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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연과 타인의 생을 기웃거리는 촉매자이다...
2017년 03월 29일 21시 57분  조회:2501  추천:0  작성자: 죽림

퍼포먼스 시와 하이퍼시의 창조적인 공간 속에 펼쳐지는 사유의 세계

                                                  

                                               -이선 첫 시집 『빨간 손바닥의자』

 

 

                                                                                                                     심 상 운(시인, 평론가)

 

1. 들어가는 글

 

 이선 시인의 첫 시집 『빨간 손바닥의자』에 담긴 55편의 시들은 도전적인 자세와 거침없이 펼쳐지는 창조적인 이미지의 공간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 충격은 첫째로, 이 시집의 1부에 수록된 퍼포먼스 시편들이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공연시(perfomance poetry)의 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구체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작은 현상 같지만 시사적(詩史的)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된다. 극시나 시극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1시간 이상 공연되는 연극의 대본(희곡)이지만, ‘퍼포먼스 시’는 보통의 짧은 서정시를 시인이 5~7분 동안 무대에서 연출하여 보여주는 시이다. 그래서 퍼포먼스 시는 이미 존재하는 극시나 시극과는 성격이 다른 독립성을 갖고 시사적인 면에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이 시집의 퍼포먼스 시편들은 ‘공연을 위한 시’의 극적 요소가 창작과정에서 의식적으로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인 자신이 공연을 통해서 시의 이미지를 온 몸으로 시현(示顯)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이선 시인은 자신이 시인이면서 배우라는 투철한 자기인식 속에서 자신의 시를 적극적으로 공연(公演)하고 있어서 다른 시인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퍼포먼스는, 획일적인 무대에게 주는 나의 문학을 향한 ‘사랑 이벤트’다. 시낭송 퍼포먼스에 대한 사랑, 완성된 무대를 향한 노력과 열정은 평생 내 문학적 목표가 될 것이다.”(시인의 말)라는 그의 말이 시에 대한 열정을 얼마나 뜨겁게 나타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런 그의 열정적 행위는 1960년대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현실참여시의 깃발을 들고, 큰 충격의 결과를 남기고 간 김수영 시인이“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1968,「詩여, 침을 뱉어라」에서 발췌)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이선 시인의 퍼포먼스 시와 김수영의 현실참여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곳에 위치하지만 시에 자신의 온 몸을 던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둘째로는 <하이퍼시>에 대한 도전이다. 그는 21세기 새로운 시론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고 예리한 언어적 감성으로 개성적인 하이퍼시를 써 내고 있다. 이 시집 2부에 수록된  하이퍼시에 대해 그는 “하이퍼시의 목표는 ‘새로움’과 ‘초월적 개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이퍼시를 쓰면서 ‘회화성’과 ‘공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지털적 영상감각을 도입하여 시를 디자인한다.”(시인의 말)라고 하면서 하이퍼시와 퍼포먼스 시의 창조적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하이퍼시의 영상성을 퍼포먼스 시에 도입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이 밖에도 3부에서 보여주는「가족(이웃들)」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존재론적 의식 추구와 그늘진 현실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던져주는 전율감도 충격적이다. 4부 「야생화」, 5부「표절시비」등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왜곡된 현실에 대한 그의 불안과 분노, 구원의식은 독자들을 깊은 사유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이 시집의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문제에 대한 친절한 해답을 주는 대신 문제에 대한 ‘화두(話頭)’를 던지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것이 이선 시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작용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의 제목을 <퍼포먼스 시와 하이퍼 시의 창조적인 공간 속에 펼쳐지는 사유의 세계>라고 했다. 가상현실과 현실의 이미지에는 무의식 속을 흐르는 사유(思惟)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포퍼먼스 시

 

