한 시들에서 보았던 아픔과 애환을 믿기로 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수난속에서 보여지는 상처의 흔적을 믿기 때문이다. 한많은 두만강을 노래하는 김응룡 시인의 아픔도 따지고보면 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별반 다름없는 이치에 가닿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연변문학에 소개된 그의 시편에서 그의 육중한 몸에 맞는 시의 느낌은 없다. 그저 약하고 순정한 시인으로만 읽힌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그런 시적 허약함에는 약한 자의 모습이 아닌 굽어서 사는 민족의 애환 속에 숨겨져 있는 고통의 깊이가 보인다. 필자가 만난 그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내면과 외면이 이질적일 수는 있겠으나, 그는 호방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물론 중국식으로 평해서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셔보지 않고서 사람을 말하지 말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다.

그와는 짧은 두 시간을 보냈을 뿐이니, 그러나 육중한 그의 몸매는 야구감독 김응룡처럼은 아니라도 위압적인 건 사실이었다. 며칠 후 그를 만나 또한 회포를 풀어볼 생각이다.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눠볼 참이다. 연변의 시인들이여! 부디 건강하시라.


화로불

이글이글 열기 뿜는 화로불
한겨울 초가집의 사랑이였다
엣말과 웃음 동그랗게 피워 올리며
토감자 익는 냄새 구수했다

언 밤을 그렇게
언 마음을 그렇게
따뜻이 녹이며
초가의 겨울은 흘렀다

날샐녘 화로불은 꺼져
싸늘한 재로 되였다
부모님 인생의 등불도 꺼져
한 줌의 흙으로 되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화로불가엔
상금도 못잊을 사랑이야기
서리서리 감돌고있다


민들레


파란 잔디밭에
노란 얼굴 활짝 피운
어여쁜 아가씨
민들레 아가씨

비바람속에 하루하루
흰머리칼 늘더니
마침내는
하얀 우산 들고 승천한다

무엇이 애석해선가
하늘에 떠서도
다시다시 돌아보는
그 마음

아, 엄마-
날 두고 가지를 마오

선경대

하느님이 하사한
이 명산에
나의 태를 묻은 어머님
초라한 절당에서
내 명복 빌어 수십성상

세월은 흘러
그것은 아득한 옛일
이 불효자식은
이제야 거들먹거리며
고향의 명산금수 찾아왔소

궁룡송 구불구불
예와 다름 없고
감로천의 그 성수 맛
또한 의연하지만

웬지
나 서러워
홀로 서러워라

산천은 의구해도
사람은 의구치 않아
그리움이 구름처럼
가슴에 서리는데

가이드아가씨
쉴새없이 재잘거리며
날 이끌어 오르는
또 하나의 산정


두만강 물안개


두만강에 피여오르네
물안개 물안개
하얀 넋이
하늘로 오르네

흘러가는 물결
떠오르는 물안개
서러운 백의민족
못잊을 추억이라네

한많은 두만강
그 뽀얀 물안개속에
상금도 처량타네
물새의 울음소리


김응룡 시인
195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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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13) 김충 시인

   
 
수줍음도 많고 부끄럼도 많은 아이의 엄마, 어머니의 모습으로 사는 그가 작년 9월쯤 한국에 왔다. 아래의 시들은 그녀의 첫번째 시집 (안개속의 여자, 장백인민출판사)에 실린 시편들이다.

설레임과 두려움도 많은 그가 처음 온 한국에서 좀 더 체류를 하여 경제적으로 소득을 좀 얻어볼 생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합법적으로 한국에 오는 것이 쉽지 않은 중국에 사는 교포라서 많은 것들을 고민하여 결정하시라고 말했다. 그때 그는 시아버지와 아이들을 걱정한다. 밥은 어떻게하고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가? 두달, 세달을 더 머무를 수 없는 아이엄마 김충 시인의 모습은 천상 한국의 여인, 한 민족의 엄마들에 모습을 벗어나지 않았다.

