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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문 편집인, 발행인 - 퓨리처
2017년 02월 14일 04시 32분  조회:3876  추천:0  작성자: 죽림

조지프 퓰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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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퓰리처

조지프 퓰리처(영어: Joseph Pulitzer1847년 4월 10일 ~ 1911년 10월 29일)는 미국의 언론인이자 신문 경영자이다.

 

 

생애[편집]

헝가리 머코 출생으로 출생 당시에는 풀리체르 요제프(헝가리어: Pulitzer József)로 불리었다. 1864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남북 전쟁 때 돈을 벌기 위해서 북군의 기병대에 참가하였고 1867년 미국에 귀화하였다. 1868년 ~ 1873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웨스틀리체 포스트》의 기자가 되었으며, 이때 정계에도 진출하여 1869년 미주리 주 의원이 되었다. 1878년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를 사들여 《이브닝 포스트》와 합병한 뒤 《포스트 디스패치》로서 창간하였고 이어 1883년 경영이 부진한 《뉴욕 월드》를 사들여 뉴욕으로 진출하였다. 다시 1887년부터는 석간 신문 《이브닝 월드》를 발행하였고 또 다른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저널 아메리칸》과 경쟁하며 옐로저널리즘이란 악명을 남겼다. 그 사이 1884년 건강을 해쳐 시력 감퇴와 신경쇠약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다.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 모금 운동[편집]

1884년, 조지프 퓰리처는 미국 하원 의원 선거에서 뉴욕 주 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는데, 그가 하원 의원으로서 활동을 펼칠 때인 1885년에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차원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했지만, 그 당시 미국 정부의 재정 상태가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에 여신상의 받침대 비용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난감한 처지에 있었다. 조지프 퓰리처는 그의 신문사 뉴욕 월드를 통해 모금 운동을 펼쳐 10만 달러가 넘는 기부 성금이 모여졌으며, 1886년 10월 29일에 뉴욕 항구에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게 되었다.

퓰리처상[편집]

1903년 컬럼비아 대학에 신문학과를 개설할 때는 저널리스트 교육을 위한 기금으로 2만 2천 달러를 기부하였다.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1917년 퓰리처상이 제정되었다.





출생일 1847. 4. 10, 헝가리 마코
사망일 1911. 10. 29,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신문 편집인·발행인.

 

현대신문의 정형을 확립하는 데 공헌했으며, 당대에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언론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성장한 퓰리처는 군인이 되려 했는데, 남북전쟁(1861~65)이 한창이던 1864년 미국으로 이민해 북군으로 참전했다. 종전이 되자 그는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1868년 독일어 일간지 〈베스틀리헤 포스트 Westliche Post〉 기자가 되었다. 1871년 그 신문의 주식을 일부 사들였으나 이윤을 남기고 곧 되팔았다. 한편 그는 정치활동에도 뛰어들어 1869년 미주리 주 의회에 진출했다. 1871~72년 그는 미주리 주에서 자유공화당 창당을 도왔는데, 1872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공화당의 호레이스 그릴리를 대통령후보로 지명했다. 뒤이어 당이 붕괴한 후 퓰리처는 민주당원이 되어 평생 동안 민주당원으로 남았다.

1874년 퓰리처는 세인트루이스의 또다른 독일어 신문인 〈슈타츠차이퉁 Staats-Zeitung〉을 인수해 그 신문의 연합통신 회원자격을 세인트루이스의 〈글로브 Globe〉(나중에 〈글로브데모크랫 Globe-Democrat〉으로 바뀜)에 유리한 조건으로 팔아넘겼다. 4년 후 그는 세인트루이스의 〈디스패치 Dispatch〉(1864 창간)·〈포스트 Post〉(1875)를 인수해 〈포스트 디스패치 Post Dispatch〉로 통합했는데, 이것은 곧 세인트루이스 최고의 석간신문으로 발돋움했다.