 20세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1981)은 언어에서 “기표와 기의는 처음부터 일치하지 않으며 다만 경우에 따라 기표가 ‘기의에 닻을 내리는 곳’이 존재한다.”고 했다. 따라서 눈앞에 실재하는 것은 기표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기표의 이미지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같이 은유와 환유의 구조로 되어있다.  따라서 무의식(無意識) 속 욕망은 환유의 기표로 부상(浮上)한다. 이선 시인의 퍼포먼스 시는 이런 언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현대시의 창조적인 변화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는 ‘시+공연’의 방법으로 은유와 환유의 구조로 형성된 신명나고 즐거운 새로운 시의 마당을 펼쳐보이고자 한다. 이 시집의 표제가 된 첫 번째 시 「빨간 손바닥 의자」에는 그런 시인의 의도가 표출되어 있다.

 

눈 덮인 수명산 공원까페, 빨간 손바닥의자/(지금 여기)/앉아있는, 긴 머리 여류시인// 엉덩이를 종일 받쳐주던/ 의자가 그녀를 떠나버린 뒤부터였을까?/ ―뒤가 늘 허전한 그녀//지금 그녀를 떠받들고 있는 손들도/ 언제 갑자기 빼버릴지 몰라,/뒤에서 몰래 꽈당 넘어뜨린, 그 손/ 내리 누르는 엉덩이 힘이 버거운가?/ 지난번보다 빨간 손가락이 아래로 처졌다/ 불안하다,// 문득, 의자가 아픈 손가락을 오므리면?/ 그녀 엉덩이를 빨간 손가락이 비틀면?/ ―샤갈의 추상화, 하얀 탁자 위, 파란 유리컵, / 주르르, 흘러넘치는 헐렁한 물의 엉덩이,/ 한 컵 푸른 사과향기// 하얀 접시 위, 피자 위, 소년의 잘 익은 눈빛 위,/ ―토마토페이스트처럼 붉은 뺨, 소녀/소녀 엉덩이 아래, 의자 엉덩이 아래,/ ―가볍게 눌려 킥킥대는 농담// “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고무줄 끊던 짓궂은 소년, 새까만 손/ (그때 거기)/ 싱거운 농담도 따뜻했다,// 빨간 손바닥 의자,/ 미끄러지는 늙은 여자의 엉덩이를/ 다시 끌어다 앉힌다// ―빨간 손바닥 의자」전문

 

 이 시에서 무엇보다 먼저 감지되는 것이 퍼포먼스의 기본이 되는 ‘행위(行爲)’이다. “뒤에서 몰래 꽈당 넘어뜨린”, “문득, 의자가 아픈 손가락을 오므리면?”, “주르르, 흘러넘치는 헐렁한 물의 엉덩이” 등 시 속에서 벌어지는 동적상황이 그것이다. 시인은 리포터의 위치에서 은유와 환유로 형성된 상상의 언어와 행위의 이미지로 하나의 상황을 제시하고 독자(관객)를 그 세계로 유인한다. 그래서 이 시에서 ‘빨간 손바닥의자, 긴 머리 여류시인, 그녀의 엉덩이를 종일 받쳐주던 의자, 샤갈의 추상화, 하얀 탁자 위, 파란 유리컵, 소녀/ 소녀, 미끄러지는 늙은 여자의 엉덩이’ 등은 한 여자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은유와 환유의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추상적(抽象的) 상상은 이선 시인의 무의식의 표출이라고 유추된다. 시인은 자신의 무의식을 객관화하여 시적상황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의해 불안한 현재, 푸른 사과 향기 같은 환상적인 과거의식, 그리고 빨간 손바닥 의자에서 미끄러지는 늙은 여자의 모습(미래)은 시인자신의 존재의식이 담긴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선 시인은 이 시를 각색(脚色)하여 보여줌으로써 퍼포먼스 시의 한 모델을 제시한다.

