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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만드는것"이 아니라 생체를 통한 "발견"이다......
2016년 11월 02일 20시 20분  조회:4174  추천:0  작성자: 죽림

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최근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썼다. 썼다라기보다는 <씌어졌다>라고 해야 더 가까운 표현이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시에는 시 자체로서의 자율성이 앞서고 있다. <감정의 유로>로 정의되는 낭만주의 시의 본질론과는 다른 생명의 작동 같은 것이 거기 있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시에도 <생태>라는 것이 있음을 나는 근간 적극 동의해오고 있다. 제 스스로 언어의 몸짓을 하는 시와 더불어 나는 이즈음의 내 삶을 이끌고 있다. 내 의지로서의 이른바 언어적 조율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언제나 후행의 작업으로 왔다. 그런만큼 퇴고의 시간이 전에 없이 줄어들었다.

미리 젖어 있는 몸들을 아니? 네가 이윽고 적시기 시작하면 한 번 더 젖는 몸들을 아니? 마지막 물기까지 뽑아 올려 마중하는 것들, 용쓰는 것 아니? 비 내리기 직전 가문 날 나뭇가지들 끝엔 물방울들이 맺혀 있다 지리산 고로쇠나무들이 그걸 제일 잘 한다 미리 젖어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 새들도 그걸 몸으로 알고 둥지에 스며들어 날개를 접는다 가지를 스치지 않는다 그 참에 알을 품는다

봄비 내린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 번 더 적신다
-⌈봄비⌋ 전문, 『시인세계』, 2003. 봄.

우이산록에 삼십여 년 가깝게 살고 있는 나는 어지간히 산의 냄새를 맡을 줄 알게도 되었지만, 자연을 느끼는 내 수준은 봄철이면 환경운동가들이 <지금 새들이 알을 품고 있는 중이오니 조용히 하세요>라고 작은 팻말들을 나뭇가지에 내어 걸은 것을 보고는 그저 발자국 소리를 스스로 죽이는 경외감을 가지는 그 정도였다. 그런데 요즈음엔 조금 다른 눈이 뜨이고 귀가 트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누구의 말대로 이순의 나이가 되었으니 가는귀가 먹어 이젠 들리는 소리보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더 잘 듣게 된 것일까. 어쨌건 그 발견에 호들갑을 떨지 않도록 나를 스스로 다독이고 있다. 삼십여년 세월로서는 사뭇 늦깎이이다.
이 시를 쓴 지난 3월 하순,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을 오르다가 푸른 기가 감도는 나뭇가지들에 눈이 갔다. 그런데 나뭇가지들 끝에 물방울들이 조롱조롱 맺혀 햇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난 밤 내린 이슬들의 결로結露현상이 아닌가 했더니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다. 시간으로 보거나 물방울의 크기로 보거나 그렇게 볼 수가 없었다. 스스로 뽑아 올린 것이었다. 용쓰듯. 의아해하고 있는 내게 지나가던 노인이 봄이 와서 한참 가물다가 봄비가 내릴 징후가 보이면 나무들이 그런다는 것을 일러 주었다. 온몸에 찌르르르 전율이 왔다. 식물학적으로 확인을 해 보지는 않았으나 수긍이 감동과 함께 온몸으로 왔다. 생체를 지닌 것들의 관능적인 반응이 모두 저러하지 않은가. <물>로 나타나지 않던가. 절대적인 사랑은 스스로 제 몸을 적시는 실체의 것이 아니던가. 절대적 교감의 실물반응, 오!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미리 젖어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감히 <화엄동체>라는 말에까지 의식의 더듬이가 가서 닿았다. 나무들도 예외가 아니라니!
눈을 돌려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지금 새들이 알을 품고 있는 중이오니 조용히 하세요>라 쓰인 그 작은 팻말들이 나무들에 새로 걸려 있었다. 새들도 나무들과 봄비의 그 <교감>을 생명으로 실체화하는 절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 스스로를 고요히 가두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랬던 것처럼 더 확신에 찬 어조로 나는 <상징에는 실체가 있다!> 또 한 번 외쳤다. 자연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우주적 화응이 있다. 나무들과 새들에게도 무슨 영성이 있는 것일까. 저러한 모습으로 보아 그들에겐 몸이 영성이자 영성이 몸이다. 우리 사람들처럼 따로따로에 늘 빠져 시달리지 않는 그들에게서 나는 초월의 궁극, 그 실체를 보았던 셈이다. 뛰도록 기뻤다.(호들갑 떨지 말자. 내 안을 흐르는 그간의 번뇌와 갈등, 마음공부의 기류가 막히지 않도록 몸을 잘 간수하자. 내 <슬픔의 중량>이 좀더 나가야 하리라.)
얼마 전에도 나는 <이 세상에 시적인 기골氣骨, 비위脾胃, 폐장肺腸을 갖춘 총명한 사람 가운데, 어떤 시를 먼저 숙독하느라 자신의 심금을 묶어 두고 그런 다음 시를 짓는 자가 어디 있으랴!>라는 고전시화의 한 대목을 인용한 바가 있다. 이 말은 기존의 이론이나 시를 하나의 규범으로 삼아 거기 갇혀 버린 교주고슬膠柱鼓瑟의 답답함을 비판하고 경계한 것이겠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시의 성령으로서의 <몸>을 적극 내세운 말이다.
그러나 저간의 우리 시의 형편은 어떠했는가. 이 같은 본체는 뒷전에 밀어 두고 소위 지적인 방법을 앞세우거나 윤리적 주장을 위한 도구로서 시를 전락시켜 왔음은 우리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또한 화자의 우월적 포즈에 의한 관념의 화법으로 무엇보다 오염되지 않은 시의 생체를 매장시키고 있는 시편들이 창궐하고 있음은 어찌해야 하는가. 물론 저러함들도 일면 시가 담아야 할 삷의 또 다른 모습들이며 시 또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저 한낱 도구로서 시를 수용할 때 시는 정말 자유로울 수가 없다. 나무들이 제 몸의 물기를 용쓰듯 뽑아 올려 봄비를 마중하듯, 봄비가 젖은 제 몸을 다시 한 번 적시듯 화응하는 시의 우주적인 울림, 그게 시의 본체요 자유가 아닌가. 저러함은 <만들기>가 아니라 생체를 통한 만남으로 획득되는 <발견>이다.
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시의 생태에 온몸으로 동의하면서 나는 오늘도 산으로 간다. <시경>이자 <산경>을 읽으러 나는 거기 간다. 그러나 놀러 가야 한다. 가서 함께 <잘 노는 것>이 그것들을 잘 읽어 내는, 한 몸이 되는 지름길이다. 어제는 내가 오래 전부터 정해 놓고 놀러 가는 소나무 숲에서 장자가 말한 이른바 송뢰松籟소리를 듣다가 바람이 스스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들이 열어 놓은 <구멍>으로 바람이 지나가느라고 소리가 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피리가 왜 소리를 내는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비로소 요해了解하였다. 아하, 우주는 큰 <구멍>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한참 소나무를 바라보며 무심코 고장난 내 무릎 관절을 쓰다듬다가 소나무는 무릎 관절이 없다는 것도 비로소 알았다. 무릎 관절이 없어 줄창 한평생 제자리에만 서 있는 소나무는 고장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했다. 무릎 관절이 있다고 잘난 체하며 세상을 마음대로 쏘다니고 그래 보았댔자 말이 굴신자재屈伸自在 예저기 피하고 피해다닌 꼴이 아닌가. 그게 내가 아닌가. 부끄러웠다. 쏘다닌 만큼 때는 때대로 묻히고, 제자리를 제대로 지켰다 할 수도 없고 퇴화해 버린 나의 남루. 결국은 나무보다 수명도 짧은 내 허무를 아프게 읽었다.
< 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나는 오늘도 숲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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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 이병률(1967∼)

