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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는 "관념어"와 친척이 옳다?... 아니다!...
2017년 02월 21일 00시 21분  조회:2789  추천:0  작성자: 죽림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안도현

일상어와 시어

 

(말이 늙으면 시는 죽으리)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있고 어떤 말이 시가 될 수 없을까일상어와 시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이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분분하지만대체로 모든 일상어가 시어로 쓰일 수 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문장과 대화에서 쓰이는 모든 말은 시어가 될 수 있다우리 현대시에는 표준어뿐만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방언과 비속어까지 심심찮게 시어로 등장했다김용택은 환장하것네 환장하것어농사는 우리가 쌔빠지게 짓고쌀금은 저그들이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풍년 잔치는 저그들이 먼저 지랄”(<마당은 비뚤어져도 장구는 바로 치자>)이라며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노골적으로 농민들의 편을 든다김진경은 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배에다 바람을 잔뜩 집어넣구가시를 있는 대루 세우믄 누가 무서워헐 줄 아남유”(<복어새끼처럼 왜 그런대유>)하고 충청도 말로 능청을 부린다안상학은 보래요삼시세끼 빵만 묵고 살라믄 살니껴대한민국 워델 가도 그런 사람 없을께시더”(<강씨 FTA>)라면서 경북 안동 말을 시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김수영이 일찍이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자한참 후에 이에 화답하듯 황지우도 풍자의 대열에 합류한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 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주물러주었다.”(<徐伐셔발(#아래아!!#), 셔블서울, SEOUL>)이에 질세라 박남철은 한 발 앞서간다. “내 시에 대하여 의아해하는 구시대의 독자놈들에게차렷,열중쉬엇차렷,”(<독자놈들 길들이기>) 하고 호통을 친다.

 

현대어뿐만 아니라 중세국어영어화살표 같은 기호까지 시어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그리고 문장에 쓰이는 마침표·쉼표·물음표·따옴표·줄표와 같은 부호가 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심지어 옥타비오 파스는 침묵도 말이라고 한다. “침묵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데침묵은 무()가 아니라 여전히 기호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활과 리라>)

 

그런데 시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강철 조각이 아니다적어도 용접공이 강철과 강철을 이을 때 일어나는 불꽃이거나 그 불꽃의 뜨거움이거나 불꽃이 내장하고 있는 위험한 미래여야 한다그래서 때로 시어는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순화운동에 딴청을 부리기도 한다나는 자장면보다 짜장면,메리야스보다 런닝구브래지어보다는 브라자펑크보다는 빵꾸머큐로크롬보다 빨간약이나 아까징끼가 더 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옥타비오 파스도 시적인 언어는 일상으로부터 일탈할 때 태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시적 창조는 언어에 대한 위반으로 시작한다이러한 작용의 첫 번째 행동은 말들을 지탱하고 있는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다시인은 일상적인 일들그리고 그것들과 맺고 있는 연관 관계에서 말들을 뿌리째 뽑아내어 일상적 언어의 획일적인 세계와 결별시킨다이때 단어들은 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 된다.”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전통 속에 말을 하고 글을 쓰는 우리는 한자 혹은 한자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우리 시인들은 한자의 형상이 드러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한자가 시인들을 자극하고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기호의 의미는 같지만 이라고 쓸 때와 이라고 쓸 때 그 함의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우스운 이야기 하나어릴 적에 나는 음식점 간판에 적힌 산낙지를 보고 한동안 산에 사는 낙지인 줄 알았다가재처럼 심산유곡의 돌덩이 밑 어디쯤 사는……)

 

그런데 뜻글자라고 해서 그 뜻과 형상이 다 미학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니다관념적인 한자어는 시에서 척결해야 할 대표적인 낡은 언어다시적 언어의 성취 목표를 한 50년 이전쯤에 두고 있는 사람일수록 관념적인 한자어를 쉽게 지워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유치환이 <깃발>에서 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라고 노래한 것은 1930년대 말이었고박인환이 사랑의 진리마저 愛憎의 그림자를 버릴 때라며 절망스러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였다김현승이 堅固한 고독을 발표한 때는 60년대 중반이었다이 시인들이 애수와 애증과 견고한 고독을 노래할 즈음에 그 시어들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지금 그 시어들은 시간의 무덤에서 하얗게 풍화된 죽은 말들이다.

 

무엇보다 관념적인 한자어를 써야만 그럴 듯한 시가 된다는 착각이 문제다정진규는 시에서 관념이 화자의 우월적 포즈’(<질문과 과녁>)라고 꼭 집어 말한 바 있다당신은 관념적인 한자어가 시에 우아한 품위를 부여한다고 착각하지 마라품위는커녕 한자어 어휘 하나가 한 편의 시를 누르는 중압감은 개미의 허리에 돌멩이를 얹는 일과 같다신중하고 특별한 어떤 의도 없이 아래의 시어가 시에 들어가 박혀 있으면 그 시는 읽어 보나마나 낙제 수준이다.