 

 

 

9) 뒤에서 몰래 꽈당 넘어뜨린, 그 손/ (7-9행 모션: 의자를 바닥에 꽈당, 소리가 나게 쓰러뜨린다)/ 10) 내리 누르는 엉덩이 힘이 버거운가?/ 11) 지난번보다 빨간손가락이 아래로 처졌다/ 12) 불안하다,/ 13) 문득, 의자가 아픈 손가락을 오므리면?/ 14) 그녀 엉덩이를 빨간 손가락이 비틀면?/ 15) -샤갈의 추상화, 하얀 탁자 위, 파란 유리컵, / 16) 주르르, 흘러넘치는 헐렁한 물의 엉덩이, / 17) 한 컵 푸른 사과향기/ (10-12행 모션: 일어나서 의자를 의리저리 만져본다)/ (의자를 툭툭, 두드려본다)/ (13행 모션: 손을 치켜들어 관객에게 보이며 손가락을 앞으로 오므린다)/ (14행 모션: 손가락을 펴서 엉덩이를 찝는다.)/ (15행 모션: 탁자위의 유리컵을 든다) / (16행 모션: 컵을 들고 물을 주르르, 흘러넘치도록 따른다)/ (17행 모션: 컵을 코에 대고 행복하게 냄새를 맡는다) ―퍼포먼스「빨간 손바닥 의자」부분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도 존재의식의 객관화라는 점에서「빨간 손바닥 의자」와 같은 무의식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추상적인 상상에서 벗어나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라는 사실적 화두(話頭)를 제시하고 자신의 존재성을 유전자(遺傳子)로 추적하는 사유가 자유분방한 상상과 결합되어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그리고 시의 화자로 ‘나’를 등장시킨 직접 화법의 기법이 시적감각을 상승시키고 독자와의 거리를 밀접하게 한다.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누군가 나를 지었다, / 작은 키, 급한 성격, 갈색 눈, 예민한 입맛,/ 가는 목소리, 큰창자 길이와 작은창자 길이,/ 누군가 내 유전자를 조립한 거다 //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 페이지가 접혀, / 뇌혈관 어디쯤 파묻혀 있을 니체, 보들레르, / 토스토에프스키,/ 이사도라 덩컨, 까미유 끌로델, 열기와 헛소리…/ 내 피는 샤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 파랑색 스카프, 파랑색 가방, 파랑색 원피스,/ 나의 詩도 파랑색이다,/ 착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詩,/ 나의 詩에는 적도의 피가 들끓고 있는데/ 러셀의 연애론보다 더 겁쟁이인 불쌍한 나의 詩, / 감염되지 않은 단어가 내 시에 한 줄이라도 있을까?/ 내 생각의 껍질까지, 타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 (어머니의 눈으로 본 아버지,)/ (언니의 코로 맡은 돈 냄새,) / 내 몸의 세포조직엔 적도의 바람과 햇빛이 녹아 있다/ (한국인의 조상은 동남아인이라고 흥분하던 KBS,/ 9시 뉴스앵커, 내 두툼한 입술과 주먹코는 분명 남방계다) //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땅에다 오늘도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째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붙여주고 갔듯이, //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전문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장기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과 습성까지 전이되는 현상.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 슈왈츠(Gary Schwartz)가 처음 발견함.

 

 이 시도 각색한 시를 보여주고 있다. 3인이 등장하는데, 2인은 보조 출연자이고 1명이 주도하는 1인의 포퍼먼스 시다. 시의 내용과 퍼포먼스가 예상치 못하는 결합을 하지만 분위기를 조성하는 효과를 얻는다.