필자가 6월 28일부터 보름간의 일정으로 중국에가면서 걱정되는 것은 벌써부터 그들의 환대를 어떻게 뿌리칠까이다. 생면부지의 얼굴로 찾아갔던 작년 너무나 많은 환대에 무거운 책임같은 것을 떠맡은 느낌이었기에 이번에도 역시 두만강변과 백두산을 다시 찾을 것인데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고민하게 된다. 무산철공소의 물로 손을 담그기가 힘들 정도였던 두만강물은 좀 깨끗해졌을까?

여기 김충 시인의 살림 살이에 대한 걱정은 좀 덜어졌을까? 지금 한민족이 사는 모든 곳은 일자리 걱정, 밥거리 걱정이다.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공동운명체란 사실을 인식시키기위한 신의 처방인가? 북한의 가뭄, 남한의 가뭄 그리고 우리 교포들의 힘겨운 삶의 터전들, 이제 시인 김충님이 걱정하고 고통받던 <실업당한 날>의 아픔은 사라져야 할텐데, 시인이여! 제 개미떼도 제 살 궁리로 산다는 그 말은 너무나도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흐느낌으로 절절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우리는 믿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체통>의 외로움도 <실업당한 날>에 고통도 어둠을 밝히는 <촛불>같은 희망 속에 견뎌낼 수 있는 것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곧 현대라고 하는 승냥이에 먹히고 만다는 사실을 아는 시인이니, 그 시인의 마음으로 그 희망의 끈을 붙들고 저 천년 만년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 앞에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 것을 청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시인께서는 두만강변의 세찬바람도 이겨내며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의인입니다. 고국을 눈앞에 둔 이국에서 살고 있는 시름 속의 세월도 거뜬히 이겨내며 시로서 마음을 달래고 타인의 고통도 함께 할 줄 아는 의인 아니십니까?


<실업당한 날>

저 개미도 제살이에 여념없는데
떠도는 구름처럼 흐느끼는 마음
정처없이 어데로 가나?

사는게 너무 힘겨워
길옆에 풀썩 물앉고싶은 지금
한숨조차 시름놓고 쉴수 없구나

일을 하고파, 일을!
나에게 땀 흘릴 곳을 주오...


<초불>

겨울밤
말없이 동행하다

봄아침 울면
조용히 사라지다


<현대승냥이>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바로 너의 눈이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땅 사이를 메우며
용맹의 노래 휘뿌리던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짙은 북풍이 불 때마다
꿈속의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 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 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을 입은 승냥이들
이 결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바로 너의 눈이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셔버릴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어진 너의 눈매였다


<우체통>

언제부터인가 너도 외로왔다
시골 영화관 벽에 비딱 걸려서
배고픈 기다림에 울먹였다

하냥 즐거웠던 어제날엔
잎새 속삭임 꽃의 고백 듬뿍 안고
가슴뿌듯이 행인 향해 미소 지었지만
오늘은 허전한 그리움에 지쳐있다

너를 외롭게 한 전화선이
미운지 고운지 생각할 힘도 없이
슬픈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멀리 가버린 소녀 웃음 그리며
소외당한 아픔에 소리없이 울고 있다


김 충
본명은 김영춘
1968년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집 <안개속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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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시인들(11) 이상각 시인

   

 
한 민족이라며 누구라도 주저없이 통일된 소리로 통일된 말을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백두산 천지를 민족의 발상지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경외스러운 마음으로 우러르는 민족의 성산 백두산에 대해 시인이 감탄하는 것은 그리 특별날 일은 아닌 듯하다.

하나같이 우러르는 민족의 산, 백두산에 올라 그 감회를 우러르는 시인은 온 몸이 말라깽이 형상을 한 단신의 시인이다. 그러나 우직하고 고집스러움은 어쩔 수 없는 시인적 삶을 담보해 주고 있다. 그는 자신 스스로 말라깽이 시인이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김철 시인이나 이성휘 시인과 함께 말라깽이 삼총사 시인의 한 축에 있으면서 서로 거나하게 차린 술자리에서의 비화를 곧잘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네 민족이 어디에서든 너나없이 반기며 주고받는 술잔 속에서 서로의 평화를 나누려는 것은 무슨 연유일 것인가?

