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
- 2017.2.16 윤동주묘소에서/ 심명주
1.
2월의 룡정 동산, 깊은 겨울에서 깨여난 날씨가 아직 거둬가지 못한 싸늘한 바람으로 성성하니 산길을 맴돈다. 아침 7시반이라 아직 얼음이 미끌거리는 위태위태한 산등성이를 톺아 동산마루 큰길에 들어섰다. 이른 봄 낯선듯 익은 산의 기운들이 확 안겨온다. 립춘이 지난뒤에 추운 날씨가 이토록 바장이는것은 해빛의 세례가 아직 완연하지 못한 까닭이요 더구나 바람을 안고 갈길을 담금질하는 사람맘이 은근한 초조함과 벌써부터 맞혀오는 그리움으로 얽혀있는 까닭이다.
동산 산마루에 올라 익혀둔 큰길을 따라 한참을 달리니 <윤동주묘소>라고 쓴 패쪽이 타향에서 만난 지인처럼 반갑게 안내해준다. 얼마전에 내린 흰눈들이 아직 도톰한 이불인양 갖가지 옛말이 다듬이된 줄느런한 묘소들을 메워주는 사아사이를 가로질러 정갈한 정원을 방불케하는 윤동주의 봉분앞에 다다랐다.
소담하게 쌓인 묘 앞켠 량쪽에는 키높이로 자란 소나무 두그루가 변함없는 푸름을 선사하고 다시 그 뒤 량옆으로 장성한 박달나무 두그루 역시 예전의 문무호위인듯 혹은 시인의 성품인듯 어질게, 그러나 드팀없이 서있다.
눈이 내리고 또 바람불기를 몇십성상이던가. 이른 아침 잠간 광명을 선사한 해돋이는 어느사이 모습을 감추고 낮은 하늘에는 푸근한 구름층이 덮여있다. 그들의 보우로 어제까지 싸하던 바람날씨에서는 봄을 예고하는 훈훈함이 묻어난다.
룡정.윤동주연구회(룡윤회)의 주최로 진행될 <백명의 시민, 백년의 시인을 노래하다>라는 테마의 윤동주추모 행사에 동참하고저 조금뒤 이곳으로 200여명의 시민들이 모일것이니.
2.
오전 9시반, 묘소 봉분 량옆의 푸른 소나무에는 룡윤회 회원들이 직접 손으로 한송이 한송이 정성들여 만들어 달아놓은 몇백개의 희디흰 종이꽃들이 목련마냥 소담히 피여있었다. 흰 생화로 한광주리 가득 메운 꽃바구니도 묘소곁에 다복히 놓여있었다.
범상치 아니한 시인의 과거를 뜻하는듯 옅은 흙색을 바탕으로 프린드된 프랑카드. 그 오른쪽 크낙한 한면을 감성적이나 강인한 시인의 흑백 모습이 바탕색과 강렬한 조화를 이루어 눈길을 끌고, 프랑카드 왼쪽은 짙은 락엽색의 손바닥인양 <윤동주>라는 검은테의 하얀 이름 석자를 오연히 떠받치고 있다. 하늘과 땅을 잇닿아주는 오롯한 병풍처럼 두개의 대형 프랑카드는 묘소뒤 그리고 묘소 맞은편 나무에 각각 세워져 서로 호응하듯 어우르듯 곧 도착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을 기다려 일사불란히 달려온, 유표한 명찰을 앞섶에 드리운 룡윤회 회원들은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묵묵히 대기중이였고; 곧 다가오는, 기억에 새겨질 장면 한컷이라도 놓지지 않으려는듯 드론(航拍机)촬영과 미리 준비된 음향설비가 시민들을 맞이할 자세로 가지런히 세팅되여 있었다.
9시 50분 좌우, 드디여 서향받이 묘소의 비탈뒤로 재를 넘어 길게 뻗은 큰길에 대형 뻐스 3대가 나란히 도착했다.
초봄속에 무연히 스러진 길곁의 허랑한 옥수수밭을 배경으로 정거한 차가 문을 열었다. 그리자 차속을 발원지로 질서정연하고 숙연한 분위기의 검은색 물결이 묘소쪽을 향해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석대의 차량속에서 세 줄기로 나뉘어 흘러내리던 물결들은 자드락에 누운 묘소를 겨냥한 사이곬에 들어서면서 이윽고 한갈래의 길고 장중한 모듬강줄기로 변하여 묘소를 향해 흑룡인양 검게, 유연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푸른잎을 띄운 작고 아담한 흰 조화를 정중히 달고 천편일률로 고인명복을 기원하는 무거운 분위기의 복장을 착복한 사람들. 그 시민들속에는 머리발이 하얀 팔십여세 지존의 어르신이 계시는가 하면 이제 눈발을 헤치고 곧 봄눈을 녹이며 땅속에서 돋아오를 햇풀같이 싱싱한 칠팔세받이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남녀로소 세대가 폭넓게 포용되여 운집된 사람들속으로 맑고 발랄하고 깨끗한 눈망울의 고인 윤동주의 어린 모습이 보였다가, 백년을 날아 잠시 지상을 소풍하러 내려온 하늘의 별- 희끗한 머리발의 백세 윤동주의 환영이 엇갈려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3.
기승부리던 산바람이 잠풍으로 가라앉았고, 몇백명 시민들의 움직임마저 짓누른 고요가 묘소주위를 틈없이 꽉 메웠다. 드론의 비행소리가 나지막히 창공을 가르며 예언자인듯 시간의 흐름을 가리켜주고, 이미 사람들은 시인의 령혼에 빙의된듯 절절한 추모에 젖어들었다.
제전에 따라 올리는 한잔 한잔의 술들은 그리움의 이슬이요 저승강에 흩날리는 파도가 아닌가.
1917년에 태여나 1945년에 떠나기까지 순간인양 짧았던 시인의 생몰력사이다. 어두운 시대와 타협하여 범인凡人으로 함몰되기를 거부하고 하늘, 바람과 별에 의탁하며 끝없는 성찰과 참회로 거듭나기를 이어온 백년의 우주 소울-윤동주, 그 앞에 따르는 제전술은 그이의 령혼과 만나는 징검다리임에랴.
그리고 펼쳐진 시읊기 향연. 찬란한 이십대의 나이에 적어 남긴 <새로운 길>, <자화상>, <별헤는 밤>, <또 다른 고향> ... 시인의 동시에서마저 이국땅 정착의 아픔이 묻어있거니, 묘소앞에서 읊는 시인의 시 한수한수 그대로가 다시 여운으로 회귀되여 사람들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기를 받아 이음이려는가 마지막으로 이백명 시민은 동성으로 시인의 <서시>를 읊어 그 소리가 하늘가에 닿았거니.
불우한 시대를 거쳐 하늘을 가로지른 혜성인양 세상에 굵직하게 이름을 박은 별의 시인은, 저 창공 어딘가에 서서 회심의 미소를 보내고 있을가.
백년을 거쳐 이곳에 다시 날아온 사람아, 사람아, 시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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