 

#1 1) 남녀 2명이 무대에 나와서 <넬라판타지아>를 부른다./ 2) 1절― 여자, 2절― 남자, 3절― 남녀 같이/ 3) 1―2절 노래하는 동안 낭송자 1은 파란 의상과 파란색 긴 스카프를 휘날리며/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며 행위예술을 한다. / 4) 춤을 추는 사람이 따로 있고, 낭송자는 시만 낭송하여도 좋다./ 5) 스카프를 휘날리며 관객 사이를 뛰어다니며 춤을 춘다./ 6) 파란색 구두를 벗어 무대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7) 스카프를 앞으로 높이 들고 관객을 스텝을 밟으며 무대와 관객을 가른다./ 8) 다시 스카프를 높이 하늘로 치켜들고 춤을 춘다./ 9) 다시 관객 사이로 뛰어다니며 스카프를 뒤로 휘날린다./ 10) 관객 머리 위로 스카프를 가볍게 휘날리며 무대 쪽으로 나온다.// ―퍼포먼스「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앞부분

 

「커닝 페이퍼」에서도 시인은 자신의 존재의 모습에 잠입(潛入)하고 있다. “고개가 35도 갸우뚱 기울어버린 모델 쟌느”의 잃어버린 자유와 시인자신의 모습이 무의식의 공간에서 만나는 상상이 이 시의 밑그림이다. 시인은 오랜 시간 모딜리아니의 광기어린 눈과 그의 모델 쟌느에 대한 연민(憐憫)의 이미지를 무의식 속에 넣고 살아 온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이 “나는 몇 세기 동안 타인의 생을 기웃거린 촉매였을까?”라는 독백이 진정성을 띠게 된다. 따라서 이 시속의 모딜리아니와 쟌느는 자크 라캉이 말하는 무의식 속 타자(他者)의 환유(換喩)로 인식된다. 그것은 또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존재들이 바다에 떠있는 빙산처럼 잠재해 있다는 의미로 확대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커닝 페이퍼’의 의미도 순조롭게 풀린다. 인간의 생각이나 행위는 의식 속의 자기가 아닌 무의식 속의 타자에 의해서 조종된다는 것이다.

 

이 빠진 단어처럼/ 꽃잎이 톡, 떨어진다/ 나는 꽃잎을 집어들고/ 캔버스 속, 잃어버린 눈동자 속으로 잠입한다// 모딜리아니, 밥줄에 걸려/ 고개가 35도 갸우뚱 기울어버린 모델 쟌느,/ 그녀의 긴 목, 초록색 짝 눈// 내가 매표소에 던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론/ 쟌느의 목을 똑바로 세울 수가 없다/ 그녀의 잃어버린 자유를 드로잉 할 수가 없다// 나는 쪽동백 하얀 꽃잎을 몇 번이고 씹는다/ 모딜리아니 광기어린 눈/ (면도칼, 임산부, 붉은 핏방울, )/ 콜록콜록, 내 입속에서 기침하는/ 꽃잎// 씹다가 뱉어놓은 꽃잎, 꽃잎,/ A4 용지에 수북이 배설해 놓은, 설익은 문장들/ 수채화의 밑그림처럼 누워있는/ 커닝 페이퍼,// 나는 몇 세기 동안 타인의 생을 기웃거린 촉매였을까?// ―「커닝 페이퍼」전문

 

「퍼포먼스―커닝 페이퍼」도 1인 또는 2인의 공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델 쟌느 역할 여자 1.(시낭송자 1, 퍼포먼스 1로 시낭송과 퍼포먼스를 분리할 수도 있다)”그리고 ‘주의 집중’포퍼먼스를 펼친 후, 시낭송을 한다. 시낭송자는 낭송을 하며 동시에 시의 내용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한다. 시의 내용과 낭송자의 연기가 합치되는가. 그것이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16) 씹다가 뱉어놓은 꽃잎, 꽃잎, / 17) A4 용지에 수북이 배설해 놓은, 설익은 문장들/ 18) 수채화의 밑그림처럼 누워있는/ 19) 커닝 페이퍼,/ (16행 모션: 꽃잎, 꽃잎, - 관객을 한 명, 한 명 손을 옮기며 지적한다.)/ (17행 모션: A4 용지를 바닥에 흩뿌린다.)/ (18행 모션: 바닥에 눕는다. 태아가 웅크린 자세를 취한다.)/ 20) 나는 몇 세기 동안 타인의 생을 기웃거린 촉매였을까?/ (20행 모션: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멀리 시선을 둔다)/  * 무대조명 천천히 꺼진다.// ―「퍼포먼스―커닝 페이퍼」끝부분