연변인민출판사 총편집이시며 소설가이자 연변인민대표 대회 상임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류연산(43세) 씨는 자신의 저서 <혈연의 강들>에 서장으로 "아! 백두산"이란 제목을 붙여 우리 민족의 천지와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또 다시 보여주기도 하였다.

연변에 사는 교포들은 하나같이 천지와 백두산을 일컬어 이는 "인간의 창조력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없는 선경같은 대자연의 걸작"이라고 평한다. 이는 류연산 씨의 글 속에도 나타난 문장이지만, 시조이든, 시에서든, 극작에서든, 백두산과 천지를 떠나서는 우리 민족적 기상을 피워 낼 수 있는 길이 없다 할 정도로 긴밀한 연관 속에 있다.

다름 아닌 우리 민족적 서정과 민족적 웅비의 기상이 우리 문화와 예술혼의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본류로 받아들이게 된다. 필자도 백두산을 다녀오고 쓴 졸시가 있다.

이를 시라고 해야할 지 시작메모라 해야 할지 모르나, 필자의 감회를 정리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으리라.

백두산

한라산도
설악산도 좋았다.
태백산도
무등산도 좋았다.
치악산도
계룡산도
삼악산도 좋았다.
백두 영봉 백두산을 오르기 전
나, 그 감격을 어찌 잊으리요.
백두를 오르기 전,

아무튼 한 번 백두산에 오르면 그만큼 자신도 모르리만큼 넓어지는 그런 느낌을 간직하게 되리란 생각이 든다. 마치 삼라만상을 두루 호령하는 그런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 그런 산을 시의 전면에 두고 시를 써 나가는 시인 이상각 시인의 바쁜 날들을 대신하며 이 시편들을 소개한다. 많은 작품도 중요하지만 그는 요즘 당시의 풍모를 어느 만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시단을 풍성하게 하리라고 목에 힘을 주어가면서 토로하였다. 연변의 민족문학인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열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이 일년이 지난 아직도 생생하다.

신비로운 산

우러러보면
볼수록 높아가는 산
둘러보면
볼수록 커가는 산

신비로운 성산!

구름을 딛고선
금빛 봉우리들
어깨를 비비며 둘러서서
쪽빛 천지물을
고이 지켜섰다

산도 물도 벼랑도
칠색 무지개발을 날린다

숭엄한 기상을
숨어있는 푸른 정기를
고운 말 골라
그리렸더니

무궁한 아릿다움에
그만 나는 넋을 잃었다

부끄러운 마음
걸음걸음 저며 디디며
망설이는 이 못난이
차라리 목놓아 운다

백두 폭포되어
벼랑을 쾅쾅 들부시며
가슴이 쓰리도록
내 시도 소리쳐 운다

아 백두산! 백두산!


천지

초동의 바스락 소리에
하늘로 날아가버린 선녀들
멱을 감았던 천지도
자꾸만 숨어버린다

하많은 손들이 찾아와
시글벅작 떠드는 바람에
수집고 부꾸러워설가
하얀 옷소매로 얼굴을 덮었다

애타게 기다려도
좀체로 나타나지 않은 님이여

아쉽다
차라리 숨어서
가만히 훔쳐나 봤을걸


이상각
1936년 강원도 양구 출생
1938년 북만주로 이주
1961년 연변대학 졸업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역임
연변문학 주필 역임
현재 중국 작가협회 회원
저서로는 <이상각 시선집>, <까마귀>등 16권 출간

시작노트 : 시는 내 몸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은 내 몸과 떨어질 수 없는 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꿈과 사랑과 착한 것과 참된 것, 아름다운 모든 것을 지향하는 내 마음이 시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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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10) 송미자 시인
   
 
 
길림성 용정시는 우리 민족 문화가 개화(開花)한 본거지이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만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중국내 교포사회에서도 여전하게 중요시 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문명 개화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용정사람들은 어느새 소외의 쓴맛을 겪으며 용정에 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변과 우리 사회의 교류가 급속하게 발전되면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용정시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현실이다. 우리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송미자 시인이 바로 용정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살고 있는 시인이다. 대개의 교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역시 수필과 산문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가 쓴 아래의 시편에서 보여지듯 그는 여전히 눈물 많은 시인인 모양이다.