 

행색이 초라한 어르신
게다가 큰 짐까지 든 그 곁을 따라 걷다가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여
식사는 하셨느냐고 물어요

한 끼만 묵어도 되는데
오늘은 두 끼나 묵었으예

날은 추워
마음은 미칠 것 같아
담배나 몇 갑 사 드릴까 하고
담배는 피우시냐고 물어요

오늘은 두 끼나 묵어서
안 태워도 되이예

 

 

이제부터 낮달과 제비꽃이 배고파 보여도
하나도 그 까닭을 모를라구요



한 젊은이가 있다. 시인 본인은 젊은이라 불리기에는 쑥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아직 늙지 않은 한 사람이 지나가는 노인을 보게 되었다. 무심히 지나가도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노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노인은 행색이 남루했고, 나이에 비해 짐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젊은이는 노인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다. 밥을 한 끼 사 드릴까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마음 아프다. 한 끼만 먹어도 되는데 이미 두 끼나 자셨단다. 그럼 담배나 사 드릴까 했는데 이미 밥을 먹어서 담배는 안 태워도 되신단다. 대답을 들어보면, 노인은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아예 먹지 못하는 생활을 일상으로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고플 때에는 담배로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낮달이며 제비꽃이 무슨 소용일까.
 

 

대화를 통해 노인의 상황을 짐작하게 된 젊은이는 ‘미칠 것 같다’고 썼다. 허공에 주먹이라도 휘두르고 싶은 심정이었을 터. 하지만 젊은이는 뒤돌아서야 했다. 노인과 헤어져 오는 길에는 아마 함박눈이 내렸을 것이다. 배고픈 사람 더 배고프라고, 남의 속도 모르는 함박눈은 더욱 풍성하게 내렸을 것이다. 

이 시에서 젊은이는 노인을 동정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그는 공감하고 있다. 그 노인은 같다.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는 내 아버지와 같은 노인이다. 그는 내 미래와 같다. 많은 ‘같음’을 느끼는 공감의 능력은 타인과 세상과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모쪼록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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