 

갈등 갈망 갈증 감사 감정 개성 격정 결실 고독 고백 고별 고통 고해 공간 공허 관념 관망 광명 광휘 군림 굴욕 귀가 귀향 긍정 기도 기억 기원 긴장 낭만 내공 내면 도취 독백 독선 동심 명멸 모욕 문명 미명 반역 반추 배반 번뇌 본연 부재 부정 부활 분노 불면 비분 비원 삭막 산화 상실 상징 생명 소유 순정 시간 신뢰 심판 아집 아첨 암담 암흑 애련 애수 애정 애증 양식 여운 역류 연소 열애 열정 영겁 영광 영원 영혼 예감 예지 오만 오욕 오한 오해 욕망 용서 운명 원망 원시 위선 위안 위협 의식 의지 이국 이념 이별 이역 인생 인식 인연 일상 임종 잉태 자비 자유 자학 잔영 저주 전설 절망 절정 정신 정의 존재 존중 종교 증오 진실 질서 질식 질투 차별 참혹 처절 청춘 추억 축복 침묵 쾌락 탄생 태만 태초 퇴화 패망 편견 폐허 평화 품격 풍자 피폐 필연 해석 행복 향수 허락 허세 허위 현실 혼령 혼령 화려 화해 환송 황폐 회상 회억 회의 회한 후회 휴식 희망

 

진부한 말이란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모든 경서와 옛사람들이 이미 언급한 말의 대부분이 이른바 진부한 말이다.”(김창협, <농암잡지외편시는 이런 진부한 시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다사유라는 것은 원래 그 속성상 관념적인 것이고 추상적인 법이다하지만 관념을 말하기 위해 관념어를 사용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학대행위다관념어는 구체적인 실재를 개념화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념어가 시만 좀먹고 있는 게 아니다예식장에도 있다흔해빠진 주례사가 그것이다행복과 공경과 우애와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간 주례사가 귀에 들리면 한시바삐 밥을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진정한 사랑은 개념으로 말하는 순간 지겨워진다황지우의 시처럼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늙어가는 아내에게)> 그게 사랑의 표현방식인 것이다.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하고 떠벌이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내고 나면 그 휑하니 빈자리가 몹시 쓸쓸하게 보일 것이다. 당신은 그 빈자리를 오래 응시하라당신의 상상력이 가동하기 시작할 것이고상상력은 이미지라는 처녀를 데리고 올 것이다말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그 처녀를 꽉 붙잡고 놓지 마라. 관념어를 떠나보낸 자리에 그 처녀를 정실부인으로 들어앉혀라그래도 관념어의 옛정이 그리워져 못 견디게 쓰고 싶거든 그 말을 처음 쓴 지 30년 후쯤에나 써라.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읽어주겠다이시영의 <그대의 시 앞에전문이다나는 이 시에서 고독이라는 말을 발견하고 온몸이 찌릿찌릿해졌다이쯤은 되어야 고독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고독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그건 사기리

밤새도록 앞뜰에 폭풍우 쓸고 지나간 뒤

뿌리가 허옇게 드러난 잔바람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로이 위태로이 자신의 전존재를 다해 사운거리고 있다.

 

 

형용사를 멀리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한심한 언어 -

 

커다란 황금물감 푹 찍어

가을들판에 가만가만 뿌려 놓았다

탱글탱글 누우런 벼이삭

살랑살랑 가을바람 불어오면

빠알간 고추잠자리

두둥실두둥실 흥겨운 춤사위

 

참새친구 멀리 이사 가도

외롭지 않은 허수아비

허허허 허수아비의 정겨운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의 어깨춤 덩실덩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쓴 동시

 

글을 아름답게 하려고 다듬고 꾸미고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일을 수사(修辭)라고 한다이 시는 온전히 수사의 기술로 쓴 동시라고 할 수 있다시어중 명사 10그것도 2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한 복합어 형태다이 명사들은 가을을 피상적으로 바라본 결과로서 스스로 빛나는 시적영감을 던져주지 못하고 시를 위해 동원되고 있다여기다 의성어 의태어가 7색깔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커다란 누우런 빠알간 흥겨운 정겨운같은 형용사가 쓰이고 있다이러한 부사형용사를 빼고 이 동시를 읽어 보자

 

황금물감 찍어

가을들판에 뿌려 놓았다

벼이삭

가을바람 불어오면

고추잠자리

춤사위

 

참새친구 이사 가도

허수아비

허수아비의 웃음소리에

농부아저씨 어깨춤

 

이렇게만 해도 작자가 형용사를 통해 대상을 간섭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엘리엇은 시가 정서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정서로부터의 도피라고 강조하면서 시에서 감정의 직접적인 표출을 경계했다형용사는 시인의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는 구실을 한다쉽게 시인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는 형용사가 유리한 것이다.