그가 쓴 수필 박 꽃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혈육의 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육친의 정이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철조망이며 국경이 가로 놓여도 박꽃은 해마다 피여나고 혈육의 정을 잇는 뉴대로 되고 있다.

하기에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박꽃을 피우셨고 언제나 박바가지를 쓰셨다. 조선(북한)에 계시는 큰 어머니도 해마다 박을 심으시면서 남편과의 상봉을 고대하고 있단다.

하얀 전수건을 하얀 머리에 두르시고 꼬부라진 허리도 펴시지 못하시면서 담너머로 강너머로 산너머로 기다림에 지치신 할머니, 오늘은 흩어진 혈육의 정한이 서린 이 자리를 어머니께서 메우며 서 계신다.

하얀 박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숙명의 완성을 위하여, 피맺힌 수난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혈육의 만남을 위하여.....,"

위의 박꽃에서 우리는 여전히 현 세기나 지난세기나 할 것없이 우리 한 민족이 숙명적으로 이산의 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만주벌이든 남과 북이든 일본이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유효한 민족 갈등의 요소이면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해서 눈물에 맺힌 시적 정한을 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젊은 시인은 이미 늙은 노인의 눈을 깊이 있게 응시하고 바라보는 처지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눈물이 맺히고 천리 만리 홍수라도 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놓고 무지하다할 정도의 큰 화해의 강을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눈물을 쏟아낼 그날을 기약하며 박꽃이 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이여, 조금 이제는 조금만 더 참고 서로를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염원하던 민족의 대동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시인이여. 이제 서로 바라볼 생각은 하는 때이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앞장 서 나가십시다. 슬픈 시인이여!


노인의 눈(眼)

송미자

기인 긴
그리움의 터널
기인 긴
서러움의 터널
그 눈속(眼里)을 다시
걸어 들어간다해도
장-장
반백년이 걸리리


눈물

고목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뼈가 녹은 뼈물이요
피가 려과된 피물이리
반 백년 삭여낸
마을의 정수(淨水)로
사책(史策)에 얹힌
먼지 씻어낼 듯


홍수

칠천만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반도가 잠긴다
태평양 수위가 오른다

그리움이 터진
서러움이 터진
정감의 홍수여

지심(地心)이 흐느끼는가
이글거리는 용암같은
뜨거운 피 걸죽한 피

쏴-쏴
마지막 방파제를 터친다

피를 속일수 없더라
다섯 번 변한 강산이라도
피는 변할 수 없더라 
 
 
 
송미자(宋美子):
중국 길림성 용정시 개산툰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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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9) 윤청남 시인

   
 
그리움의 서정은 어디인들 다르랴, 인간이 살아가는 곳 그 어느 곳엔들 그리움이 없을까, 그런데 윤청남 시인의 시적 정한은 여전히 한민족의 그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 여성이 보여주는 그리움의 서정인 것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미학으로 포장되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인내와 애타는 그리움들을 내면으로 깊이깊이 곰삭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흔히들 세상살이의 풍경과 세태가 완연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외부적으로 강하게 발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내적 정한의 세계 속에서는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런 그리움의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도 모자라 그러한 정한을 간직하고 참고 인내하느라 속 깊은 울음을 남 몰래 참아내느라 애태우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서정인 것만은 속일 수 잆는 진실인 모양이다.

시인은 이미 그리움의 대상을 어디론가 보내고 나서 그 그리움의 대상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리워 그리워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예민하게 계절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새기고 있는 듯하다.

가을이거나 봄이거나 사람이 간직한 그리움은 언제나 뭉게뭉게 피어오르나 보다. 게절이 가고 또 갈 때마다 더욱 더 깊은 그리움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나 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


윤청남(중국 길림성)

강물은 흰 빛으로
머언곳에 서있고 산은 안개속에
두웅둥 떠있다.

기억에 없던
플랫폼의 종소리는 서간마다 다앙당
산간을 울리고

사토길 굽이굽이
남향작 내려앉은 해살이
어쩌면 이다지 이쁠수 있을까.

