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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된다. 1961년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권위있는 포멘토상을 받은 후, 그의 소설과 시는 점차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전까지 보르헤스는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은 그를 단지 기교와 재주를 지닌 장인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해낸'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반적인 언어를 가장 지속성 있는 형태로 응축시킨 작가로 높이 평가되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일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Ultraísmo)적 모더니즘 운동을 일으킨 작가로 평가된다(라틴아메리카 문학).
보르헤스는 당시 빈민구였던 팔레르모에서 자랐으며, 이곳은 뒤에 그의 몇몇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역사상 주목할 만한 그의 집안에는 영국계 혈통이 흘러서 그는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한 영국 학교의 교사였으며 박식했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그가 처음으로 읽은 책들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H. G. 웰스의 소설들, 〈천일야화 The Thousand and One Nights〉, 〈돈 키호테 Don Quixote〉 등 모두 영어책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꾸준한 자극과 모범에 힘입어 어린시절부터 문학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가족을 따라 스위스의 제네바로 갔고, 그곳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으며 제네바대학에서 문학학위를 받았다.
1919년에 그곳을 떠난 보르헤스가(家)는 마요르카와 스페인에서 1년씩을 보냈다. 스페인에서는 98세대(Generation of '98:기성작가들의 타락에 반발하여 일어난 극단주의 운동의 젊은 작가군)에 가담했다. 1921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돌아와 자신이 성장했던 도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풍부한 상상력으로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한 시들을 통해 고향 팔레르모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출판한 책은 시집 〈시(詩),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정 Fervor de Buenos Aires, poemas〉(1923)이다.
그는 또한 뒤에 관계를 끊기는 했으나, 남아메리카에서 극단주의 운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여러 권의 수필집·시집 등을 펴냈고 3개의 문학지를 창간했으며 전기(傳記) 〈에바리스토 카리에고 Evaristo Carriego〉(1930)를 완성했다.
그후 그는 순수주의 소설 창작을 대담하게 시도했다. 처음에는 〈불명예의 세계사 Historia universal de la infamia〉(1935)에 실린 단편에서처럼 다소 불명예스러운 사람들의 일생을 재구성하기를 즐겼다. 한편 생계를 위해 1938년 그의 조상 이름을 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도서관에서 중책을 맡아 9년간 그곳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38년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그로 인한 패혈증으로 거의 죽을 뻔했는데 후유증으로 그후 말을 못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정신이 온전한지를 걱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이 그에게 내재해 있던 가장 강렬한 창작력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뒤 8년 동안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했는데, 이 작품들은 뒤에 연작집 〈소설 Ficciones〉·〈알레프 외(外) The Aleph and Other Stories, 1933~69〉라는 영역판에 실렸다.
이 시기에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라는 작가와 함께 조상의 이름을 서로 결합해 만든 H.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으로 탐정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은 〈돈 이시드로 파로디의 6가지 문제 Seis problemas para don Isidro Parodi〉(1942)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실제 세계에 대한 반어적·역설적 설명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고유한 꿈의 세계를 독특한 언어와 서술 기법을 사용해 처음으로 보여주고 있다.
1946년 독재자 후안 페론이 권력을 쥐게 되자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측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도서관에서 쫓겨났다. 그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강연·편집·저술활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수필집 〈다른 종교재판들 Otras inquisiciones, 1937~1952〉(1952)에서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을 보여주었다. 1955년 페론이 물러나자 명예직인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이 되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영미문학 교수직도 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앞을 전혀 못 보게 되었는데 이 병은 그의 아버지도 겪었던 유전질환으로, 1920년부터 점차 시력이 약해졌었다.
이로 인해 그는 손으로 직접 글 쓰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어머니나 비서, 또는 친구들이 받아써주어야만 했다. 후기 작품에 속하는 〈창조가 El hacedor〉(1960)·〈가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 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1967) 등은 산문과 운문 사이의 장르 구별을 거의 없앤 작품들이다. 후기 소설집으로는 복수·살인·공포를 다룬 〈브로디에의 보고서 El informe de Brodie〉(1970)·〈모래의 책 El libro de arena〉(1955) 등이 있는데, 두 작품 모두가 민담 이야기꾼의 소박함과 자기 내면의 미로를 파헤쳐 그 핵심에 도달하려는 한 인간의 복잡한 시각을 결합시킨 우화들이다.
