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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번역에서 인공지능에 승리했다. 21일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학교가 주최한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 대결’에서 번역가 4명이 영한(영어를 국어로) 번역과 한영(국어를 영어로) 번역에서 인공지능(AI) 번역기보다 평균 10점 이상을 더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곽중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심사평에서 “인간 번역사는 30점 만점 중 25점 내외 점수를 받은 반면 제일 나은 번역기가 15점, 나머지 두 번역기가 10점 이하를 받았다”면서 “인공지능 발전이 눈부시지만 아직 정복 못한 분야는 텍스트(text)”라고 말했다.
이날 대결에는 구글 번역과 네이버 파파고, 시스트란 번역 솔루션이 기계번역에 쓰였고 신원을 밝히지 않은 현업 전문 번역사 4명이 인간 대표로 대결에 참가했다. 주최 측은 최종 합산 점수를 발표하면서 해당 점수를 받은 번역가나 번역기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평가 기준은 총 6개 항목으로 각각 5점 만점으로 구성됐다. 항목은 크게 정확성, 언어표현력, 문장 논리 및 조직 세가지로 나뉘었다.
결과는 대결 전 예상된 것이었다. 세종대학교가 대결 당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 참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전공을 불문하고 “인간이 승리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행사를 주최한 김동익 국제통역번역협회 회장을 비롯한 전문가들도 축사와 사전 토론 시간을 통해 인간 승리를 예측했다.
김동익 회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불안함은 인간번역이 필요 없어지나 하는 부분”이라면서 “우리는 지식이나 판단을 기계에 맡기지 않으며 조금의 오류도 인간이 발견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은 번역 문화가 더 고급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인공지능 번역의 발달을 보고 활용분야는 어떻게 넓힐 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유석 시스트란 상무(왼쪽부터)와 신석환 솔트룩스 부사장, 허명수 한국번역학회 회장, 곽성희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애드리안 호주 맥퀄리 대학 교수가 21일 '인간 대 인공지능 번역대결' 부대 행사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 사진=민보름 기자
이번 대결에는 4가지 출제 지문이 쓰였다. 비문학에서 각각 영한 번역과, 한영 번역 지문이 따로 나왔고 문학에서도 영한, 한영 번역 지문이 출제됐다. 출제위원단은 통번역대학원 시험 방식대로 인터넷에 번역문이 없는 지문을 찾아 출제했다. 난이도는 변별력을 위해 높게 정해졌다.
이 4개 지문 중 특히 문학에서 승패가 크게 갈렸다. 곽 교수는 “특히 문학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며 “기계 번역이 어쩔 줄을 몰랐다”고 강조했다. 상징적이거나 간접적인 표현,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문학 번역은 기계번역이 인간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비문학에서도 인간 번역사들은 우위를 지켰다. 비문학 영한 번역 출제문은 미국 폭스(Fox) 방송국 비즈니스 뉴스 중 “레고, 영화를 통해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도약하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경제뉴스는 온라인 상에서 수집 가능해 번역기가 학습하기 좋은 대상이다.
곽 교수는 “그나마 3개 번역기 중 한 개가 훌륭하게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번역기를 개발한 회사가 어디인지 함구했다.
결과 발표에 앞서 허명수 한국번역학회 회장은 번역을 넘어 통역 분야로 가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기가 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기계번역이 결국 음성으로 받은 텍스트를 음성으로 답변하는 통역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기계가 사람의 태도, 음성, 눈빛 등 인간이 가진 변수를 기계는 감히 따라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속도에서만큼은 기계번역이 압도적이었다. 기계번역은 원래 정해진 시각인 2시를 약 10분지나 진행됐다. 3개의 노트북 PC가 각각 A와 B, C 컴퓨터로 나눠 각자 구글, 시스트란, 네이버 번역 시스템에 접속해 출제 문장을 넣고 동시에 버튼을 눌렀다. 결과는 참가자들이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나왔다.
인간 번역가 4명은 1시 10분부터 2시까지 각자 가, 나, 다, 라 PC에 번역문을 작성했다. 이런 시간 구성은 기계보다 번역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인간 번역가들을 배려한 것이었다.
김유석 시스트란 상무는 “방대한 사전이나 어휘를 사용할 수 있는 인간과 비교하면 현재 시점에서 컴퓨팅(computing)에 한계가 있는 기계가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같은 단어나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전문분야에서는 기계번역이 유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3년간 인공신경망기술(NMT)이 번역 소프트웨어에 적용되면서 기계번역 기술은 급성장했다. 그 결과는 문법 기반 기술부터 구문 번역 기술까지 지난 30년간 발전했던 성과를 넘어섰다. 그러나 신경망기술이 적용된 번역 서비스 출시는 불과 작년부터 본격화됐다. 네이버 파파고는 지난해 9월, 구글 신경망번역은 지난해 10월 출시됐다.
이에 대해 번역 업계가 기계번역 발달로 위기감을 느끼기보다 더 고차원적인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번 행사에 자원한 번역가 4명은 모두 국제통역변역협회 소속으로 5년이 넘는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곽 교수는 “흔히 번역기가 번역을 잘 한다고 하면 비교 대상은 아마추어 번역사”라면서 “구글 알파고와 대결한 이세돌 9단이 바둑계 최고인 것처럼 번역기도 최고의 전문 번역가들과 대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은 AI가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면서도 “번역기보다 못한 번역을 하는 번역사는 자연 도태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번역사는 끝까지 AI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적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공지능 솔루션 기업인 솔트룩스의 신석환 부사장도 “우리가 지식이나 판단을 기계에 맡기지 않 듯 조금의 오류도 인간이 발견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며 “초기에 자동번역이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만큼 번역사 입장에서는 더 고급화된 역할로 나아가면서 분야를 넓힐 기회를 찾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 출제 지문
▲비문학 한글지문
[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중 ‘셀프빨래방’ / 김서령 (문자 수 157)
▲문학 한글지문
[어머니와 딸] / 강경애 (문자 수 142)
▲비문학 영어지문
How a Movie Propelled Lego Back to the World's Most Powerful Brand/ Ben Brown (단어 수 220)
▲문학 영어지문
Thank You For Being Late/ Thomas L. Friedman (단어 수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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