래일 앞서
꽃을 홀로 보는 마음
이 봄은 모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2


꽃병에 꼿혀 피는 꽃이
가련하다.

당신이 없는 마당의 동요는
눈물겹다.

흙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산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3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이 밤에 떠오른다.

기실
진달래 꽃이 가을에 피는데는
아무런 리우도 없다.

편벽한 기슭에
볕이 들면 한밤에도
슬퍼질뿐이다.

그런데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한밤에 피어난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4


그리워도 애타하지 말자
그대가 비워놓은 자리만큼
봄은 온다.

외로워도 흔들리지 말자
그대가 그리운 하늘만큼
꽃은 핀다.

너무 쉽게 슬퍼하지 말자
그대가 알면
아파할라.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5


더펄더펄 더펄더펄
나래 하나로 온 몸이 숨을 쉬는
이 봄의 호랑나비
장모님이 입선때 보약을 람용해서
왈패로 자랐다는 안해
더펄더펄 더펄더펄
호랑나비 이 창가를 스쳐가면
마주오는 해드라이트 불빛이
이 밤의 앞길을 꽈악 매워라
더펄더펄 더펄더펄
서있는 이 낮밤 바람 그 속을
호랑나비 꽃을 찾아 날아가면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6


호수가에 마알간 해살이
얼마나 진한 어둠인지를
누구도 모르리.

홀로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푸진한 주안이
너무너무 목이 매라.

굶주린 저 노을 아래
어머님의 여윈 영상은
오늘도 사막에 일어서는 신기루 루각인가.

이 봄에는 설련화꽃이
한송이 두송이 눈속에 피는 사연을
조금은 알듯싶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7


간밤
창공을 수놓았던 별들이 이 아침에는
산과들에 반짝이는 이슬로 내려왔다.

한데
저녁이 아슬아슬 돌아와도 꽃은
하늘로 돌아가지 않는다.

꽃은
송이송이마다 모두
너무나도 살뜰한 천당 빛 거울이다.

이 봄에는
푸른잎에 맑은 령혼인 당신이
내 곁에 돌아와 바람으로 되어있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8

여보
우리집 창가에 홀로
초롱을 지키고 있던 새 한 마리를
기억하고 잇겠지

여보
그 연두빛이 해살을 몰고
우리 신혼의 푸른숲으로 날아왔던 그때는
어느해 해맑은 봄이 였던가

그리고 여보
그 연두빛이 짝을 잃고 쓸쓸했던
그 진붘은 황혼무렵은 또
어느해 황금빛 가을이 였고

여보
내 오늘 그 새를 놓아보낸다오
꽃이 피어 구름고운 저 하늘로
내 오늘 늦으나마 소리쳐 보낸다오

여보
그 연두빛이 울음 곱던
외로움의 찬란한 그 창가를
아직 잊지않고 있겠지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9

응달에는 이슬이
이 봄의 애수로 정오에도
푸른잎에 고여있다.

욕설을 나온 바위가
해살에 그림으로
곱다.


바람이 불어오는
끝을 따라
물은 흘러가고

파아란 수평선우로
파도가
하얗게 밀려온다.

속깊이
눈물을 다아 말린 새들이
또 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0


그대도 떠났지만
나도 떠났다.
돌아오는 것은 봄이 아니라
내가 돌아오는 것이리.

해는 지구를 향해 오지 않는다
지구가 그의 곁을 돌뿐이다.
해는 앞뒤면이 따로 없다.
지구가 밤낮이 있을 뿐이다.

언제면 돌아간 어머님이
이 아들의 기억속에 지워질까
그것은 나와 어머님이 또다시
천당에서 만나는 순간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1

잘 익은 과일나무 한구루를
애수의 눈매로 바라보는
바위속의 원숭이

유기형
5배년의 종점은 어딜까
한 낮에 내리는 애잔한 운석비

바다는
온 세상 끝물이 모여온
황금빛 가을

초원의 꽃밭우를 내닽는
바람의 쪽밭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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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8) 홍용암 시인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가 바쁜 탓이다. 그저 이메일을 통해 받은 시편 정도로 그를 안다.