 

이 외에  일상으로부터 이탈된 예술가의 고뇌를 풍자한「고흐와 설사」,가족의 관계와 자신의 존재 원소(DNA)를 우주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하이퍼적인 상상의 세계를 펼친「페르세우스 流星雨(유성우)」, 시인 자신의 현실적 모습을 냉장고 속의 식품으로 비유한 「이력서」, 사랑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열쇠를 잃어버렸어요」, 퍼포먼스 시로만 발표한 「버릇과 타성의 줄다리기」, 퍼포먼스 시로 각색한 이육사의 「광야」와 김소월의 「진달래 꽃」등의 퍼포먼스 시편들이 시적 긴장감과 일상에서 벗어난 신선한 사유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그래서 그 시편들은 독자들을 유일하고 독특한, 육감적(肉感的)인, 진정으로 유니크(unique)한 시의 열정 속으로 끌어들여 용광로 속의 쇳물로 만들 것 같다.

 

나. 하이퍼시(hyper poetry)

 

 하이퍼시는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불연속적인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다선구조), 동적 이미지를 기본으로, 독백적 서술과 주장과 설득의 거부 등을 통해서 새로운 시 형태를 추구하고 구현하려는 개혁적인 시운동이다.<한국하이퍼시클럽>에서 발간한 20명의 시 선집(anthology)『하이퍼시hyper poetry』(2011년 11월 5일 시문학사)는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벌여온 하이퍼시 운동의 결과물로 주변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이선 시인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개성적인 하이퍼시를 발표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 )와 ( ) 사이에」는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새로운 감각과 발상, 실험의식이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수상하는 제8회「푸른 시학상」을 수상한(2011년 11월 22일)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필자는 심사평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선 시인의 「( )와 ( ) 사이에」는 시어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시 속에 ( )를 넣어서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숨은 의미를 찾게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 )는 독자참여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공간은 수평적인 위치에서 독자와 시인이 소통하는 현대시의 탈구조적 형태를 구상하게 한다. 내용면에서도 “ ( )작은 괄호, 〔 〕큰 괄호 끼리끼리 몰려다닌다/큰 괄호가 작은 괄호를 [{(((())))}] 삼켜버린다 ”에서는 괄호의 의미가 확대되면서 현대사회의 갈등의 요인이 무엇인가를 도상(圖像 icon)으로 암시하는 시적 깊이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기호시(記號詩)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언어작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시가 하이퍼적이라는 점은 (  )을 통해 독자와의 소통, 무한한 상상의 확대가 가능하고 시인은 객관적 위치에서 안내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너와 나, 사이, 강물/ ( ) 안에서/ 넘치지도 않고 유유히 흐른다// 하늘과 땅의 큰 괄호 { } 사이로 /

빌딩이 자란다 / 가로수, 긴 괄호∥∥사이로 자동차가 쌩쌩 달린다 / ( )를 치고 ( )를 치고 ( )를 치고/ ( )작은 괄호, 〔 〕큰 괄호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 큰 괄호가 작은 괄호를 [{(((())))}] 삼켜버린다// 철길을 홀로 걷던, 그 사내 / 누구의 잃어버린 ( )인가? / 쇠파리 몇 마리, 사내 입술에 달라붙어/ ( ) 속, 말을 열려고 버둥댄다 //  입맞춤과 포옹은 ( )를 열고 닫는 것/ 꽃잎 닫혔던 ( ) 화르르, 열린다 // 가로수 귀를 막고 / 《》를 치고/ 위로만 나뭇가지를 뻗는다 //

  ―「( )와 ( ) 사이에」전문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샤갈의 잠」은 사과나무⟶사과⟶소녀의 꿈⟶말의 허공으로 이어지는 1, 2, 3, 4 부의 변화가 이미지의 집합적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저녁 새들은/ 해를 쪼아다 나뭇가지에 콕콕 박아 넣는다/ 사과가 빨갛게 익는다”라는 초현실적인 상상의 감각과 현실의 결합이 하이퍼시의 언어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하이퍼시를 의식하고 쓴 시는 아니지만 발상과 상상과 감각에서 하이퍼시의 요소가 감지된다.