 

 

동사의 역동성과 종결어미의 변화 -

 

형용사의 과도한 사용은 시의 바탕이라 할 은유와 상징이 설자리를 빼앗는다이미지가 들어앉을 자리를 형용사가 차지하고 있으면 그 시는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내용이 없고 뜻은 쉽게 드러나지만 깊이가 없어 천박해 진다사물의 핵심을 표현하는데 게으른 시인일수록 형용사를 애용한다그 형용사를 따라다니다 보면 독자는 상상할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문장에서 형용사는 뒤에 오는 말(명사)을 치장하는 역할을 한다쓸떼 없는 치장은 하지 않음만 못하다특히 색채를 표현하는 빨갛다 노랗다등의 감각형용사는 아예 잊어 버려라이런 색채형용사들이 들어갈 자리에 동사의 역동성으로 채워 시를 살아 꿈틀거리게 하라기어가게 하라뛰어가게 하라날아가게 하라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깔 시간 수량등 정지상태를 표현하는데 반해 동사는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역동적 어휘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된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그러니 당신은 가능하다면 형용사를 미워하고 동사를 사랑하라. 동사는 경험과 실질의 세계고 감각의 세계다동사는 우리가 사는 얘기다자고 먹고 누고 낳고 좋아하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가 다 동사로 표현된다.

 

우리말의 언어적 특성은 조사의 종류가 많고 어미의 변화가 매우 다양하다조사와 어미의 변화에 주목하라토씨즉 조사 하나가 시의 어조와 호흡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근대이전의 시에서 주로 쓰이던 -노라 -도다 -지어다와 같은 종결어미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죽은 어미가 되었다.

 

나는 소금

좌판 위 주발이다.

지게 목발이다

헤쳐도 헤쳐도

고드름의

저문 산

새발 심지의

등잔

 

박용래 <겨울산전문

 

은유적 표현에 기대어 의미를 단정하는 ‘-이다는 70년대 시에 자주 나타났으나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요즘은 ‘-같다가 점령할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출처 :시는 강물처럼
===============///////////===덤으로 더 보기+=

 

저는 제가 유죄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반대로 저는 오로지 악에 대한 공포와 혐오만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샤를 보들레르 

 

나는 감히 견자이어야 하며 의식적으로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겠습니다시인은 모든 감각의 오랜엄청난 그리고 추리해낸 착란에 의해서 자신을 의식적으로 견자로 만듭니다사랑과 고통광증의 모든 형태들이 다 그런 것입니다아르튀르 랭보 

 

신들은 고맙게도 어떤 시의 첫 구절은 공짜로 준다그것과 화음을 이룰 둘째 구절을 불러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이렇게 하나의 단어로 시작되는 시는 아직 말을 더듬거리기 때문에’ 우발적인 단어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데,그 단어들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또 다른 단어를 불러온다폴 발레리 

 

시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완성된다작가는 그의 텍스트를 아직 모를 뿐이다고트프리트 벤 

 

시를 통해서는 개인들이 표현되기도 하지만그 개인들이 속한 계급도 표현된다또한 여러 시대의 모습이 시 속에 표현되는가 하면 인간의 격한 감정 역시 표현되기도 한다그러므로 결국 표현되는 것은 인간 그 자체베르톨트 브레히트 

 

많은 양의 작품들을 내놓는 것보다 일생에 걸쳐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낫다에즈라 파운드 

 

예술가의 과정은 계속적인 자기희생의 과정즉 계속적인 개성 소멸의 과정이다T. S.엘리엣

 

시인은 문장 속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들,기묘한 유사점들을 주의 깊게 포착하는 일종의 감시병이 된다앙드레 브르통 

 

왜 어째서 문학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야 하는가그것은 모든 신문에매일같이 모든 페이지마다 실려야 한다그러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디저트 정도로만 내놓는 문학 따위라면 죽어버려야 한다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예술 작품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련되고 잘 다듬어진 기법뿐 아니라 영감이라는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불꽃이 필요하다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언어는 리듬이 되려고 하는 본래의 경향을 갖는다마치 신비스러운 중력의 법칙에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말들은 자발적으로 시로 돌아간다옥타비오 파스 

 

대낮에 광장에서 읽는 시가 되어야 한다책이란 숱한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야 한다낯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해변에서낙엽 속에서 문득 시를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우리들이 지은 시를 소중하게 낭송할 수 있어야 한다그럴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시인이며 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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