1961년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권위있는 포멘토상을 받은 후, 그의 소설과 시는 점차 20세기 세계문학의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이전까지 보르헤스는 자신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른 작가들은 그를 단지 기교와 재주를 지닌 장인(匠人) 정도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가 '창조해낸'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의 세계에 필적할 만한 것이라는 평을 받았고 일반적인 언어를 가장 지속성 있는 형태로 응축시킨 작가로 높이 평가되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전세계의 일반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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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 1920년대 ‘도시의 아방가르드’를 주도했으며, 1930년대에는 단편 소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등 주로 산문을 쓰면서 문학 세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경험과 환상의 세계를 뒤섞어 놓은 작품들로 환상적 사실주의의 형성과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주요 작품으로 ‘픽션들’과 ‘알렙’ 등이 있다.
단편 소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놀라운 기억력을 가진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아르헨티나 소설로, 푸네스를 통해 지각한다는 것과 사유한다는 것이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줄거리 : ‘나’는 1984년에 여름휴가를 보냈던 프라이벤토스에서 이레네오 푸네스를 처음 만났다. 1987년에 다시 그곳에 갔을 때 푸네스는 말에서 떨어져 전신 마비 상태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라틴 어 책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내왔고, ‘나’는 책을 골라 보냈다. 얼마 후 ‘나’는 책을 돌려받으러 푸네스에게 가게 되었고, 그는 그 내용을 그대로 기억하여 라틴 어로 똑같이 말했다. 푸네스는 사물 하나하나의 고유한 특징을 기억하지만 그것을 묶는 개념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추상적 사고를 하지 못했던 푸네스는 요절한다.
*수록교과서 : (문학) 신사고
호르헤 프란시스코 이시도로 루이스 보르헤스(스페인어: Jorge Francisco Isidoro L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1986년 6월 14일 스위스 제네바)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시인, 평론가이다. 1955년부터 1973년까지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의 관장직을 맡기도 했다.
연작 형태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독특한 소설 《픽션들》로 유명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1920년대에 '도시의 아방가르드(남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모더니즘 운동)'를 주도했다. 1930년대에는 단편 소설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등 주로 산문을 쓰면서 문학 세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은 작품집 《픽션들》(1940)과 《알렙》(1949)로 결실을 맺었다. 그는 시와 논픽션, 이야기체의 수필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후기 작품 중에서 《칼잡이들의 이야기》(1970)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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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시학」감상 / 이원
시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간과 물결의 강을 주시하며 시간이 또 다른 강임을 상기하는 것, 우리들도 강처럼 스러지리라는 것과 얼굴들이 물결처럼 스쳐감을 깨닫는 것.
불면은 꿈꾸지 않기를 꿈꾸는 또다른 꿈임을 우리네 육신이 저어하는 죽음은 꿈이라 칭하는 매일 밤의 죽음임을 체득하는 것.
중생의 나날과 세월의 표상을 모년 혹은 모일에서 통찰해 내는 것, 세월의 전횡을 음악, 속삭임, 상징으로 바꾸는 것.
죽음에서 꿈을 보는 것, 낙조에서 서글픈 황금을 보는 것, 가련한 불멸의 시는 그러한 것, 시는 회귀하느니, 여명과 일몰처럼.
이따금 오후에 한 얼굴이 거울 깊숙이 우리를 응시하네. 예술은 우리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멀리 겸허한 초록의 이타케가 보였을 때 애정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 예술은 경이가 아니라 초록의 영원인 그 이타케.
예술은 또한, 나고 드는 끊임없는 강물과도 같은 것. 끊임없는 강물처럼, 본인이자 타인인 유전(流轉)하는 헤라클라이토스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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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고 있었어요. 사랑의 간절함이 939살 불멸을 중지하게 한다는 판타지는 익숙한 것이지만,
모든 생을 기억하는 눈에는 심연의 슬픔과 당장의 햇빛이 동시에 담기지요. 그래서 비스듬히 보고 있다가도
남미 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소설로 더 많이 회자되지만 시로 출발하였어요.
응시하는 얼굴은 비추는 얼굴이에요. 여명과 일몰은 대립적 시간이며 대립적 시간이 아니지요.
이원 (시인) |
<언어의 미로 속에서, 나이 여든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인터뷰>
보르헤스의 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인
18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생전 그는『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심문』『정면의 달』등의 시집,『불한당들의 세계사』『픽션들』『알레프』등의 소설집, 『영원의 역사』 등의 에세이집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세계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단편소설은 종종 박식한 에세이처럼 읽히고 에세이는 시처럼, 시는 짧은 이야기처럼 읽힌다. 보르헤스는 시와 산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 몇몇 시집에 산문을 포함하기도 했다. 실제와 상상이 뒤섞인 그의 작품들은 문학 / 철학사에 혜안을 제공했고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움베르토 에코 등 걸출한 옹호자들을 낳았다.
