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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예쁜 포장지속에 들어있는 빛나는 보석이여야...
2017년 02월 22일 17시 18분  조회:2271  추천:0  작성자: 죽림
 

 

 

 

 
 

 

윈난(운남)성 군구(軍區) 지뢰제거 지휘부, 마리포(麻栗坡)현 바리허둥산(八裏河東山)에서 지뢰제거 하다... 중국-베트남 국경지역에서ㅡ


시(詩)는 감춤의 미학(美學)이다 



시를 은유적으로 진술하면 여인의 한복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시=한복) 
목부터 발끝까지 몸을 완전히 가리고 덮은 옷, 성적 매력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지지 않는 여성이 제거된 상태 그러니까 머리부터 발 밑까지 내려가면서 점점 넓어지고 퍼지는 전형적인 산의 모습인 이등변 삼각형 속에 인간이 묻힌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여인에게서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가슴라인, 허리라인, 다리라인이 완벽하게 사라진 미(美)의 실종은 말할 것도 없고 통상적으로 표현하는 날렵한 몸매인지 밥상을 다 석권한 몸매인지조차 가늠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감추고 여미는 한복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남자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당기는 하반신과 그에 따르는 각선미를 도외시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인들이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상반신의 가슴마저 치마끈으로 꽁꽁 묶어 천인단애한 상태를 만들어 놓았으니 상대적 박탈감 운운 이전에 여성은 이미 에로스의 대상에서 제외된 탈 여성의 형이상학적 존재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한복은 앞 코가 뾰족한 버선과 꽃무늬 고무신으로 발의 본 모양을 대치시킴으로써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미를 불러 일으켰으며 반투명의 질감으로 전신의 모습을 우련의 상태로 만들어 매혹감을 증폭시키는 장치를 해 두었던 것이다. 즉 모시 저고리 속으로 가는 어깨 끈을 보이게 함으로써 속화되기 쉬운 욕정을 천천히 눈빛으로 더듬어가게 하는 미적 배려라든지, 또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하게 함으로써 미감(美感)의 살색을 극대화 시켜 노골적이며 천박해지기 쉬운 급진적 성욕을 반감시킨 다음, 여인의 섬세한 감정을 숨이 막힐 듯 흘러내리는 멋으로 승화시킨 혜안은 한복만이 가진 최대의 상징적 장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단선적 즐거움을 배제시키고 저고리와 버선의 합일치를 통한 곡선과 몸이 움직일 적마다 사각거리는 음향을 배합한 후, 보는 이로 하여금 스팩트럼의 즐거움을 향유케 하는 고차원적 사랑의 과정을 대변하는 한복, 바로 이 한복이 시(詩)이며, 이 시가 바로 한복인 것이다. 한복은 틀림없이 시(詩)의 변형된 현시적 사물인 것이다. 

한복은 감춤의 옷이지 가림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숨김의 옷이지 막음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밝힘의 옷이지 어둠의 옷이 아니다. 한복은 분명 뜨거운 감성을 용해시키기 위해 걸친 것이지 음흉한 시선을 거부하기 위해 감싼 것이 아니다. 덧붙이면 신비스러운 몸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기 위해 한복을 도구로 삼았다는 뜻이다. 

한복이, 몸의 아름다움을 증대시키기 위해 전신을 감추고 숨겼다면, 시는, 느낌의 절묘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묘한 사상을 숨긴 것이다. 
한복이 은근함을 강조하는 굴절의 시선을 선호하며 상상력을 발동하여 무한한 황홀감에 접근토록 하는 감춤의 의상이라면, 시는 비유와 압축으로 깊은 맛을 숨긴 감춤의 미학인 것이다. 

따라서 한복이 노출을 거부하듯 시도 직설적 표현을 거부해야 한다. 한복이 은근함을 좋아하듯 시도 은근한 비유의 표현을 좋아해야 한다. 
한복이 보는 이에 의하여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나는 효과를 감춤 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게했다면, 시도 읽는 이로 하여금 곰씹는 맛의 효과를 극도로 절제된 단어와 문장 속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감춰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 부연하면,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해 보이기도 하는 <모나리자>의 그 미소의 비밀이 뭔지 아십니까?” 
이 질문은 미술에서도 감춤의 미학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춤의 미학은 이렇게 예술 전반에 펼쳐져 있는데 시에서 이것을 소홀히 하고 있어 화룡(畵龍)에 점정(點睛)이 빠진 것이나 진 배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나리자의 비밀이요? 그건 눈 꼬리와 입가에 있습니다. 살짝 그림자로 덮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감춤의 미학의 진수를 보았을 것입니다. 즐겁지 않습니까? 
< 재인식의 기쁨>을 위한 한복의 감춤, 시도 그래야 할 것 아닙니까 
역시 시는 예쁜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빛나는 보석이며 감춤의 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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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뜰 ―김수영(1921∼1968)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
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
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잊어버리고
젖 먹는 아이와 같이 이지러진 얼굴로
여름 뜰이여
너의 광대한 손을 본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 하는 억만의 소리가 비 오듯 나리는 여름 뜰을 보면서
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있는
나의 표정에는 무엇인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
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엇 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
여름 뜰이여
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
너의 뜰을 달려가는 조고마한 동물이라도 있다면
여름 뜰이여
나는 너에게 희생할 것을 준비하고 있노라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 뜰을 흘겨보지 않을 것이다
여름 뜰을 밟아서도 아니 될 것이다
묵연히 묵연히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다 


김수영은 잘도 자연에 메시지를 담아낸다.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계절 여름, 그 뜰은 나무와 풀이 뿜어내는 생기로 진동한다. 그런데 시의 ‘여름 뜰’이 전하는 메시지는 부정적이다. ‘여름 뜰’에 그 구성원들이 왕성한 생명력을 자유로이 뻗치지 못하게 통제하는 어떤 ‘광대한 손’이 있는 것. ‘이렇게는 못 살아!’ 불끈하지만 시인이 무슨 힘이 있나, 이내 젖먹이처럼 무력감을 느낀다. 이 시가 쓰인 1956년에는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를 내건 민주당 후보 신익희는 5월 5일 선거 유세차 호남으로 내려가던 기차에서 뇌일혈로 급서하고, ‘갈아봤자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로 대응하던 자유당 후보 이승만은 큰 표 차로 당선됐다. 그럼에도 진보당 후보 조봉암의 30% 가까운 득표율에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간첩이 많은 듯하다” 했단다. ‘나의 표정’을 착잡하게 만든 데는 민주당과 진보당의 후보 단일화 실패와 그 결과가 크게 작용했을 테다. 환멸과 좌절감으로 말을 잃은 중에도 시인은 ‘그러나 속지 않고 보고 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아라!>’는 당시 온 국민에게 내면화된 공포의 소리이자 그 공포의 대상에게 시인이 꼭 돌려주고 싶은 소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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