    

1./ 꽃사과나무 기둥에 다윗의 비파를 숨겨 놓았다./ 바람타고/ 줄기타고,/하얗게 소리를 지르는 사과나무, // 저녁 새들은/ 해를 쪼아다 나뭇가지에 콕콕 박아 넣는다 / 사과가 빨갛게 익는다 // 2./ 사과나무, 제 살을 물어뜯다 지친/ 달빛 잘 익은 밤/ 비명소리, 사과 살만 골라 야금야금 먹는다 / 귀퉁이마다 하얗게 남아있는 이빨자국/ 하늘을 밀어내고/ 허공중/ 사과나무에 매달렸던 아담의 사과들/ 투두둑 떨어진다/ 달이 떨어진다 // 3./ 12시, 소녀가 꿈꾸던 신데렐라의 꿈도 달빛모양/ 땅에 떨어진다/ 펄럭이던 하늘빛 레이스자락/ 땅에 길게 눕는다/ 그 위에 빛이 흥건히 고인다// 4. / 휴식, 휴식이 필요해……/ 말은 말의 풀을 잘라먹고/ 잘라먹은 말의 허공, / 사과 나뭇가지에 끼어있던 햇살/ 휴식, 휴식이 필요해……/ 저것 좀 봐/ 저것 좀 봐/ 두 얼굴의 말이 나를 쫓아 안방으로 달겨든다/ 빨갛고 / 초록인, 어둠 //

  ―「물고기의 레이스 전봇대 위를 날다―샤갈의 잠」전문

 

「숨은그림찾기」는 숨은 그림에서 연상되는 이야기가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미지의 공간을 형성한다. 그리고 가오리, 8분음표, 성냥개비, 버섯, 화살표, 신발 등의 이미지는 숨은 그림 찾기라는 놀이 속 공간에 집합되어 있어서 이미지의 수평적 결합이라는 ‘하이퍼시’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숨은 그림 속에서 연상되는 이야기는 시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미지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놀이동산 그림>에는 여러 종류의 그림이 캡처되어 있습니다. / 숨은그림찾기는 늘 흥미롭지요? / 자,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릴렉스 릴‥렉스)// * 온 가족이 환하게 웃는 그림이 인상적이군요./ 그럼, 먼저 가오리를 찾아볼까요? / ―(아, 술안주? 취해서 어머니에게 소주병을 던지던 아버지, 벌름거리는 콧구멍)//* 흠흠, 신발도 찾아보시죠,/ ―(내 여자 친구에게 빨간구두를 사주고 영화관, 형, 거세해 버리고 싶었‥)// * 성냥개비도 어렵지 않게 찾았군요?/ ―(직장 상사가 그녀 엉덩이를 만지네. 나쁜자식! 고추를 확 불질러 버릴‥)/ * 숨은 그림에서 8분음표가 자꾸만 튀어나온다고요? / ―(아이는 무릎을 꿇고 멍멍 개 짖는 소리를 내요, 친구들 책상 옆 토끼뜀어지러워요, 5학년, 담임)// ―「숨은그림찾기」부분

 