연변의 작가들을 통해 들은 풍월은 있다. 그는 아래 이력에서 보듯 70년 생이다. 그런 그가 5개 회사를 갖고 있는 연변 조선족의 거부가 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 우여곡절이 결국 그를 문화에 기여하게 하고 연변 문화인들의 풍요한 삶의 일부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연변에서 행해지는 여러 문화 행사에 대해서 많은 기부를 하면서 그 또한 문화인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주듯 틈틈이 시편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변 최초의 외국어 학교를 세우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기 속에서 무난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족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자치주라고 해서 완전한 자치체제도 아닌 이민족이 그만한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러한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엄청난 경계의 대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는 더욱 그들의 경계가 노골화 되어가고 있고, 주요 부처의 장은 중국 내 거주 교포들이 맡아 하지만, 최소한 서열 2위의 직 정도는 맡아 보는 것이 일상화하는 추세라고 하니, 본국이라 할 남북한에서의 연변에 대한 대응 태도는 어떤 것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홍용암, 필명 백운, 그야말로 조선적인 닉네임들이 아닌가? 이제 그가 이룬 대업이 중국 내 교포들의 생활과 문화적 토양을 굳건하게 하는 토대가 되도록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인민대표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중국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장의 말에 따르면 그와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공동으로 문예창작학과를 두고, 문학상 등을 제정하는 등에 대한 논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중국 내 공안 당국의 방해로 그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저항의 뿌리는 지속성을 갖고 뻗쳐 내려오는 데 우리는 너무도 작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의 등을 돌린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 마당에 남쪽 내부에서의 토착화된 지역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적 구심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시선을 저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로 돌려 바라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기업을 일으켜 민족 문화의 내적 자산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 미래의 희망은 우리 민족의 젊은 기상으로 꽃 피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의 시가 수작은 아닐지언정, 그의 시의 내면에 담긴 동화적 상상력은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 또한 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창작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던 그 날

홍용암

나는 그 어느 가장 청명한
여름날의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순간적인 그 하루만
사슴처럼 새처럼 사랑했다
이튿날 헤여져야 했으니깐
그 아름답게 사랑했던 하루
그날 새벽 0시에 태어나
자정 24시에 죽었다면
나의 기억속에는
다음날의 비애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 행복했던 하루만
내 한생에 전부로 길이 남아
그러면 나는 단 하루를 살아도
행운스럽게 길한 날 태여나서
유감 한점 없는 삶을 마칠 것이다....


꽃무덤

무수한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초가을 공원 길거리에
깨끗하게 늙은 어멈 한 분이
떨어진 꽃잎을 쓸어모아 무져서는
한무더기 꽃무덤을 만든다
아무래도 무심히 지나칠수 없다
어쩐지 그 한잎한잎의 꽃무덤이
그 어멈이 스쳐지난 자취같이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날들을
그윽한 향기속에 흩날렸을가...


녀자

가장 가냘픈건
고독한 녀자다
고독한 녀자보다 측은한건
버림받은 녀자다

버림받은 녀자보다 불쌍한건
죽은 녀자다

죽은 녀자보다 불행한건
잊혀진 녀자일게다 까맣게...


물고기

륙지의 자그마한 개울물에 살던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가 번화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꾀죄죄한 개울을 떠나
한번 그곳에 가서 보람있게
버젓이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항구도시에 이르러
사품치는 바다격류에 휘말려들자마자
물고기는 그만 지각을 잃고말았다...




인간들이
서로 욕지거리 한다
--개같은 것이!

개들도
물고 뜯을 땐
개나라에서
가장 험한 쌍욕을 할 것이다
--인간같으니라구야
에잇 퉷퉷...


홍용암: 필명 백운(白云)

1970년 6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동방룡촌에서 출생
16세에 첫동시집 「꽃무지개」를 출판
서정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 「려행자」,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 「사슴뿔 나무」등 출판
전국, 성, 주 및 해외문학상 수차 수상
현재 「청춘극장」신문사 사장, 「별나라」특약편집, 연길시외국어학교 등
5개 회사의 리사장, 흑룡강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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