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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윤동주 유고시집 보존했던 정병욱 가옥(2)
2017년 01월 25일 00시 36분  조회:4059  추천:0  작성자: 죽림
 
 정병욱의 아버지 정남섭. 1919년 남해 문항마을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미군정 시기인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광양군 진월면장을 역임했다.
▲  정병욱의 아버지 정남섭.

1919년 남해 문항마을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미군정 시기인 1946년부터 1948년까지 광양군 진월면장을 역임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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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기사에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네요. 정병욱 아버지인 정남섭이 1934년에 면장을 지냈다면 친일 면장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남해 문항에서 3.1독립만세를 불러 일경에 쫓기다 진주사범을 나와 교사를 지낸 후 광양 망덕으로 오셨고 해방 이후 미군정 당시인 1946년에 면장을 지냈습니다."

윤동주 시집 유고를 보관했다가 윤동주 시를 세상에 알린 정병욱 생가에서 살았던 박춘식(정병욱 외조카)씨가 내가 쓴 기사 <이 사람 없었다면 윤동주도 없었다>를 보고 전화한 내용이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에서 선후배로 만나(1940년) 하숙을 하며 문학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신적 동지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일본의 전세가 기울자 일본은 대학생들도 징집해 학도병으로 내몰았다. 

 윤동주 유고를 숨겨뒀다가 윤동주를 세상에 알린 정병욱의 생가. 현재 정병욱 외조카인 박춘식씨 소유로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문학관을 지을 예정이다.
▲  윤동주 유고를 숨겨뒀다가 윤동주를 세상에 알린 정병욱의 생가.
현재 정병욱 외조카인 박춘식씨 소유로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문학관을 지을 예정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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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 연희전문에서 만나 문학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던 정신적 동지 윤동주와 정병욱. 정병욱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를 볼 수 없었다.
▲  1940년 연희전문에서 만나 문학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했던 정신적 동지 윤동주와 정병욱.
정병욱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를 볼 수 없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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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여름 일본에서 유학하던 윤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고 같은 해 정병욱도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가기 전 만들었던 시집 세 권 중 한 권을 물려받은 정병욱은 원고를 모친께 맡기며 "저나 윤동주 시인이 살아서 돌아올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해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드렸다. 

 
1945년 8월 해방이 되자  살아 돌아온 정병욱은 자신의 집 마루 아래 숨겨두었던 윤동주의 시를 모아 '정음사'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발간(1948년)해 윤동주를 세상에 알렸다. 자료에 근거해 내가 쓴 기사 초안은 아래와 같다. 

"1925년에 전형적인 근대 상가 주택으로 지은 정병욱 생가는 1934년 광양군 진월면장을 역임했던 부친 정남섭이 매입했다"

자료에는 1934년에 정남섭씨가 광양 망덕에 있는 집을 매입했다고 씌여 있었지만 무심코 흘려 본 것이다. 기사 초안을 쓸 당시 미심쩍었던 " 친일면장을 지냈지만 훌륭한 아들을 뒀네"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한 의심이 풀렸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정병욱의 뿌리를 캐보자"라는 생각에 박춘식씨에게 전화를 하고 정남섭의 뿌리를 찾아 남해 문항마을로 향했다. 

 정병욱의 아버지인 정남섭이 근무했었던 하동군 진정초등학교
▲  정병욱의 아버지인 정남섭이 근무했었던 하동군 진정초등학교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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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로 가던 도중에 박춘식씨가 잠깐 들를 곳이 있다며 하동에 있는 진정초등학교로 안내했다. 1924년에 개교한 진정초등학교는 95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전통있는 학교였지만 안타깝게도 1960년대 이후에 근무한 교사들의 자료만 있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데 독립운동을 한 교사가 이 학교에 근무했는데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며 안타까워하던 박씨가 외가 어른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정병욱 교수의 아버지인 정남섭 어르신은 진주사범 졸업 후 거제도에서 근무하다 고향이 가까운 하동군 진정초등학교에서 몇 년간 근무한 후 광양 망덕으로 이사 오셔서 양조장, 과수원, 방앗간을 운영하며 부를 축적하셨어요. 해방이 되자 미군정에 발탁돼 진월면장을 역임했습니다."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비가 있는 고갯마루 아래에 있는 문항마을로 남해에서 박사가 가장 많이 탄생한 마을이다
▲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비가 있는 고갯마루 아래에 있는 문항마을로 남해에서 박사가 가장 많이 탄생한 마을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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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대교를 건너 정남섭이 태어난 설천면 문항마을로 갔다. 바다를 앞에 두고 넓은 평지를 품은 마을이 부유한 어촌같은 느낌이 들어 박씨에게 내력을 묻자 "남해에서 박사가 가장 많이 난 마을입니다"라고 자랑했다. 

문항마을 뒤 도로변 고갯마루에는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비'라는 비석이 있고 당시의 상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1919년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남해 설천면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4월 2일, 이예모의 선도로 설천면(남양, 금음, 문항) 사람들이 노상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4월 4일에는 남해읍 장터에서 태극기를 든 군중 100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부르고 군청, 경찰관주재소와 각기관을 점령했다. 

 남해 설천면 문항마을 뒤 고갯마루에는 '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비'가 서있고 설천면 출신 독립만세운동 주동자들 중 맨 마지막에 '정남섭'의 기록이 있다. 정남섭은 윤동주 시인을 세상에 알린 정병욱의 부친이다.
▲  남해 설천면 문항마을 뒤 고갯마루에는 '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비'가 서있고
설천면 출신 독립만세운동 주동자들 중 맨 마지막에 '정남섭'의 기록이 있다.
정남섭은 윤동주 시인을 세상에 알린 정병욱의 부친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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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통분하게도 23명은 검거돼 1년 내지 3년간 옥고를 치렀고 정학순은 순국했다. 비석 글귀에는 설천면 주동자 중 맨 마지막에 정남섭이 선명히 기록되어 있었다.   

요즘 매스컴을 보면 심심찮게 친일파 자손들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대를 이어 나라를 어지럽히는 이들을 보며 굳건한 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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