193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에서 사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페론을 비판하여 해고당했고, 페론정권이 무너진 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1955년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었는데, 그해는 앵글로 색슨어와 고대 노르드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해로 이러한 정황들이 작품에, 특히 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61년에 국제출판인협회가 수여하는 포멘터(Formentor)상을 사뮈엘 베케트와 공동 수상했고,1971년에는 예루살렘상을, 1980년에는 스페인 국왕이 직접 수여하는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는데, 이로써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기사인 알론소 키하노와 동지가 되었다. 컬럼비아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파리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6월, 여든여섯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윌리스 반스톤(Willis Barnstone) 인디아나 대학 교수 '보르헤스의 말'을 엮은이. 인디아나대학교 비교문학 교수이자 시인, 철학자. 미국 구겐하임재단 연구원을 지냈으며, 저서로 숨겨진 성서』『하느님의 시The Poems of Jesus Christ』 등이 있다. 말년의 보르헤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문학, 철학,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창렬 번역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축복받은 집』『저지대』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토미노커』『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제3의 바이러스』『암스테르담』『촘스키』『벡터』『쇼잉 오프』 『마틴과 존』 『구원』 등이 있다.
책 소개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작가 보르헤스가 말년에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다. 애초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이 책을 소개해도 되는 걸까 싶은 의구심에 사로잡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미로와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심지어 짓궃은 속임수도 있다”는 평을 듣듯, 그가 “이 세상의 많은 것들에 늘 당황하고 깜짝 놀”라듯, 그의 말을 읽고 듣는 독자도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하기 십상이다.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설명을 들으면, 내가 느낀 의구심과 독자가 마주할 당황스러운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가 왜 그러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달갑게 여길 이는 많지 않을 게다. 보르헤스의 마법(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은 여기에서 시작되는데, 골치 아프고 멀미가 나야 할 상황인데도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고 이전 이야기가 쉼 없이 떠오른다. 이렇게 소개하는 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이 책의 핵심에 가 닿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어쩐지 보르헤스라는 구체적인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착각 혹은 얼치기 독자의 거짓말일까.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로 세계 문학사와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노년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으로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목차 ; 서문 / 후기 / 옮긴이의 말 / 보르헤스 작품 목록 / 찾아보기
비밀의 섬 / 내가 잠에서 깰 때 / 그건 여름날의 더딘 땅거미처럼 왔어요 / 나는 그저 타고난 대로의 나를 나타내지요 / 군중은 환상 / 그러나 나는 꿈을 더 선호해요 /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 시간은 본질적인 수수께끼 /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 악몽, 꿈의 호랑이 / 나는 항상 거울을 두려워했어요
책속으로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104쪽 책은 상상력의 연장이고 기억의 연장이에요. 책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일 거예요. -122쪽 우리에게 금지된 것은 없어요. 그걸 하는 것은, 적어도 시도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답니다. -155쪽 작가는 순수한 자세로 써야 해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자신의 시가 아닌 거예요. -170쪽 난 미학이라는 게 없어요. 나는 단지 시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뿐’이에요. -181쪽 시는 말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말은 단지 상징일 뿐이니까요. 시는 말의 음악성 속에 존재하는 거예요. -183쪽 궁극적으로 우정이 사랑보다 중요할 거예요. 어쩌면 사랑의 진정한 기능은, 사랑의 의무는 우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도중에 끝나버릴 테니까요. -186쪽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212쪽 나는 시를 매우 사적이고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그걸 느낄 수도 있고 못 느낄 수도 있죠. 만약 느낀다면,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274쪽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서평
눈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
1980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든의 나이로 대담을 위해 뉴욕, 시카고, 보스턴을 여행했다.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중이라는 것은 환상이에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그에게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시인이자 철학자 윌리스 반스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예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생각이움직이는 것이어서 파도 위의 잉크와 마찬가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현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그 시대에 우연히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기록하게 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반스톤은 보르헤스와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사유와 정신을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작품처럼 남겨두고자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받아 적던 플라톤을 자처하며 직접『보르헤스의 말』을 엮었다.
그의 말마따나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르헤스의 말』은 그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세계 시민적인 사고와 개방성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모색한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출신 할머니와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모국어인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이러한 유년기는 그에게 언어에 대한 개방성과 세계 시민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나는 두 할머니 중 한 분과 얘기할 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하고, 다른 분과 얘기할 땐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두 가지 방식을 스페인어와 영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244쪽
보르헤스는 고대영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도 꾸준히 공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언어 간의 유의미한 차이뿐 아니라 개별적인 음악성에도 심취했다.