1882년 10월 5일 퓰리처 신문의 주필이 〈포스트 디스패치〉의 정적 가운데 한 사람을 총으로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대중여론이 악화되고 퓰리처 자신의 건강도 나빠지자 그는 뉴욕의 신문으로 투자의 관심을 돌렸다. 1883년 5월 10일 퓰리처는 금융가 제이 골드로부터 뉴욕의 조간지 〈월드 World〉를 인수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이 신문을 미국에서 으뜸가는 민주당의 대변지로 바꾸어놓았다. 퓰리처는 1887년 〈월드〉의 자매지인 석간신문 〈이브닝 월드 Evening World〉를 창간했다.

퓰리처는 정치비리의 폭로와 과감한 심층보도를 시도하는 한편, 절묘한 홍보술과 요란한 자기선전 및 선정주의를 결합시켰다.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기 위해 그는 만화와 스포츠 기사, 여성 패션 기사 및 화보 등의 혁신적 수단을 신문에 도입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신문을 정보의 원천이자 오락의 도구로 만들었다. 〈월드〉는 결국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모닝 저널 New York Morning Journal〉과 불꽃 튀는 경쟁에 돌입했는데,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을 기화로 양 신문이 보여준 요란한 선정주의는 그 같은 행태를 지칭하는 '옐로 저널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1887년 시력이 떨어지고 신경병이 악화되자 퓰리처는 어쩔 수 없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890년에는 편집장에서도 물러났으나, 편집방침에 대해서는 그후에도 일정한 관여를 했다. 유언장을 통해 퓰리처는 컬럼비아대학교에 재산을 기부해 언론대학(School of Journalism, 1912 개설)을 설립하도록 했고, 퓰리처상을 제정하게 해 1917년 이래 매년 언론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자들에게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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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발행인인 죠셉퓰리처는 1849년 헝가리 곡물 중개상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다.1878년 이후 신문경영자가 된 퓰리처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포스트 디스패치> 지를 성공시키고, 1883년 뉴욕의 <월드>지를 매입했다. 퓰리처의 적극적인 신문제작 방법, 즉 일요일판의 개시, 많은 삽화와 만화, 대담한 뉴스의 게재, 부패 추방 캠페인 등으로 <월드>지는 라이벌인 허스트 사의 신문, <저널>과의 부수경쟁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 후 <월드>지는 미국내에서 주목받는 민주주의의 대표신문이 되었다. 또한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위한 기부금 모금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여신상의 발가락 끝에 있는 금속판에 새겨진 퓰리처의 이름이 지금도 남아있다. 1890년 이후 부분적으로 시력을 잃은 퓰리처는 정치활동에서 손을 떼고 신문 경영만을 계속하며 저널리스트와 신문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다 지금의 컬럼비아 대학 대학원 저널리즘과와 퓰리처상을 만들고 1911년 10월 29일, 64세의 일기로 그의 사랑하는 요트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의 유언과 당시 미화 2백만 달러의 유산으로 1917년 창설된 퓰리처상은 저널리즘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 중의 하나이다.

  퓰리처상은 저널리즘과 문학의 두 분야에서 출발했으며 줄곧 컬럼비아 대학이 퓰리처상 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시상해오고 있다.

  저널리즘 분야에서는 14개 부문의 상이 수여되고 문학 분야의 상은 픽션, 역사, 시, 전기와 자서전, 일반 논픽션으로 구분되며 음악상도 수여한다. 금메달은 저널리즘 분야의 공공봉사 부문상에 수여된다.

  사진 부문은, 인쇄매체의 발달로 신문과 잡지에서 사진의 영향력이 증대되자 1942년 저널리즘 분야에 신설되었으며 1968년부터 픽션과 피처 두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되고 있다.


 

  퓰리처상은 그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시상식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노벨상이 위대하게 여겨지게 되는 것처럼 신문, 방송인에게 특히 기자들에게 퓰리처상은 가장 명예로운 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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