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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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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가장 거대한 백일몽
2016년 10월 01일 18시 38분  조회:3790  추천:0  작성자: 죽림

나의 시 나의 방법-황폐한 현실에서 불안한 몸으로 
이상옥(시인 * 창신대교수) 


나의 시 쓰기는 근자에 들어서 변모를 보이는 조짐이다. 첫시집 <<하얀 감꽃이 피던 날>>(1990)과 2시집 <<꿈꾸는 애벌레만 나비의 눈을 달았다>>에서는 시의 호흡이 다소 거칠었던 것 같다. 그것은 황폐한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시안(詩眼)이 충혈되어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 

꿈꾸는 애벌레는 
흙냄새를 맡으면서도 
푸른 공기를 마시고 
슬픈 오늘보다 
내일을 산다 
땅을 밟고 다니지만 
마음엔 나래를 달고 

꿈꾸지 않는 애벌레는 
부활 없는 영혼, 
멸망하는 짐승처럼 
오늘을 산다 

나뭇잎에만 앉아 보아도 
알 수 있지 
풋풋한 내음이 
속살까지 스며들고 
새 눈을 달게 되지 
별이고 싶고 
꽃이고 싶고 
오, 파란 꿈 

꿈꾸는 애벌레만 
내일을 산다 
흙에 몸을 기대지 않고 
마음에 나래를 달고 
나비의 눈을 달고 
-<꿈꾸는 애벌레만 나비의 눈을 달았다> 

이 때 나는 '황폐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그것을 이슈화하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낭만적 의지를 동반한 역설적 구조나 변증법적 통합구조를 선호했던 것 같다. 
인용 시는 94년에 시문학사에서 출간한 2시집 표제시다. 문덕수 선생은 이 시가 "지상과 하늘, 상향(上向)과 하향(下向), 현재와 미래, 현실과 꿈이라는 구조 속에서 뭣인가의 강력한 메시지, 즉 현실지향과 이상지향의 생명 운동을 보여준다. 단선적(單線的) 메시지가 아니라, 상반된 두 세계를 통합하려고 하는 복선적(複線的) 메시지 속에는 갈등, 아픔, 이율배반(二律背反), 모순이 있고 또 그것이 생명의 실상이다. 이 시가 지닌 두 세계는 단절되어 있지도 않고, 또 한 세계를 포기하거나 부정하고 다른 한 세계만을 추구하는 선택 구조도 아니다. 흙냄새와 공기를 공유하려고 하며, 땅과 하늘을 통합한 하나의 세계에서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단절과 연속, 선택과 통합, 일원론(一元論)과 이원론(二元論)의 갈등과 긴장을 지닌 역설(paradox)의 구조요, 변증법적 구조라고도 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런 점에서 이상옥(李相玉) 시의 구조는 변화 없는 반복이나 형식적 내왕(來往)이 아니라 모순·상반된 두 인력(引力)의 방향이 부딪쳐 배척하고 다투면서 통합하려고 하는 제3의 명제(命題)를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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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오벨리스크*


                  김연숙

불꽃나무 타오르던 나일의 동쪽 아스완
달아오른 화강암의 땅 채석장 터엔
미완의 오벨리스크 누워있다

쏘아지지 않은 화살
깨어나지 않은 태양왕국의
너무 깊은 꿈
그 미끈한 옆구리를
한 발 한 발 걸어가 본다
치솟을 수 있는 정점까지
올라가 본다
41.7미터의 상향의지
―땅과 하늘을 통교하리라

낯선 제국의 한가운데
볼모처럼 서 있는 고왕국의 화살탑들
제국의 힘으로도 반출하지 못한
여기, 가장 거대한 백일몽

매운 꼭지점을 향해 힘 모으던
대지의 심장박동이
환영처럼 증발하는 이 한낮

낙하해도 좋다
잠든 네 위에 서성대며 기념 촬영하는
이 삶의 관광객
우뚝 솟은 네 발치에 피꽃 튀는
한그루, 불꽃 되어 타고 싶다

일어서라, 장엄한 꿈의 증거
수천 년 누워만 있던 너의 직립을
이제 그만, 보고 싶다

*方尖塔

            ―『문학사상』(2004. 2)

  <단평>
   나는 김연숙의 「미완의 오벨리스크」를 읽으면서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아득한 신화를 생각했다. 거대화되고 신격화된 물질문명이 신화를 대신하고 있는 이 시대에, 현대인에게는 더 이상 태양을 향해서 쏠 꿈의 화살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현대인들이 잃어버렸던 ‘오벨리스크’라는 장엄한 꿈의 화살을 재발견해 내고 있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태양신을 섬기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세워놓은, 끝이 뾰족한 사각형 석탑을 말한다. 이 유물은 본래 서방세계가 아프리카를 식민화하기 위해서 약탈경쟁에 나섰던 16세기 이전에는 대부분 이집트에 있던 것들이었는데, 서구 열강들의 약탈에 의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아마 이들 나라들은 오벨리스크를 자국의 주요 요충지에 세워둠으로써, 태양처럼 빛나는 권력과 영광을 이루려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벨리스크’는 승리와 영광과 최고 권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약탈과 식민지 정책으로 얼룩진 근대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은 이집트 남부 나일강 동쪽 아스완 채석장터에 미완인 채 관처럼 누워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잃어버렸던 고대인의 꿈과 물신화된 현대인들의 욕망이라는 엇갈린 단면을 읽어내고 있다. 이 시의 2연에서 시인이  ‘오벨리스크’를 “쏘아지지 않은 화살/ 깨어나지 않은 태양왕국의/ 너무 깊은 꿈”으로 읽고 있는 것은, 이 시가 <더 이상 꿈이 존재하지 않는 땅에서의 꿈 찾기>라는 역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아스완 지역에 있는 이 오벨리스크가 완성되었더라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오벨리스크로 기록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미완의 것이기 때문에 세계 열강들에 ‘볼모’로 잡히지 않은 채  “제국의 힘으로도 반출”하지 못한 “가장 거대한 백일몽”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위대한 태양신의 상징이었던 것이 지금은 한낱 관광 상품으로 전락했지만, 시인은 미완의 오벨리스크를 통해서 현대 물질문명이 이룩해 낼 수 없었던, 아직 이룩되지 않은 인류의 미완의 꿈을 읽고 싶은 것이다. 사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꿈이란 ‘완성’보다는 ‘미완’이기 때문에 더 값어치가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그것은 ‘미완’이야말로 그 안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서의 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벨리스크’가 단지 고대의 잃어버린 꿈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에서의 ‘오벨리스크’는 꿈을 잃은 현대문명과 현대인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의 표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꿈을 잃어버린 채 아스완 채석강에 수천 년 동안 죽은 듯 누워있는 ‘미완의 오벨리스크’인 자신과 현대인들을 향해 외친다. 이제 그만 일어서라고,  너의 직립이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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