앵글로색슨인들은 로마(Rome)를 로마버그(Romaburgh)라고 불렀어요. 우린 그 두 단어에 흠뻑 빠졌지요. 그리고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어요. “줄리어스 시저는 브리튼섬을 찾은 최초의 로마인이었다.”라는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그 문장을 고대영어로 읽으면 더 멋진울림이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페루라는 거리를 달리며 소리쳤어요. “이울리우스 세카세르…….”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어요.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니까요! -197쪽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다. 여기서 그가 쏟은 노력은 자신이 쓴 작품들의근원을 찾으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예술을 탐구했던 학자이고,자신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얻은 언어학적,문학적 통찰은 아이러니였다. 좌절 속에서도 지켜야 할, 생의 의지였다.
반스톤 / 당신은 마음 상태나 감정이나 지성에 관한 한 단어를 찾고 있나요? 당신이 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만약을 가정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찾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요?
보르헤스 / 참 단어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찾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살아야 해요. 그러면 나중에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도 있어요. 안 주어질 수도 있고요. 우리는시행착오를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우리는 실수를 저질러야 하고, 실수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건 평생 해야 하는 일이지요. -188쪽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죽음을 앞둔 문학가가 남긴 질문들과 답
『보르헤스의 말』은 눈멀고 나이든 문학가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는 몸과 영혼, 모두 완전히 죽고 싶어요. 그리고 잊히고 싶어요. -92쪽
고통스럽게 삶을 유지해온 보르헤스에게 죽음은 “희망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는 삶을 악몽처럼 견뎌왔기에 죽음을 매 순간 도래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에나돌아올 수 있어요. -38쪽
인터뷰 속에서 보르헤스는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삶도 죽음처럼 매 순간 돌아오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삶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 보르헤스는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를 통해 언어를, 아름다움을 탐구해나갔다. 말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새로운 돌파구로써 작용하기도 했다.
직접적이고 내밀한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 글과 비슷하되 전혀 다른 매체였기에, 그가 삶을 대하는태도마저도 바꾸어놓았다. 그러므로 『보르헤스의 말』은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기가남긴, 독특하면서도 유일한 형식의 ‘작품’일지 모른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
. 황현산 문학평론가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르헤스 본인은 정신이 늘 메말라 있었다고 말한다. 뚫려 있는 길의 끝까지 갔다는 말이 되겠다. 대화록인 이 책에서 그는 그 뚫린 길을 어떻게 만났고, 또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가볍고도 명석한 언어로 말한다.
그가 시력을 잃고 모든 글을 구술해서 쓰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구어가 문어의 논리성을 확보하고 문어가 구어의 구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신기한 문체의 한 기적을 보여준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재미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년 8월 24일 - 1986년 6월 14일)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 평론가이다. 현대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제임스처럼 거의 정규적인 교육과는 거리가 먼 성장기를 보냈다. 대신 그는 역시 헨리 제임스와 마찬가지로 영국계인 외할머니와 가정교사인 팅크 양으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등 개인 교수를 통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았다. 그는 이미 일곱살에 영어로 《그리스 신화》 요약을 썼고, 여덟 살에는 《돈키호테》를 읽고 영감을 받아 〈치명적인 모자의 챙〉이라는 단편 소설을 썼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영어 단편 〈행복한 왕자〉를 에스파냐어로 번역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작가인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꽃피웠으며, '제 2세대' 라틴아메리카 예술가들이 세계적으로 도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보르헤스는 라틴아메리카를 벗어나 프랑스의 신소설가들을 비롯 존 바스, 존 허크스, 도널드 바셀미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반사실주의 세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경험과 상상의 세계는 문제를 야기하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점에서 사뮈엘 베케트에 버금간다. 보르헤스는 1938년 어두운 계단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이로 인한 패혈증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다. 단편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라는 단편은 자신의 맑은 정신과 판단력을 잃었다는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 쓴 작품이다. 1950년대 중반 보르헤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시력 약화 증세로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다. 보르헤스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어머니는 그에게 글도 읽어주고 창작 활동도 도와주었다. 보르헤스는 예순여섯 살에 어릴 적 친구였던 여성과 처음으로 결혼하지만 3년 만에 헤어졌다. 그리고 숨지기 몇 주 전에 자신의 제자이자 비서인 여성과 재혼했다. 보르헤스는 앞을 못 보면서도 강의를 하러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또 20세기의 매우 영향력 있는 국제적 명성도 날로 높아만 갔다. 보르헤스의 업적은 일관성과 가능성에 의해 어색해진 소설의 편협한 박진감을, 환상이 섞인 보다 광범위한 마음의 작용으로 대체시키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상상력은 납득할 수 없는 것에도 형태를 만들어준다. 이야기꾼의 책략을 흔쾌히 받아들인 보르헤스는 하나의 일관된 이중 초점을 유지해 가면서, 언어와 독서에서 세계를 반영할 때 나타나는 역설과 함께 경험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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