 이 외에「귓속말 하기― 때, 시간, 장소, 그리고?」,「보들레르와 은행잎 편지」,「선문선답-모자이크 이미지 」,「잃어버린 동화 1」,「시인을 위하여 -감성스케치」,「빨강 스펙트럼-근친상간 , 성폭력, Red Card??」,「프리다 칼로 1-자화상〮 〮부서진  기둥」,「 프리다 칼로 2-자화상 ․ 다친 사슴 」,「프리다 칼로 3-자화상  꿈 」등의 시편에서 이선 시인이 추구하는 하이퍼시를 만나볼 수 있다. 그는 사유과 감정을 하이퍼시에 넣어서 인간의 피가 흐르는 하이퍼시를 쓰려고 한다. 그것은 하이퍼시가 유리판 같은 냉랭한 이미지만의 시에서 벗어나서 독자와 소통하는 시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하이퍼시와 다른 시와의 차별성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 하는 점에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타인의 상처에 대한 치유와 하이퍼시의 특성을 결합하고 있는 이선의 시는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빈센트 반 고흐’나 ‘프리다 칼로’는 불행을 딛고 예술을 꽃 피운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그들을 시에 등장시켜서 그들의 고통과 함께 하고자 한다. 그것이 치유의 한 방법이다. 연작시 「프리다칼로」의 주인공 프리다 칼로는 소녀시절, 전차 사고 후 척추장애로 평생 걷지 못한 불구의 화가다. 그는 평생 남편의 바람기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리다 칼로에 대한 연민은 같은 여성이라는 입장에서 더 적극적인 거 같다.

 

고통스럽게 미간이 점점 밀려 맞붙는다// ―이 절박한 밤에도 / 선인장 꽃향기, 몸부림친다/ 희롱하듯 헐벗은 내 몸을 부드럽게 스쳐가는, 꽃바람// “여동생이, 남편 디에고와 잤어‥”// 내 자궁은, 알티플라노 중앙고원을 품고 홀로 잠든다/ 새벽안개가 첫눈을 치켜뜰, 때 /―초원이 용설란, 꽃잎 잉태하는 소리// ―「프리다 칼로-자화상 〮〮․ 부서진 기둥」부분

 

“내 몸에 박힌 화살을 빼지 마세요제발”// ―상처는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붓/ ―고통은 잘 섞은, 물감/ 배경처럼 서 있는 멕시코만, 푸른 바다/ 남색꽃 만발한, 클리토리아 초원// 봄이 오면,/ 굳어버린 뿔은 마피미 분지에 내던지고/ 말랑말랑한 새 뿔을 왕관으로 쓰고/ 초원을 힘껏 내달릴 터, /―귀를 쫑긋 세우고// ―「 프리다 칼로2-자화상 〮․ 다친 사슴 」부분

 

 3부 「가족」, 4부 「야생화」, 5부 「표절시비」 에 대한 해설은 줄인다. 그 시편들에도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현실의 문제를 포착하고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불안과 분노, 구원의식, 자기 존재에 대한 추구가 들어 있어서 긴장감과 충격을 주고 있지만 새로운 시의 형태에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3. 나가는 글

 

 이선 시인은 자신의 시를 온 몸으로 공연(performance)하는‘행위의 시’를 통해서 현대시의 공간을 확대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첫 시집『빨간 손바닥 의자』는 21세기 한국현대시의 현장에 퍼포먼스 시의 모델을 제시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집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답답한 언어의 틀에서 벗어나서 노래와 춤이 서로 어울렸던 ‘시의 원형’을 재현하려는 ‘현대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운동은 원시시대의 예술 정신과 표현 양식을 현대 예술에 접목하려는 원시주의(Primitivism)와 상통한다. 그는 또 하이퍼시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인간의 피가 흐르는 하이퍼시를 창작하고 있다. 유리판 같이 냉랭한 이미지에 사유와 감정을 넣자는 것이 그의 하이퍼시 창작 정신이다. 필자는 그의 첫 시집 『빨간 손바닥 의자』에서 그의 종횡 무진한 상상을 접하고 내심 경이로움을 느꼈다. 앞으로 그의 시가 어떻게 변모하고 어떤 놀라움을 줄지 기대하면서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의 해설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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