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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열매들은 모두 둥글둥글 하다"...
2018년 04월 05일 00시 06분  조회:2442  추천:0  작성자: 죽림

<동그라미에 관한 시 모음>  


+ 열매 

세상의 열매들은 왜 모두 
둥글어야 하는가. 
가시나무도 향기로운 그의 탱자만은 둥글다. 

땅으로 땅으로 파고드는 뿌리는 
날카롭지만 
하늘로 하늘로 뻗어가는 가지는 
뾰족하지만 
스스로 익어 떨어질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 

덥썩 
한 입에 물어 깨무는 
탐스런 한 알의 능금 
먹는 자의 이빨은 예리하지만 
먹히는 능금은 부드럽다. 

그대는 아는가. 
모든 생성하는 존재는 둥글다는 것을 
스스로 먹힐 줄 아는 열매는 
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세영·시인, 1942-) 


+ 마음씨 

모나지 않은 
꽃씨 같아야 한데요. 

너와 나 사이 
따스함 묻어나면 
연한 새싹 돋아나는 
마음씨. 

흙이 
봉숭아 꽃씨 속에서 
봄을 찾아내듯 

마음씨 속에서 
찾아내는 동그라미. 

가슴 깊이 묻어 두면 
더 좋데요. 
(오순택·아동문학가, 전남 고흥 출생) 


+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시인, 1954-) 


+ 동그라미 

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동그라미를 그리다가 동그라미가 된다 
동그라미가 되어 동그라미 안에 갇히고 
동그라미가 되어 동그라미 안을 가둔다 
안데 갇히고 안을 가두는 발 빠른 동그라미가 된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속 빈 동그라미가 되고 속 없는 동그라미가 된다 
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반경의 동그라미가 되고 
그러나 가장 크지 않는 동그라미가 된다 
시작선도 끝선도 없이 그려지는 동그라미,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가 잽싸게 들어가면 
동그라미 밖의 동그라미는 나울나울 동그라미가 되고 
동그라미 안의 동그라미도 나울, 동그라미가 된다 
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웅덩이의 엉덩이에 둥글납작 엎드려 퍼지는 동그라미, 
고인 빗물이 되어 사라진 수많은 동그라미 위에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키운다 
웅덩이로 뛰어드는 빗방울은 
있는 힘껏 빨리, 있는 힘껏 멀리, 있는 힘껏 힘차게 
동그라미를 그려 제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웅덩이가 된다 
(박성우·시인, 1971-) 


+ 동그라미 

어머니는 말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오느냐 가느냐라는 말이 어머니의 입을 거치면 옹가 강가가 되고 자느냐 사느냐라는 말은 장가 상가가 된다 나무의 잎도 그저 푸른 것만은 아니어서 밤낭구 잎은 푸르딩딩해지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 일항가 댕가 하기에 장가 가는가라는 말은 장가 강가가 되고 애기 낳는가라는 말은 아 낭가가 된다 

강가 낭가 당가 랑가 망가가 수시로 사용되는 어머니의 말에는 
한사코 ㅇ이 다른 것들을 떠받들고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살았다는 어머니 
일생을 흙 속에서 산, 

무장 허리가 굽어져 한쪽만 뚫린 동그라미 꼴이 된 몸으로 
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가진 것을 퍼주신다 
머리가 땅에 닿아 둥글어질 때까지 
C자의 열린 구멍에서는 살리는 것들이 쏟아질 것이다 

우리들의 받침인 어머니 
어머니는 한사코 
오손도순 살어라이 당부를 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둥글게 하는 버릇이 있다 
(이대흠·시인, 1968-) 


+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둥글게 둥글게 제비새끼처럼 앉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밥숟가락 높이 들고 
골고루 나눠주시는 고기반찬 착하게 받아먹고 싶다. 
세상의 밥상은 이전투구의 아수라장 
한 끼 밥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그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짐승으로 변해버렸다. 
밥상에서 밀리면 벼랑으로 밀리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하이에나처럼 떠돌았다. 
짐승처럼 섞은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남의 밥상을 엎어버렸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 어머니의 둥근 두레판에 앉고 싶다. 
어머니에게 두레는 모두를 귀히 여기는 사랑 
귀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가르치는 
어머니의 두레판에 지지배배 즐거운 제비새끼로 앉아 
어머니의 사랑 두레먹고 싶다. 
(정일근·시인, 1958-) 


+ 동글동글 

세상의 모든 씨앗들은 
동글동글하다 

그 작은 동그라미가 움터 
파란 잎새들이 돋고 

세상의 어느 모퉁이를 밝히는 
방실방실 꽃들이 피어난다. 

세월의 강물에 깎이고 깎인 
조약돌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가 손 같은 동그란 조약돌 하나 
가만히 만지작거리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 없고 
평화의 파도가 밀려온다.  

흐르는 세월의 강물 따라 
이 마음도 날로 동그랗기를.... 
(정연복, 1957-) 


+ 동그랗게 

꽃잎에 구르는 
이슬처럼 
동그랗게 살고 싶다 

세월은 가고 
사랑도 가고 

사랑의 추억 하나 달랑 남는 
가난한 생명 

어느새 
나의 목숨도 많이 야위어 

반달을 지나 
하현달로 접어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영영 
동그란 보름달이고 싶다 

세상살이야 모질고 각박해도 
마음마저 그래서는 안 되는 것 

동그랗게 동그랗게 
서로 안아주며 살아야 하는 것 

나 죽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동그라미 같이 
순하고 아름다웠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정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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